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6/02/2021 수요일 [시편 2편 1-12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6-02 10:56
조회
652

6. 2. 수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본문: 시편 2:1-12]
1.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본문이해]
본 시는 표제가 없기 때문에 그 저자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누가가 사도행전 4:25-26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라고 인용하는 것을 근거로 할 때 다윗이 저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편 2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내용들이 함축되어 있는 메시야 시편으로 구분되어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 왕가 왕들의 왕권과 정통성을 강조하므로 제왕시(Royal Psalm)로 분류되어 실제로 삼하 7:8-16에 근거한 다윗 언약을 계승하는 왕위 즉위식 대에 백성들 앞에서 낭독되곤 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1-3, 여호와께 대적하는 자들의 모략을 지적함)
세상 나라들과 민족들의 군왕들이 여호와와 기름 부음 받은 자들에게 대적하여 헛된 일을 계획하고 반역을 꾀하여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1절, “이방 나라들”: 개역개정 성경이 나오기 전의 개역 한글성경에서는 “열방”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 ‘고임’은 주로 하나님의 선택에서 제외된 이방 나라와 민족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구약성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왕국인 다윗 왕국에 대항하여 이를 무너뜨리려는 이방 나라들입니다. 2절에 구체적으로 표현된 ‘세상의 군왕들’은 다윗 당시에는 블레셋, 암몬, 모압, 에돔 등의 나라들입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궁극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반대하므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메시야를 대적하는 사단의 세력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적자의 표상이며 심판의 대상이었던 ‘이방 나라들’이 구원의 대상으로 전환되어 메시야께서 ‘이방의 빛’(이사야 42:6)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는 구원사에 있어서 놀라운 사건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무한하심을 보여주는 증거라 말할 수 있습니다.

2절, “기름 부음 받은 자”: 한글성경에서는 5개의 단어로 표현되어 있는 본 절의 구문이 히브리어로는 한 단어 ‘메쉬호’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즉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메시야’ 입니다. 그 뜻은 ‘기름 부음을 받아 거룩하게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선택된 백성의 지도자들 중에서 왕, 선지자, 제사장들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구별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거룩한 사역을 감당할 자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행위를 전능하신 절대 주권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궁극적으로 신구약성경에서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다윗에게 계승된 언약을 계승하여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2편은 메시야에 대한 신학이 드러나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메시야 시편(Messianic Psalm)으로 분류됩니다.

(4-6, 대적하는 무리들에 대한 여호와의 선포)
하늘의 하나님께서 대적자들의 모략과 계획을 비웃으시고 분을 발하며 진노하십니다. 그리고 선포하시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거룩한 산 시온에 그 분의 왕을 세우셨다고 선언하십니다.

6절, “나의 왕”: 본문이 의미하는 직접적인 대상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기름부으신 다윗 왕과 더불어 다윗 왕조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다윗 왕가의 왕권은 영원하지 않고 솔로몬 이후 점차적으로 쇠퇴하고 BC 586년 바벨론의 침략으로 나라가 멸망하고 왕조가 끊어집니다. 따라서 본문의 ‘나의 왕’은 궁극적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온전하게 이루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6절, “시온”: 히브리어 발음으로 ‘치욘’(시온, Zion)은 어원을 정확하게 밝히기 어려워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자들마다 그 뜻을 설명할 때에 각각 다르게 주장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파생된 여러 유사 단어들을 참조해서 학자들의 주장들을 모두 나열해 보면 “요새, 바위, 산성, 안전한 곳, 보호받는, 표시, 눈에 띄는, 건조한 곳, 양지바른” 등등으로 여러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온’ 단어의 정확한 의미보다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이 지명이 상징하는 의미가 더 중요하게 간주되는 있기 때문에 단어의 의미보다, 어떤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원래 시온의 지리적 위치는 예루살렘 남쪽의 기드론과 두로뵈온 두 골짜기 사이에 솟은 절벽으로 된 남쪽 봉우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되다가 동쪽 등성이까지 확대되어 시온으로 불리게 되고, 나중에는 예루살렘 전체를 시온으로 확대하여 지칭하게 됩니다. 오늘날은 해발 740m의 모리아산에 세워진 예루살렘 성전의 남쪽을 시온이라 부르고, 예루살렘 구도시의 남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가장 높은 언덕을 ‘시온산’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시온은 옛적에 다윗이 가나안 원주민 여부스 부족으로부터 정복하여 ‘다윗 성’이라 지칭하기도 했으며 ‘예루살렘’으로 명명하게 된 정치적 중심지로 삼았던 장소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법궤를 옮겨온 후에는 종교적 중심지가 되어 명실상부한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가 됩니다. 또한 지리적으로 시온을 넓게 생각하면 예루살렘 전체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좁게 생각하면 시온,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성전산 등등으로 나누어 구분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훗날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포로기 때에는 ‘시온’이라는 말의 의미가 더 넓게 확장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잃어버린 조국의 땅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확장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그 거룩한 땅으로의 귀향을 의미하는 ‘시오니즘’을 표현할 때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7-9, 여호와께서 세우신 왕으로서의 메시야의 권위)
거룩한 산 시온에 세운 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왕으로서의 메시야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에게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주어 그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며, 대적하는 무리들을 철장으로 질그릇 부수듯 쳐부술 능력과 권한을 주신다고 선포하십니다.

7절, “너는 내 아들이라”: 본문의 이 말씀은 사무엘하 7:8-16에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주신 언약의 내용 가운데 들어 있는 말씀(삼하 7:14)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다윗에게 하신 언약은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언약은 솔로몬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예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구약의 예언을 실현하고 성취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까지 동시에 바라보는 이중적인 성취의 성격을 함축하고 있는 메시야 예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8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사실 본 절의 내용과 같이 유업에 해당하는 “이방 나라들”이 다윗이나 다윗의 후손들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소유가 된 적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성취는 창 12:3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어 모든 민족이 복음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수 있는 복을 얻는다는 메시야 예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9절, “철장으로…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철장은 ‘철로 된 막대기’라는 의미입니다. 질그릇이 철장에 의해 박살나버리는 것처럼, 세상의 왕들이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메시야적 왕에 의해 너무나 철저하게 박살나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절에서 철장은 악인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절대적 통치권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2:5에 예수 그리스도를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계 19:15에는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라고 말하며 절대적 통치권에서 비롯된 심판의 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철장의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만 행사한은 것이 아니라 주를 믿고 세상과 담대히 싸워 나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여하신다고 계 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12, 세상 권력자들을 향한 경고)
여호와께서 보내신 철장 권세를 가진 왕이 오시므로 세상 군왕들에게 무엇이 지혜로운 길인지 깨달으라고 권면합니다. 여호와께서 권하시는 지혜와 교훈은 그 분을 경외하여 섬기고, 두려워하며 오직 그 분만으로 즐거워하는 것이며, 그 분이 보내신 그의 아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급한 진노로 망할 수밖에 없으나, 이 진노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모든 자들에게 복이 있음을 선포하십니다.

11절,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이 표현은 역설적(Paradox)인 표현입니다. ‘떨며”(히, 삐르아다)라는 뜻은 ‘두려워하다, 전율하다’라는 의미이며, “즐거워할지어다”(히, 길루)는 ‘기뻐 뛰놀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본 절에서 시인이 두려워하는 태도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기쁨, 전율과 환희의 개념은 서로 조화되지 않는 물과 기름과 같은 반대적 개념이므로 부조화라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두려움과 기쁨이 병행하여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역설적 표현을 통해서 엄위하시면서 동시에 자비로우신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본 절에서 ‘아들’은 일차적으로는 다윗의 왕권을 상속받는 자로서 솔로몬과 다윗 왕가의 모든 왕들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인 이차적 의미로는 여호와의 기업을 상속하는 참된 아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본 절의 ‘입맞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낫쉐쿠’는 반드시 입을 맞추어야 한다는 강제성이 있는 명령형입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누군가가 상대방의 발에 입을 맞춘다는 것은 종의 예를 갖추고 철저히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절에 등장하는 대적자들인 세상 군왕들과 관리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그 아들에게 복종하여 입맞추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입을 맞추어야만 한다’는 강의적 명령의 본 절의 표현은 대적자들의 심판과 멸망을 당연시하고 있는 표현이며, 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대적자들에 대한 경고를 선포하고 있는 셈입니다.

[묵상 및 적용]
오늘 본문에서 이방 나라들을 통치하는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헛된 일을 꾸미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며 말하기를 “우리가 매인 것을 끊고 결박을 벗어 버리자”라고 모략을 꾸밉니다. 본문 2절의 도전적 언사는 어디서 많이 들어 봄직한 문장입니다. 바로 창세기 11장 4절에서 바벨탑을 쌓는 세상의 무리들이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는 말투와 너무 똑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성향은 다윗 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속박과 결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성향은 인간의 본능에 충실히 잠재되어 있는 죄의 속사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뱀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말씀을 굴레와 속박으로 간주하여 ‘벗어나라’라고 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속사귈 때에 본능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의 타락 이후에 모든 인간들은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지도와 인도하심을 속박과 결박으로 생각하여 벗어버리고자 하는 시도를 계속해 왔습니다. 그 증거가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이어지고, 바벨탑에서의 혼동과 흩어짐으로 이어지면서 인간 스스로를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삼아 살아가고자 하는 세상 나라와 세상의 군왕들과 사람들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잊어 버리고 간과한 것은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 그 자신만의 선택으로 이 세상에 나온 존재가 없으며, 하나님의 지시와 인도하심을 거부하며 구원에 이를 자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2편에 등장하고 있는 이방 나라들의 세상의 군왕들과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그 분의 인도하심의 은혜로운 손길을 거부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유를 억압과 굴레, 속박과 결박으로 매도하여 끊어 버리려 한 것입니다.

세상은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자 하는 마음이 결코 없습니다. 주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사랑과 최고의 배려의 결정체로 만드신 에덴동산 조차 굴레와 속박과 결박으로 느겨질 따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의 틀을 깨고 벗어나려고 애를 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하여 세상의 영역에 거하며 세상의 방식으로 살도록 유혹하며 속사귈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마지막 때를 고려한다면 진정한 결박과 속박은 하나님으로 부터가 아니라, 세상의 뒤에 있는 사단의 손아귀입니다. 사단은 세상의 군왕들과 사람들을 그들 안에 충만한 인간의 본능과 그 본능에 충실하도록 하는 죄악의 본성을 이용하여 스스로의 올무에 빠지게 합니다. 스스로 자기 꾀에 빠지고, 스스로 수렁에 빠진 인간은 자기 자신을 부인해야만 벗어날 수 있는데 이것은 인간 자력의 힘과 본성으로는 너무 불가능한 깨달음입니다. 종종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부인하고 자력으로 깨달음을 얻곤 합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깨달음을 얻는 것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에 이를 존재가 없음을 세상이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2편은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구원의 길은 여호와께서 친히 거룩한 산 시온에 세운 ‘나의 왕”이시며, 하나님께서 친히 ‘내 아들’이라 부르는 분으로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그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며, 철장으로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고 질그릇같이 부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은 바로 유일한 메시야로서 죄가 없는 무흠한 분이시지만 이 땅에 죄인 된 육신의 몸으로 오셔서 자기 몸을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드려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두 종류의 자유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밖에서의 자유’ 입니다. 어디에서 자유를 느끼고, 어디에서 속박과 결박을 느끼는가에 따라 하나님의 편인지, 아니면 세상의 편인지 선명하게 나뉘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밖에서의 자유’를 추구하는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기에 결코 그리스도에게 나아가 입을 맞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2편 12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라는 말씀은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는’ 믿음으로 행하는 자유함이지만, 대적하며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이 선언과 선포의 말씀 자체가 이미 심판의 언도이며, 사형선고와도 같은 엄중한 선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함과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발견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신명기 10장 12절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아야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모세는 여호와의 능력과 역사를 경험한 출애굽 세대들이 점점 사라지는 시점에 다음 세대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당시에 세상적인 관점에서 ‘잘 나간다’라고 인정받는 이집트의 세속적인 번영이나 가나안과 주변 땅에 도시 국가의 시스템으로 구축된 세상 군왕들의 시스템을 본 받으라고 권한 것이 아니라, 세상적 관점을 완전히 벗어난 하나님 나라의 시스템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 분의 도와 명령과 규례 안에서 참된 자유함을 깨닫고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그 분 안에서의 자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는” 신앙이 우리 모두이게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향해 “너는 내 아들이라”라고 말씀하셨던 그 음성이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듣고 가슴 떨리는 흥분과 감동으로 세상 군왕들과 나라들을 향하여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라고 선포하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기도]
철장으로 세상 권세를 질그릇처럼 깨뜨리시는 예수님! 힘들고 지쳤을 때에, 낙망하고 넘어졌을 때에,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여전히 나를 향하신 주님의 위로의 말씀을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고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을 마음에 새기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이 주는 이 땅에서의 잠시 잠깐의 희락과 즐거움에 속아 넘어가지 않게 하시며, 믿음으로 영원한 나라의 기쁨과 즐거움을 소망하여 주님과 동행함으로 그 나라의 기쁨과 은혜를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연약한 자에게 힘이 되시며, 병든 자에게 치료자가 되시며, 사명을 소중히 지키려는 자에게 인도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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