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 묵상 2/12/2021 금요일 [본문: 마태복음 13장 1~17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2-12 13:09
조회
816

2. 12. 금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그가 다스리는 그의 나라에서”: " target="_blank" rel="noopener">

[본문: 마태복음13:1-17]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본문이해]
마태복음 13장의 별명을 ‘하나님 나라(천국)의 비유의 장’라고 말할 수 있으므로 13장에 나와 있는 8개의 비유들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계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학자 Ridderbos는 마태복음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예수님의 비유를 통한 천국 비밀에 대한 가르침이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으로 말미암아 천국이-현재의 단계에서는 감추어진 독특한 방식-이미 도래했다는 큰 하나의 비밀에 전부 근거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의 사역으로 천국이 이 세상에 임했다는 것이며, 그 천국에 대해서 주님이 비유로 말하셨다는 것입니다.

비유란 헬라어로 ‘파라볼레(영어, parable)’로서 마태복음 13장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해서 15, 21, 22, 24장 등에 총 17번이 나옵니다(참고로 마가복음 13번, 누가복음 18번, 히브리서 2번 등등 신약에 총 50개가 표현되어 있음). 예수님은 깊은 영적 진리나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실 때, 일상 생활의 평범한 소재들을 가지고 설명하시고, 그 전달 수단으로 이용하시던 일종의 수사적 어법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천국의 특성 및 천국이 임하는 과정을 단지 쉽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라, 이중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천국의 비밀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또 하나는 반대로 ‘감추기’ 위함입니다.

13장 전체에 등장하는 인물은 예수님과 크게 두 그룹의 청중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본문에 “무리/저희/그들”로 표현된 그룹과 “제자들/너희”로 구분된 그룹입니다. 이 두 그룹 중에서 전자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닫혀 있는 사람들로서 듣고 보아도 무지하여 깨닫지 못하는 자로 표현되며, 후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천국 비밀에 열려져 있고 듣고 보고 깨달아 열매를 맺어야 할 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1-3절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배경이며, 3-8절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내용이며, 9절은 비유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을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며, 10-17절은 비유의 목적과 진리를 깨닫는 자들이 누리는 복에 대한 설명입니다. 13장은 “그 날에”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이시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행하고자 하는 자신의 제자들이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신 하나님 나라의 한 가족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신 바로 그 날을 의미합니다.

(1) ‘길 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쉽게 먹을 수 있으으로 ‘말씀은 들었으나’ 깨닫지 못한 자에게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씨를 빼앗아 가는 것이며, (2)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흙이 깊지 아니하여 싹이 빨리 니왔으나 해가 돋은 후에 말라버리는 토양으로서 말씀을 듣고 즉시 기뻐하였지만 그 말씀의 이해와 깨달음의 깊이를 더 해 주는 뿌리가 없어 (이 세상의) 환난과 핍박 때에 신앙을 버리는 자이며, (3)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는 그 씨가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로 인해 방해가 되어 성장을 멈추게 되는 토양으로서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이 세상의 염려와 물질의 유혹이 영적 성장을 질식시킴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는 토양입니다. 이에 비해 이 비유의 마지막 끝 부분은 매우 극적으로 종결되어집니다. 그것은 바로 (4) ‘좋은 땅, 열매 맺는 땅’에 떨어진 씨는 큰 결실을 하는데 이는 말씀을 듣고 깨달았기 때문이요, 그 결실이 각각 100 배, 60 배, 30배로 나타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청중이나 독자들의 관심은 “씨를 뿌리는 자가 누구인가?”에 관심을 갖기도 하지만, ‘씨’가 떨어진 네 가지 땅들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비유입니다. 그래서 열매 맺지 못하는 땅은 동시에 열매 맺지 못하는 씨앗으로 연결되며, 열매 맺는 땅은 열매 맺는 씨앗으로 연결됩니다. 전통적으로 씨 뿌리는 자는 하나님 또는 천국을 선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가리키며, 씨가 뿌려지는 땅들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땅의 목적은 씨가 뿌려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실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복음의 말씀을 들었으면 ‘깨달아야 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하며, 열매를 맺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도들이 기억해야 할 사실은 복음의 말씀들이 뿌려지고 있는 이 세상은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악한 자들의 방해도 있고, 환난이나 핍박도 있고,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같은 시험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열매를 맺는 이유는 씨를 뿌린 자가, 좋은 땅(옥토, 성도)에 씨를 뿌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면 은혜를 받은 자로서의 감사가 있어야 하며, 말씀은 받은 자로서의 깨달음을 통해 인내를 키우고 헌신하고자 하는 열심히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뿌려서 그 비밀을 알려 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과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좋은 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므로 인간 차원에서의 책임과 무관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본문의 비유 속에 담겨 있습니다.

[묵상 및 적용]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 우리 모두가 2000년전으로 돌아가서 예수님 앞에서 이 비유를 들었다면 질문을 던질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질문들 중에서 한 가지를 생각해 본다면 ‘제자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더욱 잘 깨닫기 위해 베풀어졌던 비유가 왜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그들의 눈과 귀를 막는 작용을 하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비유가 그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없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천국 혹은 하나님의 나라에 그 동안 대해 생각해 왔던 개념과 판이하게 달랐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천국을 지상적이고 정치적인 왕국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열방을 심판하시고, 잃어버린 다윗의 왕권을 되찾고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아가 오시면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내용이 전혀 근거가 없는 내용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의 예언들이 메시아에 대해서 심판의 주님이요,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자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이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오해한 것이 무엇입니까? 정확히 말하면 “오해”가 아니라, “자기를 위한 해석”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근원적인 문제는 구약성경의 메시아 예언을 성경이 의미하고 있는 그대로 믿은 것이 아니라, “민족적 이기주의”의 관점에서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묵상의 주제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제로 “왜 그들은 비유를 이해하고 깨닫지 못했을까?”를 말하는 이유는 유대인들의 편협한 이기주의가 우리에게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관점에서는 인종이나 민족도, 나라도, 지역도, 출신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 ‘하나님의 심판 대상은 객관적인 통계로 믿는 사람이 적은 중동 땅에 더 심하게 임할 것이며, 선교도 많이 하고 열심히 기도하는 자가 많은 한국 땅에는 심판 보다는 은혜가 많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한국 사람으로 생각하는 편협한 이기주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편협한 이기주의, 신앙적 이기주의에 빠지면 나 보다 뛰어난 다른 사람이나, 나 보다 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깨닫는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비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 예수님은 한 민족의 왕이실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이 말은 왕으로서 심판의 권한도 있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열방의 이방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신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메시아가 회복할 나라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온 나라이며, 주님은 이 사역을 위해서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메시아와 하나님의 나라를 민족적 이기주의의 편협한 차원에서만 이해했던 유대인들은 초라한 모습으로 오시고 죄인들과 함께 하시고 죽어야만 했던 메시아를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현대의 성도들은 비유로 말씀하신 천국의 의미에 대해서 이미 익숙해 있습니다. 구약시대나 신약 초기 시대의 성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유나 계시에 대해서 많은 해석과 좋은 설교의 자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현대의 성도들은 “복된 시대를 살고 있는 성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유들의 드러난 의미에 익숙해 있다고 ‘우리 스스로가 천국에 더욱 가깝게 있다”라고 만족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유의 의미에 ‘익숙하다’라는 것이 이미 천국의 속성을 ‘알고 있다’라는 점에서 인식론적 타성과 안일에 빠뜨리게 하는 요소가 충분히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타성에 젖어 있고, ‘안다’라는 사실 때문에 천국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누리고자 하는 영적 열망을 식게 만들 위험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3장에 등장하는 비유들에 담긴 전체적인 교훈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는 겸손한 자에게 더욱 많이 계시된다”라는 것입니다. 천국의 비밀은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은 겸손한 자에게 허락되며, 완악한 마음으로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천국을 더 많이 깨닫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 신학 박사는 이론적으로 천국의 특성에 논할 수는 있어도, 그 천국의 은혜와 능력을 누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를 깨달았어도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은 천국을 알게 해 주시면, 그 나라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 “따라가는 자”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내 것을 주장하거나, 내 경험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명령을 겸손하게 따르고, 배우려고 하고, 순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려고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열려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말씀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 주신 주님! 삶 속에 실재하시는 주의 손길을 깨닫게 해 주시며,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주의 전도자로, 주의 제자로, 주의 일을 감당하는 교회로 우리를 사용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에는 슬픔도 없고, 병든자도 없고, 죽음도 없사오니 이 땅에 있는 슬픔과 질병과 죽음을 해결하시는 우리 주 예수님을 바라 볼 수 있도록 믿음 위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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