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오늘의 말씀 묵상 10/8/2020 목요일 [본문: 예레미야 44장 11-19절]

작성자
KCPC ADMIN
작성일
2020-10-08 11:37
조회
717


 

오늘의 말씀묵상

[본문: 예레미야 44장 11-19절]
11.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환난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 버릴 것이며
12.내가 또 애굽 땅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처단하리니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칼과 기근에 죽어서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리라
13.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 같이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하리니
14.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려는 유다의 남은 자 중에 피하거나 살아 남아 소원대로 돌아와서 살고자 하여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 도망치는 자들 외에는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15.그리하여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사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6.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17.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18.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19.여인들은 이르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의 형상과 같은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하는지라

[본문이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애굽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유다의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렘 44:11-14). 하지만 예언에 메시지에 대한 유다 백성들의 반응은 선지자의 소망이나 하나님의 뜻과는 달랐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재앙이 “하늘 여신”이라는 신을 잘 섬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우상숭배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속에서 ‘하늘 여신’이라는 신은 당시의 종교 문화적 배경 속에서 정확하게 어떤 신이라고 말하기는 모호하지만, 음식의 풍요로움, 번영, 재앙을 없애 주는 역할을 하는 이방신들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앗수르 바벨론의 신들 중에는 “이쉬타르(Ishtar),” 가나안 지역의 번영의 신으로는 “아스다롯(Ashtoreth),” 애굽의 풍부의 여신으로 “아낫(Anat)” 등등이 있습니다. 바벨론 지역의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당시에 ‘이쉬타르’ 우상을 섬기는 신전만 무려 180개가 있었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니 우상을 섬기는 것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서 어떤 이방신을 우상으로 섬겼는지를 밝혀 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신을 섬기고, 현재의 고난과 심판이 이방신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우상 숭배를 계속 하겠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역사적 배경 속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우상숭배가 전면적으로 금지된 것은 유다 제16대 왕 요시야(BC 640-609)의 종교 개혁 때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왕국의 역사가 시작된 내내 우상숭배에 대해서 경계할 것과 금지할 것을 말씀하셨지만, 전적으로 순종하지 못했다는 면에서 보면, 요시야 왕 때에 적극적으로, 본격적으로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종교개혁을 실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생각하기를 요시야가 종교 개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민족들이 침입하여 자신들을 괴롭히는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요시야 왕이 애굽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사망합니다. 또 이어서 승전국인 애굽은 유다 왕 여호아하스를 폐위시켰습니다. 이 와중에 국제 정세가 바뀌면서 강성했던 애굽이 바벨론과의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패하고 맙니다. 그런데 국제 정세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친애굽 정책을 고수하다가 유다 나라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또 다시 왕이 폐위되고 포로로 끌려 가는 험악한 세월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종교개혁을 하면 무엇인가 눈에 보이게 가시적인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나라의 부흥이나 발전이나 성공보다는 힘들고 어려워지는 반대의 상황이 계속되니 백성들의 마음이 굳어지고 닫혀져 버린 것입니다.

결국 마음이 굳어져서 하나님의 은혜와 선지자의 메세지를 잃어버린 유다 남은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들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을 자기 조상들 선조와 왕들, 고관들, 그리고 사람들이 섬겨왔던(렘 44:17) 이방신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렘 44:18에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다”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신명기 28장!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축복장’으로 유명합니다. 축복의 말씀은 신명기 28장에서 1-14절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나 15-68절까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신명기 28장하면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는 축복에 대한 것만 기억하려고 합니다.

반면에 신명기 28:15-17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저주에 관한 내용은 잘 기억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용적으로 더 길고 자세하게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다면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의 걱정과 경계는 저주에 관한 내용에 더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좋은 기억 뿐만 아니라, 나쁜 기억도 잊어 버리는 것이 사람의 기억력입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사람이 경험한 실제의 기억력은 자기에게 유리한 것들만 오래 기억되고 남는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어떤 기억은 실제의 내용과는 다르게 완전히 새롭게 각색되어져서 마치 경험한 실제의 기억처럼 변형되어 남는다고도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마지막 메시지인 44장에서 선지자는 유다의 남은 자들에게 아주 강력하고 섬뜩한 심판과 징계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고 답답하게 사람들은 듣지 않습니다. 아니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예언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새롭게 재구성해서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신을 섬기겠다고 천명하고 맙니다. “대놓고 우상을 섬기겠다고 하니, 이거 완전히 청개구리 아닙니까?”

그런데 실제로 BC 5세기 후반의 문서들 가운데 애굽에 정착한 유다인들의 아람어 기록문인 엘레판틴 파피루스에 보면 이집트의 하늘의 여신격인 ‘아낫신’과 여호와 하나님을 혼합하여 섬기는 ‘아낫 야훼’라는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학자들은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서 유다의 남은 자들이 이방신만 섬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동시에 섬겼다고 추정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혼합주의는 이미 그들이 경험한 신앙의 방식입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면서 우상이나 이방신을 겸하여 섬기는 일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학자들의 주장을 듣고 보니 더 화가 가슴이 ‘욱!’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신이면 이방신이지, 왜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신도 섬기는 것입니까? 양다리 걸치는 모습에 ‘욱’ 한 것입니다.

하지만, ‘욱’한 마음은 잠깐이요 후회와 부끄러움이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밀려 왔습니다. 왜냐하면 우상을 섬기겠다고 주장한 유다의 남은 자들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한쪽 발은 세상에 담그고, 또 다른 발은 하나님을 믿노라고 주께 걸치고 있는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알면서도 “오직 하나님만(Only God)” 섬기는데 주저 주저하는 모습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묵상을 마치면서 부끄럽지만 다시 한번 이런 다짐을 해 봅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에, 회복과 개혁이 필요할 때에,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할 때마다 등장했던 성경의 단어이며, 믿음의 선진들의 외침이요 주장이었던 “여호와께 돌아가자!” 입니다. 해바라기가 햇빛이 비추는 곳으로 방향을 트는 것처럼, 좋은 경주마는 좌우를 살피지 않고 오직 목표와 골인점만을 바라 보고 전심전력하여 달리듯이 우리 환경 속에 있는 염려와 걱정, 질병과 어려움들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 보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세상을 좋아하고 세상을 좇아 갔던 저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상한 마음을 치료하시고, 지친 마음을 일으켜 주시어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좇을 수 있는 믿음의 결단과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위로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전체 0

전체 81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코로나19 사태를 이길 1.1.9 기도제목
NH | 2020.04.04 | 추천 0 | 조회 9133
NH 2020.04.04 0 9133
809
하나님은 왜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짓게 하셨을까(1)
NH | 2024.04.20 | 추천 0 | 조회 30
NH 2024.04.20 0 30
808
정제 (2)
NH | 2024.04.14 | 추천 0 | 조회 23
NH 2024.04.14 0 23
807
정제(1)
NH | 2024.04.06 | 추천 0 | 조회 41
NH 2024.04.06 0 41
806
소금의 세가지 기능 (4)
NH | 2024.03.31 | 추천 0 | 조회 49
NH 2024.03.31 0 49
805
소금의 세 가지 기능(3)
NH | 2024.03.23 | 추천 0 | 조회 56
NH 2024.03.23 0 56
804
소금의 세 가지 기능 (2)
NH | 2024.03.16 | 추천 0 | 조회 61
NH 2024.03.16 0 61
803
소금의 세 가지 기능 (1)
NH | 2024.03.09 | 추천 0 | 조회 78
NH 2024.03.09 0 78
802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10)
NH | 2024.03.02 | 추천 0 | 조회 70
NH 2024.03.02 0 70
801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9)
NH | 2024.02.25 | 추천 0 | 조회 237
NH 2024.02.25 0 237
800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8)
NH | 2024.02.17 | 추천 0 | 조회 76
NH 2024.02.17 0 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