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4/6/2021 화요일 [출애굽기 1:15-22]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4-06 09:06
조회
939

4. 6. 화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본문: 출애굽기 1:15-22]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본문이해]
(15-22, 애굽 왕 바로의 이스라엘 민족 말살 정책과 두 산파의 신앙)
애굽인들이 이스라엘 자손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것을 두려워하자 이집트 왕 바로가 하나의 조치를 명령합니다. 그것은 히브리 산파의 대표격인 십브라와 부아를 불러서 히브리 여인들이 아이를 낳으면 여자 아이는 살려 두고, 남자 아이는 죽이라고 지시합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고, 바로는 산파들을 불러 자신의 명령을 거역한 이유를 묻습니다. 산파들은 히브리 여인들이 건장하기 때문에 산파들이 가기 전에 스스로 아이를 낳아서 남자 아이들을 죽일 수 없었다고 변명합니다. 결과적으로 히브리 산파들의 신앙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시고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십니다. 그러나, 자신의 계략대로 되지 않은 바로는 애굽 전역에 히브리 신생아들 중에서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고 공개적으로 명령합니다.

15절, “히브리 산파”: 본문에서 “산파”는 히브리 말의 뜻을 직역하면 “출산을 돕는 여인”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자는 산파들을 애굽 사람으로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록되어 있는 이름 ‘십브라’와 ‘부아’는 각각 ‘아름다움’, ‘찬란함’을 뜻하는 히브리어라는 점에서 애굽 사람으로 주장하는 학설은 거의 타당성이 없습니다. 또한 성경은 이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거역했다고 17절에 기록하고 있으므로 애굽 왕을 신처럼 여겼던 애굽인들이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도 이들이 히브리 사람임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참조로 당시 약 200만에 달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구를 감안해 본다면 십브라와 부아는 다른 많은 산파들에게 왕의 명령을 전달할 수 있는 책임자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로 생각 됩니다.

16절, “살펴서”: 한글 성경에는 동사로 표현되어 있는 이 말 앞에 원문 히브리어에는 “그 돌들 위를”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그 돌들의 위를 살펴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서는 “Upon the birthstool(RSV)”, “Upon the stool(KJV)”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돌”이라는 히브리 단어를 아이가 목욕하는 목욕통이라고도 말하고, 또는 산모가 출산할 때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앉아서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의자라고도 말하며, 출산하는 ‘조산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히브리 원문을 넣어서 번역하는 성경은 일반적으로 ‘조산대’의 의미를 따르고 있습니다.

16절,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영어 성경으로는 “shall put him to death(NASB)”, “shall kill him(KJV)”, “kill him(NIV)”로 표현하고 있어서 “죽도록 하다, 죽여야만 한다, 죽이다” 등등으로 산파들이 직접 죽이다는 적극적인 행동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어의 표현은 적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신생아를 살리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죽게 한다’라는 소극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죽이다’라는 적극성을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다른 단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묵상 및 적용]
잠언의 저자는 29:25에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위기에서 건져 주시고 지켜 주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확증해 주는 좋은 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6절에서 바로는 산파들에게 명령하는 듯 하지만, 동시에 설득하면서 ‘아기를 죽여여 한다는 부담감과 죄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산파들을 교묘하게 설득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16절의 본문해설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바로는 직접 죽이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라, ‘죽도록 내버려 두라’는 소극적인 의미의 말을 사용해서 명령과 설득을 교묘하게 하고 있습니다.

당시 애굽에서 바로의 위치는 ‘신’과 같은 위치입니다. 당연히 명령하는 입장이며, 무소불위의 권력과 강제성을 가지고 있는 지상 최대의 힘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바로가 바로가 단호하게 명령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극적인 의미로 ‘죽도록 내버려 두라’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산파들의 죄의식을 덜어 주고, 또한 직접 살해가 아니라는 것을 언급함으로 산파들의 입장을 걱정하며 보호한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즉 바로 왕이 “나도 너희들(산파들)의 입장과 마음의 부담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라는 식의 뉘앙스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바로의 의도는 사실 그 목적이 분명합니다. 바로 지속적으로 이 범죄를 자행하도록 만들려는 교활한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웬지 이러한 바로의 교활한 의도가 사탄의 간교함과 비슷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사탄은 간교하게 우리들 마음 속에 죄 짓는 것에 대해 변명할 말들을 심어 주면서 우리 스스로 자신의 양심을 조금씩 둔화시켜 마침내는 죄에 대해 완전히 무감각하게 만드는 교활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왕은 산파들에게 너희들이 직접 죽이는 것이 아니라며, 죄를 직접 짓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아기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살인죄를 완화시키고 있습니다. 산파들이 느낄 죄의식에 대해서 스스로 변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며, 그 죄가 반복되면 결국 행동에 대해 자기 변호하면서 무감각해 지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되면 방탕하게 되거나 죄를 짓는 행위를 그대로 지나쳐 버리듯이 방임하여 결국에는 양심에 화인맞은 것(딤전 4:2)처럼 되어 죄에 빠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범죄 심리학자들은 범죄의 시작은 작은 것부터 시작된다고 말하곤 합니다. 아무리 작은 죄도 죄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죄가 없는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범죄학자도 그렇게 본다면, 죄와 분리된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죄의 적용은 더욱 선명하게 구분되어 선을 긋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아무리 작은 죄라고 할지라도 그 죄에 대하여 항상 민감한 양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먀, 죄의 모양을 감추거나 약화시켰다고 할지라도 죄 짓는 일에 타협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등장하는 두 산파는 이러한 죄의 교묘한 접근과 유혹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준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두 산파의 처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의 계교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축복으로 연결시키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파를 동원해서까지 이스라엘 민족을 말살하려는 바로의 정책을 고려해 볼 때에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어렵지 않게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자의 계교까지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방편으로 삼는 하나님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도 악을 선으로 바꾸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탄과 악한 일을 행하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사탄의 계략에 동조하고 만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받아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방해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악한 자들의 계교를 오히려 인류를 구원하는 결정적 기회로 삼으신 것입니다. 악한 자들의 계교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지도, 꺾을 수도 없을 뿐더러, 도리어 하나님의 선한 뜻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들의 도전이나 간계가 있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고통과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견디면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뜻이 드러날 것입니다. 악은 하나님의 선한 뜻이 드러나는 방편이 될 뿐이요 성도들 해할 수 없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큰 핍박과 환난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는 말씀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은 고난과 시험과 어려움의 크기와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요, 주를 향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의 정도입니다. 공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며 보호하심을 믿고 ‘지금까지 견디었으니 조금 더 견디리라!’라는 믿음의 인내 가운데서 견디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다가도 힘들면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라는 형제, 자매, 곧 믿음의 식구들이 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기도]
할렐루야! 부활하셔서 나의 소망과 능력이 되신 예수님! 죄로 인하여 부족하고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없음을 주 앞에 고백합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인하여 사탄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임을 믿사오니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의 아버지이기 때문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요, 나의 요새시며, 나의 소망이요, 힘과 능력이시니 내게서 세상 염려과 걱정, 고난과 질병의 도전을 능히 이겨내게 하옵소서. 언제 세상 풍파가 다 지나갈지 그 끝을 모르지만 끝까지 나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나와 함께 하여 주옵소서. 험한 풍파 속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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