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2/29/2021 월요일 [마태복음 19:1-12]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3-01 15:50
조회
814

3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날의 말씀묵상을 나눕니다.

[ 마19:1~12 ]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본문은 예수님이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베레아를 지나 유대로 가시며 하신 마지막 전도사역이 시작하신 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 달여 후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게 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기록된 예수님의 사건과 가르침은 주님의 마지막 사역들이라는 무거운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 첫 말씀이 부부의 관계에 대한 것임은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일단의 바리새인들이 분주히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을 합니다. ‘아내를 버리려면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모세가 가르친 신명기24장의 말씀을 근거로 아내를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자 어떤 말씀인지 잠깐 살펴볼까요?

[ 신24:1-2 ]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의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발견되면 그녀에게 이혼증서를 써 주어 내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당시 율법을 연구하던 바리새인들은 이 ‘수치스러운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간음과 같은 죄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아주 작은 일들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보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서로 맞다, 그르다 하며 논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태는 그들의 의도가 율법에 대한 해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다시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것이었다고 간파합니다.

예수님은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로 대답하십니다.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처럼 그들을 부부로 삼으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먼저 상기시키십니다.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하나님의 작업을 바꾸거나 수정할 수 없는 것처럼 그 둘을 부부로 삼으신 하나님의 작업도 사람은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몸이 되었다는 주님의 선언은 다시 부부가 되기 전의 각자로 돌아가는 것은 죽는 것과 같음을 의미하신 말씀에 다름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한 몸을 둘로 만들려고 나누면 그 생명은 죽음을 피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이 당황스러워졌습니다. 예수님이 모세가 가르쳐준 이혼의 방법을 원천무효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왜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고 버리라고 했나요?’ ‘그럼 신명기24장의 말씀은 뭡니까?’라는 질문입니다.

다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원래는 그런 법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의 제도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이런 제도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지요. 합당한 이유를 찾아야 이혼을 할 수 있다면 남성중심의 유대인들의 사회에서 남자들은 함부로 아내를 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너무 악한 여인이라 아내로 함께할 수 없게 되어도 그녀가 이후에 재혼 할 수 있도록(유대인 여인들은 기업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나 남편의 부양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결혼의 관계를 종결하게 해 주었던 것이 모세가 가르친 이혼에 대한 율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조항에 담긴 하나님의 사람사랑에 대한 의지는 깨닫지 못하고 글자로만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9절은 예수님도 ‘음행’한 경우에는 아내를 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음행은 지속적이고 돌이키려고 하지 않는 문란한 성생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아내는 떠나도 좋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아내와 여전히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사는 남편은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가르침을 들었던 제자들은 그렇다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한 반응에서 당시 유대사회의 결혼 풍속도를 이해하게 됩니다. 얼마나 쉽게 아내를 버렸던지 아내를 버리는 것이 어려워지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을까요?

성경말씀은 아내를 버리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로 되어있지만 우리가 사는 지금은 남편도 쉽게 버림받는 시대입니다. 남편을, 아내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 이처럼 쉬웠던 시대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경우에도 각각 음행을 행하는 경우도 보편화되어가고 있습니다. 도무지 이런 악행에서 돌아서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음란한 세상에 사는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것은 엄중한 말씀입니다. 죽음이 아니고서는 몸도 마음도 나뉠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확인되어야 합니다. 결혼은 사람의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일입니다. 이 결혼을 사람의 일로 만들어 버리고 맞았던 징벌이 홍수의 사건이었음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참고, 창세기6장)

아내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 남편을 존중하고 위로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혼의 목적입니다. 상대 배우자가 내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에 마음아파하기 전에 내가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남편으로 아내로 살아가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받으려고만 하는 부부에게는 실망만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려고하는 부부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얻을 것입니다.
또 하나, 결코 음란의 죄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절대로 나뉘지 않아야 하는 부부가 음란을 이유로 나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은 음란은 배우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와 같음을 암시하시는 말씀이 아닙니까?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음란의 행동들을 정당화하지만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우리 삶의 기준과 목표는 하나님이십니다. 결코 타락된 세상이 아닙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으로 남편을 존중하는 것으로 이번 달을 살아보십시다. 어려운 시대에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위로와 풍성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축복의 방편으로 주신 결혼이 오염된 세상에 삽니다. 어느덧 저희들도 세상의 결혼관계를 닮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 주님의 말씀을 추상같은 명령으로 듣게 하시고 하나님의 복을 회복할 은혜의 말씀으로 마음에 담게 하옵소서. 우리 부부의 사이에 하나님의 순결하신 사랑이 넘치도록 다시 한 번 역사해 주옵소서. 부부의 살아갈 모습을 가장 분명히 교훈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혁천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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