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6/08/2021 화요일 [시편 8:1-8]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6-08 07:04
조회
725
6. 8. 화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본문: 시편 8:1-8,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
1.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본문이해]
표제에 등장하는 ‘깃딧’의 정확한 의미가 무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어떤 반주용 악기이거나 특정 리듬을 지칭하는 용어로 추정됩니다. 어떤 학자는 이 단어의 히브리어 ‘학깃티트’의 원형 ‘깃티트’가 블레셋의 한 종족인 ‘가드 사람’을 가리키는 ‘깃티’의 여성형이란 점에서 본래 블레셋 땅 가드에서 사용되던 악기의 이름이거나 가드 지방에서 사용된 리듬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이 단어는 시편 81편과 84편에도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비천한 인간을 만물 중에 존귀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시편 8편은 가장 사랑받는 시편 중의 하나이지만, 저술 배경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다윗이 목동으로 생활하던 젊은 시절에 지었거나 혹은 그 이후 옛 시절을 회상하며 지었을 것으로 추정할 따름입니다.

다윗은 시편 8편 1절과 9절에 만물에 담긴 주의 영광을 찬양하는 내용을 초두와 말미에 반복하여 ‘수미쌍관법’이라는 표현법을 사용하므로 자신의 감격을 효과적으로 극대화시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 시에는 찬양과 감사가 들어가 있어서 성전예배나 장막절과 같은 절기에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 찬양으로 사용되었다고 봅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기념일에 불리워졌다고 전해지며, 신약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본시의 내용을 히 2: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라고 인용하면서 히 2:6-9절에 메시야 예수님의 사역과 연관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메시야 에언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3 우주 만물 가운데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
1절, “우리 주여”: 이 단어의 히브리어 “아도네누”는 ‘통치자, 주권자, 주인’이라는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섬겨야 할 우주의 주인이심을 부각시킵니다. 특히 다윗은 본문에서 ‘나의 주여’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 주여’라고 말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시편 8편의 1절과 9절에 등장하는 이 표현을 근거로 본시를 공동체 찬양시로 여겨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늘과 땅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2절,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 이 문장의 “주의 대적으로”라는 말의 직역은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들 때문에”라는 의미입니다. 온 세계 가운데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오히려 대적하는 완악한 자들을 지칭합니다. 다윗은 대적들과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어린아이와 젖먹이를 대조시키면서, 연약한 자들이 주님의 권능을 칭송하는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의 오만함을 깨뜨린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1:16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라고 예수님께서 본문을 인용하십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실 때 주를 찬양하는 아이들을 비난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인용하신 것입니다. 실로 주의 권능을 찬양할 수 있는 자들은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심정을 가지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들이며, 이들의 찬양한 교만한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4-6, 만물의 통치를 인간에게 위임하신 하나님의 은혜 찬양]
4절, “사람”과 “인자”: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노쉬”는 사람을 나타내는 여러 히브리어 단어 중에서 특히 연약하고 유한한 인간의 특성을 표현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우주는 창조된 이래 지속적으로 빛을 발하며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만, 인간은 수명의 제한과 함께 연약하고 유한하므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더더욱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본절의 ‘인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벤 아담”이란 ‘사람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아담’이란 히브리어는 기본적으로 ‘붉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붉다’라는 뜻에서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가 나온 것은 사람이 붉은 흙에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흙에서 나온 존재로서의 인간을 의미하는 ‘아담’이라는 말도 결국 장차 죽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의미하는 표현이 됩니다. 즉 본절에서 다윗은 ‘사람’과 ‘인자’라는 표현을 거듭 사용하므로 인간의 연약함을 나타내며 한계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2:6-9에서 본시의 ‘사람’과 ‘인자’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즉 성자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사실을 묘사하면서 연약한 인간이 되신 주님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시편 8편을 기록할 당시에 장차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계시의 점진적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본시를 메시야적 예언지 Messianic Psalm으로 이해하여 해석했다고 볼 수있습니다.

4절, “돌보시나이까”: 옛 성경에는 이 단어의 히브리어 ‘티프케덴누’는 “권고하시나이까”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 단어의 히브리어 원형 ‘파카드’의 의미는 어려움에 처한 자기 백성을 찾아와 돌보신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글의 ‘권고하다’라는 말의 사전적 뜻은 ‘권하다, 조언하다, 충고하다’라는 의미이므로 히브리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 주지 못하여 개역개정에는 ‘돌보다’로 바르게 번역된 것입니다.

5절, “하나님보다”: 옛 한글 성경에는 이 단어를 “천사보다”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개역개정에는 ‘하나님’으로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 단어의 히브리어 “메엘로힘”라는 의미가 “천사보다”라는 의미 외에 “신들보다, 하나님보다”라는 의미로도 번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성경 NASB, ASV, NRSV, RSV 등등은 모두 ‘하나님 보다(than God)’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 그 분의 속성을 반영하여 살도록 하셨습니다. 즉 인간의 위치가 피조물들 중에서 특별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본문의 ‘메엘로힘’을 요즘은 ‘하나님보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맥상으로 옛 성경처럼 ‘천사보다’라고 번역하여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직접 수종드는 영적 존재인 천사를 인간보다 더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로 생각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기를 꺼리는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매우 불경스럽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다윗 시대의 분위기와 관념을 고려한다면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였다’라는 표현도 성립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다라고 표현한다고 해서 인간을 천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천사와 비교될 수 있는 존재로 인간을 높이는 의미가 됩니다. 이런 입장을 감안해서 구약성경의 히브리 번역인 70인역과 KJV, NIV에서는 지금도 여전이 “천사보다(than the angels, 또는 than the heavenly beings)”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5절,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이 말의 히브리어 직역은 “당신은 그를 영광과 존귀함으로 두르고 계십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영화와 존귀’라는 단어는 하나님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단어로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인데, 하나님께서는 이 단어를 부족함이 있는 사람에게 적용시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재 가치를 극상시켜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씌두다”라는 행위가 한번에 끝나는 행위가 아니라, 계속 진행되는 미완료형을 사용함으로 인간이 영화롭고 존귀한 자의 위치를 잃지 않도록 항상 지켜 주시고 돌보아 주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6절,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고대 근동 사회에서 ‘발 아래 둔다’라는 것은 완전한 지배권을 행사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물에 대한 당신의 대리 통치자로 세우셨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권을 사람에게 위임하시므로 인간의 존엄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는 만물과 함께 6절 이하에 나오는 피조물들까지 발 아래 두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이것은 또한 창 1:28-30에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는 명령하시면서 육지의 동물들과 해양의 동물들을 사람에게 주시며 다스리라고 통치권을 위임하신 것과 연결됩니다.

[9, 우주 만물 가운데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 재선포]
다윗은 본시의 첫머리와 동일한 문구로 시작하였고, 마감구도 동일한 문구로 맺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수미쌍관(首尾雙關) 구조라 하는데 특히 시와 같은 문학에서 첫 연과 마지막 연을 동일한 혹은 비슷한 형태로 표현하므로 구조적인 안정감을 주기도 하고, 저자의 감정과 뜻을 극대화시켜 전달하게 됩니다. 다윗은 첫 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역사와 이름의 아름다움을 묵상하였고, 마지막 연에서도 이를 반복함으로 하나님의 놀랍고 아름다운 이름을 강조하며 송축하며, 그 이름을 대하는 자신의 감정의 최대치를 문자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시편 8편은 시편 23편처럼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너무나 유명한 시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단순히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을 깊이 묵상해 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만물과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신학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시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물의 통치자로 세우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더 깊이 와 닿는 것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나, 인간이 하나님으로 부터 부여받은 권리나 권한도 아니라, 하나님을 대하는 다윗의 태도가 마음에 더 와 닿았습니다.

다윗은 이 시를 통하여 ‘여호와, 그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이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시편을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시편 8편 이외에도 그의 시편에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자주 부릅니다. 얼마나 자주 부르는지 불렀던 이름을 또 부르고, 반복해서 부르고, 지겨울 정도로 많이 부릅니다. 간혹 성도님들 중에 기도하는 습관 중에 똑 같은 말을 반복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라는 단어를 모든 문장 마다 반복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경청하다가 ‘와…저 분은 아버지라는 단어를 말끝마다 넣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런 습관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왜 그렇게 자주 반복하는 것을 묵상하다 보니, 결론은 하나님을 좋아하기 때문이며, 사랑하기 때문이며, 의지하고 신뢰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은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자주 부른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또는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감정이 새콤달콤 해지는 것이 사랑의 감정이요 좋아하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관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고, 마음의 풍성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윗의 시편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모든 상황 속에서 부릅니다. 다윗 고난에 처했을 때에도, 그가 핍박과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죄로 인한 슬픔과 고통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와 축복이 풍성한 행복한 순간에도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다윗을 용납하시며 받아 주시고, 그의 형편과 처지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다윗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신앙 생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어려움과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위로와 능력이 있으며, 그 이름으로 인하여 두려움이 사라지고, 염려가 떨쳐지며, 영육신의 아픔과 질병이 치료되어 회복되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고백한 사도 요한의 고백(계 22:13)처럼 그 이름이 성도의 시작과 끝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주의 이름이 온 땅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세상에 베푸신 주의 은혜의 사랑의 손길이 주의 백성들의 삶 속에도 풍성히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의 주를 향한 마음이 더 깊어지게 하시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의 나라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루 하루의 삶 속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추상적이고 뜬 구름 잡는 듯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삶 속에 동행하시는 주님을 경험하며, 주님과 깊은 사귐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사랑핳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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