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12/17/2020 목요일 [본문: 베드로전서 3장 1-12절]

작성자
KCPC ADMIN
작성일
2020-12-17 14:01
조회
644


 

오늘의 말씀묵상

[본문: 베드로전서 3장 1-12절]

1.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8.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생명의 삶 링크: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본문이해]
1-7절의 말씀에서는 믿는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순복하라는 설명과 동시에 남편들에게 연약한 그릇인 아내를 귀히 여기며 존중하여 함께 살아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하는 말씀의 분량에 대해 아내에게 말하는 분량이 훨씬 많은 것에 대해서 1세기 당시의 역사적 정황 즉 다수의 믿는 아내들이 불신자 남편들과 결혼해서 살아가던 소아시아 지방의 삶의 정황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러한 정황은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불신자 남편을 두고 있는 아내들에게 좀 더 강조점을 두고 있음을 통해서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은 아내들이 외모를 꾸미는 것보다 온유하고 안정된 마음을 순종으로 단장해야 됨을 말씀하면서 순종하는 것이 정결한 행실을 통해 남편을 구원할 수 있는 선한 행위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내용에는 구원의 길에 대해 오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1절에서 남편을 구원받도록 하는 것이 아내의 ‘선한 행동으로 가능한가?’라는 내용입니다. 또한 6절에서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라는 말씀의 뉘앙스도 사람이 행하는 행동으로 하나님의 딸이 된다는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구원의 길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1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1절에서 남편의 구원을 위한 단어가 “아내의 행실”이란 말인데 이 말은 2절의 “정결한 행실”과 연결되고, 또한 이러한 행실들은 외모 단장이 아니라 4절의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는 단장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행실에 대해서 ‘순결하다, 거룩하다, 썩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은 그 행실이 불신자들이 일반적으로 ‘착한 행동’이라고 알고 있는 행동은 아닙니다. 더욱이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므로 이 행실은 단순하게 ‘착한 일을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사람의 선하고 착한 행실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는 뉘앙스로 편지를 썼을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1장 23절에서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라고 말하면서 구원의 하나님의 전적인 결정권과 주권을 말했으며, 17-18절에서는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과 금과 같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을 내리면 하나님께서 값진 것으로 인정하시며, 온유하고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단장한 아내의 정결한 행실이란 일차적으로는 외적인 행실이 될 수 있지만, 이차적이며 근본적으로는 벧전 1:23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장한 행실이며, 벧전 1:18절의 그리스도의 피로 단장하여 거룩하고 순결하며 썩지 않는 신앙적인 행실을 의미합니다.

6절의 해석은 헬라어 성경의 분사구문을 해석하는 순서의 배열에 관한 문제입니다. 6절의 헬라어 성경을 직역하면 말의 순서가 바뀌어야 합니다. 번역하면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부름으로써 순종한 것과 같으니, 너희는 이 사라의 딸이 되었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 입니다. 즉 한글성경의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이 뒤로 옮겨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헬라어 성경의 뉘앙스는 ‘주라 부름으로써 순종하여 사라의 딸,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죄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선한 행동 때문에 하나님의 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선을 행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1절과 6절을 바르게 해석하면 베드로가 제시하고 있는 구원의 길을 설명하고 있는 다른 구절들과 상충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8-12절은 고난 중에서 인내하며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빌라’라는 적극적인 성도의 삶의 윤리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도의 공동체 내의 상호간 의무와 책임에 대해 말하면서 동시에 박해하고 핍박하는 자들에 대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 9절에서 이러한 명령들을 성도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명으로 연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차 받을 미래의 복된 기업과 연계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에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는 행위,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 행위,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는 행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신원하는 행위’들은 벧전 2:22-23에서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본이 되셔서 ‘죄를 범하지 않고 입에 거짓이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않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않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하는 행위”와 일맥 상통합니다. 베드로는 현재의 고난과 어려움을 불신자들이 대처하는 방법과 똑같이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대처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묵상 및 적용]
오늘 본문에는 베드로의 편지를 받고 읽는 수신자들이 등장합니다. 수신자는 ‘아내들, 남편들, 그리고 너희’라고 표현된 자들입니다. 이 수신자들에 대해서 베드로전서 1장 1절에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수신자들을 나그네라고 지칭하고 있지만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는 그들이 구원받은 ‘성도’ 입니다. 베드로전서의 스타일로 ‘성도’를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선택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 세상에서 나그네가 된 자들” 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을 묵상할 때에 설명한 적이 있지만, 헬라어로 표현된 ‘나그네’란 혼자 독립되게 살아가거나 수도원이나 광야에 들어가서 독립된 공동체로 모여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그네는 비록 불이익을 당할 수 있고, 차별을 받을 수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과 섞여 사는 사람들이란 의미가 헬라어의 표현에 들어 있습니다. 1세기 전후의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유대교 안에서 신앙의 정체성과 정결함을 지키기 위해서 유대 사회와 떨어져서 살았던 쿰란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쿰란 공동체처럼 신앙의 순수함과 정결함을 위해 세상과 격리되어 사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베드로가 말씀 중에 박해와 핍박을 피해서 떠나라고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1장에서부터 계속해서 박해를 ‘견디라, 인내하라,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감당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택됨으로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나그네가 된 성도가 살아가는 터전은 흠 없고 문제가 없고 평화스러운 장소가 아니라, 여전히 문제가 많고 고난과 박해가 존재하는 ‘세상’ 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공동체는 수도원 공동체가 될 수 없고, 쿰란 공동체가 될 수 없으니 결국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어려운 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야만 하는 ‘출애굽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아내들에게, 남편들에게, 그리고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윤리적 규정들은 세상 속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도’인가를 알리는 행동이며, ‘그리스도인 됨의 본질’을 책임성 있게 전하여 구원받은 자의 삶을 알리는 행동이며, 결과적으로는 구원의 길을 세상이 알 수 있도록 제시하는 복음적 삶의 모습입니다.

물론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행하지 않으셨는가? 너희는 그리스도인이다. 주를 따른 자들이다. 너희도 할 수 있다. 너희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이미 맛보지 않았느냐?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라”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보일 수 있는 선과 악의 모든 것들이 공존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세상의 속박과 인간의 생노병사(生老病死)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아니 도리어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3, 14)라고 말씀하시면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정사와 권세를 주관하는 사람보다 사회를 움직이며 영향력을 끼치는 오늘날의 인플루언서(Influencer)들 보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가장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을 주께로 인도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을 마음에 담고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비방이 있어도, 고난과 박해가 있어도, 심지어 세상이 성도의 생명을 취하려 할지라도…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삶을 온유하고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채워 주옵소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은혜를 마 음에 간직하여 형제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악과 욕으로 갚지 않고 겸손으로 복을 빌어 주는 참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리는 작은 예수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형편과 처지에 있는 어려움과 고통들을 주께서 아시오니 주의 은혜로 화가 복이 되게 하옵소서. 성도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찬양: ”여호와의 유월절”  ">
전체 0

전체 809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코로나19 사태를 이길 1.1.9 기도제목
NH | 2020.04.04 | 추천 0 | 조회 9118
NH 2020.04.04 0 9118
808
정제 (2)
NH | 2024.04.14 | 추천 0 | 조회 12
NH 2024.04.14 0 12
807
정제(1)
NH | 2024.04.06 | 추천 0 | 조회 30
NH 2024.04.06 0 30
806
소금의 세가지 기능 (4)
NH | 2024.03.31 | 추천 0 | 조회 37
NH 2024.03.31 0 37
805
소금의 세 가지 기능(3)
NH | 2024.03.23 | 추천 0 | 조회 42
NH 2024.03.23 0 42
804
소금의 세 가지 기능 (2)
NH | 2024.03.16 | 추천 0 | 조회 49
NH 2024.03.16 0 49
803
소금의 세 가지 기능 (1)
NH | 2024.03.09 | 추천 0 | 조회 60
NH 2024.03.09 0 60
802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10)
NH | 2024.03.02 | 추천 0 | 조회 58
NH 2024.03.02 0 58
801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9)
NH | 2024.02.25 | 추천 0 | 조회 220
NH 2024.02.25 0 220
800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8)
NH | 2024.02.17 | 추천 0 | 조회 65
NH 2024.02.17 0 65
799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7)
NH | 2024.02.10 | 추천 0 | 조회 66
NH 2024.02.10 0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