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8/8/2021 주일 [사사기 3장 1-11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8-08 08:05
조회
638

8. 8. 주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세상의 유혹 시험이”:

[본문: 사사기 3:1-11]
1.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2.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3.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4.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5.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6.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7.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8.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9.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10.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11.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본문이해]
[1-6, 가난안 족속들과 그들에게 동화된 이스라엘의 타락]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시험하기 위하여 가나안 족속을 남겨 주십니다. 그 이유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압제의 고통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쟁의 시련 등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깨우치게 하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명령을 온전하게 청종하지 못하고 가나안, 헷, 아모리,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 등 가나안 족속들과 섞여서 살게 되고, 그들과 통혼하고 그들의 신들을 섬기게 됩니다.

2절,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 이스라엘의 다음 세대들은 가나안 정복 초기에 벌어졌던 전쟁들의 내용이나 그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하거나 체험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선조들이 치렀던 전쟁과 함께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역사를 기억의 너머로 통째로 던져버린 것입니다. 다음 세대들에게 있어서 가나안은 더 이상 정복해야 할 땅이 아니라, 결혼과 교류를 통하여 상호 교제하며 협력해야 할 사람들로 인식되었으므로 결국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어떻게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를 망각한 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세대가 되고 만 것입니다.

2절,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본문에 나오는 “그것을”이 가리키는 말은 “전쟁”으로 본 문구의 의미는 “전쟁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란 의미가 됩니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하 세대에게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이 어떻게 얻어졌으며,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고 얻은 땅인지 도무지 알지 못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 치열한 전쟁을 체험적으로 알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성을 깨달으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성숙한 삶을 살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한 세대들은 다시금 전쟁이라는 엄청나게 큰 대가를 치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3절, “다섯 군주들”: 블레셋의 다섯 성읍의 군주들이란 가사, 가드,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을 통치하던 군주들을 가리킵니다. 블레셋은 이 다섯 왕들이 각각 동일한 권력을 가지고 연합해서 형성된 부족 연맹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5절,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이 문구의 “가운데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뻬케레브”는 ‘가운데, 내부, 중심’등으로 번역되어 사물이나 몸, 그리고 어떤 공동체의 가장 깊숙하고 중심되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의 표현은 이스라엘 자손이 ‘공간이나 지역적으로 가나안 주민들의 거주지 중심에 살았다’라는 의미보다는 가나안 주민들의 풍습, 종교, 사상, 가치관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그들의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았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즉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사람들과 타협하고 언약을 맺고, 동화되어 살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그들 사이에 묻혀 살았던 것입니다.

6절,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이 문구의 히브리어 성경에는 앞에 있는 내용과 연결되어 계속된다는 히브리어 단어 “와우”를 사용하는 “와우 계속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앞문장과의 긴밀하고 급박한 연결을 보여줍니다. 앞 문장의 내용은 가나안 족속와 이스라엘이 서로 아내를 맞고, 딸을 주는 통혼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을 섬기는 행위”는 결혼 행위는 앞의 내용인 통혼에 의해 자연스럽고, 또 급박하게 이어진 결과라는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과 통혼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통혼을 통해 가나안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신앙을 물들이고 우상숭배로 유혹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가나안 신들에게로 향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음을 본문이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7-11,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와 초대 사사 옷니엘]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자, 여호와께서 진노하여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팔년 동안 고통과 압제를 당하게 하십니다. 고통 속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초대 사사로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을 세우십니다. 여호와의 영이 옷니엘에게 임하여 구산 리사다임과 싸워 승리하고 이스라엘을 구원시킵니다.

8절,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 메소보다미아는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본 영토가 있는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이 있는 지역이라기 보다는 가나안 땅 북부까지 세력을 확장한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옷니엘 사사는 가나안의 남방인 유다 지파의 지경에 살고 있었으므로 메소보다미아의 세력이 펼쳐진 북부까지는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을 기록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구산 리사다임의 세력을 강하게 하심으로 그의 지배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넓혀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에 한 세대도 채 지나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정복자의 입장에서 피정복자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구산 리사다임이란 이름에서 “리사다임”의 뜻은 ‘죄’라는 뜻의 복수형입니다. 즉 직역하면 “죄들의 구산, 범죄를 많이 저지른 구산”이란 의미가 됩니다. 이름을 통하여 이 왕이 얼마나 악한 왕인지를 암시하며, 그에 의해 점령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

9절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세워”, 10절 “여호와의 영이 임하셨으므로”: 8년간의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하에 신음하던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구원을 호소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하시기 위해 옷니엘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본문에는 사사의 직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문구가 있습니다. 첫째는 9절을 근거로 사사는 하나님에 의해 세움을 받은 자입니다. 옷니엘이 사사기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출중한 믿음의 가문인 갈렙의 가문이기 때문이거나, 그의 능력이 출중해서 사사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사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세움을 입은 자이며,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통치하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기 때문에 직분의 기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는 자입니다. 오늘날의 성직자들이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신적 소명(Divine Calling)’을 확인해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둘째로는 10절에 사사는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는 자입니다. 옷니엘이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이유는 여호와의 신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은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들의 기본적인 자격 조건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직임을 수행함에 있어서 여호와의 영, 성령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0절, “여호와의 영”: “영”이란 단어의 히브리어는 “루아흐”로서 원래 의미는 ‘공기, 호흡,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본문에서와 같이 하나님과 결합되어 사용되면 삼위일체 하나님 중 삼위이신 성령님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곤 합니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보이는 사물이나 인간의 마음과 동기를 움직이시는 실체로서의 하나님의 영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수면에 운행하신 분으로 창 1:2에 등장하며, 또한 노아 시대에 인간이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도록 하지 않겠다고 창 6:3에 선언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임하면 하나님의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능력과 힘을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여호와의 영이 옷니엘에게 임하였으니 그에게 머물러 그를 지배함으로써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서 구원할 능력과 힘을 주시고, 구원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오늘 본문 말씀 1절에서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한 4절에도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4절 하반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시는 목적을 밝히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순종을 시험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을 사단의 시험과 혼동할 우려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과 사단의 시험은 엄밀하게 구분되고, 분명하게 다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은 하시되 결코 유혹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시험하심은 순종과 신앙의 유무를 알아보기 위한 시험입니다. 예를 들자면,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쳐서 번제물로 드리라는 시험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통과하였고 창세기 22:12에서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시면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하셨음을 밝히시고 있습니다. 또한 욥기 1장 6-12절에 보면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가 등장하면서 욥 1:8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시험하는 일을 허용하십니다.

그런데 종종 이러한 하나님의 시험을 사탄의 시험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시험과 사탄의 시험은 어떻게 다를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시험과 사탄의 시험의 차이는 먼저 목적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성도의 연단과 축복을 위한 것이요, 사탄의 시험은 넘어뜨리고 파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말로 구분을 하면 하나님의 시험은 일종의 “테스트(test)”이지만, 사단의 시험은 “유혹(temptation)”으로 생각하여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테스트(test)는 어려움과 연단이 있어도 결국 성장, 성숙, 발전을 위한 것이지만, 유혹은 실패하게 하고, 넘어지게 하고, 부정적인 뉘앙스로 죄에 빠지게 하는 악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시험과 사탄의 시험의 차이는 방법에 있서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험하실 때에 사탄이 사람의 마음 속에 악한 생각을 집어 넣듯 성도의 마음 속에 죄악을 심어 놓거나 그 앞에 유혹의 요소나 대상들을 두지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13:2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렇게 유다의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악한 생각을 결코 집어 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악한 것을 집어 넣는 것은 사탄의 행위요, 방법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방법적으로 시험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다만 그 사람이 현재 놓여 있는 환경 가운데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테스트, 곧 시험하십니다. 신명기 8장 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습니다. 그 상황은 광야 사막의 생활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불평 불만이 터져 나올 수 있는 환경입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넘어지게 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환경을 조성하시거나 유혹하시는 것이 아니라, 현재 닥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을 테스트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거나, 우리들 자력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닥치면 환경 탓을 많이 합니다. 예를들면 지난 해 부터 코로나 사태라는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일들이 순식간에 닥쳤고 그 파급력과 어려움이 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로 인한 상황의 악화나 경제적인 어려움, 여러가지 힘든 일들로 불평, 불만을 충분히 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즉 죄를 질 수 있는 환경이요, 남 탓을 할 수 있는 환경이요, 사탄이 유혹하면 넘어가기 쉬운 환경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현재에 닥친 환경 속에서, 그 환경이 어떠하든지간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만 확고하다면, 결코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에 물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탄은 이러한 환경을 통해서 우리를 넘어뜨리고, 파괴하고, 죄를 짓도록 유혹(temptation)하지만, 성도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오히려 유혹과 죄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을 연단을 통한 성장, 성숙, 발전, 그리고 더 하나님게 가까이 가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혹의 환경을 바꾸어 시험, 즉 테스트의 신앙적 환경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바로 “성도” 입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우리에게 이런 오해가 있지 않을까 염려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즉 죄를 짓거나, 유혹에 빠졌을 때에 그 상황을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신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이 부족하여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후에 그 탓을 무마시키기 위해 자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거나, 회개하거나, 하나님의 구원과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험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약 1:1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시험에 빠져 넘어져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시험이 아니라, 사탄의 유혹과 시험의 결과입니다. 죄의 유혹에 지는 것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시험의 행위라 생각하여 자기를 합리화하거나, 빠져나갈 구망을 만들어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탄이 시험하듯 사람을 유혹하는 분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죄와 유혹에 진 것은 사탄의 시험과 유혹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험과 사탄의 시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헤와 영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견디어 내고, 이겨 내고, 순종하여 지켜내면 그 후에는 믿음의 견고함이 있으며, 성장과 발전, 성숙이 반드시 따라 옵니다. 하지만 사탄의 시험과 유혹은 죄를 짓게 하고, 넘어지게 하며, 파괴시키는 것이므로 이러한 사탄의 도전이 있을 때에는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시험에 번번히 실패하였습니다. 실패하는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가며 이방 신들을 섬기는 천후의 한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야고보는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시편 기자는 시 26: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이 우리를 시험하기도 하고, 유혹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매일의 삶 속에서 항상 깨어 기도하며 말씀에 깊이 젖어 있어서 사탄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고, 하나님의 시험은 믿음의 단단함과 단련됨으로 통과하여 약속하신 면류관을 머리에 쓸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장차 임할 하나님의 도성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 힘으론 어찌할바 없는 거대한 세상의 도전과 사탄의 유혹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찬 세상에서 갈바를 알지 못하여 머뭇거리고 있는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사탄이 우리를 실패와 절망으로 넘어뜨리려 하고 있사오니 우리를 도와 주옵소서. 믿음의 눈을 뜨게 하옵소서. 지금도 내 안에 역사하고 계시며, 사망과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사탄을 거꾸러 뜨리시는 예수님만을 붙들게 하옵소서. 시험을 믿음의 단련됨으로 통과하여 승리케 하옵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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