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8/24/2021 화요일 [사사기 9:16-25]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8-24 09:06
조회
303

8. 24. 화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나의 영혼이 잠잠히(오직 주만이)”: https://youtu.be/Z_Q0vq1huNM

[본문: 사사기 9:16-25]
16.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의 손이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17.우리 아버지가 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너희를 위하여 싸워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냈거늘
18.너희가 오늘 일어나 우리 아버지의 집을 쳐서 그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이고 그의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이 너희 형제가 된다고 그를 세워 세겜 사람들 위에 왕으로 삼았도다
19.만일 너희가 오늘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면 너희가 아비멜렉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요 아비멜렉도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려니와
20.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21.요담이 그의 형제 아비멜렉 앞에서 도망하여 피해서 브엘로 가서 거기에 거주하니라
22.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23.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24.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25.세겜 사람들이 산들의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다 강탈하게 하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

[본문이해]
[16-21, 요담이 세겜 사람들의 악행을 책망하고 저주를 예언함]
요담이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는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것인지, 또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을 선대하는 것인지 따져 묻습니다. 요담이 자기 아버지 여룹바알 기드온이 미디안의 손에서 세겜 사람들을 구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이 그의 아들 칠십 인을 모두 죽이고 몰락한 것을 비난하고, 단순히 아비멜렉과의 혈연과 지연 관계 때문에 왕으로 삼은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하며 책망합니다. 세겜 사람들이 의롭게 대한 것이라면 아비멜렉과 더불어 기뻐할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서로 멸망케 함으로 망할 것이라고 저주를 예언합니다. 요담은 세겜 사람들에게 선언한 후에 아비멜렉을 두려워하여 브엘로 도망합니다.

18절, “우리 아버지의 집을 쳐서 그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이고…왕으로 삼았도다”: 18절에서 요담은 세겜 사람들 모두에게 아비멜렉이 기드온의 아들 71명 중에서 자신과 숨은 요담을 제외하고 69명을 죽인 살인 사건의 책임을 지우고 있습니다. 요담은 세겜 사람들 모두가 직접적으로 살인에 동조하지는 않았지만(5절), 반역자 아비멜렉을 왕으로 추대하기 원하고 그에게 은 70개를 줌으로 살인을 도왔다고(4절) 규탄하며 살인사건의 공조자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19절, “너희가 아비멜렉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요”: 본문에 사용된 “기뻐하다”라는 말의 히브리어 “사마흐”는 13절에서 요담의 우화에서 사용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이라는 표현의 “기쁘게 하다”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영혼과 마음이 자원하여 즐거워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히브리 사람들이 맛좋은 포도주를 마실 때 느끼는 기쁜 감정, 혹은 행복한 순간에 느끼는 감정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절, “세겜 사람과 밀로의 집”: “세겜 사람”에서 “사람”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빠알레”는 원래 ‘사람, 주인’이란 뜻으로 ‘세겜의 거주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 말은 이중적 의미로 언어유희(Word play)적 용법으로 우상 ‘바알’을 가리키는 뉘앙스로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즉 본장에서 ‘세겜’ 사람들을 나타내는 표현들에 거의 모두 “빠알레”라는 단어를 사용하므로 가나안 우상 ‘바알’의 이름을 사용하므로 세겜이 가나안의 우상 바알을 섬기는 중심지였다는 것을 더 강조하기 위헤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보입니다. 즉 세겜 땅의 주민들은 바알을 섬기는 땅에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밀로”는 ‘가득하다, 채우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유래된 말로 그 뜻은 ‘매립지, 요새’란 뜻을 갖고 있으므로 아마도 세겜 성읍과 유사한 요새화된 성읍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혹자는 성읍이 아니라, ‘망대’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20절, “불이 나와서…사를 것이요”: 본절의 의미는 세겜 사람들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대접하지 못한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결국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람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다툼이 일어날 것이 확실하다는 지적입니다.

[22-25, 아비멜렉에 대한 세겜 사람들의 배반]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삼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니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이 기드온의 아들들을 죽인 죄를 아비멜렉과 그 범죄에 동조한 세겜 사람들에게 갚으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대항하여 사람을 매복시킨 후에 산길로 통행하는 자를 강탈하게 하였으며, 세겜 사람들의 배반 소식이 아비멜렉에게 전해집니다.

23절,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본문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악한 영’을 보냈다는 언급때문에 이해하기 난해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특히 본문의 ‘보냈다”라는 동사는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어 보내실 때 종종 사용되는 단어로서 세겜 사람들로 하여금 아비멜렉을 배반하게 하는 악한 영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음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악한 영’은 사단의 수하로 표현되는 용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악한 영을 파견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더욱 난해한 구절이 됩니다. 난해한 구절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에 입각하여 이해하고자 한다면, 선하신 하나님이 악한 영을 파견하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그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직접적으로 악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세겜 사람들과 형제를 살해하여 스스로 왕이 된 아비멜렉 사이에 악한 신이 역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셨다는 ‘방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이분법적 세계관을 뛰어 넘습니다. 즉 선한 신과 악한 신, 광명과 흑암, 생명과 죽음 등등의 대결 구도 안에서 하나님과 사단을 적대 관계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 이방 종교의 이분법적 신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은 선과 악을 포함하여 이 세상과 온 우주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아시는 유일한 신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하나님으 아비멜렉과 불의한 세겜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요담의 우화와 선언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이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23절의 난해한 구절의 이해를 돕고자 이후에 등장하는 24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악한 영을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에게 허락하신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25절,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본문의 “엿보게 하다”의 히브리어 “와야시무”는 ‘놓다, 두다’라는 의미로 본절의 직역하면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대항하도록 두고’라는 의미입니다. 즉 세겜 사람들이 산에 매복하는 사람을 둔 목적은 아비멜렉을 해치기 위해서이며, 결국 세겜 사람들은 그들 자신들이 왕으로 세운 자를 배반하여 정변을 일으키려 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묵상 및 적용]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마음에 남는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22절,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라는 구절입니다.

아비멜렉이 정권을 잡을 당시만 해도 거칠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미래의 탄탄대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그의 형제 69명을 한 자리에서 죽이고 손쉽게 왕좌를 차지했으며 그의 앞길을 감히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형통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본문은 아비멜렉에 대한 세겜 사람들의 배반을 기록하면서 이 반란은 아비멜렉이 정권을 잡은 지 3년 만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아비멜렉의 왕으로서의 형통(?)은 3년 만에 끝이 난 것입니다. 그가 왕위에 오른지 3년 만에 거칠 것이 없었던 세도와 권세가 자신의 지지 기반이었던 세겜 사람들의 배신으로 인해 결국은 끝이 나고 맙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이것은 악인은 일시적으로 형통할 수는 있으나 그 형통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악인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어떤 것도 – 환란, 고통, 고난, 어려움, 질병, 핍박 -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성경은 악인의 형통이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에 대해 반역하여 스스로 왕이 되었다가 죽임을 당한 다윗의 아들 압살롬 이야기, 다윗의 씨를 다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아달랴, 유대인을 몰살하려다 도리어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간 페르시아의 하만의 이야기 등등을 통해서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 역사 속에서도 동일한 증거들을 충분히 찾을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는 권력으로 국민들을 억압하고 많은 피를 흘렸던 정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통치자와 정권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 당시에는 막강한 권력과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했겠지만 그 권세들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물론 안타까운 것은 악인들이 득세하는 동안 박해를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 거룩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 눈물과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거룩한 성도의 생이 이 땅에서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몇 년, 아니 수십년의 고통과 아픔, 박해와 순교의 시간들을 겪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찾아 가셔서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안아 주시며 함께 동행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를 믿는 자들이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자들이 되게 하시며, 빛의 따스한 온기를 경험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함을 볼 때 불평하며, 하나님의 동행을 의심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며 잠잠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시편 62: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이어지는 시편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내하며 기다리고,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기다릴 수 있고,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근거는 세상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욥기 12:23에 하나님께서는 “민족들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민족들을 널리 퍼지게도 하시고 다시 끌려가게도 하시는 분”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인간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문제들은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해서 진행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스스로의 선택이나 우연에 의해서 세상 역사가 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일이 인간의 선택에 의해서 혹은 우연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득세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악한 세력들이 득세하여 세상을 정복하는 것 같고,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전염병 같은 질병이나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하나님 보다 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마태복음 10:28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떤 것 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다”라는 말의 히브리어 뉘앙스는 “경외하다, 경배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십시오. 참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와 보호,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 가운데 사는 사람입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잠언 23;17) 그리하면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셨으니”(열왕기하 17:39)라고 말씀하신 말씀의 능력이 우리의 연약한 삶을 강하게 이끌어 가길 소원합니다. 경외하는 자의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악인의 형통함에 때때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악인의 득세에 피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벌어지는 이 세상 입니다. 불의함과 죄악을 단번에 심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천재지변으로 어려운 상황 가운데 빠진 주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총과 칼로 무장하여 주의 백성들을 억압하는 세력들을 물리쳐 주옵소서.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두려움이 몰려 올 때에, 악인의 권세와 사단의 공격이 심할 때에 오직 주님만이 나의 반석이요, 산성이요, 구원하시니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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