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 묵상 2/19/2021 금요일 [본문: 마태복음 15장 1~20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2-19 09:16
조회
668

2. 19. 금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Broken Vessels(Amazing Grace)”: " target="_blank" rel="noopener">

[본문: 마태복음15:1-20]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본문이해]
(1-2절, 정결 의식 준수 문제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문제를 제기함)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장로들의 전통”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합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성문법) 외에도 생활 속에서 많은 것들을 덧붙여서 지키라고 전해져 내려오고, 지켜 왔는데 이것이 바로 “장로들의 전통(개역한글, 유전)”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장로들의 전통’은 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불문법이었으나 바래새인들은 성경보다도 더 큰 권위를 부여하곤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정결 의식입니다. 전통에 의하면 씻는 물의 양과 질, 물 붓는 방법,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 손의 자세 등등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부분들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은 것에 대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문제를 삼은 것입니다.

(3-9절, 예수님께서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오류와 외식을 책망하심)
문제 제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도리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는 것입니다(3절). 그들은 “인간의 전통”을 지키는 데 힘썼지만, 그 보다 훨씬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제5계명을 가지고 논리적 설명을 하십니다(4절).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부모를 섬겨야 할 의무가 있는 유대인들이 부모님을 섬겨야 할 어떤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바친 물건, 곧 ‘고르반(korban, 병행구절인 막 7:11에는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를 뜻하는 ‘도론’이라는 헬라어 단어 대신 히브리어 음역인 ‘고르반’이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고 있습니다)’이라고 선언하기만 하면 그것에서 나는 것으로 부모를 섬기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게서 포도밭이 있으면 거기서 나는 소출 중의 일부를 부모에게 드려 공경해야 하며, 이것이 제5계명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유대인들은 그 소출의 일부를 부모에게 드리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여, 고안해낸 방법이 이 포도밭은 ‘하나님께 받친 것, 곧 고르반’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포도밭은 하나님께 바쳐진 성물이기 때문에 그 소출로 부모를 섬기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5계명을 지키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유대인들의 행태를 주님이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편법이 생긴 이유는 어떤 것을 성전에 바치겠다고 맹세하면, 그것은 부모를 섬기는 것보다 우선한다고 가르쳤던 당시의 랍비들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하나님의 법을 교묘하게 악의적으로 왜곡시켜 버린 ‘고르반’ 제도는 당시에 ‘하나님께 바쳤다’라고 선언만 하면 되고, 실제로 그것을 실천할 의무는 없었다는 점에 더 큰 오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유대인들은 자기 소유의 밭을 전부 ‘하나님께 바쳤다’라고 선언한 후에 부모를 공경하지도 않으며, 동시에 하나님께 드리지도 않는 행태들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의 이기적인 탐욕과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의 야합으로 생겨난 고르반 제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제5계명이 사실상 무력화되어져 버린 것이 당시 유대교의 실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세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꾸짖으십니다(7절). 외식이란 무엇을 가장하고 꾸미는 것이며, 속의 진심은 감추고 겉으로 그럴 듯하게 가장하고 꾸미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사야 29:13의 말씀을 직역은 아니지만,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여 책망하십니다(8-9절). 당시의 타락한 종교의 실상을 책망하시며, 또한 당시의 유대교와 바리새적인 실천 사항들이 여러 가지 복잡한 의식과 엄격한 규율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그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많이 멀어져 있었음을 주께서 비판하신 것입니다.

(10-20절, 비유로 가르치시며, 외식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그 추종자들의 미래에 대해 경고하시고, 참 정결의 기준을 제시하심)
예수님께서는 정결의식이 외식으로 흐르는 것 보다는 ‘마음의 성결’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즉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느냐 않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성결케 하는 것이며, 외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것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인본주의가 될 수 있으므로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행한다는 마음과 그 마음이 담긴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먹는 음식이 인간의 영혼이나 인격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님에도, 먹는 문제에 지나치게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무가치하며, 도리어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적질, 거짓증거, 훼방’ 등과 같은 것들이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2절에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라는 표현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마음에 거치는 것이 되어 맹렬하게 화를 내며 비난하고, 강렬하게 반발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본 절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전하여 예수님의 도전적이고 강한 메시지로 인하여 당시 기득권자인 종교 지도자들에게 자극이 되어 예수님께 화가 미칠까 우려하여 말하는 표현입니다.

13절에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란 당시 유대인의 교리 가운데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에서 기원한 것 외에 인간의 생각에서 비롯된 인위적인 것들은 하나님의 기원이 아니라, 인간의 기원이므로 반드시 뿌리 뽑힐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묵상 및 적용]
주님이 오신지 1500년이 지나서 기독교는 ‘개혁’이라는 이름의 헌 가죽부대를 버리고 새 가죽부대로 바꾸는 변화의 물결이 휘몰아 쳤으니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의 정문에 붙인 사건이 그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15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께서 말씀하신 가르침과 초대교회의 정신들이 많이 왜곡되어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했던 시점에 하나님께서 헌신된 일꾼들을 통하여 직접 개입하셔서 움직이신 정결케 됨의 사건이 종교개혁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종교 개혁 이후 50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2021년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적용되어야 할 ‘개혁’은 무엇이 있을까요? 오늘의 본문을 묵상하면서 떠 올리게 된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세월이 흐르면서 퇴색되어져 가는 신앙의 순수함이나 정결함이 있을 것이며, 또한 유대인들처럼 전통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왜곡된 것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천년 전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과 ‘장로들의 전통’을 동일한 권위를 지닌 것으로 여겼으며, 심지어는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이나 ‘율법’ 위에 두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 보다 더 중요시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이 퇴색되어져서 사람이 만든 전통이나 제도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속이거나 멸망에 이르게 한다면, 이는 역사 속에서, 혹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상한 종교 단체와 사이비, 거짓 지도자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개혁’의 판단 기준이 된 것은 ‘성경, 하나님의 말씀’ 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생각하고 판단하여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하나님의 일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비추어 판단하지 않으면 전통이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사탄의 계략이나 유혹에 걸려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또한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함으로써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기준이 중요하다는 원칙 속에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본문에 언급된 ‘장로들의 전통’이 가르치고 있는 ‘고르반 제도’의 원래의 의미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이 문제를 가지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비판하고 책망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아무리 정당한 법이라도 법을 지키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문제 때문입니다. 법을 지키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악용하는 것을 ‘편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에 의해서 세워진 ‘고르반’ 제도의 편법이 왜곡과 비틀림의 단계를 지나서 악의적인 편법으로 사용되는 것은 ‘죄’라는 것을 주께서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과연 하나님의 율법에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 라는 질문도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십계명 10가지 가운데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할까요? 중요함의 우선 순위를 매길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덜 중요하다고 10번째 계명은 지키지 않아도 되고, 1번째 계명은 반드시 지켜야 하나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의 실천 강령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십계명은 1번째 계명부터 10번째 계명까지 모두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1번째를 지키기 위해서 10번째를 포기하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율법에 우열을 정하여 어는 것은 취하고 다른 것은 버려도 좋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고르반 제도를 악용하여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명목 하에 5계명의 부모를 공경하는 계명을 어기는 것은 편법이며, 악용이며, 결국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어느 것 하나라도 범하면 다 범하는 것이요,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분명하게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며, 부모도 공경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에는 우열을 정하거나, 우선순위를 정하여 지켜야 하는 것과 안 지켜도 될 것을 우리 사람의 방법으로 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 중에서 우리가 안 지켜야 할 것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오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이란 두 글자를 떠 올리면서 우리의 신앙이 모습 가운데 무엇은 지키면서 하고 있지만, 어떤 것은 지키지 않고 무시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말씀에 비추어 고쳐야 할 것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고쳐야 할 것들을 고치는 것, 그것이 ‘개혁’ 입니다.

오늘 2021년 2월의 19번째 날에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무엇을 새롭게 하고, 고쳐 나가야 할 것인지 살펴서 행동으로 옮기는 거룩한 결단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이 일에 가장 먼저 도우시는 절대 후원자가 되실 것입니다.

[기도]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예수님! 주의 말씀을 따르고 지켜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나의 모습과 생각과 삶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주의 뜻을 왜곡하고 내 마음대로 해석하여 지켰다고 만족한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과 빛이오니 말씀으로 나를 돌아보게 하옵소서. 말씀이 나를 일으켜 세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이 되게 하옵소서. 과거의 죄인 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죄 가운데서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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