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 묵상 2/10/2021 수요일 [본문: 마태복음 12장 22~37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2-13 09:35
조회
876
2월 10일, 수요일 말씀묵상이 삭제되어 다시 올립니다.

2. 10. 수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야베스의 기도”: " target="_blank" rel="noopener">

[본문: 마태복음12:22-37]
22.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본문이해]
(22-29)
22-23절은 바알세불 논쟁의 발단이 된 귀신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자에 대한 예수님의 치유 및 무리들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4-27절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후에 치유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비난 및 예수님의 논리적 반박의 내용입니다. 28-29절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능력의 원천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이런 역사가 나타난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은 ‘똥’이나 ‘파리’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세불’과 ‘주인, 주’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바알’의 합성어로 직역하면 ‘똥의 주’ 또는 ‘파리의 주’라는 의미로서 유대인들이 모든 귀신들을 통치하며 부리는 지휘자 사탄을 경멸조로 부르는 호칭입니다.

본 단락에서 마태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귀신을 쫓아내신 분이 누구이신가? 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는 매도에 대해서 주님은 두 가지로 밝히십니다. 첫째,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나 동네나 집은 제대로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만일 자기 편인 귀신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사탄의 나라가 잘될 수 없으므로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귀신의 능력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만일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면, 바리새인들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것인가에 대해 반문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아들들이 귀신을 쫓아낸 것을 인정하시면서 그들도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반문에 바리새인들은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고, 예수님은 그런 반문으로 그들의 반박이나 주장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신 것임을 지적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탄을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셨다’라는 말씀입니다. 이때 본문에 등장하는 “임하였다”라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앞서다’ 또는 ‘도착하다’라는 말의 부정과거 시제로 영어의 현재완료형과 비슷한 의미로 “도착했다(has arrived)”라는 뜻입니다. 즉 지금 예수님과 함께 있는 군중들 뿐만 아니라, 바리새인들 가운데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착해 있다’라는 의미이며, 동시에 도착을 알리는 것은 아직 완성이 아니며, 출발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30-37)
본 단락은 성령훼방죄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에 대해서 그들은 주님과 함께 하는 자들이 아니요, 오히려 추수한 것을 흩어버리는 자들이라고 비판하시며 성령훼방죄를 언급하십니다. 31-32절에 언급된 성령훼방죄는 곧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귀신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냈다고 매도한 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라고 암시한 말씀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훼방’이라는 헬라어 ‘블라스페미아’라는 말의 의미는 ‘다른 사람에 대한 모독적인 언사, 중상모략, 비방,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에 관계된 것글을 모독하는 언사’란 의미로 신약에 18회 사용되고 있으며, 대부분이 하나님과 관계된 문맥에서 쓰였습니다.

성령훼방죄가 어떤 성격의 죄인가에 대해서 33절에 “열매로 나무를 안다”라는 원리로 설명하십니다. 열매가 좋으면 나무도 좋고, 열매가 좋지 않으면 나무도 좋지 않습니다. 열매는 좋은데 나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 즉 조리가 맞지 않아 도무지 말이 되지 않으니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이적은 열매에 해당하며, 예수님은 나무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열매(귀신을 쫓아내는 행위)는 좋다고 하면서, 나무이신 예수님은 좋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니 어불성설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말도 되지 않게 주님을 매도하는 것에 대해서 그들이 악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시며 “독사의 자식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는 자들”이라고 강하게 지적하십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말에 대해서 지적하시며 최후 심판의 날에는 생각과 행동과 말이 심판의 대상인데 본문에서는 말이 문제가 되어 있기 때문에 말이 심판의 대상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된 것을 알고서도 귀신의 왕을 힘입어 된 것이라고 ‘말’ 함으로써 성령을 훼방하는 죄에서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영화를 찍을 때에 사용되는 용어를 잘 설명하는 내용이 있어 소개합니다. 영화 용어 중에 쇼트(shot), 씬(scene), 시퀀스(sequence)가 있습니다. 쇼트란 글에 비유한다면 “음절(Syllable)”로서 영화에서는 연출자가 “Action!”을 외치면 카메라로 찍기 시작해서 “Cut!”을 외치면 촬영을 멈추기까지의 길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씬이란 쇼트가 여러개 모여서 동일장소, 동일시간 내에 구성된 장면으로 글로 표현한다면 “문장(Sentence)”이라 할 수 있으며, 시퀀스는 더 큰 의미로 여러개의 다른 씬들로 구성된 단위로 여러 장소와 시간으로 구성될 수 있으며, 글로 표현한다면 “문단(Paragraph)”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장면을 영화로 찍는다면 같은 장소, 같은 시간대에 일어난 일이므로 영화의 ‘씬(scene)’을 찍는 것과 같습니다. 이 ‘씬”의 제목을 “예수님께서 귀신을 고치시고 바리새인과의 논쟁 씬”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예수님,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귀신 들린 자, 그리고 이 놀라운 표적의 현장에 있었던 유대 백성들(무리들), 끝으로 그 무리들 가운데 섞여 있다가 주님을 매도하며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의 “씬”은 같은 장소, 같은 시간대의 촬영으로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벌어진 사건을 모두 함께 “보고, 듣고, 경험하는”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합니다. 똑같이 보고, 듣고, 경험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서 에수님이 메시야(그리스도)라고 믿게 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표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 믿지 못하는 정도라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악한 자라고 매도하며 ‘적대시하게 되었다’라는 점이 이상했습니다. 과연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어떤 반응을 취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왜 믿지 못하고 적대시 하는 자들이 되었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보면서 ‘사람이 눈으로 본다고 모두 믿을 수 있고, 믿게 되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또는 확신이 부족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한번만 제 앞에 나타나 주시면 제가 믿을 수 있습니다’라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본다면 정말 믿을 수 있을까요? 구약성경의 이야기들 가운데는 하나님을 보았고, 그 분의 능력이 역사하는 것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불신하고 믿지 않았던 경우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듣고, 보고, 경험한다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거나,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듣고, 보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고 도리어 대적하는 이유의 근간은 무엇일까요? 그 중에 한가지만 생각해 보면 “불신” 입니다. 보고도 믿지 않으 것! 바로 “불신” 입니다. 인간은 불신의 포로가 되면 표적이나 기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불신”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사탄으로 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사탄이 사람으로 하여금 죄의 유혹에 빠지게 하여 하나님의 금기의 말씀을 깨뜨리도록 한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때문 이었습니다. “불신”이라는 사탄의 권세에 사로 잡히게 되면 아무리 거룩한 설교를 들어도, 표적을 보고, 듣고, 경험하여도 믿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장 6절에서 ‘개나 돼지에게 진주를 주어도 몰라보고 발로 밟아 버리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불신”이 사람의 마음과 눈을 가리어 어둡게 하여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신’이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보지 못하게 하고, 깨닫지 못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불신의 영”을 지닌 사탄의 권세가 장악하고 있으면 놀라운 표적이나 기적을 보고서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놀라운 표적이나 기적을 본다고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들에게 기적은 자연이 한 현상이요, 우연한 일이요, 아니면 바리새인들처럼 귀신의 능력으로 치료하는 것으로 매도하고 마는 믿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기적을 보아도 믿지 않고, 불신하는 이 세상에서 믿는 자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적과 표적을 보고 믿는 자가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불신’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정한 기적은 섬김의 수고를 다하고, 온유와 인내와 사랑으로 전도하였을 때에 “예수님을 믿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영혼들이 ‘지금도, 여전히, 생기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불신’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들! 곧 “믿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영혼들이 더 놀랍고 경이로운 기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불신의 포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산 증인’과 ‘믿음으로 이룬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여 믿음으로 반응하는 ‘기적의 주인공’들을 많이 찾아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 저의 허물과 죄악이 용서받을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해 주신 하나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요, 나의 구원자시요, 찬송과 영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하나님!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 놀라운 기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복음의 전도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에도 전 세계에서 기적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선교의 현장에 있는 전도자들을 도우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하옵소서. 신실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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