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8/21/2021 토요일 [사사기 8:10-21]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8-21 08:50
조회
628

8. 21. 토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I Surrender”:

[본문: 사사기 8:10-21]
10.이 때에 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있는데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칼 든 자 십이만 명이 죽었고 그 남은 만 오천 명 가량은 그들을 따라와서 거기에 있더라
11.적군이 안심하고 있는 중에 기드온이 노바와 욕브하 동쪽 장막에 거주하는 자의 길로 올라가서 그 적진을 치니
12.세바와 살문나가 도망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온 진영을 격파하니라
13.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14.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그를 심문하매 그가 숙곳의 방백들과 장로들 칠십칠 명을 그에게 적어 준지라
15.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너희가 전에 나를 희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들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16.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17.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18.이에 그가 세바와 살문나에게 말하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더냐 하니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 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하니라
19.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20.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이 그의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21.세바와 살문나가 이르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하니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본문이해]
[10-12,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군의 잔당을 토벌함]
십 이만 명의 군사를 잃고 도주하던 세바와 살문나의 남은 미디안 군사 만 오천 명이 갈골에서 안심하여 숨을 돌리고 있을 때에 기드온의 군대가 공격을 합니다. 세바와 살문나가 다시 도망하자 추격하여 사로잡고 미디안 군대의 잔당을 섬멸합니다.

10절, “갈골”: 히브리어로 “카르코르”라는 이 지역은 “(땅을) 파다”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말로 ‘땅을 파서 구축한 기반’을 뜻합니다. 갈골은 군사 시설을 갖춘 요충지로서 동부 길르앗에 위치한 지역이며, 산지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추정되는 몇 명 위치가 있으며, 어떤 학자들은 약 150km 떨어진 요단 동부의 미디안 성읍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학자들은 요단강의 ‘엣다미예(ed0Damieh)’ 나루에서 동쪽으로 약 240km 정도 떨어진 아라비아 사막의 Wadi Sirhan에 위치한 ‘카르카르(Qarqar)’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150km이든 240km 떨어진 지역이든 기드온 일행은 두 왕을 쫓아 그들의 근거지인 이곳까지 매우 과감하고도 집요하게 추격을 해 왔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11절, “적군이 안심하고 있는 중에”: 세바와 살문나는 1차 전투에서 120,000명을 잃고 패잔병 15,000명이 갈골에 모여 있습니다. 갈골은 군사 시설을 갖춘 지역으로 추정되고, 또한 현재 군사력이 기드온의 300용사들 보다는 훨씬 많은 숫자이므로 감히 기드온이 쳐들어 오지 못할 것으로 믿고 편안한 상태에 있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1절, “장막에 거주하는 자의 길로”: “장막”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오헬”은 사막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이동 생활을 하면서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동안 사용하는 천막입니다. 따라서 노바와 욕브하 지역의 동쪽에 있는 이 길은 일시적으로 그곳에 천막을 치고 잠시 거주하고 있는 유목민이나 대상들이 다시는 길을 가리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패잔병을 공격하기 위해서 직접 대로를 통해서 공격한 것이 아니라, 유목민들이나 대상들이 다니는 길로 우회하여 기습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안심하고 있으며, 패잔병이라 할지라도 그 숫자가 15,000명이나 되므로 적의 허점을 찌르기 위해 지리적으로 우회하여 기습한 것으로 보입니다.

[13-17, 기드온이 귀환 길에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응징함]
헤레스 비탈길 전장에서 귀환하던 기드온이 숙곳의 한 소년을 잡아 숙곳 방백들과 장로 77명의 명단을 확보합니다. 숙곳에 이르러 전에 자신을 조롱하고 냉대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장로들을 붙잡고 들가시와 찔레로 주민들을 응징합니다. 브누엘 사람들에 대해서도 선언한 대로 망대를 헐고 성읍 사람들을 죽여 응징합니다.

13절, “헤레스 비탈 전장”: 히브리어 “헤레스”는 ‘태양’을 뜻합니다. 그리고 한글성경에 “비탈”로 번역된 히브리어 “밀레마알레”는 ‘올라가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명사로 ‘오름, 언덕, 비탈, 높은 곳’ 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헤레스”를 어떻게 번역하는 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첫번째는 “헤레스”를 ‘태양’으로 번역하여 직역하면 ‘태양이 올라오기 전에’, 즉 해가 뜨기 전의 새벽 시간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 번역을 사용한 대표적 영어성경은 KJV으로 “Before the sun was up”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헤레스”를 단순히 ‘태양’이란 뜻의 지명으로 보면 한글성경의 번역과 같이 “헤레스 비탈 전장”이 됩니다. 이 번역은 영어성경 RSV, NIV, NASB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두번째 의견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14절, “소년”: 이 단어의 히브리어 “나아르”는 ‘어린아이, 소년, 청년, 하인’ 등등의 뜻으로 성경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에서 청년까지의 다양한 연령대를 포함하므로 성읍의 방백들과 장로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을 정도면 어린아이나 소년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나이가 든 청년으로서 숙곳 지역 사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15절, “전에 나를 희롱하여”: “희롱하다”의 히브리어 “헤라프템”은 ‘책망하다, 조롱하다, 모욕감을 주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삿 8:6에 있는 표현에는 자세히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본 절에 숙곳 사람들이 자신을 ‘희롱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숙곳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비난이나 조롱 뿐만이 아니라, 책망하거나 모욕감을 수치를 주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6절,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한글성경에는 본 절을 번역할 때에 생략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그들과 함께”라는 말로서 전체를 직역하면 “장로들을 붙잡아 그들과 함께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입니다. 기드온의 응징이 매우 혹독하였으며 고통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21, 기드온이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처형함]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가 다볼산에서 죽인 자들은 자신의 친형제들이었음을 밝히며, 그러므로 자신도 세바와 살문나를 축이겠다고 말합니다. 기드온이 장자 여델에게 두 왕을 처형하도록 지시했으나 두려워하여 행하지 못합니다. 두 왕이 기드온의 손에 죽기를 청하자 기드온이 직접 두 왕을 처단하고, 그들이 타던 낙타의 목에서 초승달 모양의 장식을 취합니다.

18절,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더냐”: ‘채석장, 산당’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다볼”은 이스르엘 골짜기 주변에 있는 해발 579m에 이르는 산으로 갈릴리 호수의 남쪽 끝에서 서남쪽으로 19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세바와 살문나가 기드온의 형제들을 언제 다볼에서 죽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한편 “어떤 사람들이더냐”라는 한글성경의 번역은 히브리 성경을 문맥에 비추어 의역한 것입니다. 본 절의 직역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디에 있느냐?”라는 뜻입니다. 한글 성경은 이러한 기드온의 질문에 대해서 세바와 살문나가 마치 환심을 사거나 아첨하는 말투로 “너와 같아서 하나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라고 대답한 것을 고려하여 문맥상 의역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어성경 중에서 RSV는 의역하지 않고 원문을 직역하여 “그 사람들이 어디에 있느냐(where are the me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18절,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기드온의 추궁성 질문에 대하여 세바와 살문나의 대답은 동문서답과 같은 엉뚱한 대답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죽인 시체가 어디 있는지를 대답하지 않고, 기드온의 형제들이 모두 왕자 같았다고 대답함으로 죽음의 위기 앞에서 환심을 사려는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하지만 기드온이 질문한 의도는 과거에 그들이 행한 잘못을 끄집어 내어 그들에게 임할 징벌이 정당함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19절에 그들이 자신의 친형제들임을 밝힘으로 세바와 살문나의 처형의 단순히 적장에 대한 처단의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제를 위한 복수의 의도도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20절, “맏아들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기드온의 아들 여델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본 절에 나오는 “소년”이라는 말에 근거합니다. “소년”이 어린아이에서 청년까지를 포함하는 말이지만, “아직 어려서 두려워하였다”라는 말을 볼 때에 청년으로 보기에는 힘들며, 기드온의 300용사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그러므로 아직 전쟁터에서 칼을 빼서 사람을 죽일 만한 힘과 용기도 부족한 청소년이나 어린 소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린 소년을 전쟁터에 데리고 다닐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기는데, 고대 전쟁에서는 아버지가 어린 아이들을 비교적 승리의 확신이 있는 전쟁터에 데리고 다니거나, 포로나 처형할 사람들의 처단을 맡기는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21절,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이 문장을 히브리 성경을 따라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의(여델) 힘이 그 사람과 같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사람에 따라 힘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바와 살문나는 기드온의 아들 여델이 나이나 힘이 부족해서 당연히 자신들을 죽일 수 없기 때문에 기드온이 직접 나서서 죽여 달라고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어린 소년 여델은 자신들을 죽일 자격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세바와 살문나의 입장에서 보면 어린 소년의 손에 의해 처형당하는 것은 적장으로서 매우 굴욕적이며 수치감을 주는 것이므로 기드온에게 자신들을 죽여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21절, “초승달 장식들”: “초승달”로 번역된 히브리어 “핫사하로님”은 문매에 따라 ‘초승달’ 또는 ‘반달’을 뜻합니다. 기드온이 취한 초승달 모양의 장식품은 낙타의 몸에 걸려 있었지만, 고대 근동 지방에서 사람의 목에도 매달고 다니는 장식으로 ‘달의 신’의 보호를 기원하는 이교도의 우상 숭배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종의 부족입니다. 한편 기드온이 이런 이방 민족의 부적을 취해 가진 것은 신 7:25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어기는 행위였습니다. 사사로 부름 받은 기드온이지만 눈앞에 보이는 이방 신물 앞에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만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전쟁은 인간성의 바닥을 볼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49년에 “전투의 범위 밖에 있는 자와 전투행위에 직접 참가하지 않은 자는 보호를 받아야 하고 존중되어야 하며, 인도적인 대우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제네바 협약이 체결되기 전까지 전쟁 중에 발생하는 비인격적인 일들에 대해서 인류는 수수방관만 했습니다. 이러한 조약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은 전쟁터에서 인격적 대우나 인권을 기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만큼 전쟁은 사람의 마음을 비인간적인 마음으로 바꾸어 놓는 부당한 물리적, 영적 파워가 늘 존재하는 공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친 기드온이 패잔병들을 계속 추격하여 섬멸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기뻐하며 승전가를 부를 수 있는 내용인데 본문을 읽어 내려가면서 ‘어? 이래도 되나?’ 싶은 내용들이 언뜻언뜻 보이는 것이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전쟁에서 승전하는 자신감이 혹시 치외법권을 주장하며 겸손의 태도를 잃어버리게 한 것은 아닌가? 라는 불안감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불안감을 반영해서 그런지 오늘 본문의 상황을 설명하는 생명의 삶은 그 제목을 “복수와 권력욕을 넘지 못한 불완전한 지도자”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군의 두 왕인 세바와 살문나를 처단한 것에 대해서는 전쟁의 상황을 고려하거나,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와 패배한 나라의 경우를 볼 때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응징한 것이나, 사사로서 이방 민족의 우상 숭배의 신물을 취한 것에 대해서는 의아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생명의 삶에서는 이런 제목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삿 8:6-9에서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이 기드온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여 기드온은 미디안 연합군을 섬멸하고 돌아올 때에 응징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학자들은 이들이 요단 동편에 거주하는 이방 민족이기 보다는 갓 지파의 지경에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분의 명령에 의해 수행되고 있는 성전(聖戰)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같은 이스라엘 형제로서 당연히 도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기드온의 요청을 거절하고 맙니다. 아마도 그들은 기드온 군대의 전력으로는 미디안 군대를 섬멸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훗날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같은 동족의 어려움을 외면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의 외면함은 결국 하나님의 성전을 외면한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외면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전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응징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심판의 선언은 오직 하나님의 권한이요, 사람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응징의 권한 문제에 관한 말씀이 사사기 8:7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숙곳과 브누엘의 응징이 ‘하나님의 결정이었는가?’ 아니면 ‘기드온의 결정이었는가?’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표현은 앞에 나와 있는 세마와 살문나를 기드온의 손에 넘겨주는 부분은 분명하게 여호와의 행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뒷부분의 행동인 숙곳의 방백들에게 응징을 선언하는 부분은 기드온 자신의 의지의 결정과 판단으로 성경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라’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또한 원문에 “찢으리라”라는 동사의 주어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기드온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결국 숙곳을 응징하는 판단이 하나님의 결정이 아니라, 기드온의 의지적 결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서로 제 각각 흩어진 지파로서 흩어진 나라가 아니라, 하나의 민족이기에 당시의 사사 기드온이 징벌을 결정하고 행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요청을 거절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전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분노할 수 있고, 그리고 분노의 결과로 응징할 수 있겠지만, 자기 동족을 위해서 이스라엘의 사사로 미디안과 싸웠던 그가 결국 자기 동족을 해치는 사람으로 되어 버렸다는 점은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시편 62:12에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신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로마서 2:6에도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갚으신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숙곳 사람도, 브누엘 사람도, 기드온과의 전투에서 패자로 전락한 미디안 연합군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도 모두 그들이 행한 것을 따라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적용되는 것은 사사인 기드온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기드온 또한 그가 행한 대로 보응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오늘 본문의 사건이 지나간 후에 기록된 사사기의 말씀을 읽다 보면 기드온이 취하게 되는 행동 속에서 예전의 그가 지녔던 겸손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기드온의 입으로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삿 8:23)라고 여전히 말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의 행동에서 겸손은 사라져 버리고, 재물에 대한 욕심과 많은 부인을 거느리는 권세욕이 가득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항상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가 지니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변질되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정체성에 의해서 행동과 능력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강도가 나타난 가게를 목격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일반인이라면 발을 동동 구르거나 경찰에 신고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경찰의 신분이라면 그는 경찰의 힘을 가지고 그 강도를 제압하거나 막으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일반인의 행동과 경찰의 행동이 다른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분, 즉 정체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 주지사의 권한이 있다면 그가 행할 수 있는 권한은 주에 속한 주민의 안정을 책임지는 조치들을 취하게 되고, 생활 편의를 위한 사회 간접 시설의 확충과 계획에 사인을 하게 되고 의무에 따른 행동을 하게 되는 것도 그가 가지고 있는 신분, 정체성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면 그리스도께서 행한 모습을 따라 조치를 취하게 되고,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겸손도 사라지고, 은혜와 긍휼도 사라지고, 감사와 헌신도 사라지며, 구원이나 복음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 세상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리스도인은 나의 의지, 나의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항상 근거가 되시는 분은 주님이요, 그 분이 남기신 말씀입니다. 이것을 망각하여 내 의지, 내 생각이 자꾸 드러나면 기드온이 걸었던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는 행보를 우리도 피할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베드로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라는 말씀을 기억하여 가까이 두고 그리스도인의 모습, 성도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우리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감찰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셨는데 죄의 유혹에 흔들리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한 유혹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내 뜻과 의지로 행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을 수 있게 하옵소서. 작은 성공이나 승리에 교만하지 않게 하시며, 깊은 고통과 어려움에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게 하옵소서. 삶의 변화무쌍함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하시며 언제나 변함없는 주님을 의지하오게 하옵소서. 주님! 간구하오니 이 시간에도 주의 풍성한 인자와 은혜와 사랑이 필요한 주의 백성들을 지켜 주시고 주의 평안의 팔로 안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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