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4/28/2021 수요일 [출애굽기 10:12-20]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4-28 09:22
조회
718
[본문: 출애굽기 10:12-20]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 땅 위에 네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여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
1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매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 들인지라
14.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피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
15. 메뚜기가 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되었으며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온 땅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
16.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이르되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으니
17. 바라건대 이번만 나의 죄를 용서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
18. 그가 바로에게서 나가서 여호와께 구하매
19. 여호와께서 돌이켜 강렬한 서풍을 불게 하사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넣으시니 애굽 온 땅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니라
20.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본문이해]
(12-15, 여덟번째 메뚜기의 재앙이 시행됨)
모세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지팡이를 들어 메뚜기 재앙을 시행합니다. 그러자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는 사상 초유의 메뚜기 떼가 애굽 온 땅을 어둡게 할 정도로 임하여 피해를 주니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먹으므로 애굽 땅에 푸른 것이 남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12절, “밭의 모든 채소”: 이 문구의 히브리 원문은 “밭(히, 하아레츠)”은 정관사 “하”가 붙어서 일반적으로 “그 땅”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그 땅’이란 애굽 전체를 가리킵니다. 또한 “채소(히, 에세브)”는 밭의 채소 외에 일반적인 자연에 있는 모든 “풀”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본절은 “애굽 땅의 모든 풀(식물)”을 의미합니다. 애굽의 첫번째 재앙인 강물이 피로 변하는 피의 재앙이 임했을 때가 나일 강의 수위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10월 말~11월 초였으며, 여덟번째 재앙인 메뚜기의 재앙은 밀과 나맥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인 3월경으로 본다면 벌써 약5개월여의 시간이 지나간 것입니다.

14절, “애굽 온 땅”: 당시의 애굽 땅은 남북으로 약 832km에 달하는 거대한 땅입니다. 이 길고 거대한 땅에 어떻게 메뚜기가 순식간에 날라 올 수 있느냐의 문제는 사막 메뚜기의 습성을 알면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막 메뚜기는 보통 한 번에 17시간을 쉬지 않고 날 수 있으며, 또한 2,400km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메뚜기 떼들이 애굽 온 땅에 임하여 재앙이 닥치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것입니다.

(16-20, 바로가 또다시 네번째로 약속을 번복함)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한 번만 더 자신을 용서하고 메뚜기 재앙이 그치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모세가 바로의 세번째 출애굽 허락을 약속 받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서풍을 불게 하여 메뚜기들을 홍해로 몰아넣으시니 재앙이 그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완악해진 바로가 또다시 네번째로 약속을 번복하여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16절, “죄를 지었으니”: 이 단어의 히브리어 “하타티”의 일차적인 의미는 “빗나가다, 벗어나다”라는 의미로 활을 쏘는 자가 과녁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을 때나 가야할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고 벗어나 그릇 행하는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단어가 성경에 쓰일 때는 “죄를 범하다, 득죄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상태나 행위를 가리킵니다. 바로는 말로 자신이 범죄한 것을 깊이 뉘우치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런 죄의 고백은 출 9:27 “내가 범죄하였노라”라고 말한 적이 있었으며, 또한 오늘의 본문에서도 나중에 약속을 번복하는 것을 볼 때에 급한 상황 속에서 말로만 했던 고백임을 알 수 있으므로 참 회개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17절, “용서하고”: 이 단어의 히브리어 “사”의 원형은 “나사”로서 구약성경에서는 “듣다, 용납하다, 용서하다, 높이다, 들어 올리다” 등등의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어의 의미만 따져 생각하면 히브리 사람들에게 용서의 의미는 “어떤 것을 들어 올리다”라는 의미에서 발전되어 “죄를 들어서 제거하다”, “용서하다”라는 의미로 정착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어떤 사람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때나 죄를 사면해 줄 때는 ‘용서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사람을 제외한 어떤 사물이나 그 외의 것들에 사용될 때에는 “운반하다, 일으키다”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19절에 “메뚜기를 홍해로 몰아”에서 “몰아”라는 단어는 똑 같은 “사”라는 히브리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용서하다”로 번역하지 않고, 메뚜기를 서풍을 들어서 옮겼다는 의미로 “몰아”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19절, “홍해에”: 이 단어의 히브리어는 “얌 쑤프”이며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갈대 바다(Sea of reeds)” 입니다.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 단어의 직역 때문에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에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형성된 바다 한 가운데를 건넌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갈대가 자랄 만큼 낮은 습지대를 헤쳐 나갔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얌 쑤프”(갈대 바다)는 홍해 주변에 크고 작은 호수가 많고, 이 곳에 자생하는 갈대가 많아 그렇게 불리웠을 뿐, 이스라엘 백성이 갈대로 덮인 습지를 건넌 것을 과장하여 표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애굽의 군대가 홍해에서 몰살을 당했으므로 사람이 쉽게 건널 수 있는 갈대 습지였다면 군대가 몰살당할 정도는 아니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홍해 이후에는 애굽의 군대가 추격을 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군대의 몰살이나 엄청난 피해로 도저히 추격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군대가 몰살할 정도가 되려면 사람이 쉽게 건널 갈대 습지가 아니라, 생명을 해칠 수 있는 깊이와 넓이가 보장되는 홍해 바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넓은 홍해 바다 중에서 어느 지점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 갔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다만 추정할 뿐입니다. 학자들에 따라 다르지만 홍해(Red Sea)는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수에즈 만(Gulf of Suez)과 아카바 만(Gulf of Aqbah)으로 갈라집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갈라지는 이 두개의 만을 모두 포함하여 홍해(Red Sea)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갈대가 많이 자라는 만이 수에즈 만 쪽이기 때문에 홍해에서 수에즈 만을 거쳐 비터 호수(Bitter)를 거쳐 지중해로 빠져나가는 물길 중에서 어느 한 곳일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묵상 및 적용]
위급할 일을 당하면 급한 대로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잡고 늘어진다는 속담으로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사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지푸라기를 잡아야 했겠습니까? 물에 빠졌을 때 본능적으로 어떤 것이라도 붙잡아 가라앉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는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지푸라기를 붙잡는데 힘을 다 써서 헤엄을 칠 힘마저 잃어 버리기 쉽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애굽 땅에 여덟번째 재앙인 메뚜기의 재앙이 불어 닥쳤습니다. 엄청난 메뚜기 떼의 공격에 바로 왕은 지금까지는 보여 주지 못한 모습을 보입니다. 16절에 “급히”라고 표현된 말은 바로 왕이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왕은 불려 온 모세와 아론에게 여호와 앞에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하여 이 재앙을 떠나가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모세가 남녀노소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데리고 간다고 한 것을 악하다고 비난했던 바로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왕이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으니 바라건대 이번만 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하는 바로의 고백은 마음 중심에서 나온 진실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바로 왕은 현실의 감당할 수 없는 큰 고통 앞에서 그 고통을 면할 속셈으로 자기 잘못을 거짓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에서 모세의 간구로 메뚜기 재앙이 그치자 다시금 마음을 완악하고 강팍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으며 약속을 깨뜨려 버리는 사실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바로의 모습이 우리에게서도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의 순간에 이르면 자기가 믿는 신을 찾곤 합니다. 그리고 신에게 ‘이번 한 번만 구원해 주시면 신께서 원하는대로 다 하겠습니다’라고 맹세를 하며 서약을 하곤 합니다. 이렇게 했던 맹세나 서약들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려운 순간에만 찾는 믿음은 고통과 환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임시 방편이지 참된 믿음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다가 고난만 찾아오면 하나님을 찾으며 구원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물론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은 성도의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란 중에 구하라’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단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만 하나님을 찾는다면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은 바로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개인 이기주의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믿음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오느 것이 아니라, 이타적인 마음에서 더 성숙된 믿음을 보일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헌신’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이타적인 마음입니다. 즉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는 이타적인 믿음입니다. 이런 이타적인 믿음은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따르고 의지하는 믿음이기에 나의 이익이나 안전 우선주의가 아니라, 내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되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필요에 의해서 구하고 찾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요구에 대하여 언제든지 나 자신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신앙의 모습이 성도가 지녀야 할 믿음의 모습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동기와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현실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현실에 닥친 문제와 고통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하여 바로처럼 고백으로 그치는 모습인가요? 행동이 따라가지 않는 고백이나 간구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참 믿음의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화살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Give Me Jesus!”

[기도]
우리의 소망 되시는 주심! 주의 손 안에서 모든 것이 선하게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오늘도 간절히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며 찬양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정말로 힘든 가운데 있는 형제와 자매들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아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주님! 그들을 기억하시고 찾아가셔서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치료해 주시옵소서. 연약한 자들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그들의 심령에 은혜가 함께 있기를 바라오니 구원을 베푸어 주옵소서. 현실을 모면하려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 대한 징정한 사랑과 헌신으로 주를 찾고 구하는 참 믿음의 성도가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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