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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묵상 8/20/2021 금요일 [사사기 8:1-9]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8-20 09:44
조회
188

8. 20. 금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겸손의 왕”: https://youtu.be/FPLFd6F3FU8

[본문: 사사기 8:1-9]
1.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2.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3.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4.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자 삼백 명이 요단 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5.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는 백성이 피곤하니 청하건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의 뒤를 추격하고 있노라 하니
6.숙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는지라
7.기드온이 이르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8.거기서 브누엘로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그같이 구한즉 브누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은지라
9.기드온이 또 브누엘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하니라

[본문이해]
[1-3, 미디안 전쟁에 대한 에브라임 지파의 불평과 기드온의 대처]
에브라임 사람들이 미디안과의 전쟁에 처음부터 자신들을 부르지 않은 것은 자기들을 푸대접한 것이라고 하며 항의합니다. 에브라임이 행한 일은 끝물 포도가 맏물 포도보다 낫다는 비유적인 말로써 기드온이 세운 모든 공적보다 끝에 도와주어 미디안의 두 방백을 처단한 에브라임의 공로가 더 크다고 말하며 치하합니다. 기드온의 겸손한 말에 에브라임 사람들의 불만이 해소되고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1절,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에브라임 사람들이 항의한 것은 그들이 이스라엘 전체 지파 중에 갖고 있는 일종의 우월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에브라임 지파는 창 48:17-19에 의하면 야곱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았으며, 가나안 정복 전쟁의 영웅적 지도자인 여호수아를 배출한 지파라는 것에 높은 자긍심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같은 요셉 족속이면서 동시에 경쟁 의식을 가지고 있는 므낫세 지파의 기드온이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자 질투심도 나고, 주두권을 빼앗긴 것에 대한 자존심도 상했을 것이므로 기드온에게 거세게 항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2절,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한글성경의 표현을 따라 이해하면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란 맨 처음 수확된 포도처럼 기드온이 맨 처음 미디안을 공격한 것을 상징하고,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란 포도 수확의 마지막 단계와 같이 전쟁의 마무리를 한 에브라임 족속의 활약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의 뉘앙스는 약간 다릅니다. “맏물 포도”로 번역된 히브리어 “빠치르”는 일반적인 ‘포도 수확’을 뜻하며, “끝물 포도”로 번역된 히브리어 “올렐로트”는 “이삭줍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본 절은 맨 처음에 수확한 포도와 나중에 수확한 포도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때에 따라 수확하는 포도와 수확 후에 찌꺼기로 남은 ‘이삭줍기’를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드온은 찌꺼기만 남아 있는 이삭에 비하여 정식으로 거두는 포도 수확이 좋지만, 이번 전투에서는 오히려 끝에 남은 이삭이 더 좋았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드온이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비교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있는 사실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기드온과 300용사가 맏물 포도로 한 일이란 적을 혼란에 빠뜨려 교란시킨 것이었지만, 에브라임 족속이 한 일은 이삭을 줍는 것과 같은 일이었지만 실제적으로 미디안 군대를 공격하여 친 것으로 더 좋았다고 치하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을 그대로 표현하여 에브라임 사람들의 노를 풀어주는 지혜를 발휘한 것입니다.

[4-9,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의 냉대와 조롱에 대한 기드온의 응징 선언]
기드온과 300용사는 피로에도 불구하고 요단을 건너 미디안 연합군을 추격하였습니다. 추격 중에 숙곳과 브느엘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해 달라고 도움을 청하였으나 냉대와 조롱을 당하며 거절당합니다. 기드온이 여호와께서 숙곳과 브누엘을 응징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5절, “숙곳”: 이 지명의 뜻은 ‘오두막’이라는 뜻으로 요단 동편에 있는 성읍으로서 출 12:37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를 건너기 전에 최초로 머물렀던 지명과 같은 지명의 호칭이지만, 전혀 다른 지역입니다. 요단 동편의 숙곳은 갓 지파의 영토로 분배된 땅으로(수 13:27-28) 얍복강 하류 주변, 그리고 요단 동쪽으로 약 5km 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Tell Deir Alla”로 추정됩니다. 갓 지파의 영토이기 때문에 기드온의 요청을 묵살한 숙곳 사람들은 원래부터 살던 이방 민족일수도 있고, 그 땅을 정복한 갓 지파 사람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6절,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본 절에는 “손”이라는 말이 두 번 사용되고 있으나, 히브리어 단어로는 서로 다른 단어입니다. 앞에 있는 세마와 살문나의 “손”(히, 카프)은 ‘손바닥’을 의미하고, 뒤에 있는 “손”(히, 야드)는 ‘손 전체’를 의미합니다. 즉 뒤에 있는 손이 앞에 있는 세바와 살문나의 손보다 더 광범위한 의미의 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네 손 안에 있다”라는 표현은 고대 근동 지방, 특히 우가릿어 문화권에서는 전쟁시에 대적자의 손을 자르거나, 죽은 자의 신체를 잘라 모으는 풍습으로 볼 때에는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란 그들의 죽음에 대한 상징이기도 합니다. 숙곳 사람들은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라고 비아냥 거리는 것은 세바와 살문나가 아직 죽지 않고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아무리 쫓아 간다 할지라도 보잘것없는 300명의 군사로 어떻게 세바와 살문나의 군대를 이길 수 있겠느냐는 조롱조의 말을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숙곳 사람들은 세바와 살문나의 군대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에 미디안 군대가 재정비하여 돌아올 때에 기드온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당하게 될 보복을 두려워했을 것이며, 그 이유로 음식 제공을 단호히 거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8절, “브누엘”: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의 브누엘은 창 32:30-31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야곱이 그의 형 에서를 만나기 전에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했던 장소입니다. 지리적으로는 숙곳에서 동쪽으로 약 9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오늘날은 얍복 강변의 ‘Tulul ed-Dahap’으로 추정합니다.

9절, “망대를 헐리라”: 요새나 성채에 높이 세워진 망대(혹은 망루)는 보초병들이 경계 근무를 서는 장소로서 적군이 쳐들어올 때 신속하고 빨리 발견할 수 있는 시설입니다. 즉 망대는 성내의 주민들에게 안전(평안, 살롬)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시설인데, 이 곳을 ‘헐어 버린다’라고 하였으므로 적이 코 앞에 와 있어도 잘 알아채지 못하도록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따라서 기드온은 도움의 요구를 묵살한 사람들의 망대를 헐어버림으로써 자신은 평안히 돌아오겠지만 그들에게서는 평안을 빼앗아 버린다고 선언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묵상 및 적용]
링컨 대통령 당시 유능한 국방 장관 스텐톤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텐톤은 성미가 아주 고약하여 대통령 링컨을 종종 곤경에 빠뜨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대통령의 명령을 가지고 간 특사 앞에서 그 명령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링컨을 바보 천지라고 놀려 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링컨은 화를 내기는커녕 스텐톤은 괴팍하지만 대개 옳은 말만 하기 때문에 그가 나를 바로 천지라고 했다면 그 말이 맞을 것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는 직접 스텐톤을 찾아가서 이번에는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링컨의 인품에 감명을 받은 스텐톤은 다시는 링컨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그의 충실한 파트너가 되었다는 일화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에브라임 지파가 기드온에게 찾아와 크게 항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3절에서는 분노하여 항변하는 에브라임 지파의 항변에 대처하는 기드온의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드온과 똑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사실 기드온은 사사로서 자신의 지도자적 권위에 도전해 오는 에브라임 지파를 용납하지 않고 저들의 시비를 반박하려고 했다면 충분히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함께 하셨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말씀하셨고, 진행하도록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그대로 따라 행한 기드온이 대처가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각도로 보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한 기드온에게 항변한다는 것은 에브라임 지파의 항변이 기드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항변하는 것으로도 비추어지기 때문에 충분히 에브라임의 태도를 지적하고 반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분노에 대해서 분노로 대처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기드온이 대처하였는지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기드온의 대처는 자기보다 상대를 높이는 것이었으며, 그 태도는 상대방의 분노를 굴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바로 겸손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들 앞에 서기를 더욱 기뻐하십니다. 빌립보서 2:3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말하면서 분노한 자나 다투려고 하는 자에 대해서 똑같이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낫게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힘과 권력을 통한 굴복시킴이 아니라, 상대를 높이는 겸손의 태도가 분노를 잠재우며,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잠언 29:22-23에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기드온의 대처는 유순한 말을 통해서 분노를 그치게 한 지혜였습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므낫세 지파에게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우두머리라고 생각했던 자부심에 금이 간 에브라임 지파는 가나안 정복 전쟁의 영웅적 지도자 여호수아의 지파입니다. 무언가 주도권을 빼앗긴 것처럼 느껴진 그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분노를 3절에 기드온이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과 비교되겠느냐”라고 말하여 그들의 노여움을 순식간에 풀어줍니다. 참으로 유순하고 겸손한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분노라는 것은 나를 알아주지 않는 데서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분노들을 보십시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무시하는 데서 오는 분노, 아무도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데서 오는 분노, 나보다 못한 사람이 승진하고 나는 그렇지 못한 것에서 오는 분노, 나보다 못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잘 사는 것에 대한 시기적 분노, 동료간의 시기에서 오는 분노, 나의 감정과 상황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 나의 가치를 타인에게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 생기는 분노 등등. 세상에서 분노가 얼마나 많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런 분노는 감정의 폭발이기에 그 표출이 항상 강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강렬한 감정의 표출과 물리적인 행사로 이어지는 분노를 똑 같은 격한 감정으로 대응하면 둘 다 상처를 입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15:1에서는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잠 25:15에서는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강한 대응보다는 유순한 말, 부드러운 대응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처음 사사로 부르심을 받을 때 기드온의 모습은 겁이 많은 것 같고, 소심해 보이고, 부르심에 대해 의심이 많아 하나님께 표적을 요구하는 등등 불안한 모습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소심한 듯, 약한 듯 보이는 기드온의 성품에서 훌륭한 점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심성과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겸손한 태도와 유순한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기드온의 겸손의 태도와 유순한 말의 지혜는 바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는 또한 예수님께서도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주님도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했으며, 또한 주의 부드러운 위로의 말씀으로 상처받은 영혼들의 심금을 울리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참 평안을 세상에 보여주셨으며,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8-19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다투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상에 주님이 이루신 평안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받았으니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기드온의 태도를 귀중한 지침으로 삼아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과 유순한 말로 그리스도인이 가는 곳마다 다툼을 화목으로 바꾸는 역사를 일으킬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 하루도 주와 함께 동행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어제도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을 감사하게 하시고 내일을 기대하며 감사할 수 있게 하옵소서. 나의 나 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하옵소서. 주께서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셔서 희생하시고 헌신하시고 생명까지 내어 주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원하는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도를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연약한 자에게 힘을 주시고, 병든 자를 치료하시고 위로하시며, 두려움과 불안에 처해 있는 자에게 담대한 믿음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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