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 묵상 2/17/2021 수요일 [본문: 마태복음 14장 13~21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2-17 09:56
조회
704

2. 17. 수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내 맘에 한 노래있어”: " target="_blank" rel="noopener">

[본문: 마태복음14:13-21]
13.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본문이해]
13-14절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북동쪽 빈 들로 옮겨가셔서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내용이며, 15-16절은 오병이어 기적의 발단이 되는 정황이 기록되어 있으며, 17-21절에는 오병이어 기적의 사건의 진행과정과 이적의 규모에 대한 간접적 설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의 사건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막 6:30-43, 눅 9:10-17, 요 6:1-13). 마태는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큰 무리를 먹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임을 증거하는 동시에, 또한 인간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계신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를 생각해 보면 마태와 누가는 세례 요한의 죽음 후에 이 사건을 위치하고 있으나, 마가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몹시 바쁘게 사역한 후 조금 쉬기 위해 떠났을 때 이 사건이 일어났음을 기록합니다. 요한복음은 그냥 ‘그 후에’라고 함으로 어떤 특정한 사건과 연결시키고 있지 않습니다. 즉 마태와 누가는 이 사건이 일어난 대략적인 시점을 기록하고 있고, 마가는 좀 더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벳새다에 있는 빈들로서 이 곳에 여러 고을로부터 큰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큰 무리가 모였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어느 정도 진전되어 그의 소문이 크게 퍼졌음을 암시합니다.

엄청난 군중이 모인 이 자발적인 집회의 문제 중의 하나는 식사 문제였습니다. 제자들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대책으로 무리들을 해산하여 각자 마을에 들어가서 스스로 사 먹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계획은 불신앙적 요소나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6:7에서 빌립은 “부족합니다”라고 대답을 하는데, 이는 모든 능력을 행하시는 주님 앞에서 그 대답 자체가 불신앙, 또는 연약한 믿음의 표현이라고 할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대처하시는 방법은 달랐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성인 남자만 계산해서 오천 명을 먹이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대신 인간의 합리성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적은 비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이적이나 기적은 불합리하고 일어나기 불가능한 일이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에 이적이나 기적은 일상사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일입니다. 하지만 마태는 오병이어의 이적의 사건을 통해서 주님께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이심을 선언하고 있으며, 성인 남자의 수효가 오천명이니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이만명에 육박하는 무리들을 먹이신 예수님이야말로 인간의 영적 필요 뿐만 아니라, 육체의 곤고함까지 해결해 주시는 복의 근원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묵상 및 적용]
오병이어의 사건은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라서 주일학교에서부터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설교에서 수십번은 들었던 성경이야기이며, 설교일 것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오늘의 본문을 묵상하면서 은혜로 주신 2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이적이나 표적이 일어나기 전에 “주님의 ‘명령하심, 또는 말씀하심’이 무엇보다 앞서 있다”라는 것입니다. 본문 14:19절에 “무리를 명하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6:39에는 “제자들에게 명하사”, 누가복음 9:14에는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요한복음 6:10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법적으로 보면 이때 사용된 단어 “명하다”라는 말의 헬라어 시제 부정과거분사형은 동작의 시점이 주동사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즉 본문 19절의 ‘앉히시고, 축하시고, 주시매” 등등 보다 ‘명하여’라는 동사가 먼저 일어난 동사의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즉,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오병이어의 사건! 무리를 앉히신 후 이적이 일어나는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시기 전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선결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명하다, 또는 이르시되(개역한글, 가라사대)”라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표현입니다. 이 표현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의미는 예수님의 표적과 기적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그 기적이 주어지기 이전에 선포되는 그리스도의 명령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표현하기를,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치료하실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가라사대)”라는 말과 함께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적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이 명령에 순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이 광야 같은 세상에 선포되어 지면 표적이 되고, 이적이 되며, 천국으로 바꾸어 놓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이 명하신 말씀이 선포될 때에 그 말씀대로 행하여 기적과 이적에 동참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은 그 현장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며, 임하여 계신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명하신 이 진리의 말씀대로 움직여 행하면 이 세상이 주는 모든 고통과 슬픔, 그리고 절망 가운데서 건져내시는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119편 50절에 고백하기를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라고 고백하며 표현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서 묵상하는 내용은 하나님은 최선의 결과가 아니라, 최선의 과정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사실 주님의 이 말씀은 정말 허무맹랑하며, 황당한 말씀이십니다. 왜냐하면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어 버린 시간에 이만명에 이르는 그 많은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명령은 불가능한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제자들이 찾은 것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에 불과한 상태에서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사는 요구 조건이 있으면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최고의 결과”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경제 원칙은 “최소 비용, 최대 효과”의 원칙이 있습니다. 이는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큰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며, 최대한 경비를 줄이거나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최대 효과를 기대하는 경제원칙입니다. 세상은 결과에 집중하여 항상 최고의 결과를 기대합니다. 제자들은 아마도 큰 무리를 먹이고 계속해서 군중들이 주님을 따라 다닐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신 것은 최고의 결과나 최선의 결과 보다는 ‘최선의 과정’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 최선의 과정은 세상의 경제원칙이나, 합리적인 방법이나, 또는 사람들 스스로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과정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주님께로 가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 비록 하찮은 것일지라도 그것을 주님께 드리는 과정이 바로 ‘최선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오천명을 우리 스스로의 방법으로 먹이라는 최고의 결과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비록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 그것을 주께로 가지고 가는 것이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최선의 과정’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명하신 사명에 대해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라’라고 요구하지 않으시고, ‘최선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시고 만들어 가시는 표적과 이적에 동참할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상황을 바라 보면서 ‘최고’ 또는 ‘대박’을 기대하기 보다는 ‘최선’과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열매를 얼마나 많이 맺었는가?에 대한 관심보다는 과정 속에서, 그리고 그 과정이 뭍어나는 삶 속에서 하나님과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었는지, 또한 얼마나 하나님께 믿음으로 헌신하였는지를 기대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주께서 명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행하며, ‘최선의 과정’으로 삶을 살아내는 결단과 헌신이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부족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사오니 연약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병든 자를 치료하시며, 주의 위로와 평강이 필요한 자를 붙잡아 주옵소서.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살피시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로 하나님과 이야기 하게 하시고, 만나게 하시고, 우리의 염려와 근심, 고통과 어려움을 아뢰게 하옵소서. 우리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시며, 눈가의 눈물을 거두시며, 떨리는 손을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도 이 죄인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들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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