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8/14/2021 토요일 [사사기 6장 1-10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8-14 08:46
조회
354

8. 14. 토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여호와는 네게 복을”: https://youtu.be/sKzOGt8ptco

[본문: 사사기 6:1-10]
1.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2.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3.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4.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5.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6.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7.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8.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9.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10.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본문이해]
사사기 3:7-16:31절까지는 이스라엘의 지역별 사사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입니다. 그 중에서 6-8장은 가나안 중부 지역의 대표적인 사사인 기드온의 행적을 중심으로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내용이 전개됩니다. 그 중에서 오늘의 본문은 기드온 사사가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는 내용이 1-6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디안 족속은 이스라엘의 동편의 사막 지역, 아가바만 부근의 아라비야 광야에서 주로 활동했던 유목민으로서 이스라엘 땅에 살면서 상주하지는 않았지만 수시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 이스라엘 백성의 곡식과 가축을 닥치는 대로 약탈해 갔던 족속입니다. 미디안 족속의 기원은 창 25:2과 대상 1:32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후처 그두라를 취해서 낳은 아들 중의 한 사람으로, 실제적으로 미디안 족속의 세력은 이스라엘의 전체 군사력보다는 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시므로 약한 미디안이라 할지라도 강해져서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1-6, 여호와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미디안을 통해 징계하심]
이스라엘이 또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7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붙여 징계하십니다. 미디안의 압제를 피하여 이스라엘이 산 속에서 구멍, 굴, 산성 등의 피난처로 숨기까지 합니다. 미디안 족속은 파종기가 되면 침략하여 식물과 가축을 약탈해 갔고, 미디안의 동맹국까지 가세하여 약탈해 가니 이스라엘 온 땅이 메뚜기 떼가 들어온 것처럼 남아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1절,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이 구절에서 “악”에 해당하는 말은 일반적인 명사로서의 ‘악’이 아니라, 그 죄악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를 지칭하고 있는 ‘악’을 표현하기 위해 정관사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에는 “하라”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직역하면 “여호와의 목전에 그 죄악을”이라는 뜻입니다. ‘그 죄악’이란 사사기에 종종 등장하는 죄악으로 삿 2:12, 13, 3:7에서 이방 신들, 곧 우상숭배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미디안의 압제시대에는 삿 6:25에 의하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 숭배라 볼 수 있습니다.

2절,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 한글성경에 “웅덩이”로 번역된 히브리어 “미느하로트”의 원래의 의미는 ‘구멍’을 뜻합니다. 어떤 목적의 구멍인지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다소 의견차이가 있지만, 이 구멍이 식량 저장소나 사람이 은신할 피난처가 되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미디안 족속이 이스라엘을 침략해서 가축이나 식량을 모조리 약탈해 갔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으로 피해 들어가 천연 동굴이든, 인공 동굴이든 목숨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와 식량을 저장해 두는 안전 장소로 삼았던 것입니다.

3절,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 아말렉 족속은 창 36:12에 의하면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와 그의 첩 딤나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입니다. 출 17:8-16에 의하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며 진행을 방해했던 족속이기도 하며, 다른 부족의 파종 시기에 침략하여 모든 것을 약탈하는 전형적인 약탈 족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방 사람들은 가나안 땅 동쪽에 거주하는 여러 민족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좋은 목초지를 얻기 위하여 돌아다니는 유목 민족들로서 약탈도 일삼았습니다. 그 종족들은 하란, 모압, 에돔, 그리고 아랍 지역의 여러 종족들이 성경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4절, “가사에 이르도록”: 이 지명의 히브리어 “앗자”는 ‘강한 사람들’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 남서쪽 끝 블레셋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사에 이르도록”이라는 표현은 미디안을 중심으로 한 외부의 약탈이 가나안 땅 북쪽에 있는 이스르엘 골짜기에서부터 남서쪽에 이르는 가사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절,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본문의 “먹을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혜야”의 뜻은 ‘식물, 생명을 보존하게 하는 양식이나 음식’을 가리킵니다. 특히 본문에는 절대 부정의 표현이 들어가 있어서 직역하면 “생명을 보존하게 하는 양식을 결코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았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단순히 황폐하게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한 멸망을 가져다 줄 정도로 매우 혹독하게 약탈했음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11절에 기드온이 미디안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절, “짐승과 장막을…메뚜기 떼같이 많이 들어오니”: 침략 부족들이 유목민들이기에 그들의 가축을 가리키는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온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근동 지역에서 메뚜기 떼는 한 지역을 모조리 덮어 버릴 정도로 무수히 몰려와 나무와 풀, 곡식 등을 흔적도 없이 갉아먹어 버리기 때문에 미디안 사람들의 약탈을 메뚜기 떼에 비유한 것입니다.

[7-10,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책망하심]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압제로 인하여 극도로 궁핍해지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여호와께서 한 선지자를 보내어 말씀하시기를 과거에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와 괴롭히던 모든 자들의 손에서 건져내어 출애굽 시켜 주신 사건을 언급하여 상기시켜 주십니다.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셨음을 말씀하면서 가나안 족속의 우상을 두려워하거나 섬기지 말라고 명하셨으나 지금 이스라엘이 불순종하고 있음을 책망합니다.

7절,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본문에 등장하는 한 선지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기드온 사사의 등장은 11절부터 나오기 때문에 본문에 등장하는 선지자는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시기 전에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명의 선지자를 먼저 세워서 본문에 보여지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먼저 꾸짖으신 것입니다. 선지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비”라는 말은 발음은 같지만 스펠링이 다른 두 단어가 있는데 서로 어원이 다릅니다. 첫째는 ‘선언하다, 알리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보아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보는 것이고, 둘째는 ‘끓어 오르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어서 ‘마음이 너무나 흥분되어서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래들을 감안해서 생각하면 선지자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9절,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이후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주변 족속들에게 당한 모든 학대를 말합니다. 즉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 모압 왕 에글론, 하솔 왕 야빈, 그리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들로부터 당했던 모든 학대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에서도 구원해 주셨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매번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악을 행했던 것입니다.

10절,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족속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서 대표되는 족속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모지 족속의 우상만을 섬기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스라엘 각 지파가 분배받은 가나안 땅 전체에 있는 우상들을 섬기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땅에 들어가거든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단을 모조리 헐어버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신 7:5, 12:2-3).

[묵상 및 적용]
오늘 본문 6절과 7절에 미디안의 7년간의 압제에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1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죄인입니다. 그런데 죄인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자격? 권한?”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자격이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의 의미를 담아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는 하지만, 번번히 죄를 반복하여 저지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외면치 않으시고 들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당연하면서도 새삼 놀라웠습니다.

사사기를 읽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의 응답과 구원하심을 경험할 때마다 감사와 찬송을 드렸을 것입니다.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서, 모압 왕 에글론의 손에서, 하솔 왕 야빈의 손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게 했던 대적들의 손에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은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민족’이라는 그 사실 자체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축복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의 역사를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죄악에 빠지고, 물들고,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이기도 합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한 선지자가 책망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건져 내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선지자가 옛 역사적 사건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기시키는 이유는 미디안 족속의 약탈과 침략으로 비참한 삶을 살아가게 된 책임이 하나님께서 축복과 은혜를 내려 주지 않으신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풍성한 축복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뜻을 거역하여 범죄함으로 주어진 축복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들의 책임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의 중요한 명제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축복은 차지해야 할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 축복! 그것이 건강이든, 물질의 복이든, 명예와 권세의 복이든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복은 개인이 노력하고 힘써서 차지해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주의하지 않으면, 수고하지 않으면 복을 누릴 수 없고,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받는 축복은 그 성격이 좀 다릅니다. 차지할 것이 아니라, 지켜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히 멸망과 좌절의 땅이 아닌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으로 가나안 땅을 허락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이 차지하려고 노력하고, 수고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이미 축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조건이 달려 있는 것을 여러분도 아시지 않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며 범죄하지 말아야 하는 책임을 지켜 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잃어버리고 비참한 삶을 살고 압제와 고통 가운데 빠진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된 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축복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받지 못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오직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된 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축복을 지켜내지 못하거나, 주실 축복까지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축복이란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쟁취하여 차지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리지 않고 잘 지켜가야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즉 성도가 되는 순간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주셨으며, 복을 넘치도록 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도다운 삶을 살아가며 주어진 축복을 지켜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다운 삶’이란 결코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비록 세상에서 고난과 핍박을 받을지라도 결코 세상에 굴복하거나, 동화되거나 물들어서 하나님의 백성되기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무리 큰 고난과 핍박, 혹은 유혹을 받을지라도 흔들리지 말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백성, 성도로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니(막 9:2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고전 15:57),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길 수 있으니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원동력은 바로 믿음입니다(요일 5:4)”라는 성경말씀들과 같이 하나님이 이미 주신 축복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켜내는 성도가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내게 복에 복을 더하시며 낮이나 밤이나 늘 지켜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을 찬양합니다. 이 죄인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긍휼과 자비로우심으로 받아 주시고, 은혜 주시기를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주님! 세상적인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지 않게 하시고, 천국의 소망을 받은 자로서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시고, 인생을 볼 수 있는 믿음의 순례자가 되게 하옵소서. 병든 자를 사랑의 손길로 치료하여 주시며, 실망하고 좌절한 자를 위로와 용기로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며, 마음이 흔들려 믿음이 연약한 자에게 담대하고 두려울 것 없는 믿음을 더하시고, 미래에 대한 불확신으로 가득한 자에게 비젼과 소망을 주셔서 갈 길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라며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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