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8/19/2021 목요일 [사사기 7:9-25]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8-19 09:15
조회
260

8. 19. 목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미가서 6장 8절”: https://youtu.be/BRWlKlNSwnU

[본문: 사사기 7:9-25]
9.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10.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11.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12.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
13.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14.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15.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16.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17.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18.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19.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20.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21.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22.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23.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24.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고
25.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본문이해]
[9-15, 미디안 병사의 꿈을 통한 승리에 대한 여호와의 표징]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미디안 공격을 명하십니다. 하지만 기드온이 아직도 두렵거든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미디안 진에 내려가 보라고 명하십니다. 기드온이 미디안 군대가 진친 곳에 가보니 어마어마한 미디안 연합군의 규모를 목격하게 됩니다. 그런데 미디안 병사 한 명이 꿈에 보리 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에 흘러 들어와 한 장막을 무너뜨리는 꿈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꿈 내용을 들은 옆에 있던 친구가 그것이 기드온의 칼날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미디안 연합군의 기드온의 손에 붙이신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기드온이 미디안 병사의 꿈과 해몽을 듣고 하나님께 경배한 후 이스라엘 진으로 돌아와서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다고 확신하며 격려합니다.

10절, “만일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기드온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성경은 “만일~ 한다면”이라는 가정법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세번이나 하나님의 표징을 보았고, 삿 6:16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굳게 믿고 있었으며, 300명의 용사를 정한 후에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사였지만,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음을 본 절의 표현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본문에 기드온이 두려움과 어려움을 호소하기 전에 먼저 세심하게 배려하여 기드온에게 또 다른 표징을 보여주시므로 강하고 담대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12절,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은 같은지라”: 본 절의 표현은 과장법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장법의 표현을 통해서 미디안 병사의 꿈과 해몽을 듣기 전에 기드온이 가졌던 두려움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본 절의 표현입니다.

13절, “굴러 들어와서”: 이 단어의 히브리어는 “미트합페크”로서 ‘돌리다, 뒤집어 엎다’라는 뜻의 동사 ‘하파크’의 재귀용법(Hithpael) 입니다. 재귀용법이라 함은 움직이는 주체가 스스로의 힘으로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으므로 직역하여 번역하면 ‘보리떡 한 덩어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굴러서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당시 고대 근동지방에서 광야의 가난한 베두인들에게 보리떡은 흔히 먹던 음식으로 가루를 반죽하여 불 속에 넣었다가 다 익으면 꺼내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14절, “하나님이”: 이반 족속인 미디안 병사의 입에서 “하나님”이 언급된 것은 새삼 놀랄 수도 있는 표현입니다. 이때 사용된 히브리어 “엘로힘”은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부를 때 사용한 호칭이기도 하지만, 이방인들이 자기들이 섬기는 신을 지칭할 때도 사용되는 호칭입니다. 즉 영어에서 신이라 할 때에 일반적으로 ‘god’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엘로힘”으로 표현하여 “엘로힘” 앞에 정관사 “하”가 붙어 있습니다. 영어로 하면 “the God”과 같은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이 병사는 자기 민족이 섬기는 이방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하나님을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 “해몽하는”: 이 단어의 히브리어 “솨바르”의 원래의 뜻은 “깨뜨리다”이며, 다른 뜻으로는 “멸망하다. 무너지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이 단어는 본래 그릇 등이 깨지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이며, 문맥에 따라 그 의미가 발전되어 국가나 개인의 멸망과 같은 파괴적인 상황까지 나타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는 이 단어를 ‘꿈 해몽’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 민족에게 해몽은 그 속에 감추어 있는 어떤 비밀을 깨뜨려서 참된 진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삿 7:20에서 “항아리를 부수고”에서는 항아리를 깨뜨리는 의미로 “솨바르” 동사가 다시 한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문학적으로는 이러한 동일한 단어의 사용을 통해서 꿈의 해석과 그 꿈이 현실에서 정확히 이루어지는 상황을 서로 연결시키는 고리가 이어지고 있음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16-23, 횃불, 항아리, 나팔을 이용한 야간 기습작전의 수행과 승리]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횃불을 감춘 항아리를 들게 합니다. 삼백 명이 미디안 진영 근처에 이르면 기드온과 그를 좇은 사람들이 먼저 나팔을 불면 진영 사면에서 일제히 나팔을 불며 고함을 칠 것을 지시합니다. 기드온과 일백 명이 한밤중 미디안 보초가 교대할 즈음에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숩니다. 그러자 삼개조로 나뉜 세 대가 일제히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라고 외치며 진영을 에워싸자 미디안 진영은 이스라엘 대군이 쳐들어온 줄로 착각하여 갈팡질팡 도망하며 자기들끼리 서로 치다가 도망합니다.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해산하였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납달리, 아셀, 므낫세 지파로부터 다시 모여 미디안 연합군을 추격합니다.

18절,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본문의 내용을 히브리어 원문을 따라 직역하면 “우리는 여호와와 기드온을 위하여 싸운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몇몇 히브리어 성경의 다른 사본이나 역본에는 20절의 “기드온의 칼”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사본도 있으므로 영어성경 KJV은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The sword of he Lord, and of Gideon)”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19절, “이경 초”: 이 단어의 히브리어는 “로쉬 하아쉬모레트 핫티코나”인데 직역하면 “중간의 시간 경계”라는 뜻입니다. “핫티코나”는 ‘중간’을 의미하는 명사이며, “하아쉬모레트”는 ‘시간의 경계’를 뜻합니다. 한글성경은 이를 이경으로 번역하고 있고, 영어성경 NIV는 “at the beginning of the middle watch”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해질 때부터 다음 날 해뜰 때까지의 밤 시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일경, 이경, 삼경으로 구분합니다. 이 중에서 이경은 밤 시간 경계의 중간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경”으로 한글성경이 번역한 것입니다. 이경은 밤의 중간 부분으로서 가장 어두운 때이며, 모든 사람이 잠들어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군사 기습 작전을 수행한 것입니다. 현대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본문에 그 시점을 “초”(히, 로쉬)라고 구분하고 있으므로 밤 10-11시 사이라 볼 수 있습니다.

19절, “파수꾼들은 교대한 때라”: 본문의 “교대한 때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켐 헤키무”라는 의미는 ‘그들이 확실히 세웠다’ 혹은 ‘이제 막 세웠다’라는 의미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를 살려 본문을 다시 직역해 보면 “그 때는 파수꾼들을 방금 교대한 후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런 성경의 뉘앙스를 볼 때에 기드온의 기습작전은 적은 병력으로 강대한 미디안을 쳐부시기 위하여 적군의 보초병들이 교대하는 다소 산만한 시간을 공격 개시의 시점으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22절에서 “스레라의 벧 싯다”로 도망한 것을 고려할 때에 어느 정도 기습작전을 진행하여 삼백명을 3개 조로 나누어 진영을 에워싸던 공격에서 동, 서, 남, 북의 방위에서 한쪽 방위를 자연히 터주는 작전을 썼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이렇게 한쪽 방향을 비우면 적들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서로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열려진 한쪽 방면으로만 도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작전의 결과로 미디안 연합군은 사방으로 도망하지 못하고 “스레라의 벧 싯다”, 즉 한쪽 방향으로만 도주하도록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추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기습작전을 위해 시간적 이점과 지리적 요소를 모두 고려한 지혜가 담겨 있는 작전이라 볼 수 있습니다.

22절,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본문의 표현의 직역은 “여호와께서 그의 동료에게와 모든 군대 가운데 각 사람의 칼을 두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삼백 명이 항아리를 부수면서 외친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은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의 칼 이었습니다. 심판의 칼을 미디안 진영 가운데 두심으로 미디안 군사들은 자기들끼리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므로 자멸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22절, “스레라의 벧 싯다”: 스레라는 대상 4:17, 왕상 11:25에는 “스레다”로, 수 3:16, 왕상 4:12, 7:46, 에는 “사르단”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모두 같은 지역이라 추정합니다. 스레라(사르단, 스레다)는 여리고 북방 21km 지점의 요단강 기슭에 위치한 성읍으로서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여리고 가까운 요단 나루탁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벧 싯다”는 ‘아카시아의 집’이란 뜻으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요단강 유역 스레라 부근으로 추측됩니다.

22절, “아벨므홀라의 경계”: “아벨”은 습기에 축축히 젖어 있는 목초지나 초원을 의미하고, “므홀라(또는 메홀라)”는 춤이나 율동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 합성어인 “아벨므홀라”는 ‘춤을 추듯이 너풀거리는 목초지’라는 뜻이 됩니다. 이 지역은 성경에서는 왕상 19:16에 엘리사의 고향으로 언급되어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추정하기를 요단 서편의 성읍으로 벧산의 남쪽 15km 지점에 위치한 ‘델 에스 시프리’ 지역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23절,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본 절에서 “부름을 받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잇차에크”는 수동형으로 ‘불리워져 모여지다, 모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언급된 세 지파에서 부름을 받고 모인 사람들은 기드온과 함께 싸운 300명과는 구별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미디안 연합군과의 싸움이 있던 근접 지역에 살았던 납달리, 아셀, 므낫세에서 온 사람들로 삿 7:3-5에서 기드온을 좇아 싸우러 왔다가 돌아간 32,000명에 속했던 사람들이나 새로 부름을 받고 자원한 사람들로 추정됩니다.

[24-25, 에브라임 지파에게 한 지원요청과 수행]
기드온이 에브라임 지파에게 사자를 보내 혼란에 빠진 미디안 사람을 치고 벤 바라와 요단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여 퇴로를 차단하도록 지원을 요청합니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그대로 수행하여 미디안 연합군을 쳤으며 그들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 잡아 죽여 승리합니다.

24절, “벧 바라와 요단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이 곳의 위치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단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요단강의 낮은 여러 개천으로 갈 수 있는 어느 한 지점으로 추측할 뿐입니다. 한글 개역개정에 “수로”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함마임”의 뜻은 ‘그 물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 KJV, NASB, RSV, NIV는 모두 “the waters”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디안 군대가 배 없이 걸어서도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얕은 요단의 여러 개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요단의 얕은 개천들을 미리 점령하여 미디안 군사들이 건너가지 못하도록 후방 퇴로를 차단하라는 의미입니다.

25절, “오렙과 스엡”: “오렙”은 ‘갈까마귀’란 뜻이며, “스엡”은 ‘늑대’라는 뜻입니다. 고대 아람 민족들은 사람이 이름에 야생 동물의 이름을 사용하는 흔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체를 찾아 날아 다니는 까마귀와 사냥감을 찾아 방황하는 늑개란 이름을 통해 그들이 매우 포악한 자들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용어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죽이고 이를 기념하여 ‘오렙 바위’와 ‘스엡 포도주 틀’이란 이름을 지어 승전의 기쁨을 표현하였습니다. 이사야 10:26에 의하면 ‘오렙 바위’는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도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승전의 상징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묵상 및 적용]
기드온의 300 용사와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투 스토리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 입니다. 그럼 승리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아마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이나 주일학교를 어렸을 때에 다녀 보신 분들은 여러 번 들어본 바가 있을 것입니다.

15~1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삼백 명을…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야간 기습 전투의 전략을 상세하게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17절에는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지 상세하게 가르쳐 주시기까지 합니다. 그 말은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라”라고 지시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300 용사가 기드온이 하는 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가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물리적 전투는 오늘날 우리가 현실에서 살면서 경험하게 되고, 막닥뜨리게 되는 영적 전투의 좋은 교훈이 되곤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에 기드온의 전투는 우리가 살아가는 영전 전쟁에서 승리하는 좋은 비결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어떤 승리의 비결이 담겨 있을까요?

그 비결의 첫번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고, 기드온과 300용사들이 취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고작(?)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리고, 횃불을 흔들면 “여호와를 위하라”라고 소리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전투의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난다 긴다 하는 숙련된 군대 지휘관의 눈으로 볼 때에는 정말 허무맹랑하다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이요, “고작~”이라는 말로 비아냥 거리듯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데 여러분! 정말 성경에 표현된 이것이 전부라고 믿으시나요? 다른 어떤 방법도 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따라 기드온이 실행하고, 기드온을 따라 300 용사들이 그대로 따라했을 때 135,000명의 대군을 물리치는 놀라운 전과를 올릴 수가 있었다고 믿으시나요? 그 방법이 실제 전투에서 사용하는 칼, 창, 활 등등과 같은 어떤 무기도 사용하지 않고 횃불, 항아리, 나팔, 그리고 큰 함성이 전부라고 할 때에 믿을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전을 계획하시고, 지휘하시고, 진행하셔서 최대의 효과를 나타내도록 역사하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가장 좋은 비결은 바로 주님께서 행하신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주를 따라 그대로 행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11:1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따라 행했고, 기드온을 따라 300용사들이 그대로 준행한 것처럼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대로 행하였으며,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를 본받은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승리의 비결은 “주를 본받는 것, 주님께서 행하신 대로 행하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승리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수고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위하여 수고하고 헌신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눈물 흘리며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내어 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위하여 기꺼이 희생할 때에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 납니다.

바로 이렇게 주께서 이 땅에서 행하셨던 그대로 행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바로 여기에 영적 전투의 승리의 비결이 있으며,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쳤듯이 우리의 대적 사단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고 승리하는 삶의 비결이 있습니다.

[기도]
만군의 여호아 하나님! 세상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방법으로 참 승리를 안겨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하심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세상적인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생명 다해 사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희생제물로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보이셨으니 우리도 주를 따라 그대로 행할 수 있도록 믿음의 행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주를 따라 행할 때 사단을 물리치고,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며, 이 땅에서 성도로 온전히 사명을 다할 수 있음을 믿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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