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8/29/2021 주일 [사사기 11:1-11]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8-29 08:34
조회
321

8. 29. 주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내가 주인 삼은”: https://youtu.be/1Aefdv1j4jc

[본문: 사사기 11:1-11]
1.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2.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4.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5.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6.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7.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8.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9.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10.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11.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본문이해]
[1-3, 입다의 출신 배경과 인적 사항]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입니다. 길르앗의 아내도 역시 아들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들이 입다와 아버지의 유산을 함께 나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복 형제인 입다를 쫓아냅니다. 이에 입다는 형제들을 피해 돕 땅에 거주하였으며, 부랑자들이 돕 땅의 입다에게 모여들어 그를 추종하였습니다.

1절, “입다”: 이름의 뜻은 ‘(문을) 열다’, ‘(결박이나 사로잡힌 자를) 풀어 주다’라는 의미를 동사 “파타흐”라는 단어와 ‘여호와’를 의미하는 ‘예흐와”가 결합된 형태로 히브리어 발음은 “웨이프타흐”로서 직역하면 그 뜻은 ‘여호와께서 풀어 자유케 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1절, “기생”: 이 단어의 히브리어 “잇솨 조나”는 두 단어의 결합형으로서 “잇솨”는 ‘여자’를 의미하며, “조나”는 남자와 간통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자나”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결국 기생이란 ‘간통하는 여인, 행음하는 여인, 매춘부’를 의미하는 단어가 됩니다. 입다의 모친은 현숙한 여인아 아니라,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부정한 매춘부와 같은 여인이라 추정됩니다.

3절, “돕 땅에”: 길르앗 북쪽에 위치한 아람의 한 성의 이름으로 “돕”이라는 단어는 ‘좋은, 선한, 아름다운’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돕 땅은 물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진 애우 비옥한 지역이었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3절, “잡류가”: 이 단어의 히브리어 “아나쉼 레킴”의 직역은 ‘텅빈 자들, 공허한 자들’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목적이나 방향이 없이 그저 주어지는 대로 하루 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삿 9:4에서도 “아나쉼 레킴”이 사용되는데 그 때의 번역은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3절,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본문의 히브리어 직역은 “그들은 그와 더불어 나갑니다”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어에서 “나간다”라는 의미의 “야차”라는 동사는 ‘나가다, 진행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전쟁하기 위해) 출전하다’의 의미도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활의 기반이 없고 사회로부터 배척을 받았던 잡류들은 용맹하고 군사적인 역량을 갖추 입다에게 모여들었으며, 이들은 인근 지역을 다니면서 약탈을 하건, 용병처럼 생활하였을 것입니다. 길르앗의 장로들이 암몬과의 임박한 전쟁을 앞두고 찾아 온 것을 고려한다면, 입다와 잡류들은 동족 이스라엘을 못살게 굴었던 인근 지역의 이방 민족들을 공격하거나, 약탈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암몬의 공격에 앞서 입다에게 찾아와서 구해주기를 요청하고, 길르앗의 지도자로 삼겠다고 약속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4-11, 암몬의 공격이 임박하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지도자로 추대함]
암몬 자손들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쳐들어 왔습니다. 그러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기 위해 돕 땅으로 찾아와서 암몬과의 전쟁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자신들의 군대 장관이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입다는 예전에 자신을 쫓아낼 때는 언제는 어려움을 당하니까 어쩔 수 없이 찾아 오느냐고 하며 요청을 거부합니다. 입다의 감정이 좋지 않음을 보고 길르앗 장로들이 만약 입다가 함께 가서 싸워 주면 길르앗의 최고 지도자로 추대하겠다고 제의합니다. 입다는 길르앗 장로들에게 전쟁에서 승리하면 그들의 제의를 받아 들여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고 다짐하였고, 그들은 여호와를 증인으로 약속을 이행할 것을 다짐합니다. 결국 입다는 장로들의 제의를 수락하여 길르앗 땅으로 돌아갔고, 길르앗 사람들이 입다를 행정권과 군사 지휘권을 위임받은 최고 치도자로 추대합니다. 입다가 길르앗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서 취임 신고식을 갖습니다.

6절, “장관”: 이 단어의 히브리어 “카친”은 군사적인 용어로서 ‘전쟁의 지휘관, 작전의 책임자’를 의미합니다. 입다가 쫓겨나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길르앗 장로들이 찾아와서 ‘군대 장관’으로 세우려는 것을 볼 때 입다의 군사적인 능력과 용맹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7절,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본문에서는 입다를 쫓아낸 주체를 장로들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사사기에는 2절에 입다를 쫓아낸 자들은 입다의 이복 형제들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길르앗의 장로들이라고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입다가 쫓아낸 주체로 장로들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겅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유추할 만한 사건은 입다의 형제들이 그를 쫓아낼 때 갖은 위협과 협박, 또는 무력이 동원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입다가 술술 쫓겨난 것이 아니라 저항을 했다면, 성읍에 큰 소란이 있었을 것이며, 결국 길르앗의 장로들이 자신들을 물리적 힘을 보태거나,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다는 단지 이복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쫒겨난 것이 아니라, 길르앗 성읍 전체 주민들의 미움을 받아 쫓겨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8절, “우리와 함께 가서”: 본문의 “함께 가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임마누” 입니다. 자기 동족에게 버림받은 입다가 본문에서는 길르앗 장로들이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므로 입다의 마음에 쌓여 있던 적대감과 증오심을 줄여 주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참고로 마 1:23에서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말과 하나님을 뜻하는 ‘엘’이라는 말이 합성된 로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9절,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한글성경의 뉘앙스는 질문형의 의문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히브리 성경의 본문을 직역하면 “내가 너희들을 위해 머리가 될 것이다”라는 주어의 단호한 의지가 들어 있으며, 영어성경 RSV는 “I will be your head”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입다는 여호와 하나님이 암몬 자손을 자신의 손에 붙이신다면, 기꺼이 길르앗의 머리가 되겠다고 확실한 의지를 갖고 대답한 것입니다.

11절,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장관”(히, 카친)은 군사적 지휘관이나 사령관을 의미하며, “머리”(히, 로쉬)는 정치적인 지도자나 행정적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즉 사사 입다는 군사적인 면, 정치적인 면, 그리고 사사로서의 신앙적인 면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사사기의 저자는 입다의 행적을 중심으로 하여 이스라엘의 범죄의 악순환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사사기 10:6-12:7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서는 길르앗의 서자 출신인 입다가 그 지역의 최고 군대 장관과 지도자로 추대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본문을 통하여 겉으로는 세상 모든 일이 우연 같고 인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입다가 사사가 되는 과정에서 특이한 점은 입다는 다른 사사들 처럼 소명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암몬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한 길르앗 장로들의 원군 요청으로 길르앗의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가 됨으로써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인 “소명”에서 출발하지 않았다고 사사가 아닌 것이 아니라, 사사기 11:29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라고 말하면서 구원자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며, 또한 사사기 12:7에서 “입다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육 년이라”라고 말하며 성경이 분명하게 그의 사사로서의 직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입다가 기생의 자식이라는 사실은 삿 11:1에서 ‘큰 용사’라고 지칭하는 것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갖기 위운 출신 배경입니다. 즉 세상이 인정하는 외양상으로는 특별한 점이 없으며, 오히려 비천하고 불결한 출신 성분이라고 도리어 깍아 내릴만한 요소를 지난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형제들의 배척을 받으며 추방당한 자요, 도피처에서 잡류들과 어울리며 함께 거하는 신세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기준에서 입다에게 ‘큰 용사’라는 지칭하는 것은 ‘잘 맞지 않는 옷’이라는 선입견을 줄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입다의 출신 배경을 묘사하면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요? 아마도 “사람이 낮춘 자를 하나님은 높이신다”라는 생각이 아닐까요?

세상의 가치관은 출생과 신분, 가문과 환경, 교육과 학벌 등등으로 그 사람의 운명이나 성공 여부를 판단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가치관이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점을 찍어 놓고는 거들떠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의 기준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그 인생은 곤두박질할 것이라고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런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잠언 16:9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기준, 세상의 기준은 출신성분, 학력, 가문이 배경, 혈연, 지연 등등의 여러 가지 조건들을 통해서 앞 길을 계획하고, 그 계획들이 틀림없이 이루어지고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오직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삼상 2:7에도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출생이나 환경이나 교육이나, 세상적 가치관들이 어떤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람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의하여 각 사람의 나아갈 삶이 각양각색으로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서 입다를 사사로 하나님께서 들어 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입다를 ‘큰 용사’로 지칭하는 것은 더 이상 ‘불편한 옷’도 아니요, ‘어울리지 않는 옷’도 아니요, 그에게 ‘아주 잘 맞는 옷’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입다는 ‘큰 용사’로 불리울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입다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어렵지 않게 입다에 대해서 발견할 수 있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길르앗의 정실 부인의 아들들이 장성하여 이복 형제인 입다를 향해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를 집에서 쫓아 냅니다. 즉 입다는 배 다른 자식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유산을 받지도 못할 뿐더러, 집 안에서 살 자격 조차 없는 자로 낙인찍혀 쫓겨난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생각하면 원통하고 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에서 피 눈물이 나는 일이며,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인하여 큰 일이 터질 만한 상황입니다. 어쩌면 입다는 아비멜렉의 경우처럼 자신을 홀대한 이복 형제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암몬 족속과의 임박한 전쟁을 앞 두고 입다를 찾은 장로들의 요청을 고려해 본다면 입다는 전쟁터에 나설 수 있을 만큰 이름이 어느 정도 난 용사로 추정되기 때문에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홀대한 이복 형제들을 죽이는 일이 어렵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입다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그는 도망했습니다.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같이 대적하여 분노하고 싸우기 보다는 분쟁을 피하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선택은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다”라는 점입니다. 만일 입다가 자기를 추방한 이복 형제들이나 길르앗 장로들을 향해 원한을 품고 악을 악으로 갚았다면, 성경은 또 다시 아비멜렉과 같은 뼈아픈 골육 상쟁의 소용돌이를 기록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입다는 복수의 화신으로 묘사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입다는 부당한 대우를 당하면서도 그것을 묵묵히 감수했고, 견디었으며, 오히려 자기를 추방한 자들이 도움을 청했을 때에 비록 길르앗의 장관과 지도자의 조건이 있었지만, 도움을 요청을 받아 들입니다.

성경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 12:21). 악한 일을 당하고도 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은 더욱 어렵습니다.

한 문화 인류학자는 “인간은 환경이 동물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환경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에 순응하며 적응하는 것과 환경을 이유로 운명론적인 삶을 사는 것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믿음의 성도는 결코 환경을 이유로 운명론적인 삶을 사는 자가 아닙니다. 만일 입다가 기생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집에서 쫓겨났다는 이유 때문에, 형제들로 부터 배척당했다는 이유 때문에, 성읍의 장로들로 부터 쫓겨남을 당했다는 이유 때문에 운명론자가 되었다면 그는 성경의 표현처럼 ‘큰 용사’가 결코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독하며 분노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결국 선으로 순응하였으며, 사람이 낮춘 환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편에 붙들림바 되는 것이 승리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던 입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입다가 지닌 좋은 점을 취할 수 있는 묵상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독한 형편에 처하더라고 믿음을 지키며 환경과 상황을 극복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믿음으로 인내하며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극복해 가는 성도를 반드시 높이실 것입니다.

[기도]
낮은 자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높이시는 하나님! 이 비천하고 낮고, 연약한 자를 하나님의 나라와 주의 뜻을 위해 사용하여 주옵소서.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 놓고 주 앞에 나가게 하옵소서.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 놓고 ‘주님만 사랑합니다’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이 거친 세상에서 풍랑이는 바다와 같은 세속의 가치관 속에서 악을 선으로 이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되게 하옵소서. 불평과 분노와 운명론적인 푸념으로 세상을 바라 보고 인생을 바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신 주님의 눈으로 인생과 세상, 모든 환경과 고통과 환란을 바라 보게 하옵소서.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볼 때에 참 승리가 있음을 믿사오며, 내 영혼이 반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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