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4/13/2021 화요일 [출애굽기 4:18-23]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4-13 09:26
조회
737
[본문: 출애굽기 4:18-23]
18.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19.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본문이해]
(18-20, 모세가 이드로의 허락을 받은 후 애굽으로 출발함)
모세가 애굽으로 가기 위해 장인 이드로에게 허락을 받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를 죽이려던 자들이 다 죽었으니 애굽으로 가라고 지시하십니다. 모세는 가족을 나귀에 태우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애굽으로 출발합니다.

18절,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 애굽으로 귀향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모세가 애굽으로 귀향하는 이유는 형제들이 잘 있는지 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소명에 따라 애굽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그 사명을 순종하여 이행하기 위해 떠난다는 말을 장인에게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장인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함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만, 실제적인 귀향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장인에게 형제를 보기 위함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밝히는 이유는 하직을 고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이 주신 출애굽 약속의 성취와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자신의 소명에 대해서 확신이 없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결국 “나로 가게 하소서”라고 간곡하게 장인에게 부탁하므로 자신의 의지를 밝히고 있으니 형제를 보기 위해서거 불확실 가운데의 핑게이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대한 순종이든지 결국 모세가 택한 것은 애굽에 가기로 작정한 것이니 모세의 행동과 결정에 담긴 도의적인 책임과 신앙적인 순종을 볼 수 있습니다.

19절,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하나님은 또 다시 모세에게 애굽으로 돌아가야 함을 강조하며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본절에는 하나님의 세심한 돌보심과 자상한 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비록 미디안을 떠날 결심을 굳혔지만 예전에 애굽 사람을 살해했었던 일과 그로 인해 자신의 생명을 찾던 바로의 추적 때문에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의 형편을 아시가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안심하고 돌아가라고 알려 주시므로 모세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으며, 걱정거리를 제거해 주신 것입니다.

한편 모세의 목숨을 노리던 자는 투트모스 3세 입니다. 그는 아버지 투트모스 2세와 궁녀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입니다. 아버지 투트모스 2세의 정실 부인은 모세를 양자로 삼았던 하셉수트( Hatshepsut) 입니다. 따라서 투트모스 3세와 모세는 촌수 상으로 형제 관계이지만 정실 부인의 양자 모세와 후궁의 아들 투트모스 3세 사이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고 치열한 경쟁이 있을 것이라 추정되므로 모세가 살인죄를 저질렀을 때에 모세를 추적하여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투트모스 3세는 BC1500년경에 즉위해서 BC1450년경에 죽은 것을 추정됩니다. 성경의 기록들을 근거로 하면 모세가 귀환할 당시는 BC1447년에 해당됩니다.

20절, ‘하나님의 지팡이”: 이 문구의 히브리 원문을 직역하면 “그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하나님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즉 이 지팡이가 과거에는 모세가 양을 치던 지팡이로 모세의 소유였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팡이로 뱀을 만드셨던 지팡이로 이제는 더 이상 양을 칠 때에 사용하는 목자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담겨진 하나님의 소유물이기에 애굽으로 가는 모세는 이제 일개 목자의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을 갖고 권위를 대신하여 말씀을 전하는 자의 신분으로 애굽으로 가는 것임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21-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애굽에 가서 할 일의 대략을 말씀해 주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먼저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을 때에 행했던 표적들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표적에도 불구하고 바로가 마음이 강팍해져서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바로의 장자를 죽일 것이라고 경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1절,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우리말 성경이 표현인 “완악하게 하다” 또는 “강팍하게 하다”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아핫제크’로 ‘강하게 하다, 잡다, 견고하다’라는 표현으로 구약에 사용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주어로 나오고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강제적으로 강팍하게 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단어의 구약적 용례를 따라 번역과 해석의 적용과 이해가 필요한 단어입니다. 특히 출애굽기에서 “완악하게 하다”라는 말이 바로의 마음에 대해 사용될 때에는 “바로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강팍하고 완악하게 했다”라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용례들이 있습니다. 예로 출 8:15에서 개구리 재앙 때에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라는 말씀과 출 9:7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니라”라는 구절들이 그 예가 됩니다. 즉 바로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강팍하게 했다는 표현입니다.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고려할 때에 사람의 마음을 조정하시어 강팍하게 하는 것이 맞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의 악한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거나(롬 1:26),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멸시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 그대로 내버려 두시어 진노의 심판에 이르게 하시거나(롬 1:28, 2:4-5), 성령을 거부하며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 ‘주의 성신’을 거두시는 분(시 51:11)이지 인간의 자유의지를 빼앗아 죄를 짓도록 조종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했다는 표현에 대해서 하나님의 강제성 보다는 바로의 스스로 택한 강팍한 마음의 결정을 ‘그대로 두셨다’라는 해석이 하나님의 성품에 맞는 해석이라 생각됩니다.

22절, “내 장자”: 고대 근동 지방에서 장자의 권한은 두 배의 기업 상속을 받고 가족의 대표자가 되어 식탁에서 상석에 앉고, 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 큰 특혜를 누렸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장자라고 일컫는 하나님의 선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나타내며, 장자에게 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에게 최대한의 자비와 사랑, 축복으로 대하신다는 하나님의 보증이 표현된 말입니다.

[묵상 및 적용]
모세는 하나님께 대한 도리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도리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사명을 받은 모세는 애굽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주신 사명을 받은 후 곧바로 장인 이드로에게 가서 애굽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고대 근동의 남자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부족, 혹은 가족의 생산력과 군사력 그 자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부족이나 사는 지역을 떠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족장이나 가족의 최고 권위자인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모세가 맨몸으로 애굽으로부터 나와서 미디안에 왔을 때 자신을 받아 주고, 또한 딸을 아래로 주고, 40년 동안이나 함께 살았던 장인 이드로에게 미디안을 떠나겠다고 말하는 것은 보이는 것처럼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40년의 세월 동안 미디안 땅에 닦아 놓았던 모든 삶의 기반을 두고 떠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사명이 막중한 일이었으므로 장인 이드로에게 “나로 가게 하소서”라고 간절하게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모세의 태도를 보고 우리들의 태도 속에 혹시 놓치기 쉬운 것들이 있지 않을까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명’이라는 중대한 비젼과 소명을 제일 앞에 두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무시하거나, 지나치거나, 간과해 버리는 실수를 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명령을 제 1순위로 두는 것은 존경할만하며, 격려와 후원, 기도의 동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명이나 비젼 외에도 교회 생활과 성도의 삶에는 교회의 질서와 성도의 관계를 위해서 2순위, 3순위, 4순위 등등으로 필요한 것들로 나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제1순위란 우선순위이므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모세의 태도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모세는 1순위를 하기 전에 2순위, 3순위 등등과 같은 것들을 먼저 챙긴 후에 1순위인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위해 애굽으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비젼을 잘 감당해 내고 완수하기 위해서 어쩌면 2순위, 3순위, 4순위에 있는 것들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걱정과 염려를 더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전장에 나서는 장수가 가족부터 챙기면 어떻게 장수의 결심과 각오가 ‘일사각오’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가족이 안전한 곳에 있고 전쟁의 피해가 닿지 않는 곳에 있다면 장수는 죽어도 여한이 없지 않을까요? 본문에서 모세가 그런 마음으로 가족을 살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40년 동안 자신의 든든한 장인이 되어주고, 조언자가 되 주었던 장인에게 최선을 다해서 부탁을 하고, 하직 인사를 드리는 점은 무언가 깨닫게 해 주는 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떠나는 것"을 요구합니다. 모세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사명의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먼저 가족이나 친척이나 자신의 살아온 환경들로 부터 “먼저 떠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났으며, 야곱은 밧단아람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모세는 미디안 광야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떠나기 위해서 자신이 몸 담고 있었던 삶의 자리를 돌아 보며,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은 배려이며, 사랑이며, 최소한의 사람된 도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본문에는 18절에 짧게 표현되어 있지만, 이 짧은 표현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도리를 다하기 위해 사람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모세의 모습이 마음에 작은 묵상을 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한다고 하면서 혹시 우리가 놓친 것은 없는지, 잊어 버리거나 잃어 버린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나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감당할지를 주께 물으면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준비된 자에게,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잘 정리하여 거룩히 구별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손에 들리워준 “하나님의 지팡이”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오늘 사명을 향해 나아가는 모세의 태도를 잠시 묵상하면서 우리의 삶의 주변을 돌아 보면 어떨까요? 내 가족, 직장, 친구, 이웃, 그리고 나의 삶의 주변을 잘 돌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비젼을 향해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주도면밀하게, 때로는 당당하게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에수님! 이 부족한 자에게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과 뜻을 알려 주시고, 귀한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지팡이를 우리 손에 들려 주시옵소서. 인애와 자비가 풍성하신 주님! 주의 거룩하신 성품을 따라 우리 가족, 친구, 이웃 중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영혼들을 우리로 하여금 만나게 하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질병으로 힘들어 하는 영혼, 어려움과 고난 속에 힘들어 하는 영혼들이 하나님을 만나 회복과 치유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광야를 지날 때에 결코 우리 손을 놓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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