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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10/29/2020 목요일 [본문: 예레미야 52장 1-11]

작성자
KCPC ADMIN
작성일
2020-10-29 18:14
조회
677


 

오늘의 말씀묵상

[본문: 예레미야 52장 1-11]
1.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2.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3.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진노하심이 그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기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4.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5.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
6.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7.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그 성에서 나가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들이 아라바 길로 가더니
8.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 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시드기야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9.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가 시드기야를 심문하니라
10.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고 또 리블라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
11.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

[본문이해]
드디어 선지서들 중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장에 이르렀습니다. 예레미야 51:64에서 “예레미야의 말이 이에 마치니라”라고 표현하면서 예언을 마무리한 후에 본장 52장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본 장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으며,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는 것도 예레미야서를 마무리 하면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책의 부록처럼 기록되어 있는 52장은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열왕기하 24:18-25:17과 역대하 36:11-21의 내용들과 함께 살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오늘의 본문 렘 52:1-11의 내용은 시드기야 왕의 통치와 남 유다의 멸망을 다루고 있습니다. 남 유다의 멸망은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고 자부했던 그 당시의 백성들이 갖고 있었던 잘못된 언약의 이해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큰 틀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북이스라엘이 BC722년에 멸망한 후에 남 유다는 자신들의 생존이 예루살렘과 시온에 거하며 성전을 유지하고 제사를 드리고 다윗 왕조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자신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에 상관없이 예루살렘과 성전, 다윗 왕조의 정통성 때문에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약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한 결과로 백성들은 점점 말씀과 분리된 삶을 살면서도 스스로는 안전하다고 오판하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백성들의 잘못된 생각과 삶에 경종을 울리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할 때는 언약이 깨어져 버리고 심판이 도래할 것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52장에서는 이러한 깨어진 언약 관계로 인한 심판의 결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1-11절에서는 시드기야 왕의 두 가지 잘못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로부터의 죄의 사슬을 끊지 못한 것이며(2절), 다른 하나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배반한 것입니다(3절). 참고로 역대하 36:11-21은 좀 더 자세하게 악행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드기야 왕에게 회개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범한 죄에 대해서 선지자의 권고를 받고, 전해 오던 악행을 단절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받아 들이지 않고 결국 어리석게 멸망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또한 선지자가 심판의 도구로 세워진 바벨론을 섬길 것을 명령하지만, 시드기야 왕은 살 길을 포기하고 선택하여 결과적으로 시드기야 9년 (BC 588)부터 시작된 바벨론의 침략과 포위가 2년 동안 지속되다가 시드기야 11년(BC586)에 예루살렘이 파괴되면서 멸망하게 되고, 왕과 왕의 자녀들과 방백들은 죽임을 당하고 비참한 몰골로 바벨론으로 끌려가 여생을 감옥에서 마치게 됩니다.

본문 2절의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란 왕하 23:34-24:5에 기록되어 있듯이 백성들에게 무거운 토지세를 부과하고 강제 노역을 부과하여 자신을 위한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왕궁 건물들을 지었으며, 자신의 정책에 반대한 선지자 우리야를 핍박하여 죽이고, 예레미야가 전하는 예언의 두루마리를 불사르는 악행들입니다. 시드기야 왕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는 정책을 따르고, 선지자를 핍박하면서 여호야김의 행위를 답습한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오늘의 말씀에 기록된 시드기야 왕과 남 유다의 몰락을 읽어 내려가면서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전의 기록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영적침체나 또는 어려움이나 실패에 직면하게 되는 이유가 시드기야 왕의 선택과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2절에서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과거의 악행, 전해져 내려오는 행위와 관습의 악행을 단절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습관과 관습은 우리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어서 너무 익숙합니다. 너무 익숙하다 보니 옳고 그름과 악함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하거나 습관적으로 죄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이 많습니다.

익숙한 관습과 행위에 젖어 살고 있는 상태에서 분별하거나 빠져 나오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누군가 옆에서 알려 주거나, 강력한 깨달음으로 스스로 결단하여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이나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 마음에 깨닫게 해 주는 영적인 민감함이 필요합니다. 이 영적 분별력이나 민감함은 하나님 안에 거할 때만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에 빠져 있거나, 세상이 너무 좋아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거나, 선포된 말씀을 잘못 이해하거나 거부하는 상태에서는 결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분별력을 잃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데 영적 민감함이 둔해지면 결국 시드기야 왕처럼 잘못된 선택을 진노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우리 스스로의 판단 너머에 준비되어 있는 하나님의 손길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서를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바벨론을 섬기라’라는 명령은 사실 반국가적이고 매국노적인 명령이기에 감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수용하기에 힘든 명령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 섭리하심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지 않고서는 따를 수 없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순순히 순종하기에는 너무나 행하기 힘든 명령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보이시고 권고하시며 따를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여러 번에 걸쳐서 힌트를 주시고 경종을 울리셨다면 감정과 이성을 넘어서 순종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남 유다의 백성들은 화려하고 거대한 성전을 유지하면서 그 곳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과 감동적인 찬양이 있다면 안전하고 심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약속만 붙들었지 하나님의 약속이 요구하고 있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일상생활의 경건은 잃어 버린채 외적인 요소들만 갖추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 버리면 하나님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잃어 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하는 신앙이 삶과 분리된 믿음에 근거하면 왜곡된 생각으로 영적 분별력과 민감함을 잃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즘 수개월째 이어지는 코로나로 인하여 우리 삶의 자리에서의 경건과 성도로서의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체험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내가 진짜 그리스도인이었는가? 가짜 그리스도인이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공간이 요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열심히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권면처럼 기도의 자리를 찾고, 지켜내야 합니다. 내 입술에서 찬양의 고백이 나오며 선포될 수 있도록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이 일에 다시 한번 결단하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찬양을 받으시고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행위를 아시며, 생각을 아시오니 우리 삶 속에 알게 모르게 짓는 죄와 세속의 부정한 것들을 씻어 주시며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보다 앞서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의 주권에 붙들린바 되어 영적으로 분별력이 있게 하시고, 영적을 민감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찬양: 한웅재 목사의 “목수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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