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4/21/2021 수요일 [출애굽기 8:1-15]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4-21 09:27
조회
1039
[본문: 출애굽기 8:1-15]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2.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땅을 치리라
3. 개구리가 나일 강에서 무수히 생기고 올라와서 네 궁과 네 침실과 네 침상 위와 네 신하의 집과 네 백성과 네 화덕과 네 떡 반죽 그릇에 들어갈 것이며
4. 개구리가 너와 네 백성과 네 모든 신하에게 기어오르리라 하셨다 하라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들이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할지니라
6. 아론이 애굽 물들 위에 그의 손을 내밀매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덮이니
7.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대로 그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가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8.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
9.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내가 왕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위하여 이 개구리를 왕과 왕궁에서 끊어 나일 강에만 있도록 언제 간구하는 것이 좋을는지 내게 분부하소서
10. 그가 이르되 내일이니라 모세가 이르되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11. 개구리가 왕과 왕궁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떠나서 나일 강에만 있으리이다 하고
12.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떠나 나가서 바로에게 내리신 개구리에 대하여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13.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집과 마당과 밭에서부터 나와서 죽은지라
14. 사람들이 모아 무더기로 쌓으니 땅에서 악취가 나더라
15.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

[본문이해]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개구리 재앙을 경고하라 하시고 그대로 시행함)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낼 것을 요구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바로가 거절하면 개구리의 재앙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하라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개구리 재앙을 아론에게 명하라 하시니 아론이 명을 따라 손을 내밀어 시행하니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뒤덮었습니다.

1절, “섬길 것이니라”: 히브리어 ‘아바드’의 원래의 의미는 “일하다, 봉사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하나님과 연관되어 사용될 때에는 “섬기다, 경배하다”라는 말로 구약성경에서 번역되곤 합니다. 그래서 이런 이유 때문에 “섬기다”라는 말에 대해서 KJV, NASB, RSV 영어성경들은 “Serve”로 번역하고, NIV, LB 영어성경은 “Worship”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2절, “개구리”: 일반적으로 개구리에 해당하는 학명은 ‘라나 에스쿨렌타(Rana Esculenta)’입니다. 하지만 본 절에 사용된 개구리의 히브리어 “체파르떼아”는 일반적인 개구리의 학명과 다른 종류인 “라나 모사이카(Rana Mosaica) 또는 라나 닐로티카(Rana Niloica)”라는 학명의 개구리입니다. 이 개구리는 두꺼비와 생김새가 비슷하나 크기는 보통 두꺼비보다 작습니다. 주로 껑충껑충 뛰기 보다는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나일 강이 끝나는 늪지대나 그 주변의 웅덩이 등지에서 많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일 강의 물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12월 경부터 나일 강변에서 육지로 올라오는데 건조한 땅이 아니라, 양분과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는 비옥한 토지에서 많이 목격되곤 합니다. 애굽 사람들은 비옥한 토지에서 목격되는 이 개구리를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에 개구리 모양의 머리를 가진 여신 ‘헤카(Heka), 또는 헤크트(Heqt)’(이집트 문자 발음상의 차이)를 숭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개구리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개구리 수효를 급증시켜서 애굽인들 사이에 신성하게 여긴 개구리들이 오히려 고민거리와 저주거리로 만들어 그들 스스로 신에 대해 불평하고 경멸하도록 하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므로, 개구리 재앙이 애굽의 우상과 관련이 있다고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절, “나일 강에서 무수히 생기고”: 한글성경에는 “무수히 생기다”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 성경은 “솨라츠”라는 말의 한 단어로 된 동사로 창세기 1장 20-21에 나오는 “생육하고 번성하다”에 사용된 단어 ‘번성하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각 번역성경들 마다 서로 다른 단어로 제각각 번역하여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예를 들면 본절을 KJV은 ‘가득하게 태어나고(Bring forthabundantly)’라고 표현하며, NASB, NRSV는 ‘우슬거리다, 떼를 짓다(Swarm)’로 표현하며, 한글성경은 ‘무수히 생기고’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각각 번역성경이 다르게 표현하지만 기본적인 단어인 ‘번성하다’라는 말의 표현은 기존에 강과 늪지대에 살던 개구리들이 육지로 올라오거나 사람들이 사는 데로 와서 우글거리는 상태만이 아니라, 생육과 번성을 통해서 개구리들이 급속도로 숫자가 불어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개구리가 자연의 질서를 역행하여 사람들이 사는 곳까지 침범하여 범람한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본절에는 세 주체가 등장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와 아론입니다. 그런데 각각의 역할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명령자’이시며, 모세는 ‘전달자’이며, 아론은 ‘최종 행위자’ 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아론에게 명령하실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아론에게 명령하시는 이런 절차상의 방법을 취하는 이유는 아론을 대언자로 세우시고 출애굽의 모든 일은 지도자인 모세를 통해서 이루어 가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출 6:1, 7:1-2).

(7-15, 바로가 모세의 요구를 수용하여 개구리가 사라지자 약속을 번복함)
애굽의 술객들도 개구리 재앙을 흉내내지만 개구리로 인한 고통이 사라지지 않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백성을 보낼테니 개구리를 없애 달라고 요청합니다. 모세가 바로의 요청을 따라 내일 개구리를 없애서 바로로 하여금 여호와 같은 이가 없음을 알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매 하나님께서 모세의 간구에 응답하여 개구리의 재앙이 그쳤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 재앙이 끝나자 바로의 마음이 굳어지고 완강하여 약속을 번복하고 지키지 않습니다.

7절, “자기 요술대로”: 출 7:22 “자기들의 요술로”와 같은 맥락으로 본절 “요술”은 ‘마술(enchantment, KJV)’, 또는 ‘은밀한 기술(Secret arts, NASB, NIV, RSV)’을 뜻합니다. 당시 애굽의 요술사들이 자기들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신기한 일들을 행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출 7:22이 설명처럼 정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요술사라고 한다면 개구리를 생겨나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없애는 것도 가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으로는 애굽 땅에 물 붓듯 생겨난 개구리의 재앙을 막지는 못하므로 하나님의 능력과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사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8절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 본절을 통하여 비록 나중에 바로의 마음이 바뀌기는 하지만, 한글성경에 드러난 표현만 볼 때에는 바로의 응답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히브리 성경의 표현은 각 문구들이 ‘조건’을 의미하는 접속사로 연결되어 있어서 뉘앙스가 다릅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여호와께 구하라. 그러면 그는 나와 내 백성으로부터 그 개구리들을 떠나게 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그 백성들을 보낼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여호와께 희생을 드릴 것이다”라고 번역됩니다. 그러므로 본절은 ‘조건’을 내거는 ‘그러면’이라는 접속사로 연결되면서 ‘조건’이 이루어져야 백성을 보내고 제사를 허락한다는 바로의 의중이 들어가 있는 문장입니다. 조건을 내건다는 것은 전적인 허락이나 응답에는 여전히 거리감이 있는 것입니다.

9절, “왕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위하여 이 개구리를 왕과 왕궁에서”: 본절에 기록된 ‘왕’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멜렉’인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본절과 11절의 표현에도 이 단어가 한번도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한글 성경의 번역은 의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직역하면 “당신과 당신의 신하와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이 개구리를 당신과 당신의 궁에서”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절대 권력자 앞에서 바로를 왕으로 표현하지 않고 본절에 ‘당신’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표현을 볼 때에 모세가 처음 바로에게 나갔을 때와는 달리 하나님의 징계인 재앙들이 펼쳐진 이후 바로 앞에 나섰을 때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알 수 있고, 매우 당당하고 담대하게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9절, “언제”: 모세가 이처럼 시간을 정하라고 바로에게 말한 이유는 첫째 무엇보다도 바로로 하여금 개구리 재앙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언제라도 이 재앙을 그치게 할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함이며, 둘째로 간교하여 변덕스러운 바로로 하여금 자기가 한 약속을 분명히 지키도록 다시 한번 확인시키기 위한 목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9절 “내게 분부하소서”: 본절의 한글성경 번역과 히브리 성경의 표현은 차이가 있습니다. 히브리 성경의 의미는 바로가 “모세에게 말하다”라는 뉘앙스가 아니라, 원문 “파아르”라는 단어는 “아름답다, 영광을 나타내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동사에 ‘자기 자신에게’라는 재귀용법이 사용되어서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하다, 또는 자기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내게 분부하소서”라는 말은 때를 정하여 알려주고 약속을 지키면 ‘바로 자신에게 영광이 된다’라는 뉘앙스가 내포되어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바로는 그 약속을 스스로 지키지 않으므로 자기 이름에 먹칠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10절, “내일이니라”: 왜 바로는 개구리의 재앙을 즉시 그치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을까요? 이는 혹시라도 밤 사이에 개구리들이 물러갈지도 모른다는 인간적인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밤 사이에 개구리가 물러가면 히브리 민족을 애굽에 계속 붙잡아 두고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8절에 이 재앙이 하나님으로부터 임했음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부정적인 마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12-13절,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간구하다’에 해당하는 ‘차아크’라는 말은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다, 매우 간절하고 다급하게 부르짖다, 애타는 심정으로 호소하다”라는 의미로 구약성경에 사용됩니다. 따라서 모세는 개구리 재앙을 물리칠 것을 약속한 후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는 그냥 형식적으로나 의무적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매우 열정적으로 호소하듯이 부르짖어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간구하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개구리 재앙이 때가 되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가 요청한 것처럼 다음 날까지 사라져야 한다는 “때”에 대한 부담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일을 맞추는 이적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므로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바로에게 “때”를 구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은 부분인데 모세가 약속을 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동행한다는 사실과 자신의 의도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15절,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본절에서 ‘숨을 통한다’라는 말은 “넓은 공간을 가지다”라는 뜻으로 “휴식, 또는 휴식을 취하다”라는 말의 관용적 표현입니다. 개구리 재앙으로 극심한 고통과 불편한 가운데 있다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상태를 의미합니다.

15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이러한 표현은 본절의 개구리의 재앙 외에도 피의 재앙(7:22), 이의 재앙(8:19), 독종의 재앙(9:12), 우박의 재앙(9:35)에서로 각각 반복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상하신 대로 바로가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약속을 지키지 않음을 드러낼 때에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상하셨고, 그대로 이루어 졌으니 말씀의 성취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묵상 및 적용]
서양이든 동양이든 가문에 의해 형성된 신분이나, 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사회적 계급에 의해서 개개인의 능력치가 결정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한계가 정해지곤 했습니다. 오늘날처럼 개개인의 ‘능력’에 의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다양한 선택이 가능해 진 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20세기에 들어 오면서 부터라고 말하는 사회학자의 주장을 따른다면 100년 남짓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지구상에는 개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탁월하여도 사회의 폐쇄성이나, 남녀구분의 차별, 또는 여전히 암암리에 존재하는 차별의 한계들로 인하여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나라들과 사회나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미국 땅이 그나마 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러가지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지만 세계 어떤 나라들보다 인권단체와 개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사회 단체가 많은 나라인 것을 보면 여전히 미국 내에도 차별의 한계가 있으면 “개인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한 제약이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21세기 현대는 역사상의 그 어느 시대보다도 개개인의 “능력”을 중요시 하는 시대이며,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사람이 사는 공동체에서 그 사람의 능력이요, 그 능력은 힘이 되기도 하고, 그 힘이 그 사람의 가치를 높여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현대인이 중요시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에게도 역시 중요할까요? 묵상을 하면서 계속 던져지는 질문입니다. 세상이 중요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잠깜 멈출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애굽의 요술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개구리의 재앙을 선포한 모세의 이적을 그대로 재현해 냅니다. 애굽의 요술사들에게 있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매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왕 앞에서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한 이적들을 자신들이 해 낸다는 것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요, 능력 발휘요, 힘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의 능력으로 “따라는” 할 수 있어도 “사라지게는”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애굽의 요술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내가 할 수 있느냐?” 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표현하면서 지향하고 있는 방향은 모세나 아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또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요구하는 관점은 ‘일어난 이적이나 능력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이며, 또한 ‘행한 일의 결과가 누구에게 영광이 돌려지는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애굽의 요술사의 관점과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관점은 전혀 다릅니다. 세상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것에 점수를 주지만, 성경은 능력과 이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드러내는가에 있으며, 하나님이 증거되는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이적을 행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10절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라고 말하면서 애굽 왕 바로가 이적이 하나님으로 부터 왔으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바로가 알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적을 행하면서 늘 앞에 내세우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도 처음에는 출 5:2에 “여호와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라고 했던 바로가 점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누구이신줄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고 대단한 능력을 지녀서 부족함이 없을지라도 그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드러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지 않으면 믿는 성도의 삶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시선을 내 삶을 바라보고, 내 상황을 바라보고, 내 형편과 고난과 어려움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하나님의 뜻과 그 분이 말씀하시는 방향을 볼 수 있는 시선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찬양 ‘시선’이라는 찬양의 가사가 묵상에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게로 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 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성령이 나를 변화시켜 모든 두려움 사라질 때, 주의 일을 보겠네.
황폐한 땅 가운데서 주님 마음 알게 되리,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기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그 이름만이 높이 영광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과 염려와 걱정, 물질의 고통과 질병의 아픔, 직장과 일터의 위기, 그리고 믿음에 서지 못하는 나의 연약한 모습을 주님께 내어 놓습니다. 주님 씻어 주시고 깨끗케 하시며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세속적 눈으로 하나님을 보지 않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믿음의 눈이 열리게 하옵소서. 내 맘을 늘 바라 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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