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 묵상 2/7/2021 주일 [본문: 마태복음 11장 1~19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2-07 09:43
조회
1064

2. 7. 주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주가 일하시네”: " target="_blank" rel="noopener">

[본문: 마태복음11:1-19]
1.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2.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7.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10.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6.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생명의 삶 온라인 링크]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본문이해]
마태복음 11장과 12장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11장에 기록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수용하지 않는 불수용이며, 12장의 반응은 더욱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적대적 반응이다. 마태의 관심은 이렇게 사람들이 불수용, 적대적 반응을 보일 때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6]
세례 요한은 분봉 왕 헤롯 안디파스의 불법 결혼, 곧 자신의 동생 빌립의 아내였던 헤로디아를 취한 것을 정죄함으로써 감옥에 투옥된 상태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떤 일들을 하셨는가를 옥중에서 들은 후에 자기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의 메시아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물론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각종 질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라고 명령하시고, 중풍병자를 고치며 죄를 용서하는 사죄의 권세까지 나타내시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며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메시야 정체성에 대해서 질문했던 것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볼 때는 여전히 악한 권세자들이 득세하며, 나라의 상황이 바뀌지 않고 있으며,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사역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주님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게 되었으며,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세례 요한 자신도 예수님을 정치적, 경제적 해방과 독립을 이끄시는 메시아로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의 의도를 파악하신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질문에 대해서 5절 말씀을 통해 자신이 분명히 메시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이사야 5:5-6, 61:1을 근거로 메시아에 관해 예언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분명히 메시아인데 세례 요한이 일시적으로 의심하고 실족하는 것에 대해서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6절의 ‘실족하다’라는 말은 어원상 ‘걸림돌이 되다, 길 가운데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을 놓다’라는 의미로 결국 ‘불신하기 시작하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러한 실족의 원인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어떤 메시아인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주님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함을 반증하는 말씀입니다.

[7-15]
세례 요한의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신 후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례 요한을 어떤 사람으로 보는가에 대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은 선지자 이상의 인물이며, 구원 역사의 과정에 있어서 그는 가장 가까이에서 메시아를 예언한 전령이며, 구약성경 말라기 4:5에 예언된 메시아 이전에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라고 말씀하시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시며 극찬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모세의 율법 아래 놓인 ‘옛 시대’에 속한 자요, 그 시대의 정점에 섰던 사람일 뿐입니다. 곧 세례 요한이라 할지라도 아직 그는 메시아의 사역으로 완성된 천국을 경험하지 못했고, 성취된 예언의 단계, 즉 십자가로 인한 구원의 완성 단계에 들어와 있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그는 성취되기 전 단계의 예언자요 선지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1절에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를 언급하시며 주님에 의해서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 누구나 새 언약인 예수님의 복음을 경험할 수 있기에 ‘지극히 작은 자’라도 천국 복음에 동참하지 못했던 옛 시대의 그 어떤 사람, 즉 정점에 섰던 세례 요한보다도 큰 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은 세례 요한이 아브라함, 모세, 다윗, 엘리야 보다 인물의 됨됨이가 훌륭하다는 의미가 아니며, 또한 구원의 완성인 십자가 사건 이후의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의 인물 됨됨이가 세례 요한보다 더 훌륭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의 훌륭함이나 인물의 됨됨이를 가리키는 말씀이 아니라, 구원 역사의 과정 속에 있는 전후관계를 따져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12절에서는 세례 요한조차도 가장 작은 자로 여겨지는 천국은 과연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를 본절을 통해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 귀절은 “침노를 당하다(비아제타이, 강제로 들어가다, 힘을 쓰다)”라는 말을 헬라어의 시제에서 중간태로 보느냐, 또는 수동태로 보느냐에 따라 학자들 사이에 정반대의 해석이 나오게 되는 난해 구절이기도 합니다. 먼저 누가복음 16:16절의 말씀과 연관지어 중간태로 해석하면 “천국은 힘으로 스스로 열린다”라는 뜻으로 힘에 의해 열리는 천국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강력한 능력과 힘을 통해서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치고 도래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NIV는 ‘forcefully advancing’으로 번역하여 힘차게 뻗어나가는 천국의 모습으로 번역하였으며, 한글 표준새번역도 ‘하늘 나라는 힘을 떨치고 있다’라고 번역하여 본문을 천국이 도래하는 힘과 역동성을 표현하는 문장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해석은 마치 침략하듯이 적극적인 열정으로 천국에 대한 반응을 보임으로서 천국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해석입니다. 이 해석을 따른다면 예수님 당시에 주께서 꾸짖은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지식은 많았을지 모르지만 천국을 ‘침노’하지 않아서 차지하지 못하게 되며, 반면에 부족하고 흠이 있다고 비판받고 외면당했던 세리들과 죄인들이 오히려 천국을 침노하여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나 핍박과 같은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도 메시아에 대해서 실족하지 않고 천국 진리를 들을 귀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수용하는 자들은 복된 자들이며 천국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해석은 누가복음과 연관지어서 생각하지 않고 마태복음의 문맥에서만 해석하여 수동태로 보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해석이 완전히 반대가 됩니다. 마태복음의 문맥은 10장에 복음 전도자의 고난과 핍박을 언급하시고, 또한 세례 요한이 핍박을 당해 감옥에 갇혀 있으며, 주께서 그런 세례 요한의 상황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을 말씀하시는 문맥의 배경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배경을 고려한다면 본문을 “천국은 방해를 받는다”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즉 “천국은 맹렬한 공격을 당하고 있다”라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KJV, NASB, 한글개역성경은 수동태로 보아서 ‘천국은 침노(공격)를 당한다’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의 두 가지 방향의 해석 때문에 12절 끝부분의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라는 말씀의 해석 또한 달라집니다. 전자의 경우는 ‘용기 있는 자, 믿음의 능력을 갖고 적극적인 자는 임박해 오는 천국을 향하여 돌진하여 천국을 차지한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즉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는 자들이 천국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후자의 해석을 따르면 ‘침노하는 자’들은 폭력적인 자들이나 악한 자들로서 바래새인이나, 악한 영들, 또는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 세례 요한을 죽이게 되는 헤롯 안티파스나, 예수님에게 적대감을 가진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이 빼앗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므로 주님이 당하게 될 고난이나, 성도들이 고난받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2절 말씀에 대해서 서로 상반된 해석을 길게 설명한 이유는 어떤 설명이 옳다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두 입장이 모두 가능한 해석으로 여러 번역 성경들과 학자들이 대등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 귀절이라 두 주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소개하였습니다. 어떤 한 가지를 선택하기 보다는 생각의 폭을 넓혀서 묵상의 깊이를 더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6-19]
본 단락에서는 장터의 아이들 비유를 통해서 천국을 침노하여 빼앗으려고 하지 않는 당시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피리 소리가 들리면 춤을 추어야 하고, 곡하는 소리가 들리면 함께 울어 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어떤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는 자들,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있음을 비유로 말씀하시며 주께서 그런 자들의 냉담함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향해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메시지를 따라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요한의 메시지와 금욕적인 생활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공감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요한을 “귀신들렸다”라고 조롱하며 냉담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금욕을 선택하시지는 않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는 개혁적이고 혁명적인 행보를 걸으셨습니다. 주님은 ‘병든 자들의 의원”을 자처하시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케 하시고 용서해 주시는 분”으로 등장하시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부정한 여인의 곁에서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기도 하였으며, 또한 당시 사회에서 부정하다고 내쳐지는 문둥병자들을 치료하셨으며, 그리고 죄인이라 불리우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 자처하시며 함께 식사하고 옆 자리에 앉으신 분이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보에 대해서 세상은 음식을 탐하고 술주정뱅이라고 비난하고 조롱합니다.

하지만 마태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냉담한 반응과 비난을 하는 당시 사람들에 대해서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옳다 함을 얻는다”라는 의미심장한 격언으로 일침을 날리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세상이 비난하고 조롱하고 거부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는 요한의 삶과 메시지나 예수님의 삶과 메시지, 그리고 그 결과에 의해서 정당성이 입증될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본문 설명이 너무 길어서 ‘묵상 및 적용’을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묵상의 포인트를 세례 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에서 찾고자 합니다. 바로 “실족하다”라는 단어입니다. 세례 요한은 태어나는 것도 천사의 소식과 함께 기이한 이야기의 배경을 갖고 태어났으며, 메시아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고, 당시의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선지자로 인정되고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아심을 갖고 있었다’라는 점이 저로 하여금 묵상을 하게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도 그랬다면, 세례 요한의 경건이나 그의 금욕적인 신앙 생활에 한참 뒤쳐지는 저 같은 사람은 실족을 해도 몇 번은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족하다’라는 말을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해 보면 ‘내가 믿고 복종해야 할 주님에 대해서 불신하기 시작했다’라는 말이 됩니다. 세례 요한이 주님에 대해서 완전히 돌아서서 실족한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하지만 감옥에 있는 요한으로 하여금 당시의 정황이나 상황, 세상 돌아가는 환경 등등이 그로 하여금 ‘걸림돌’이 되어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확신하지 못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경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 생활 속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나, 응답이 우리의 생각과 다를 때 우리는 회의나 의심, 또는 심하게 생각하면 불신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사실 이 말 자체가 문제가 있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보는 기준에 의해서 예수님을 평가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했던 기도의 응답, 내가 생각했던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아니라면 순종하거나, 인정하거나, 따르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임이 분명한데, 삶의 정황 속에서 우리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우리의 어려운 상황에서 즉시 우리를 구원해 주시지 않거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질병에서 치유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회의적, 의심, 불신 등이 가만히 틈을 타서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말을 바꾸면 내가 생각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게 보여주신 그 모습 그대로”를 때로는 이해하기 힘들고, 때로는 순종하기 힘들어도 받아들이는 믿음의 성숙함이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다르다고 실망하거나, 실족하거나, 회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회의를 품기보다는 그 섭리를 통해 이루어질 오묘하고 경이로운 일들을 기대하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 55:8-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 말씀이 위로와 격려, 용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1년째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질병의 사태나, 여전히 오리 무중인 비즈니스와 여러 가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견디는 사랑의 첫번째 조건인 ‘오래 참음’이 있기를 소원하며 하나님의 선한 일이 반드시 나타날 것임을 기대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땅의 어둠과 세상이 하나님께 도전하는 악함을 내버려 두지 마시고, 주의 손길의 공의와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세상이 악할 때에 선한 자가 고난 속에서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주의 백성들이 어둠 속에서 세상을 밝히는 빛과 소금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상황 가운데 있는 질병의 근심들과 삶의 의식주에 대한 염려들과 후손들에 대한 고민들을 주께서 아시오니 주의 방법으로 해결하여 주시며, 그 해결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위해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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