목장나눔

오늘의 말씀 묵상 2/8/2021 월요일 [본문: 마태복음 11장 20~29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2-08 16:32
조회
936
2월 8일의 말씀묵상입니다.

[ 마11:20~29 ]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오늘 본문의 말씀은 ‘겸손’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겸손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 마11:29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 마음을 갖는 것이 예수님을 닮은 제자의 모습이고 구원에 합당한 모습입니다. 겸손하지 않은 모습이 본문에는 어떻게 그려져 있을까요?

예수님이 사시고 사역을 하신 갈릴리 지방의 몇 마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 같은 곳이지요. 고라신은 어떤 곳인지 성경에 잘 나타나지 않지만 벳새다와 가버나움은 참 많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이곳에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곳이라고 마태는 설명합니다.(마11:20)

벳새다에서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아마 동네 사람 대부분은 예수님이 만드신 떡을 먹지 않았을까요? 소경을 고쳐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도들 중 빌립, 안드레, 그리고 베드로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가버나움은 더 큰 복을 받았지요. 우선 예수님이 나사렛을 떠나 사신 제 2의 고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곳 회당장의 딸을 살려주셨고 백부장의 하인도 고쳐주셨으며 지난 월요일에 나눈 말씀처럼 친구들이 침상 채 메고 온 중풍병자를 고쳐주시기도 했습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쳐주신 곳도 이곳입니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가장 많은 기적의 혜택을 누린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책망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왜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너무 쉬웠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버나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웃 청년’정도였습니다. 벳새다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그저 많이 배우지 못한 어부였고 빌립과 안드레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정도였습니다. 그들이 행하는 기적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고 잠시 환호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들의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는 않았습니다. 쉬웠기 때문입니다.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마음이 겸손하지 않은 마음인 것이지요.
잠시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해 볼까요?

우리도 예수님이 쉽지는 않습니까? 너무 익숙해져서 다시 읽는 그분의 말씀에 가슴이 떨리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며 우리는 사라져버릴 기적을 갈릴리 북쪽에 있었던 마을 사람들처럼 간절히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적은 놀라운 사건입니다만 믿을 쌓기에는 너무 허약합니다.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이 먹었다면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적을 행한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떡을 먹었던 사람들은 하루가 지나기 전에 다시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주님은 입으로 들어가 잠시 후에 다시 배고플 떡이 아닌 생명의 떡인 자신을 믿으라고 그런 사건을 보여주셨던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배고픔을 면할 떡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그들과 같은 모습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지 않습니까?

저들은 이방인의 도시 두로와 시돈, 구약의 범죄의 도시 소돔성 보다도 악한 사람들로 주님의 책망을 받습니다. 겸손하지 않은 것은 익숙함에 젖어 주님의 말씀을 무겁게 마음에 담지 못하는 것이고 결국 책망 받을 큰 잘못임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녔고 아무리 신앙생활에 익숙해도 처음 주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턱 없이 그 말씀을 믿는 어린아이같은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25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지금 같은 위기의 시대를 견디어 내는 것도 힘에 겹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위로의 말씀이 있습니다.

[ 마11:28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쉼을 얻는 비결은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유대인들의 사제관계를 말하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멍에는 짐승 두 마리의 어깨에 메어 짐을 끌게 하는 도구입니다. 이처럼 스승과 같은 멍에를 메는 것이 제자도 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과 같은 멍에를 지면 우리가 더 힘이 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로 겸손한 작정을 하면 우리 삶을 도우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비밀이지요. 우리 모두 그런 비밀을 갖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겸손이란 참 갖기가 어려운 덕인 것 같습니다. 특히 주님 앞에 겸손하기가 어렵습니다. 내 것을 내려놓는 것, 주님의 멍에를 어깨에 짊어지는 것, 이 삶이 가능해 지도록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가장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았기에 혹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볍고 쉬워지지 않게 하시고 늘 무겁게 마음에 담는 겸손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가족들이 주님께 나옵니다. 약속의 말씀처럼 쉼을 얻게 하옵소서. 우리를 쉬게 하시려고 자신의 어깨에 죄짐을 져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혁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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