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6/23/2021 수요일 [출애굽기 29:38-46]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6-23 08:51
조회
604

6. 23. 수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주는 거룩”:

[본문: 출애굽기 29:38-46]
38.네가 제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
39.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
40.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와 찧은 기름 사분의 일 힌을 더하고 또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더할지며
41.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리되 아침에 한 것처럼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로 삼을지니
42.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43.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44.내가 그 회막과 제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45.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46.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본문이해]
[38-41, 매일 드리는 제사에 대한 규례]
여호와께서 제사장들에게 위임식이 드려지는 7일 동안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제사를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제사를 드릴 때는 일년 된 어린 양 한 마리와 소제로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 찧은 기름 사분의 일 힌, 그리고 포도주를 전제로 드려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참고로 구약 시대 이스라엘은 매일 아침 해뜰 때와 저녁 해질 무렵에 두번 상번제를 드려야 했는데 이는 제사장 위임식 상번제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상번제(常燔祭)란 ‘항상 상, 구울 번, 제사 제’라는 한자로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 차례 번제와 함께 소제, 전제를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전승에 의하면 아침 상번제는 하루를 거룩하게 보낼 수 있도록 기원하는 것인 반면 저녁 상번제는 하루 동안 하나님께 지은 죄를 회개하는 기도가 드려져서 소요된 시간이 약 3시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40절, “십분 일 에바”: 원래 히브리 성경에는 ‘에바’라는 단위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에바’란 고대 근동 지역에서 사용된 부피의 측량 단위였기 때문에 한글 성경에 추가한 것입니다. ‘에바’를 오늘날로 환산하면 약 23리터 정도로서 본절에 십분 일 에바는 2.3리터에 해당됩니다.

40절, “힌”: 애굽에서 유래된 말로 추정되는 히브리어 “힌”은 액체의 부피단위로서 약 3.8리터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사분의 일힌은 0.95리터 정도입니다.

40절, “전제”: 이 단어의 히브리어 “네쎄크”는 ‘붓다, 다르다’라는 뜻으로 술이나 포도주를 제단에 부어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요세푸스의 전승에 의하면 전제의 포도주나 술이 제사에 사용된 후에 나머지는 제사장의 몫이 되었다고 합니다.

상번제의 규례를 정리하면 일년 된 어린 양을 번제로 불사른 뒤에 그 위에 고운 밀가루 2.3리터에 찧은 기름 0.95리터를 더하여 소제로 드리고, 그 후에 포도주 0.95리터를 제단에 부어 전제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제사 방식은 규모나 양으로 볼 때에 눈에 거창해 보이거나 큰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친히 일러주신 규례에 따라 드려지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법도와 절차를 따라 어김없이 드려지는 예배,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에 따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42-46, 성막과 제사장 제도를 통한 축복의 약속]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를 대대로 회막 문에서 드릴 번제라고 알려 주십니다. 성막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만나며, 그들에게 말을 전하므로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신 그 곳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거룩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성막과 제사장 제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시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45절,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46절 “그들 중에 거하려고”: “거하여”라는 말의 히브리어 “웨솨카느티”의 원형 동사 “솨칸’은 ‘거주하다, 앉다, 휴식하다’등의 다양한 의미로 구약성경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의미를 살려 의역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앉고, 눕고, 휴식을 취하며 살리라”라는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은 우리 가운데 거처를 정하시고 더불어 생활하시며 은혜를 주시겠다는 자비로운 약속이 되는 셈입니다. 46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신 목적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과 더불어 계시며 복 주시기 위해서란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시므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우리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표현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심을 인정하는 것이며 우리가 함께 앉고, 눕고, 휴식하시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본 절에서 “거한다”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며, 우리 현실적 상황에 동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사시는 분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스스로 표현하고 계신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구약성경에는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교회’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교회의 개념’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오늘날의 교회의 의미들을 충분히 묵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42절에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43절에도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두 절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신다고 하신 “거기”는 어디를 가리킵니까?

본문 42절에 의하면 ‘거기서’란 말은 회막 문 안쪽, 즉 번제가 드려지는 곳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제사가 드려지는 성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고 만나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교제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의 개념에 의하면 분명하게 장소적인 개념이면서 동시에 건물적인 개념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곳이 정해져 있었으며, 그곳은 바로 성막이었습니다.

물론 이 세상 어디에도 계시며, 아니계신 곳이 없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막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은 여기 샌프란시스코에도 계시지만, 동시에 지구 반대편의 한국에도 계시고, 동시에 지구의 남반구의 호주에도 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배의 장소로 정하신 “거기”, 즉 “회막 문 안쪽 번제를 드리는 곳”을 만남의 장소로 정하신 것처럼, 오늘날 우리를 만나신다고 정하신 장소가 현대에도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교회’ 입니다.

‘교회가 정의가 무엇인가?’를 따지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각 개인이 교회가 될 수 있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성도들의 공동체 모임도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성도들이 모인 장소를 오늘날은 외형적으로 교회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러나 혹자는 믿는 성도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건물적인 개념으로서의 교회에 대해서 ‘건물이 무슨 교회인가? 성도가 교회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건물이 성도가 모이는 곳이라면 외형적으로 교회의 요소를 충분히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장소에 성도들이 특정 시간에 모였을 때는 장소로서의 그 건물은 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충분히 교회라고 말하기에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이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소이며, 하나님께 제사로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서의 구약의 장소와 건물로서의 성막의 개념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외형적인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고 100% 부인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배가 드려지는 장소로서의 교회에 예수를 주로 믿는 성도들이 모인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이든, 건물로서의 교회이든 바울은 교회에 존재론적 이유에 대해서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룩 그리하자(모이자)”라는 말씀하면서 교회의 일차적인 목표가 ‘하나님께 에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사람이냐? 건물이냐?”라고 논쟁하는 것 때문에 잃어 버린 것이 있다면 바로 예배에 대한 주안점입니다. 성막의 본질이 장소나 건물이나 성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우리를 만나 주시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즉 성도가 야외에 모이든, 건물에 모이든, 집에 모이든, 어디에 모이든지 하나님을 예배한 것이 성도의 삶의 초점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그 예배를 위하여 장소를 준비하라고 성막 제작을 명하셨고, 예배를 위하여 제사에 필요한 성물들의 제작을 명하셨고, 예배를 위하여 헌신할 제사장들의 의복과 성결을 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예배를 위하여”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43절에서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성막이 거룩한 이유가 성막이나, 성물이나, 성막 안에서 일하는 제사장들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성도가 되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모였기 때문에 그 건물로서의 교회가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곳에” 계시기 때문에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願)을 찾는 자들이 경건하며 언행에 삼가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동시에 본절은 아무리 멋있고 화려한 곳이라도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는 곳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르지 않는 처소는 결코 하나님의 성전도, 교회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거룩”에 대해서 주목할 사실은 43-44절에 성막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도, 그리고 제단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도, 또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거룩하게 하시는 주체가 ‘하나님’ 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세상 종교들이 금욕, 절제, 극기, 고행 등 인간적 방법으로 수련하여 거룩함의 경지에 이르려 합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결코 스스로의 노력과 열심으로 거룩해질 수 없으며 결코 온전해 질 수도 없습니다. 어리석은 인간이 거룩해지는 유일한 길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은혜에 힘입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11:4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거룩”의 주체가 되시며, 하나님 때문에 거룩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 때문에 우리도 거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경이 “거룩”을 강조하고 있다면, 예배의 자리로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 생각의 초미의 관심은 “거룩”과 “거룩의 주체자이신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정말 오랫만에 예배를 함께 모여서 드리게 됩니다. 감사이며 은혜이며 고마움입니다. 현실적인 질병의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어서도 아니고, 물질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이 역전되어 풍요롭기 때문도 아니며, 고난이나 어려움이 다 지나갔기 때문도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예배를 함께 드릴 수 있다”라는 조건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단 하나의 조건이 하나님의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성도에게는 가장 중요한 조건 중의 으뜸입니다. 여기에서 기쁨이 시작되고, 여기에서 은혜의 강물이 흐르고, 여기에서 용기와 위로, 격려과 하나님의 손길의 돌보심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준비가 필요합니다. 무엇을 준비하실 것인지 신앙적인 숙제로 삼고 묵상의 고민을 깊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거룩하심 때문에 우리도 거룩하게 됨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십자가를 통한 사랑으로 거룩이라는 은혜의 자리에 설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삶의 예배를 거룩으로 인도하시는 주님!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몰랐었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의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믿음을 견고하게 하셔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기쁨을 회복하게 하시고, 그 능력을 소유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주인이 되시며 거룩의 주체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죽음으로 거룩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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