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 묵상 2/4/2021 목요일 [본문: 마태복음 10장 1~15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2-04 09:31
조회
1585

2. 4. 목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 ”아버지의 마음” 링크: " target="_blank" rel="noopener">

[본문: 마태복음10:1-15]
1.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5.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9.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11.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생명의 삶 온라인 링크]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본문이해]
마태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교훈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장입니다. 따라서 10장은 전도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특히 핍박당할 때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1-4]
열두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현장으로 보내 실제로 복음을 전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도록 파송하십니다. 본문에서는 특히 ‘제자’란 이름과 함께 ‘사도’란 호칭이 처음 등장합니다. 제자는 ‘배우는 자, 익히는 자, 따르는 자’란 의미라면, 사도란 용어는 ‘파송 받은 사명자’란 의미이므로 주께서 부여하신 권능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러 떠나는 열두 제자의 정체성을 알려 주는 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부르셨다(헬, 프로스칼레싸메노스)’라는 단어는 처음 부르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부르시고 훈련하신 제자들을 특별한 목적으로 ‘소집하셨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마태복음 10장에 와서야 12제자를 불렀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말씀을 듣고 배우며 훈련받아 온 제자들을 소집하신 것입니다. 막 3:13-19, 눅 6:12-16에 의하면 산상수훈 이전에 12제자의 임명이 완료되었음을 알 수 있으므로 학자들은 12제자들의 부르심이 완료된 시점과 본문에 등장하는 파송 시점이 6-12개월의 시간차가 있을 것이라고 유추하고 있습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에 대해서는 마 4:18-22에 부름을 받는 과정이 언급되고, 마태는 9:9에 언급되어 있지만, 다른 제자들에 대해서는 부름받는 과정이나 장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제자들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소개합니다. (1) 시몬: 어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세례 요한의 제자였으며, ‘하나님께서 들으심’라는 뜻의 시몬에서 ‘반석’이라는 뜻의 ‘게바’라는 아람어 이름을 예수님으로 부터 받았으며, 게바의 헬라어식 이름이 베드로입니다. (2) 안드레: ‘남성적인’이란 뜻으로 요 1:41에 의하면 안드레가 먼저 예수님께 부름을 받아 형제 베드로에게 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 어부, ‘여호와의 주심’이란 뜻의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는 ‘발꿈치를 잡음’이란 뜻이 있는 ‘야곱’의 신약식 이름으로 제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한 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4) 요한: 어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로 요한복음이 기록하고 있으며 제자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살아 남아 많은 사역을 감당한 자입니다. (5) 빌립: 세례 요한의 제자 출신으로 ‘말을 사랑하는 자’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그는 베드로와 같은 벳새다 출신입니다. 초대 교부 폴리크라테스에 의하면 아시아의 로마 식민지에서 사역한 뒤에 히에라폴리스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6) 바돌로매: ‘돌로매의 아들’이라는 의미로서 빌립이 예수님께로 인도한 나다나엘과 동일 인물로 추정되며, 나다나엘의 뜻은 ‘하나님이 주신다’라는 의미입니다. (7) 도마: ‘쌍둥이’라는 의미의 ‘디두모’라는 아람어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전승에 의하면 동쪽으로 가서 인도 혹은 페르시아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8) 마태: 세리.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의 마태는 동일한 의미를 가진 ‘맛다냐’라는 히브리식 이름도 가지고 있습니다. (9)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알패오는 ‘사유’라는 뜻으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는 다른 인물이라는 것외에 거의 알려진 내용이 없습니다. (10) 다대오: ‘사랑스러운 자’라는 뜻의 다대오는 유다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11) 가나안인 시몬: 이름의 뜻은 위에 언급한 것과 똑같은 ‘하나님께서 들으심’이란 뜻입니다. ‘가나안인’이란 표현은 헬라어로 ‘카나나이오스’(kananaios)로서 ‘가나안 사람’(Canaanite)이란 의미가 아니라, 열심당원이란 표현이기에 영어로는 ‘Zealot’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몬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독립과 주권회복에 관여했던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12) 가룟 유다: ‘찬양’이라는 이름의 뜻임에도 불구하고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 넘기고 자살한 비운의 제자입니다.

[5-15]
본 단락의 내용은 파송받은 제자들, 곧 전도자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먼저 5-6절에서는 제자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말씀하십니다.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에게 가지 말라는 말씀은 이방인 전도를 싫어하셨다고 보기 보다는 전도의 우선순위에서 제자들이 우선적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할 전도의 대상자를 정해주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 주님과 제자들의 여건과 상황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전도할 수 있는 대상은 아직 때가 되지 않고 무르익지 않은 이방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임을 아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7절은 복음 전도시에 전파할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십니다. 그 내용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메시지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이미 와 계셨기 때문에 천국은 단지 예수님을 지칭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주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구원 사역으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그에 따른 축복과 승리’가 가까이에 와 있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유대 정황 속에서 이 메시지는 회개하고 주를 믿기만 하면 천국의 축복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으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8절은 입으로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해야 할 일(사명)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일들은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일” 입니다. 이러한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의 연장 선상에서 제자들이 이어받아 감당해야 할 사명이요, 동시에 천국의 임재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이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권세가 역사하는 ‘통로’의 역할을 감당하기에 사도란 말이 뜻하고 있는 바를 말 그대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8절의 종반부에서 10절까지는 물질에 대한 태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물질 문제에 있어서 염려하지 않아야 되는 근거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친히 그의 자녀들을 돌보시고 천국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일꾼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약속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11-13절은 전도자의 주거 문제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주목해야 하는 점은 전도자는 자기가 어디에 머물러야 할 것인지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다고 저절로 숙소가 생기고 먹을 것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집이 합당한지를 부지런히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합당한 집을 찾으면 평안을 빌어 주라고 하십니다.

14-15절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영접하지 않는 자에 대한 태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이런 자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묵상 및 적용]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12 제자들이 “제자”의 신분에서 “사도”의 신분으로의 정체성의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 마음에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배우는 자, 따르는 자, 익히는 자’의 위치에서 ‘파송 받은 자’로의 변화는 해야 할 일의 변화이며, 더 나아가서는 거처와 장소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품 속에 있던 자들이 그 분의 권위를 받아서 예수님의 품 밖으로 나아가는 도전이요, 훈련이요, 변화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도전과 훈련과 변화를 가능케 해 주는 한 가지 용어가 본문에 등장하는 데, 바로 “권능(authority, power)”이라는 단어입니다. 권능이란 참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권능이 없으면 아무리 잘 배운 이론과 지식도 무력하고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래새인들, 사두개인들, 율법학자나 서기관들의 가르침이 논리적이고 분석적이기는 했지만 권세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논리와 지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 7:28-29에 의하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복음적 주장이나 복음선포를 하고 있음에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반성해 본다면 ‘주님이 보여주신 이러한 권위, 권능을 잃어버리고 서기관들처럼 무미건조한 말만 늘어 놓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권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라는 당연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권능(권위)를 얻는 것은 고함을 지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박사 학위를 받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화려한 옷을 입거나 재주를 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 권능은 마 1:1에 처음과 끝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께서…권능을 주시니라”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오직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즉 본문에 등장하는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과 ‘모든 병을 고치는 권능’은 나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며 예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사용하면서 내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그런척~’ 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자요, 사기꾼이요, 결국 그 권위와 권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나의 유익을 구하거나, 어느 순간에 ‘내 일’로 착각하거나 일을 맡긴 예수님 보다 내가 더 드러나는 주객이 전도되는 순간 권위와 권능은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날아가 버릴 뿐만 아니라, 혹여 되돌아올 때는 나에게 힘과 능력이었던 것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또 주의 권능과 권위가 아니라 온 몸을 갈기갈기 베어 버리는 날카로운 칼과 결코 피할 수 없는 형틀이 되어 되돌아옵니다.

이런 악용의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5-15절에 가르치시고 있는 전도자의 자세와 태도를 마음에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더 가지려 하지 말고, 눕고 자고 편함을 구하지 않고, 즐거움에만 취하여 사명에 게으르거나 망각하거나 잊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에 꾸밈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기에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요, 보냄을 받는 자는 말과 행동, 요청과 전파, 그리고 고통과 시험, 죽음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합니다.

전도자의 태도와 준비, 사명과 해야 할 일들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10장의 말씀묵상은 우리들에게 묵상에서만 멈추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자들이 되라고 촉구합니다. 하나님은 선한 마음을 품고 복음을 전파하려는 자들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고 만날 자들을 예비해 두시고, 도울 자들을 예비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돕기 위해 사르밧 과부을 예비해 놓으셨고, 엘리사를 돕기 위해 수넴 여인을 예비하셨으며, 바울의 사역을 돕기 위해 두아디라 성의 루이아를 예비하셨으며, 고린도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예비하셨으며, 예수님의 사역을 돕기 위해 제자들과 수많은 이름 모를 자들을 예비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라는 주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담겨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 담겨진 주님의 간절한 음성을 힘입어 내가 만날 사람, 하나님이 만나게 해 주시는 예비된 자를 찾는 선한 역사들이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끝으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적으며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2)

[기도]
내게 오셔서 구원을 선물로 주신 예수님! 주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합니다. 내게 주신 사명을 잃어버린 채 자만과 교만에 빠졌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더 가지려고 하였고, 눕고 자고 편하려고 하였고, 즐거움에만 취하여 사명에 게으르고 망각하고 잊어버린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나를 부르신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 가난한 자, 어두운 자, 빛이 없는 자들에게 구원의 의를 알리며,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오도록 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권능을 주셔서 일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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