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8/4/2021 수요일 [사사기 1장 11-21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8-04 08:58
조회
646

8. 4. 수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일라이 예수아/약할때 강함 되시네”:

[본문: 사사기 1:11-21]
11.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주민들을 쳤으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2.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3.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4.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5.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16.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
17.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18.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19.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20.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21.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본문이해]
[11-15, 유다 지파 갈렙의 드빌 땅 정복]
갈렙이 드빌 땅을 취하는 자에게 자신의 딸 악사를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갈렙의 조카 옷니엘이 이전 이름이 기럇 세벨인 드빌 땅을 쳐서 취하므로 갈렙이 약속대로 악사를 옷니엘에게 아내로 주고, 그가 딸의 요청에 따라 윗샘과 아랫샘을 선물로 줍니다.

11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 드빌은 헤브론에서 서남쪽으로 약 13km에 위치한 성읍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입니다. “기럇 세벨”의 뜻은 ‘책의 도시’라는 의미로 이름의 유래는 아마도 전쟁 기록물이나 책들이 보관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12절,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드빌의 예전 이름 기럇 세벨의 성읍 점령을 놓고 자신의 딸을 포상으로 내건 사실을 볼 때 기럇 세벨이 점령하기에 쉽지 않은 까다롭고 위험한 성읍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남자가 아내를 얻을 때 신부의 아버지에게 상당한 액수의 지참금으로 돈이나 물질을 주어야 했는데 갈렙은 그러한 경제적 대가가 아닌 기럇 세벨을 점령하는 것으로 대치한 것입니다.

13절,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 한글 개역성경의 표현은 히브리 원어 성경에서 생략된 의미가 있습니다. 히브리 성경에는 ‘그나스’를 수식하는 말 “학카톤 밈멘누”가 있는데 그 의미는 최상급으로 표현된 “가장 나이가 어린”이란 뜻으로 그나스가 형제 중에서 막내임을 나타냅니다. 즉 옷니엘은 그나스의 아들이며, 그나스가 갈렙의 막내 동생이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영어성경 NASB는 “Othniel the son of Kenaz, Caleb's younger brother”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옷니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힘”이란 뜻으로 훗날 이스라엘의 최초의 사사가 됩니다.

14절,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악사는 자기 남편 옷니엘에게 아버지 갈렙에게 밭을 요구하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본 문구의 “밭(히, 사데)”은 ‘평지, 개간에 알맞은 땅’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이미 경작지로 조성된 논과 밭이라는 의미보다 산지와 계곡이 많은 지형이나 광야 지역이 아닌 농작물을 심을 수 있는 평범한 땅을 가리킵니다. 악사가 이런 요구를 하는 이유는 당시 옷니엘이 갈렙에게 얻은 남방 지역은 물과 경작하기에 적당한 땅을 찾기 어려운 메마른 사막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16, 겐 사람들이 유자 지파와 함께 거함]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출신 족속인 겐 사람들이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유다 지파와 함께 거하게 됩니다.

갈렙과 악사, 옷니엘에 관한 이야기가 진행하는 중에 갑자기 겐 족속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옷니엘과 악사가 거주하게 되는 남방 지역이 모세의 장인이 속한 겐 족속의 자손들이 이미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미 겐 족속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므로 악사와 옷니엘이 결혼하여 이주한 땅이 어떤 곳인가를 부연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려나무 성읍”: 이처럼 성읍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그 성읍의 특징을 반영한 별칭을 사용한 것은 “종려나무 성읍”이 당시 이 별칭으로 많이 불리워졌으며, 별칭만 말해도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성읍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성읍은 신 34:3(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삿 3:13, 대하 28:15(종려나무 성 여리고)에 의하면 종려나무가 많았던 여리고 성읍을 지칭하는 별칭입니다. 겐 족속의 자손들은 이스라엘 출애굽 당시 모세의 장인 이드로와 함께 합류하였고, 여리고 점령에 동참하여 여리고 성읍에 거주하고 있다가 후에 유다 남방 지역 점령에 동참하였으며, 그후 유다 지파의 땅에 속하는 유다 남방 황무지에 이주하여 유다 지파 사람들과 함께 거주한 것입니다.

[17-20, 정복과 실패, 그리고 약속의 이행]
유다 지파가 시므온 지파와 함께 시므온의 기업인 스밧을 정복하고, 해안 도시인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과 그 지경 일대를 정복합니다. 하지만 철병거를 가진 골짜기의 주민들은 쫓아내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유다 지파가 모세의 명령대로 헤브론 땅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갈렙이 그 땅에서 아낙 자손들을 쫓아 냅니다. 북쪽 예루살렘을 기업으로 받은 베냐민 지파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17절, “스밧…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 “바라보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차파”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말로 “망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성읍입니다. 이러한 이름은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암시해 줍니다. 유다의 남방에 위치한 브엘세바에서 동쪽으로 약 7km 지점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밧’의 바뀌어진 이름은 ‘호르마’ 입니다. 이름이 바뀌어진 이유는 “진멸하다”라는 히브리어의 어원 “하람”과 호르마의 어원이 같기 때문입니다. “진멸하다”의 히브리어 “와야하리무”의 원형 “하람”은 인간적인 용도로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구별하여 바친다는 의미로 ‘모조리 진멸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하람”은 “진멸”이라는 의미와 “봉헌”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스밧을 점령하여 진멸한 후에 ‘진멸’, ‘봉헌’이란 뜻이 있는 ‘호르마’라고 명명한 것은 이 성이 하나님의 명대로 진멸되었고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 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민수기 21:1-3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과 그의 성읍을 다 멸한 후에도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부른 사건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호르마’는 완전히 진멸하여 하나님께 드린 바 되었음을 뜻할 때에 명명되는 별칭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18절,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 유다 지파에 의해 정복 전쟁이 수행된 도시들로서 지중해 해안에 가까운 도시들로서 모두 블레셋인들이 살았던 땅입니다. 유다 지파에 정복되지만 사사 시대에 이 성읍들이 다시 블레셋의 거주지로 나오는 것으로 볼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 지파로부터 다시 재탈환한 것으로 보입니다.

19절,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이 문장의 한글성경의 번역은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한글성경의 표현은 하나님께 함께 하심으로 산지 주민을 쫓아낸 것이고, 뒤에 나오는 철 병거가 있는 주민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못하여 쫓아내지 못한 것이라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 성경은 한 문장이 아니라 2문장으로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다. 유다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산지 거민들과 싸울 때만 함께 계신 것이 아니라, 정복 기간 내내 유다 지파와 함께 하셨음을 먼저 말하고 난 후에 유다 지파의 정복 전쟁의 성공과 실패를 기록한 것입니다.

19절,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골짜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메크”는 가파른 경사면을 가진 계곡과 같은 구조의 골짜기라 아닙니다. “에메크”라는 단어는 계곡보다는 넓고 지대가 낮은 평평한 지형으로 병거들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을 가리키며, 밀이나 보리 같은 농작물이 자랄 수 있을 만큼 기름지고 비교적 넓은 지형이며, 소나 양 같은 가축도 방목할 수 있는 지형으로 구약 성경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지니고 있는 철병거는 당시 가공할 만한 무기로서 이스라엘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가나안 정복 전쟁을 치를 당시는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이어지는 과도기이므로 철기로 제조된 무기를 충분히 지니고 있지 못했으리라 생각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훨씬 강한 재질의 철기로 만든 병거를 앞세운 골짜기 주민들은 대적하여 싸우기 두려웠을 존재였을 것입니다.

20절,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갈렙에게 그가 발로 밟는 땅을 그에게 줄 것을 신명기 1:36에 약속합니다. 모세 또한 여호수아 14:9의 기록에 의하면 그렇게 약속합니다. 하나님과 모세의 약속으로 백지 수표와 같은 선택권을 부여받았지만, 갈렙은 기름진 땅이나 평안한 땅 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아낙 자손의 땅, 즉 헤브론을 자신의 소유로 선택하여 믿음에 근거한 분투로서 쟁취해 냅니다.

[묵상 및 적용]
오늘 본문 19절과 21절의 말씀은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다고 하셨는데 왜 유다 지파는 골짜기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했으며, 베냐민 지파는 왜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고 함께 거주하게 되었는가? 라는 의문입니다. 물론 당시 철병거로 무장한 골짜기의 가나안 주민들이 강했을 것입니다. 또한 천혜의 요새 지역에 위치한 여부스 족속 또한 베냐민의 힘으로 쫓아내기에는 힘이 부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여호와께서 함께 계셨다”라는 문장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면 당연히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냈어야 했을텐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을 시작할 때에 어떤 용맹한 부족이든지, 철병거를 가지 있는 부족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예외 없이 이스라엘의 손에 그들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들의 가나안 정복 전쟁의 과정에서 백성들은 언제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계셨음을 직접 보고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유다 지파도, 베냐민 지파도 말씀하시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철병거가 두려워 후퇴할 수밖에 없었으며, 여부스 족속과 함께 거주하여 정복 전쟁에 실패하였음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먼저 손을 떼신 것이 아니라면, 분명한 이유는 유다나 베냐민 지파의 실패가 결코 하나님의 능력과 힘이 부족하거나, 그 분이 돕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귀결되는 결론은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는 하나님께서 돕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하게 신뢰하기 보다는 골짜기 거민들의 철병거를 더욱 두려워하였으며, 여부스 민족의 강성함에 기가 꺾기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열심히 기도하다가도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면 좌절과 낙심에 빠져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도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아무리 약해도, 그리고 세상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실패나 좌절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 입니다. 어떤 환경이 우리에게 다가올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실패와 승리를 판가름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본문 20절에 등장하는 갈렙의 모습은 유다 지파나 베냐민 지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과거에 믿음이 없는 정탐꾼 열 명의 보고로 인해 이스라엘 전체가 아낙 자손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열명의 정탐꾼들과는 다르게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낙 자손들을 ‘우리의 밥’이라 칭하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담대하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로부터 세월이 흘러 이제 나이가 늙어 연로해진 갈렙은 가나안 땅의 정복 전쟁에 또 다시 등장하여, 여전히 변함없는 강력한 믿음의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아낙 자손의 땅을 선택하여 오직 믿음만을 가지고 나아가 쟁취해낸 것입니다.

골짜기의 철병거의 주민들이나, 아낙 자손들이나,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들이나 모두 군사적으로 강한 부족들입니다. 그런데 강하다고 해서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 더 뛰어난 철병거나 어떤 특별한 무기나, 군사력의 힘에 승리가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최고의 승리 요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자가 바로 본문의 갈렙임니, 그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믿는 믿음 하나로 승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믿음의 기백을 갖춘 사람입니다.

믿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수많은 철병거 뒤에 진치고 있는 하나님의 군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수많은 아람 군대가 사방을 둘러싸고 포위했을지라도 눈에 보이는 아람 군대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군대인 불말과 불병거를 볼 수 있었던 엘리사 선지자처럼 믿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그 상황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하나님만을 신뢰함으로 믿음의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마태복음 17:20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음을 믿고 갈렙의 믿음의 기백을 나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으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존귀하신 주님! 주의 놀라운 능력의 손길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마음이 현혹되어 물질과 명예와 쾌락과 평안함에 도취되어 있는 우리를 깨워 주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믿음 안에서 굳게 서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 갈렙처럼 승리의 용사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마음을 믿음으로 굳건히 하여 세상 바라 보지 않고 ‘일라이 예수아’ 오직 주님만 바라 보고 예수님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름답고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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