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6/18/2021 금요일 [출애굽기 28:1-14]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6-18 09:26
조회
663

6. 18. 금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은혜”:

[본문: 출애굽기 28:1-14]
1.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2.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3.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모든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4.그들이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5.그들이 쓸 것은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이니라
6.그들이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에봇을 짓되
7.그것에 어깨받이 둘을 달아 그 두 끝을 이어지게 하고
8.에봇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에 정교하게 붙여 짤지며
9.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10.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
11.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12.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13.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14.순금으로 노끈처럼 두 사슬을 땋고 그 땋은 사슬을 그 테에 달지니라

[본문이해]
[1-4, 제사장 옷을 제작하실 것을 명하심]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네 아들, 곧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에게 제사장 직분을 명하십니다. 그리고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입히도록 하되, 마음에 지혜있는 자들로 하여금 만들도록 하십니다. 제사장의 옷에 해당되는 흉패, 에봇, 겉옷, 반포 속옷, 관과 띠의 세부 품목을 말씀하십니다.

1절, “제사장”: 이 단어의 히브리어 “카한”은 ‘예언하다, 예시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제사를 인도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재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역할이 있으며, 또한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자입니다. 사무엘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분의 구분이 모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의 뜻이 담고 있는 의미를 근거로 하면 당시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는 일 뿐만 아니라 선지자로서의 사명도 감당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사장직을 오늘날의 목회자의 직분으로 전환하여 생각하는 것은 예배를 인도하는 제사장적 직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이 행하시는 공의로운 심판과 뜻을 선포하는 선지자적 직분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절, “마음에 지혜있는 모든 자”: 본 절의 “지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크메”의 원형 “하캄”의 뜻은 ‘총명한, 능숙한, 숙련된’이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레브”로서 ‘중심, 마음’이란 의미입니다. 당시 히브리 사람들은 신체 가운데 지혜가 들어 있는 곳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라 생각했기에 ‘머리에 지혜있는’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마음에 지혜있는”(KJV, that are wisehearted)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지혜가 있다는 것은 히브리 단어의 개념에 의하면 ‘기술이 뛰어나고 숙련된 상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재간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은 본절의 문구를 ‘기능공’으로, 공동번역은 ‘재간있는 사람’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막이나 제사장의 의복을 만드는 일은 뛰어난 기술도 요구되므로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을 행할 때는 마음의 순결함 뿐만 아니라, 열심으로 연구하고 최선을 다해 능력을 갖추려는 노력도 필요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3절, “지혜로운 영으로”: 본 문구의 “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아흐”는 성경에 ‘호흡(시 33:6), 마음(단 5:20)’이란 표현으로 사용되었지만, 단 5:12에는 ‘성령’으로도 사용되었기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가리키는 말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로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호크마”로 원형은 ‘마음에 지혜있는”에 사용된 “하크메”와 원형이 같은 “하캄” 입니다. 그래서 “지혜”라는 뜻 외에 “솜씨”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문구를 직역하면 ‘성령께서 주시는 재능’, 또는 ‘성령이 주시는 지혜’가 됩니다. 이런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의복을 만들 때 원래부터 기술을 가진 숙련된 자를 선발하셨지만, 또한 하나님의 영을 그들에게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게 구별하여 제작하도록 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5-14, 에봇의 제작 양식을 말씀하심]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을 만들라 명하십니다. 에봇에 어깨받이 견대 둘을 달아 서로 연결하고, 허리띠는 에봇의 재료와 같은 오색 실로 만들되 에봇에 붙여서 짜도록 하십니다. 에봇의 어깨받이 견대에 각각 여섯 지파의 이름을 새겨 넣은 호마노 보석을 금테에 물려 붙이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기념 보석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6절, “에봇”: 히브리어 “에포드”에서 그대로 음역한 이 단어는 ‘입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의복’이란 뜻을 갖고 있으며, 대제사장의 입는 의복들 중에 하나입니다. 즉 대제사장이 겉옷 위에 입는 옷으로 소매가 없고, 앞부분은 무릎까지 내려오며, 앞부분과 뒷부분은 어깨위의 견대와 허리의 띠로써 연결되는 옷입니다. 에봇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 그리고 가늘게 꼰 베실의 오색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든 찬란한 옷으로 가슴 부위에 흉패를 붙입니다.

7절, “어깨받이…두 끝을 이어지게 하고”: 어깨받이 견대를 통해서 에봇의 앞부분 의복과 뒷부분 의복이 견대의 끈에 의해 하나로 연결되게 하라는 지시입니다. 즉 에봇은 마치 큰 천을 머리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뚫고 뒤집어쓴 형태이며, 의복이 너풀대지 않도록 허리띠로 조여 고정하는 스타일입니다.

9절, “호마노”: 이 단어는 두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브네”의 원형 “에벤”은 “돌, 광석, 보석”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함”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합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은 에메랄드 보석류로 번역하였고, 영어성경 KJV은 “Onyx”(실리카 광물로서 준보석의 변종으로 줄마노, 호마노라고도 하며, 백색과 적색띠가 있는 홍옥수와 백색과 갈색띠를 가진 붉은 줄마노도 비슷한 변종입니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이를 홍옥수라는 간주하였으며 공동번역은 요세푸스의 말을 따라 홍옥수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의견은 애굽에서 도장을 만드는 아주 값비싼 재료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광물학에서는 호마노는 석영과 옥의 혼합 광물로서 매우 아름다워 고대로부터 여러가지 보석 세공의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같이 여러 의견들이 다양하게 있지만 값비싸게 여겨진 귀한 보석류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에봇 견대에 물린 호마노 위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나이 순서에 따라 기록되었으며, 요세푸스는 오른쪽 호마노에 장자에서 여섯째 아들을, 나머지는 왼쪽 호마노에 새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2지파의 이름을 새긴 호마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나올 때마다 그의 어깨 위에 새긴 12지파의 이름을 보고 대제사장 한 사람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나아오는 것으로 간주하시는 것으로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1절, “금테에 물리고”: 본 문구의 “물리다”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무쌉보트”로서 그 의미를 직역하면 ‘둘러싸이게 만들다’라는 의미입니다. 영어성경 RSV는 이것을 “You shall enclose them in settings of gold filigree”(금세공물로 그것을 둘러싸라)라는 의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테에 물리다’라는 의미를 추정해 보면 에봇 어깨받이 견대에 금을 얋게 펴서 테두리와 밑판을 만들고 거기에 호마노 보석을 끼우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당시 애굽에서 이런 금속 세공과 제련 기술을 이용한 보석가공이 유행하였으며, 또한 그런 의상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 금세공술을 배우고 숙련된 것을 사용하셔서 의복에 적용하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주시거나 일을 명하실 때에 세상에서 배운 학문과 기술을 통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사용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서의 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의 여러 가지 일에서도 숙련된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12절, “기념 보석”: “기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직카론”의 뜻은 ‘기억하다, 생각하다, 권념하다’라는 의미의 명사형입니다. 따라서 기념 보석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억나게 하는 보석이 되는 셈입니다. 제사장의 어깨 위의 호마노는 아름다움 보다 그 보석에 기록된 이스라엘 자손들의 이름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는 12지파가 직접 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보석에 새긴 이름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을 허락하신 것이며, 또한 하나님 앞에 영영토록 기억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출애굽기 25장부터 30장까지 성막의 각종 기구에 관한 규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28장은 성막의 관리를 책임지며 그 안에서 봉사할 제사장이 입을 의복에 관한 규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성막 제도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중요한 일을 담당할 그들을 구별할 특별한 옷을 지어 입히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사장 의복이 21세기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연 어떤 영적 교훈이 있을까요? 어쩌면 ‘나는 제사장도 아니요, 목사도 아니요, 직분자도 아니기 때문에 나와는 무관한 성경말씀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법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말씀은 구약시대이든지, 초대교회시대이든지, 중세시대이든지, 또는 현대이든지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변함없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이 점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언급하고 있는 “왕 같은 제사장”의 의미는 구약 시대의 제사장의 역할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과 보혈의 공로로 이제는 우리 모두가 직임을 물려 받았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 2:5에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을 특별히 제한된 사람들, 예를 들면 구약의 제사장이나 오늘날의 목사나, 직분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받아 묵상하시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묵상의 본문은 제사장의 옷과 옷들 중에서 에봇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의 의복 제작을 명하시고 어떻게 만들지를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내용 가운데 “왜 만들게 하셨는가?”에 대한 그 이유를 잠깐 내비치는 말씀이 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출 28:1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현대의 의미로 재해석하면 모든 성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사명을 주어 세우시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뜻대로 세우신다는 것은 사명을 받는 사람들이 특별히 잘난 능력이 있거나, 재주가 있거나,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 조건이 있기 때문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대로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라고 명하실 때에 그들의 어떤 인간적인 조건을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 사람을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 세우실 때도 이 조건은 똑같습니다. 사람의 잘나고 능력이 있고 재주가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사명을 주시는 조건이 된다는 말씀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사명을 주시며 “세우라”로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그 조건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입니다.

이 첫번째 교훈이 우리들이 맡은 교회 안에서의 직분이나 또는 하나님이 내게 주셨다고 믿는 소명과 사명에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나의 직분이나 내게 주신 사명의 이유가 내가 잘났거나 재능이 있기 때문에 직분을 맡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경이롭고 신비로운 섭리가 있어서 ‘나의 능력과 재주’라 개입되면 놓치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무엇을 놓치게 될까요?

열심히 사역을 감당하고도 놓치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은혜” 입니다. 내 능력이 앞세워져서 나의 공로가 드러나면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올 자리가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직분자로 세워지거나,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자로 세움 받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며, 하나님의 은혜임을 마음판에 새기고 또 새겨져야 합니다. 이 부분이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으면 “은혜”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시고 사명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제사 제도는 제물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께 죄사함을 얻는지, 어떻게 영광을 돌려야 하는지, 어떻게 감사하고 예물을 드려야 하는지 등등에 관한 여러 규례를 알려 주시므로 사람을 배려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배려 속에 담긴 목적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차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목적과 이유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배의 자리에 나갈 때에 하나님 보다 ‘나 자신을 위한’ 이익과 유익을 먼저 생각할 때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를 통해서 나의 평안, 나의 위로, 나의 회복과 치유, 나의 기업의 풍성함, 나의 자녀들의 번영과 가문의 번창함 등등을 믿음의 결과로 반드시 따라오는 제반 사항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에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치부할 수 없지만, 우선순위가 바뀌면 믿음의 신앙이 아니라, 이방종교와 다를 바 없는 종교생활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제사장의 의복을 만들 때에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의복을 제작하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본성과 능력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세상 일과 달라서 세상 지혜로는 제대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로 채워진 사람”들을 언급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만을 섬긴다”라는 우선순위가 뒤바뀌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세상 지혜로만 하려 할 때에는 어긋나거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초대 교회 당시에는 집사들을 세울 때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사도행전 6: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지혜로 채워져야 하나님만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묵상을 마치면서 하나님의 뜻 대로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결단의 헌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혜의 영,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구하십시오.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으로 구비되도록(Equip) 기도하고 겸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은혜로우신 예수님! 나의 삶의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로 풍성하게 차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주의 은혜이며, 호흡하고 살아 존재하는 것도 주의 은혜입니다. 어둡고 힘들고 괴롭고 고난과 슬픔과 아픔이 분명히 있지만, 어둠보다 더 밝은 빛을 볼 수 있는 믿음의 용기와 결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빛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감사하며, 찬양하며 예배하는 것을 꿈꾸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형제 자매들이 있고, 가족들이 있고, 친구가 있고, 동역자가 있음이 은혜임을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의 감당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는 인생이 되기를 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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