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 묵상 12/19/2020 토요일 [본문: 베드로전서 4장 1-11절]

작성자
KCPC ADMIN
작성일
2020-12-19 20:25
조회
1003


 

오늘의 말씀 묵상

[본문: 베드로전서 4장 1-11절]

1.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6.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7.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생명의 삶 링크: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본문이해]
1-6절에서 고난과 성도의 믿음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 죄를 멈추고 사람의 정욕대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고난에 굴하지 않는 성도는 아무리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제물을 찾으러 다녀도 영적 전투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성도의 신실함을 확증하는 “믿음의 시험장이 된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벧전 4:3-5절은 성도의 과거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음란, 정욕, 술취함, 방탕, 향락, 무절제한 우상숭배의 삶은 성도의 삶이 아니라, 현재 성도들을 핍박하고 있는 자들의 삶입니다. 성도는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의 불신자들로부터 이상히 여김을 당하고 비방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의 선한 행실과 거룩한 삶이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분에게 성도의 삶을 사실대로 고하여 증거가 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과 6절에 등장하는 “죽은 자”란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벧전 3장의 말씀묵상을 통해서 “죽은 자”의 구원의 가능성에 대해서 대다수의 개혁신학자들이 부정하고 있음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4장의 내용에도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말하면서 육체로는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았다고 표현하고 있으니 혹시 ‘죽은 자의 구원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논란입니다. 이 논란에 대해서 개혁신학에서는 전통적으로 본문의 ‘죽은 자들’이란 “먼저 복음을 듣고 그 후에 죽은 성도”들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말합니다. 죽음이란 베드로 당시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심각한 영적인 문제이며, 임박한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두려움과 배교의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죽음’이라는 직면한 문제 앞에서 본문 6절의 말씀은 박해로 순교하는 성도들이나 믿다가 죽은 성도들에게 6절의 말씀은 오히려 위로와 믿음의 소망이 됩니다. 육체는 죽는다 할지라도, 그 영은 하나님을 따라 살게 된다는 구원의 내세관에 대한 믿음은 성도의 큰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7-11절에서는 성도들의 청지기적 섬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과 박해가 외부와의 관계의 문제라면, 본 단락은 기독교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온 시기에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크게 본 단락에서는 네 가지로 성도의 삶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둘째로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으니 서로 사랑하라, 셋째로는 서로 원망없이 대접하라, 넷째로는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묵상 및 적용]
온도가 내려가서 추워지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점점 더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 단백질은 온도가 내려가면 더 오랫동안 살아 남기 때문에 전염의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우리 사회가 더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쁨의 소식으로 이 땅에 오신 12월 성탄의 달! 예년과 달리 올 해는 거리에서 들여오는 캐롤이나 성탄 찬송 소리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지난 부흥회 때에 이재철목사님의 코로나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에 대한 말씀이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12월은 연말로서 그 어느 달보다 향락과 즐거움의 밤 문화가 더욱 북적거리는 달입니다. 부정적인 밤 문화가 점점 극에 달하고 있었던 과거의 모습에 기독교는 제대로 ‘한 소리’로 내지 못하였으며, 또 ‘한 소리’를 냈다고 해도 영향력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밤 문화를 코로나 바이러스 상태가 줄어들게 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 문화의 행태를 바꾸어 나가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관점의 변화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미 수많은 미래학자들은 코로나 이후의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 말했으며 앞으로도 연구는 더 진척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모습도 분명히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진리는 시간과 공간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입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저 작은 고을 베들레헴과 유대 땅에서 시작된 복음의 씨앗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오늘날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는 이유는 복음의 말씀이 시간과 공간, 세대와 세대, 나라와 역사를 넘어서 적용되는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코로나 이후에 많은 것들이 변화된다 할지라도 진리는 변하지 않으면, 2000년 전이나, 다가올 2021년을 살게 될 성도의 삶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지켜내고 살아내야 할 성도의 삶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고난은 견디기 힘들고, 어렵고, 때로는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두려움이 되기에 충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고난이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소망을 갖게 하는 “믿음의 시험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를 믿으며 산 자들에게도, 그리고 주를 믿다가 죽은 자들에게도 동일한 믿음의 테스트 장소이며, 더욱 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할 소망의 동기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벧전 4:13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씀을 의지하여 고난 가운데 주님을 바라보며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라고 말합니다. 근신하는 이유는 ‘기도’를 위한 것입니다.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근신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근신한다는 것을 베드로 스타일로 표현하면 벧전 1:13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라는 말씀이며, 그리고 본문에서는 ‘Self-control’이라는 영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근신한다는 것은 3절에 나오는 ‘음란, 정욕, 술취함, 방탕, 향락, 우상숭배’ 등의 세상의 정욕에 휩쓸리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정욕에 휩싸이거나 마음의 허리를 동이지 못하고 성도의 자기 절제를 잃어버리면 기도의 자리를 지켜내지 못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자리를 지켜 내기 위해 성도의 삶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는 태도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로, 성도들의 공동체 안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진솔한 사랑과 서로 간의 대접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사랑에 대해서 4:8, 1:22, 2:17, 3:8에서 여러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 8절의 말씀은 잠언 10장 12절 “사랑이 많은 죄를 덮는다”라는 말씀의 인용입니다. 불신자나 비방자들에 대해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고 말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발자취를 따르는 참 사랑은 불평 없이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며, 이러한 대접은 상대방에 대한 호의의 표현인 ‘대접’으로 이어진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도의 삶의 모습은 하나님에게서 각종 은사를 받은 성도들은 그 맡기신 은사에 신실하게 선한 청지기처럼 서로 섬겨야 합니다. 이때 말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것처럼 하고, 봉사는 하나님의 힘을 통한 섬김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 간의 섬김은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며,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섬김의 본이 되신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도 청지기처럼 섬길 때 복음이 역사하며, 어떠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함께 같이 있다’라는 믿음의 동질감이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어느덧 우리는 12월의 중순을 넘기고 성탄주일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지난간 세월을 아쉬워하기 보다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더 집중하여 우리 모두 ‘함께’ 이 길을 걸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근본적인 성도의 삶은 코로나 전이나, 후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성도의 삶을 잘 지켜 내시고, 주께서 허락하신 강건함과 평강에 감사하시며, 성령의 교통하심이 우리에게 풍성하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우리의 삶을 거룩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이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나의 모든 길을 인도하시며 하늘의 양식 참된 하늘의 소망을 갖고 은혜로 살게 하옵소서. 주의 생명의 말씀으로 살게 하옵소서. 주님이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눈물의 기도로 살게 하옵소서. 나의 모든 죄 대신 지신 십자가의 구원, 복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삶에 여전히 존재하는 문제를 바라보기 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찬양: ”성도의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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