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6/20/2021 주일 [출애굽기 28:31-43]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6-20 08:57
조회
715

6. 20. 주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나의 예배를 받으소서”:

[본문: 출애굽기 28:31-43]
31.너는 에봇 받침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되
32.두 어깨 사이에 머리 들어갈 구멍을 내고 그 주위에 갑옷 깃 같이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 하고
33.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석류를 수 놓고 금 방울을 간격을 두어 달되
34.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 방울, 한 석류, 한 금 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
35.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올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36.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37.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관 전면에 있게 하라
38.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39.너는 가는 베 실로 반포 속옷을 짜고 가는 베 실로 관을 만들고 띠를 수 놓아 만들지니라
40.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되
41.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 한 그의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이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지며
42.또 그들을 위하여 베로 속바지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두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
43.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짊어진 채 죽지 아니하리니 그와 그의 후손이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본문이해]
[31-35, 에봇 받침 겉옷에 대한 규례]
에봇 받침 겉옷을 청색으로 만들라 명하십니다. 옷의 가장 자리로 돌아가며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석류를 수 놓고 금방울을 간격을 두어 달되 석류와 금방울을 교차로 달라고 하십니다. 아론이 성소에 들어갔을 때 금방울 소리로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31절, “에봇 받침 겉옷”: 발목까지 내려와 온 몸을 덮는 원피스 모양의 겉옷입니다. “받침”이란 의미는 ‘에봇 속에 받쳐 입는 겉옷’(현대인의 성경)을 의미합니다.

32절, “갑옷 깃 같이”: “갑옷”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흐라”는 애굽에서 유래하였는데 전쟁할 때 군인들이 입는 ‘갑옷’을 의미합니다. 고대 애굽에서는 갑옷을 만들 때 목 부위의 테두리를 이중으로 겹쳐 짜서 옷을 입고 벗을 때 그 부위가 찢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여 만들었습니다. 또한 “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는 ‘가장자리, 테두리, 날, 입, 구멍’이라는 뜻이 있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본 문구를 직역하면 “갑옷 가장자리 같이, 또는 갑옷의 테두리 처럼”라는 의미가 됩니다.

34절, “금방울”: 석류를 수 놓고 금방울을 다는 위치는 청색 겉옷 아랫단 옷자락 위입니다. “방울”이란 말의 히브리어 “파아몬”은 ‘발자취, 흔적, 행보’라는 뜻의 “파암”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즉 방울이 사람의 행동이나 발자취를 알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제사장이 성소에서 직무를 수행하면서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내면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반면에 소리가 나지 않으면 부정한 행위나 마음가짐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대제사장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대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갈 때 허리나 발목에 끈을 매달고 들어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약 대제사장이 죽어서 방울 소리가 나지 않으면 밖에서 끈으로 잡아당겨 시신을 끌어 낸다고 합니다. 이런 전승을 감안해서 생각해 보면 구약 당시의 제사가 얼마나 엄격하고 조심스럽게 드려졌는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즉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죽음을 각오하고 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36-39, 순금으로 만든 패, 반포 속옷, 관에 대한 규례]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여호와께 성결’이라 새긴 후에 청색 끈으로 관 전면에 매도록 하십니다. 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있게 하여 그로 하여금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라 명하십니다. 또한 가는 베실로 반포 속옷과 관을 만들고 띠를 수놓아 만들라 하십니다.

36절, “여호와께 성결”: 이 문구의 히브리어 직역의 의미는 “여호와를 향해 구별됨”, “여호와를 향한 거룩”이라는 뜻입니다. 이 문구는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개인적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해 줍니다. 즉 거룩의 대상이 하나님이시며, 또한 그런 삶을 사는 이유가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결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성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데쉬”는 ‘구별하다(레 28:26, seperate)’, ‘바치다(민 18:2, consecrate)’, ‘깨끗하게 하다(레 21:6, purify)’라는 뜻으로 구약 성경에 사용되었습니다. 즉 죄악과 분리되어(separate), 하나님의 소유가 되기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이며(consecrate), 세상으로부터 오염된 죄의 때와 먼지를 항상 깨끗하게 씻는 것을 의미합니다(purify).

37절, “관”: 이 단어의 히브리어 “미츠나페트”는 ‘감다, 두르다, 말아서 싸다’라는 뜻의 “차나프” 동사에서 유래된 명사입니다. 그래서 이런 유래를 감안하면 대제사장의 머리에 쓰는 관은 터번(turban) 형식으로 감아서 말아 올린 두건이나 모자라 생각됩니다. 세마포로 만든 흰색의 관에 정금으로 만든 패는 크게 빛을 발하며 사람들에게 성결한 삶의 중요성을 인지시켰을 것입니다.

38절,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 “담당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사”라는 말은 구약성경에서 ‘(무거운 짐을) 짋어지다’, ‘대속하다’, ‘용서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비는 속죄 사역을 감당했음을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39절, “반포 속옷”: 한글성경의 의미는 ‘베로 만든 속옷’이라는 의미로서 대제사장이 겉옷 안에 입었기 때문에 속옷이라고 번역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에 이 단어의 히브리어 “학케토네트”의 의미는 ‘가리우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말로 겉옷보다 더 길어 발등까지 내려왔고 반팔인 청색 겉옷 밖으로도 소매 부분이 드러났기 때문에 속옷으로 보기 보다는 영어성경 KJV, RSV의 번역처럼 코트(coat)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40-43, 일반 제사장의 의복에 관한 규례]
하나님께서 아론의 아들들을 위해 의복과 띠와 관을 만들라 입힌 후 기름을 부어 제사장으로 위임하여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명하십니다.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막에 들어가거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는 하체를 가리는 베로 만든 속바지를 입어야 죄를 짊어진 채 죽지 않는다고 규례를 정하여 말씀하십니다.

40절, “관”: 이 단어의 히브리어 “미끄빠아”라는 말은 ‘산, 언덕’이란 뜻의 “기브아”라는 말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성경에는 본절과 출 29:9, 39:28, 레 8:13 등에 단 4번만 사용된 단어로 대제사장이 쓰는 ‘관’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반 제사장이 쓰는 관의 모양은 아마 위가 둥글고 볼록한 모양으로 산이나 언덕을 연상하는 모양의 관이라고 추정합니다.

42절, “속바지를…하체를 가리게 하라”: 속바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크나쓰”를 옛 한글성경은 여름용 홑옷 바지인 ‘고의’라고 번역하였지만, 본래의 의미는 무릎 위까지 오는 ‘바지, 반바지’를 가리킵니다. 제사장이 속바지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청색 옷이나 반포 속옷이 모두 치마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체를 가리기 위한 바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43절, “그것들을 입어야”: 본 절은 제사장의 의복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그것들”이 가리키는 말은 42절에 언급된 ‘속바지’가 아닙니다. 속바지는 단수로 표현되었으므로 복수를 지칭하는 “그것들”은 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의복류와 관과 띠와 의복에 부착되는 것들을 모두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묵상 및 적용]
오늘 본문은 제사장이 입는 겉옷, 순금패, 반포 속옷과 관과 띠, 속바지 등등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사항들 입니다. 생명의 삶 책자의 본문해설 내용 가운데 35절과 43절에 기록된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이 두 번 반복되어 있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대로 복식을 갖춰야 하나님 앞에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하나님 은혜와 사랑만 강조하다가 ‘하나님은 죄인이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거룩하신 분’임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날카로운 지적 앞에 고개가 숙연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늘 구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서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당연한 듯이 잊어버리곤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는 생명과 평안이지만, 그 말씀에 더하거나 빼거나, 왜곡시키거나 변질시키거나, 또는 아예 말씀을 들은체 만체하며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무서우리만큼 단호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를 따르지 않고 제사를 드리거나 하나님께 나오는 자를 ‘죽이신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에서 그 죽임의 첫번째 열에 있는 사람이 바로 제사를 인도하는 제사장이라는 사실에 제 등골이 갑자기 서늘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목회자로서, 그리고 종종 예배인도자로 앞에 나서면서 43절 말씀처럼 “제단에 가까이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짊어진 채 죽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은 귓가에 맴도는 소리처럼 메아리와 여운이 남는 주의 경고이며 두려움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기록된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이 제사장에게만 적용되는 두려움의 말씀이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위엄과 존재성을 충분히 인지시키는 말씀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가서 직분을 행할 때에 움직임과 함께 항상 방울 소리가 나도록 제사장이 입는 에봇 받침 겉옷의 가장자리에 금방울을 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금방울 소리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그것은 성막에서 봉사하는 제사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밖에서 방울 소리가 나는지 안나는지 초미의 관심으로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대제사장이 지성소나 성소에서 직분을 감당하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소 밖 마당에서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방울 소리를 듣고서 대제사장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방울 소리가 나지 않으면 대제사장이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고 전승에 있는 것처럼 허리나 발목에 묶여있던 끈을 잡아 당겨 시신을 끌어내야 했을 것입니다. 이 일을 겪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두려워했을까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상상해 보니 만약 내가 성소나 지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이라면 들어가는 순간 벌써 온 몸에 식은 땀이 나서 등골에 흘렀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조심스러고 엄중하게 성소나 지성소에 들어갔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43절의 기록처럼 제단에서 제사를 인도할 때에도, 거룩한 장소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에도 똑같이 생사의 기로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해 보니 구약의 예배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만나는 은혜와 축복, 영광의 자리이기도 하지만, 죄를 짊어진 자에게는 심판의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죽음을 각오하고 나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구약의 제사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의 에배 모습을 반성하게 해 주며, 동시에 현대의 예배자의 모습에 심각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한 채로 얼마나 많은 예배를 드렸었던가? 예배를 나를 위한 복을 빌고 삶의 안도감과 종교적 만족감을 채우기 위한 하나로 생각하지 않았던가? 하나님께 나의 생명을 걸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직분에 떠밀려 책임감으로 예배를 드리지는 않았었는가?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나를 위한 예배로 드리지 않았었는가? 등등…

예배에 대한 심각하고 도전적인 질문에 선뜻 ‘아닙니다, 나는 의롭습니다’라고 답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부끄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이롭고 놀라운 은혜는 이런 나에게 하나님께서 즉각적인 보응을 내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나의 영적인 나태와 불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명을 유지시켜 주시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이유 중의 분명하고도 명확한 한 가지는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로서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짊어져야 하는 죄의 짐을 짋어진 채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아멘!”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의 삶의 모습은 이래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의 예배를 받으시며 또한 그런 자를 들어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제사장 처럼 금방울을 달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금방울을 한번 달아 보면 어떨까요? 하나님은 사랑, 은혜, 핑크 빛의 달콤함, 친구와 같은 편안함으로도 우리에게 다가오시기도 하지만, 오늘은 한번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때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영적인 금방울을 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예배자의 마음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생명을 걸고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기도]
나의 생각과 행동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금방울이 울리지 않고 멈출까 두렵고 떨리는 나의 연약함과 죄에 대한 염려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죽을 수 밖에 없는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 도저히 나설 수 없는 죄인이오니 주의 보혈로 나를 성결케 하시고 씻어 주옵소서. 예배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나의 예배를 받아 주옵소서. 주님만이 나의 기쁨이 되게 하시며, 주님 만을 바라 보게 하옵소서.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방황하여도 결국 주님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나의 유일한 고백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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