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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묵상 8/3/2021 화요일 [사사기 1장 1-10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8-03 09:08
조회
122

8. 3. 화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예수 나를 위하여”: https://youtu.be/ZFzEvROLo3s

[본문: 사사기 1:1-10]
1.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3.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4.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5.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6.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7.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8.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9.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10.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본문이해]
사사기의 목적을 생명의 삶 해설편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왕정 시대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이스라엘의 패역함을 대조하기 위해 쓰였다. 하나님이 사사를 통해 구원을 베푸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와 부도덕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진다. 이러한 사실은 사사를 뛰어넘는 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더 나아가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게 한다”(생명의 삶, 22p).

“사사”라는 말은 히브리 성경의 “쇼페팀”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사사(쇼페팀, 영어 Judge)은 여호수아 죽음 이후(BC 1390)부터 사무엘 시대의 사울 왕의 즉위(BC 1050)까지 약 350년간 이스라엘의 군사와 사법권을 가진 이스라엘의 지도자을 지칭합니다. 사사기의 저자에 대해서 유대의 탈무드는 사무엘을 저자로 지목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혹은 그의 선지 생도들 중 한 명이 기록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따름입니다.

사사기에는 인간 타락이 패던(Pattern)의 양상으로 등장하는데, 곧 범죄(Sin)-징계(Chastisement)-회개(Repentacne)-구원(Deliverance)-망각(Forgetting)-재범죄(Sin Again)의 양상이 순환적 주기로 반복되면서 점점 심해지는 하향식 나선(Downward Spiral) 패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순환적 타락의 양상의 이유를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걸었던 배교의 길과 그 결과 찾아온 종교적, 도덕적 타락, 그리고 무정부 상태의 혼란 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사사기에 등장하는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라는 문구가 삿 17:6, 18:1, 19:1, 21:25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외적으로부터의 압제, 공동체의 분열, 종교적 혼란과 도덕적 타락의 모든 문제의 이슈를 “왕이 없으므로”라는 말로 함축하여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구는 타락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에는 왕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으로 귀결되도록 이끌어 갑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나라의 왕의 통치에 대해서는 이미 신명기 17:14-20에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취하는 정치 체제로의 왕의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적 군주제(Theocratic Monarchy)를 제시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사기에서는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정 군주제 보다는 세상과 같은 왕을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과정과 그 결과로 인해 혼란과 부패가 가중되고, 그 이유의 근본적인 원인이 이스라엘에게 왕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왕이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3, 여호수아 사후 정복전쟁의 선두에 선 유다지파]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각 지파들은 정복전쟁을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어느 지파가 먼저 정복 전쟁에 나서야 할 것인가를 여호와 하나님게 묻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를 지명하시고 승리를 약속합니다. 유다 지파가 시므온 지파에게 상호 협력할 것을 제안하고 시므온 지파가 그 제안을 수락하여 함께 싸우러 갑니다.

1절,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역사를 따르면 사울이 왕이 된 시기가 BC 1050년경이므로 사사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여호수아가 죽은 시기를 산출하면 대략 BC 1390년경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죽음은 개인의 죽음이란 차원을 넘어서 이제 앞으로 가나안 본토에서 펼쳐질 사사시대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역할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의 주요 거점은 이미 여호수아의 주도하에 이스라엘에게 정복된 상태이며, 또한 각 지파에게 분배된 상태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 자기 지파에게 분배된 땅 안에 남아 있는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몰아내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1절,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왜 이런 질문을 여호와께 물었는지 생각해 보면 가나안 정복 전쟁의 전략에 변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복 초기에는 여호수아의 명령에 의해 전 지파가 한꺼번에 같이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는 함께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파별로 해야 하기 때문에 만약 첫번째 정복 전쟁을 수행하는 지파의 승리는 나머지 지파들에게 자신감과 용기, 승리에 대한 믿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 곳에 모여서 이제 어느 지파가 제일 먼저 자기 지파 땅을 얻기 위한 정복 전쟁을 하러 올라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물었던 것입니다.

2절,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유다 지파를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유는 민수기 26:22에 의하면 유다 지파는 지파들 중에서 가장 수적으로 제일 많은 지파였습니다. 그 의미는 가장 군사적으로도 강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앙적으로 보면 유다 지파는 창세기 49:10에 의하면 야곱의 축복 속에서 왕권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홀’이 거하는 지파이며 가나안 땅 정탐 후 긍정적인 믿음의 보고를 한 갈렙이 족장으로 있었던 이스라엘의 대표 지파였기 때문입니다.

3절,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유다 지파가 시므온 지파에게 함께 싸우자며 동행할 것을 권면한 이유는 시므온 지파의 기업이 유다 지파의 기업 안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19장 1-9절에 보면 1절에 “므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들의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라”라고, 9절에 “시므온 자손의 이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 취하였으니 이는 유다 자손의 분깃이 자기들에게 너무 많으므로 시므온 자손이 자기의 기업을 그들의 기업 중에서 받음이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4-10, 유다 지파의 정복전쟁]
유다 지파가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의 약속을 믿고 베섹에서 가나안과 브리스 사람을 치고, 또한 베섹의 왕 아도니 베섹을 죽여 베섹을 정복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유다 산지와 남방의 평지에 거한 가나안 사람과 싸워 헤브론을 정복하고 아낙 자손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여 승리합니다.

4절,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 가나안 사람을 말할 때에 1절에 등장하는 가나안 사람은 ‘가나안 땅’의 모든 족속들을 대표해서 말할 때의 가나안 사람이지만, 4절의 가나안 사람은 유다 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땅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들 중의 한 족속으로 지중해 해변 지역과 분배된 평원 지역에 거하는 족속을 가리킵니다. 브리스 사람은 가나안 땅의 남부 평원 지방에 거주하던 족속입니다.

4절, “베섹”: 베섹 땅은 그 위치가 분명하지 않지만, 삼상 11:8에서 사울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암몬과 전투를 하기 위해 이스라엘 자손을 모았던 베섹 지역과 동일한 곳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5절, “아도니 베섹”: 이 말은 이름을 말하는 고유명사이기 보다는 일반 명사로 직책을 나타내는 호칭이라는 견해로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도니”는 히브리어로 “주(Lord)”라는 뜻이며, “베섹”은 지역의 이름이므로 직역하면 “베섹의 주”, 즉 베섹 지역을 통치하는 군주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6절,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고대 근동 아시아의 전쟁에서 엄지 손가락을 자르는 것은 무기를 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며, 엄지 발가락을 자르는 것은 빠르게 달릴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조치를 통해 적장의 무능력을 나타내며, 체통을 유지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승리를 선언하게 되는 것입니다.

7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본 문구의 아도니 베섹의 자조적인 독백은 하나님이 가나안 사람들을 멸하시고 가나안 땅에서 쫓아내시는 또 다른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해서 뿐 아니라, 그들의 죄악에 대해 심판하시기 위해 그들을 멸망시키시는 것입니다. 70명의 왕들의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어서 자신 앞에서 굴복시키고 모욕감을 주었던 아도니 베섹은 잔인한 군주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야만적이고 비인격적인 정복과 통치에 대해서 악한 아도니 베섹을 유다 지파를 통해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아도니 베섹의 자족 섞인 독백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갚읗신다”라는 표현으로 행한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보응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8절,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한글 성경의 뉘앙스는 단순히 유다 지파가 예루살렘 원주민인 여부스 족속을 공격해서 승리한 것처럼 표현되어 있지만, 히브리 성경의 “쳐서”를 의미하는 “와일라하무”라는 동사는 “누구 누구와 함께 치열하게 전투를 하다”를 의미하는 진행형의 동사로서 단순히 예루살렘을 쳤다는 결과적 의미가 아니라, 치열하게 피튀기는 전투를 해서 성을 취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10:3-27, 12:10에 의하면 가나안 땅에 들어 왔을 때에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여부스 왕을 죽였지만, 그 승리 후에 여호수아 15:63에 의하면 기업을 분배받은 이후에 유다 자손이 여부스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하여 그들과 함께 거주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 삿 1:8에 예루살렘을 쳐서 정복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삿 21장에 베냐민 지파가 예루살렘에 거하는 여부스 사람들을 또다시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족속은 강하여 유다 지파와 베냐민 두 지파의 기업으로 남북으로 갈라져 주어졌지만(수 15:8, 18:16), 완전히 정복되지 못하여 유다와 베냐민 지파와 함께 거주하게 됩니다. 훗날 통일 왕국 시대인 다윗 때에 비로소 완벽하게 정복됩니다(삼하 5:6-9).

9절, “산지와 남방과 평지”: 산지는 사해 서쪽에 있는 예루살렘에서부터 헤브론에 이르는 긴 산악 지대를 말합니다. 그리고 남방은 히브리 원어성경에는 “웨한네게브”라고 표현되어 ‘네게브’라고도 불리우며 유다 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가나안 땅의 남쪽 사막 지역으로 시글락, 브엘세바 등이 속한 지역을 가리키는 곳입니다. 평지는 유다 지파가 분배 받는 지역으로 볼 때에 지중해 연안과 산지 사이에 위치한 저지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도로 보면 쉽게 이해되겠지만, 말씀묵상의 자료가 글로 소개되어 한계가 있습니다)

10절,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 본절에 등장하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은 여호수아 15장 14-19절의 내용을 참조하면 중복되는 내용입니다. “세새”는 ‘흰 대리석’이라는 뜻이며, “아히만”은 ‘만의 형제’라는 뜻이며, “달매”는 ‘밭의 고랑’이라는 뜻으로 이들은 모두 과거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들이 헤브론에서 본 아낙 자손들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던 족속의 인물들입니다.

10절,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 본 문구의 “본 이름”이라는 표현에서 “본(히, 레파님)”이라는 뜻은 “앞의, 이전의”라는 뜻으로서 헤브로의 이전 이름이 “기럇 아르바”라는 의미입니다. “기럇”은 ‘마을, 성읍’이라는 뜻이며, “아르바”는 ‘넷, 네개’라는 숫자를 나타내므로 직역하면 “네개로 된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헤브론(예전 이름 기럇 아르바)은 아마도 네개의 마을로 된 연합 공동체로 존재했음을 반영하는 이름이라 추정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헤브론”의 이름은 “결합”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네 개의 마을로 된 공동체가 하나로 연합하여 한 성읍을 만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헤브론 땅은 사해 서쪽과 유다 지역의 남쪽의 산악 지대 곧 해발 약 993m의 고지대에 위치한 성읍으로 예루살렘에서 약 30km 떨어져 있으며, 후에 다윗이 유다의 왕으로 등극한 도시이기도 합니다(삼하 5:1-5).

[묵상 및 적용]
오늘의 본문은 사사기의 서론 부분에 해당하는 3장 6절까지의 내용 중에서 그 일부분이므로 본문 만으로 말씀을 묵상하기에는 제한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문에 기록된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의 연합 작전이 ‘완전한 승리’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사기는 잡다한 여러 이야기들을 단순하게 모은 책이 아니라, 저자가 일관된 주제와 관점으로 과거를 회상하면서 쓴 역사 기록이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을 끊어서 묵상하여 결론을 지어 버리면 다른 부분에서는 정반대의 행동과 결과들이 등장하여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사건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사사기의 각 일화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하나님의 징계-이스라엘 민족의 회개-하나님의 구원과 일시적인 평화-또 다시 하나님의 구원을 잊고 망각한 이스라엘 백성-그리고 반복되는 재범죄”로 반복되는 패턴의 양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승리를 했는가 하면 어느 시점에 가서 승리했던 이유를 잊어 버리고 타락하는 상반되는 행동을 보여 주곤 합니다.

그러므로 사사기는 이러한 패턴과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과 손길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불완전한 가나안 정복과 신앙의 변질을 총체적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본문처럼 부분적인 본문으로 유다 지파의 승리를 무작정 ‘완전한 승리’로 선언하고 축하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 1절에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라는 이스라엘 자손의 질문은 훗날 사사기 20장 18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라고 같은 뉘앙스로 반복됩니다. 사사기의 서론의 첫절에 등장하는 문구와 사사기의 종결부에 해당하는 시작 부분에 똑같은 뉘앙스가 반복된다는 것은 묵상의 여지가 많은 부분입니다.

다른 차이점이 있다면 싸우는 대상이 사사기 1장에서는 가나안 사람들이지만, 사사기 20장에서는 같은 동족인 베냐민 지파입니다. 각각의 두 질문의 답변은 ‘유다지파’로 동일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또 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사사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승리를 보장해 주시지만, 같은 동족과 싸움을 앞두고 한 사사기 20장의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은 유다 지파를 보내라고 하지만, 승리에 대해서 어떤 보장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결과 사사기 1장에서는 유다 지파가 큰 승리를 거둔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사사기 20장에서는 동족 상잔의 비극의 전쟁인 베냐민 지파와의 싸움에서 유다 지파는 전력상 큰 우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번에 걸쳐 크게 패배하고 많은 사상자를 내는 뜻밖의 결과를 낳습니다.

이처럼 사사기의 역사적 사건들은 한 이면만으로 볼 수 없고, 전체적인 역사의 과정 속에서 교훈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묵상해야 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즉 승리에서 패배로 흘러가는 암울한 양상으로 바뀌는 변화 속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를 읽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사기 1장 1-10절의 오늘의 말씀 본문 속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말씀묵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사기 말씀묵상을 하면서 이러한 사사기 전체에 흐르는 맥락을 이해하면서 말씀묵상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위의 내용들을 적었습니다.

따라서 사사기는 “사사시대의 역사는 왜 그렇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21세기 초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타락한 시대의 역사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도록 요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태초 아담의 선악과 범죄 이후에 거듭 계속되어 온 인류의 범죄, 그리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사람의 회개, 또한 회개한 후에 다시금 옛 사람으로 돌아가서 은혜와 사랑을 잊고 또 다시 죄의 길에 들어서서 재범죄로 이어지는 인류와 인간 개개인의 면모를 보면서 우리 스스로의 영적 현실에 ‘아, 죄인이구나!”라는 자조적인 한탄과 부끄러움을 안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용서는 어디까지인가? 부족한 죄인인 우리에게 축복과 평화는 가능한가?’ 등등의 물음을 깊은 말씀묵상으로 연결하기를 바랍니다.

망각과 타락으로 점철되어 이 시대가 점점 말세의 징조들로 가득해 가는 현실을 바라 보면서 우리 시대 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바람직한 삶의 원형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구원과 자비의 영원한 가능성을 소망하면서 오늘도, 내일도 실존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예수님! 주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해 주셨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쉽게 잊어 버리고, 망각하여 옛 사람으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2000년 전에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유대인들을 더 이상 비난 할 수 없습니다. 2021년도에는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악한 길에 서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될 때가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 나의 죄를 씻어 주시며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사시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우상숭배와 죄의 길에 빠졌던 것을 교훈으로 삼아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죄의 길에 서거나, 사단의 유혹에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이기게 하시고 사단의 궤계를 물리치고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언하게 하옵소서. 우리 죄를 담당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리를 선언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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