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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묵상 12/23/2020 수요일 [본문: 누가복음 1장 26-38절]

작성자
KCPC ADMIN
작성일
2020-12-23 10:29
조회
947


 

오늘의 말씀묵상

[본문: 누가복음 1장 26-38절]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본문이해]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오늘의 본문 말씀은 아기 예수의 탄생에 대한 예언과 마리아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때는 천사 가브리엘이 사가랴에게 세례 요한의 수태를 알린 이후 여섯째 달이 지난 시기입니다.

31-35절에서 가브리엘은 탄생하게 될 예수의 독특한 정체성과 권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름은 “예수” 이며, 둘째로 “큰 자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며, 셋째로 “다윗의 왕위에 앉아 영원히 야곱의 집, 즉 이스라엘 나라를 다르실 왕”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브리엘은 마리아가 아기를 수태하는 방법이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성령, 곧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으로 잉태하게 될 것임을 알려 주면서 태어나실 분이 “거룩한 자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려 줍니다.

누가는 1장 13-17절에 세례 요한의 탄생을 그의 아버지 사가랴에게 알리는 내용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기록은 비슷한듯 하면서도 무엇이 다른지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는 저자 누가의 특별한 의도를 엿볼 수 있는데 세례 요한과 예수님 모두 “하나님이 명령하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서의 선지자적 이미지는 같지만, ‘누구인가?’를 말하는 정체성은 분명히 다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교로서 누가는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같은 선지자적 인물로 보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 차별을 둠으로써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의도가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27절, 옛날 유대의 약혼의 풍습은 보통 열두 살 이후에 정혼을 하고, 보통 1년의 기간을 보낸 후 아내를 데려 올 수 있었습니다. 유대에서는 정혼도 결혼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가지지만 그 기간에 남녀 사이에 관계를 가지는 것은 결혼의 예를 깨는 것으로 여겨 졌습니다. 그러므로 정혼한 여인이 아이를 갖게 되면 부정한 여인으로 간주됨으로 요셉이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 들인것은 대단한 용기이며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31절, “예수”란 이름은 마태복음 1장 21절에서는 그 뜻을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본문에 쓰여진 단어는 문자적으로는 히브리어의 “여호수아”와 동일한 단어이며, 그 의미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란 뜻입니다. 한편 마태복음에서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수태 고지를 하지만, 누가복음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예언을 합니다. 이 차이는 모순이 아니라, 천사는 두 사람 모두에게 나타나서 알렸지만, 다윗의 계보를 중심으로 기록한 마태복음은 요셉 중심으로 표현한 것이고, 누가복음은 마리아 중심으로 기록한 것 뿐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족보를 마태와 누가가 서로 다르게 기록한 차이와도 같은 맥락입니다.

36절에서 “네 친족 엘리사벳”이라는 말에서 영어성경 KJV에서는 “사촌(Cousin)”으로 영역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일반적으로 “친척(Relative)”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헬라어 “슁게니스”라는 단어도 ‘친척, 친족, 혈족’이라는 의미이지 정확하게 몇촌인지를 가리키고 있지 않습니다. 더우기 엘리사벳은 레위 지파이고 마리아는 유다 지파였으므로 아마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조상의 혼인 관계로 형성된 친족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묵상 및 적용]
오늘은 12월 23일, 성탄 이틀 전입니다. 옛날에 고등부 학생이었을 때는 12월 23일이 얼마나 싱숭생숭 했었던 시기였는지 모릅니다. 학기말 고사를 마치고 몸과 마음이 풀릴 수 있는 시기이지만,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은 오후에 교회로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밤 늦게까지 12월 24일 저녁에 있을 성탄절 발표회를 준비했습니다. 시 낭송을 준비하는 학생, 성탄 Worship Dance 를 준비하는 학생들, 중창을 준비하는 학생들, 그리고 성탄절 전야제의 꽃 중의 꽃인 연극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교회가 북적북적 거렸습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24일 성탄 축하의 밤이 마친 후에 새벽송을 어떻게 돌아야 할지 조편성을 하면서 고등부가 어떻게 밤을 새울지 계획을 짜기도 했던 시기가 바로 이때쯤 이었습니다.

학창시절로부터 30년이 흐른 2020년! 오늘도 예년과 비슷하게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성결 구절들을 읽고 묵상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니 말씀을 보는 각도가 달라진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기록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태어났는가를 사실적으로 아는 것으로 읽어 내려 갔던 예년의 관점이 아니라, 좀 색다른 관점으로 말씀이 보여 졌습니다. 약간 달라진 관점이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과연 마리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라는 것에 초점을 둔 관점입니다.

갈릴라 나사렛을 방문한 천사 가브리엘! 그리고 한 평범한 처녀 마리아에게 전해진 이 엄청난 하나님의 구원 게획에 대한 소식은 마리아 자신 뿐 아니라, 이 메세지를 접한 모든 자들에게도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의 메세지를 접한 독자들이 그토록 기대하며 기다렸던 메시야의 탄생이 일반적인 사람의 탄생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충격적인 기록이라는 것을 떠나서 주지해야 할 것은 이 사건의 전말이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과 섭리에 의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브리엘의 선언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라는 본문 37절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누가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라는 이중부정을 사용해서 매우 강한 긍정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능력과 권세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 선언에 사용된 ‘말씀’이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레마’로서 그 뜻은 “생생한 목소리로 선포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짧은 단어의 사용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넓게 확대하면 구약으로부터 선지자들의 예언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메시야의 오심에 대해서 선포된 선지자들의 생생한 목소리의 선포들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폭 넓은 의미를 37절이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로 부터 들은 아기 예수의 잉태에 관한 소식은 단순한 ‘수태’에 관한 소식을 아니라, 나라의 주권을 잃어 버린채 오랜 세월을 살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한과 슬픔, 그리고 기대와 약속과 성취를 담고 있는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마리아가 예수의 탄생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깨달았다면 놀라운 소식을 넘어 선 충격적인 소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마리아의 심정을 표현한 반응을 보면 29절에 보면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했다”라고 표현한 구절입니다. 마리아가 놀란 이유는 천사가 28절에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에게 찾아 왔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천사의 인사, 아니 마리아 스스로가 생각할 때는 ‘찬사’로 느껴진 천사의 인사가 자신에게 너무 과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경의 표현과 누가복음 1장 46-55절까지의 ‘마리아의 찬양과 기도’의 내용을 빌어 생각해 볼 때에 마리아는 매우 겸손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매우 심사숙고하며 세심했던 여인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겸손한 여인에게 인류의 운명을 짊어질 구원자 메시야가 잉태된다고 하니 아마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마리아의 반응입니다. 38절에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는 대답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가장 담담하게 와 닿으면서도 도전이 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입장에서 처녀가 아이를 잉태한다는 사실이 당시 유대 문화에서 얼마나 부정한 일이며, 생명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를 비천하게 여기며 낮추고 겸손해 했던 여인이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 뒤로 물러서거나 거부하거나 주저함없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순종의 태도가 저에게는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옛 모습 가운데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안다고 하면서도 순종하여 실행하는데는 주저하거나 물러섰을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여전히 내 계획을 앞세우거나, 2차, 3차의 내 계획을 들고 기도한다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모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계획을 이루어 달라고 떼를 쓰면서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 등장하는 마리아의 심정을 이해하면서 순종의 태도를 마음에 깊이 담아 두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현실 속에 등장하는 선택과 결정의 기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와 용감하게 순종하여 따를 수 있는 결단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성탄의 주인 예수님! 놀라운 구원의 계획과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주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 가운데 이 부족한 죄인이 포함되어 있음에 감사하며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 2020년의 성탄절은 이 지구촌 온 세상에 기쁨보다는 슬픔과 탄식과 어려운 소식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어둠 가운데 한 줄기 빛을 발견하고 기뻐하듯이 이 세상 사람들이 빛이신 주님을 발견하게 하시옵소서. 질병에서의 치유와 빈곤에서의 부유함과 고난에서의 놓임 보다도 주님 때문에 참 기쁨을 소유할 수 있도록 영적인 믿음의 눈과 은헤를 허락하옵소서. 성탄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찬양: 성탄절 애니메이션 찬양 ”성탄의 주인 예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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