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 묵상 2/5/2021 금요일 [본문: 마태복음 10장 16~33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2-05 09:25
조회
752

2. 5. 금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목수의 이야기": " target="_blank" rel="noopener">

[본문: 마태복음10:16-33]
16.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24.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생명의 삶 온라인 링크]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본문이해]
[16]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는 예수님의 심정과 당부를 담고 있는 16절에서 “지혜롭다”란 말의 헬라어 의미는 ‘생각이 깊은, 사려 깊은, 신중한’이란 뜻입니다. 사탄은 항상 간교한 술수와 유혹으로 믿는 자를 넘어뜨리려 하므로 복음을 전할 때에 사려 깊고, 신중하게 처신하라는 의미입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한 것은 서로 조화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비하여 갖추어야 합니다.

[17-23]
본 단락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당할 핍박에 대해 예고하며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핍박’이란 예수님 때문에 또는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핍박의 가해자는 공회나 총독과 임금과 같은 관리나 공적 권세자들 뿐만이 아니라, 가족이나 혈육도 예외일 수 없기 때문에 핍박은 단순하게 육체적 고난의 경계를 뛰어 넘어서 대립과 갈등, 그리고 근원적인 관계까지도 뒤흔들어 놓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이러한 핍박의 배후에 있는 악한 세력은 주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분을 미워하며, 그 분을 따르는 성도들을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핍박에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견딘다’는 것은 모든 환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핍박의 때에는 ‘인내’가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능력’을 원하고, ‘은사’를 사모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내’ 입니다. 왜냐하면 인내를 통해 사람의 믿음이 연단되며 참 믿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23절 앞부분에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라는 의미는 단순하게 핍박이 있을 때마다 무책임한 도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핍박의 사건들은 결국 복음의 확산과 새로운 민족들의 구원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은 14절에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는 말씀이나 16절에 뱀처럼 지혜로우라는 말씀, 또한 17절에 사람을 삼가라는 말씀 등등과 함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얼마나 지혜롭게 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리고 23절 뒷부분의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라는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지어 생각하면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신학적 난해 구절이 되어 미궁 속에 빠질 수 있는 구절입니다. 이 난해 구절을 무리하게 해석하여 오류에 빠지기 보다는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는 때가 있음을 인식하고 천국 복음 전파의 시급성을 염두에 두고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재확인하는 구절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24-31]
핍박하는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24-25절에서는 제자와 선생, 종과 상전의 예를 들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씀합니다. 선생되시는 예수님께서 이미 욕과 비방을 받았으니 그 제자들이 핍박받는 것은 당연하 것이므로 받아들이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26-28절의 말씀은 마지막 날에는 불의한 자의 모든 불의가 알려지고 착한 자의 모든 선행도 알려질 것이므로 오히려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복음전하는 자는 목숨을 잃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9-31절은 제자들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아무리 하찮은 미물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는 것처럼 공중의 참새 한 마리까지도 돌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어 우리를 귀하게 돌보시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32-33]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을 시인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시인하다”라는 말의 헬라어 의미는 단순하게 인정하거나 ‘그렇다’라고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고백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및 적용]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당하게 될 핍박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핍박을 받게 될 전도자를 향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 담겨있는 오늘의 본문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담겨진 생각은 “나의 모습” 입니다. 제자들이 핍박을 받게 될 것이기에 핍박과 고난이 없다면 제자의 기본적인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란 말인가? 등등의 회의적 고민입니다.

나의 현재의 모습!

교회 공동체에는 공동체 구성원을 표현하는 다양한 단어들이 존재합니다. ‘성도’란 말도 그 단어들 중에 하나입니다. 같은 의미인 것도 있지만 일단 대충 생각나는 데로 써 내려가면 “교인, 그리스도인, 기독교인, 회중, 신자, 초신자, 새신자, 믿는자, 구원받은자, 중생한자, 천국백성, 하나님의 백성” 등등. 아마 저보다 더 많은 용어들을 써 내려갈 수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을 표현하는 다양한 말들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말은 결국 스스로 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가장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나, 형제나, 친구나, 교회의 지도자들도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 입니다. 즉 구원자 되시는 주님을 제외하고 오직 나 자신만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인지, 성도인지, 아니면 멀찍이 떨어져서 그냥 따라가는 군중인지를 알 수 있는 가장 가깝게 알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회학자가 현대인을 정의할 때에 “자기 자신도 자신을 정의하지 못하는 시대에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내가 누군지를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는 21세기라면 이 시대는 혼돈의 시대이며, 회의의 시대이며, 정체성 혼란의 시대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마지막 부분 32-33절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이라는 귀절을 읽을 때에 마치 머리를 망치를 때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시인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주께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말해 준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기 전에 나를 창조하신 창조주요, 나를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운명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숙제인 내가 누구인지를 주께서 “시인해 주시는 것”은 놀라움이요, 고마움이요, 경이로움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주님의 “시인하심”이 바로 내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꼭 다물고 있지만 말고, 우리의 믿음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침묵은 금이다”라고 말하며,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오히려 침묵이 나을 수 있겠지만, 예수님은 성경에서 공공연하게 시인하고 고백해야 한다고 선언하십니다.

종종 세상은 손해보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는 이기주의자나 비겁한 자들이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런 자들을 제외하고 선량한 다수의 사람들이 침묵하기 때문에 불의한 소수가 판을 치는 불합리, 불공정한 경우들이 존재하는 곳이 세상입니다. 불법, 불합리, 불공정이 존재하는 곳에서 침묵은 결코 절대적인 선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은 침묵의 종교가 아닙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에 비추어 본다면 기독교는 오히려 고백의 종교이며,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는 종교입니다. 위험과 고난과 핍박을 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신이 아니라, 살아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시편 116:10의 개역개정 번역을 인용하면 “내가 믿는 고로 말하리라”라고 고백합니다. 복음에 관한 것이고,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 분의 진리에 관한 것이라면 성도는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분명하게 표현해야 하며, 때로는 나 혼자 반대하거나 나 혼자 찬성하는 일이 있더라도 진리의 말씀이요, 구원의 복음이라면 분명하게 두려움 없이 드러내어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드러내고, 주님을 시인하는 것이 나도 몰랐던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는 영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한 성도님이 긍휼히 여기는 사람의 임종을 앞 두고 용기를 내어 복음을 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주변의 가족, 친척, 친구, 알고 있는 이웃들의 태어난 날은 알 수 있지만, 그들이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임종을 지켜볼 기회조차 없이 보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른 뒤에 슬픈 소식을 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얼굴을 보지 못하더라도 전화할 수 있고, 연락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바로 지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내가 믿는 예수님을 전하고 시인해야 합니다.

때가 이르기 전, 주께서 오시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 나의 악함과 게으름과 불신의 장벽을 허물어 주시고, 주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용서의 은혜를 주옵소서. 어려움이나 고난, 핍박이나 질병 앞에서 스스로를 뒤로 물리는 비겁한 자가 아니라, 용기있게 주의 이름을 시인하는 제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믿음으로 험난한 인생길을 용기 있게 살아낸 선진들의 발걸음과 주님의 발걸음을 따라 끝까지 견디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내가 만나서 구원의 복음을 전할 사람을 발견하게 하시고 만나게 하셔서 한 영혼이라도 주님 오시기 전에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나를 사용하여 주시기를 바라며,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나를 시인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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