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6/30/2021 수요일 [출애굽기 32:25-35]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6-30 09:14
조회
48

6. 30. 수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은혜-레위지파”: https://youtu.be/1ar-jngBiH4

[본문: 출애굽기 32:25-35]
25.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26.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27.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28.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29.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30.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3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34.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35.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본문이해]
[25-29, 여호와의 편에 선 레위인들의 응징]
이스라엘 백성들의 방자함이 아론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깨달은 모세는 여호와의 편에 서 있는 자들은 자신에게로 나오라 명합니다. 그러자 레위 자손 중에서 우상 숭배에 가담하지 않은 자들이 모세에게로 나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서 반역한 백성들을 칼로 죽이라고 하신 명령을 레위인들에게 밝히고,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우상 숭배의 죄를 저지른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을 죽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여호와이 편에서 동족을 응징한 레위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25절, “방자하니”: 이 단어의 히브리어 “파루아’는 ‘풀다, 해방하다, 면제하다, 고삐를 풀다, 벌거벗다’ 등의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번역성경들도 다른 뉘앙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며 NIV는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get out of control)’라는 의미로 번역하며, RSV 영어성경은 ‘해이해져서(break loose)’라고 번역하며, KJV은 ‘벌거벗은(were naked)’이라고 번역하며, 공동번역은 ‘우상을 섬기며 굴레 벗은 말처럼 멋대로 날뛰며’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번역들은 모두 금송아지 숭배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문란하게 광란의 축제를 벌였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5절,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 “조롱거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쉬므차”는 ‘재잘거리다’라는 의미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며, 제사를 드리기 위해 애굽에서 나왔는데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고 이방 우상인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하나님처럼 섬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스라엘을 대적하던 주위의 이방 나라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 때문입니다.

28절, “삼천 명 가량”: 레위인의 손에 응징을 당한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우상 숭배의 사건이 기록된 문맥을 고려해 볼 때에 백성들 거의 대부분이 우상 숭배에 참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소수이거나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을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처음부터 우상숭배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우상 숭배에 참여한 후에 회개한 사람, 그리고 회개하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약 3천여 명만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은 볼 때에 이들은 적극적으로 백성들을 유혹하여 범죄케 했던 자들이거나, 또는 모세의 책망 후에도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이라고 생각됩니다.

29절,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본 절의 “헌신하다”의 의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헌신하다( dedicate, serve, devote)’의 의미가 아니라, 한글 성경이 의역한 것입니다. 본 절에 ‘헌신하다’라고 쓰인 히브리어 “밀레”는 공간적 의미로는 “풍만하다, 가득 채우다’라는 의미이며, 시간적 의미로는 ‘기간이 다 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이 말의 의미는 어떤 충만한 상태, 혹은 모든 사건이 완료된 상태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말씀대로 조금의 부족함이나 부정한 것이 침입할 틈이 없이 ‘가득 채워 임무를 해내다’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성경 KJV은 부정한 것이 없이 레위인들이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세의 명령을 완전하게 이행하므로 ‘(자신들을) 거룩하게 구별하다, 신성시하다, 바치다’라는 의미의 ‘Consecrate’라는 말로 번역하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의미의 ‘헌신’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30-35, 모세의 두번째 중보기도와 하나님의 답변]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 여호와께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사죄의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백성이 우상 숭배의 큰 죄를 범하였음을 고백하며 주의 긍휼을 의지하여 자신의 이름을 주의 책에서 지워 달라고까지 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여호와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모세에게 당신의 사자를 앞서 보내실 것이니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언젠가 보응의 날에 우상 숭배의 죄값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을 경고하십니다.

32절, “주께서 기록하신 책”: 성경에서 ‘하나님의 책’에 대한 묘사는 출애굽기에 처음 등장하지만 성경에 종종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시편 56:8에도 “주의 책”, 계 20:12 ‘생명 책’이라 표현되어 있으며, 이는 인간의 죽고 사는 문제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말해 줍니다.

34절, “내가 보응하는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이 문구에 담겨있는 의미는 ‘죄를 지은 자는 누구든지 용서받을 수 없다’라는 의미도 있고, 또한 ‘누구든지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대신 형벌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며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생명조차도 아낌없이 포기하려는 희생적인 사람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인류 대속 사역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죄사함을 받은 인간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긍휼로 속죄함을 받을 뿐 다른 사람의 징벌이나 죄사함에 관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였어도 모세의 힘으로 백성의 죄의 책임에 따른 징계까지 바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문에서 ‘보응하다’라는 말의 히브리어 ‘파카드’는 ‘때리다, 계수하다’라는 의미로서 비록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겠다는 언약은 계속 지키시지만, 그들의 징계에 대해서 언젠가 직접 찾아와 계산하시고 보응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면 용서는 받지만 벌까지 완전히 없어진다고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묵상 및 적용]
오늘의 본문 말씀 중에서 27-28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라는 말씀은 정말 가슴 아픈 말씀의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죽이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정말 상상하기도 힘들만큼 끔찍하고 몸서리쳐지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레위인들의 칼에 죽임을 당하는 자들은 한때 그들의 친구요, 이웃이요, 형제였기 때문입니다. 죽이는 레위인의 입장에서도, 그리고 죽임을 당하는 자들의 입장에서도 끔찍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같은 민족이나 혈족을 죽이는 동족상잔(同族相殘) 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나님이 왜 하필 그런 명령을 내리셨을까라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모세의 명령이나 레위인들의 행동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시지는 않는가요? 동족상잔 보다는 그냥 ‘다른 심판으로 징계하시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런데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역사적인 예를 조금만 들추어 보면 인류가 같은 민족이나 혈족에게 행했던 악행이나 전쟁이나 살륙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인류는 자신들의 이익이나 이데올로기, 또는 상황에 따라 형제나, 친구나, 이웃을 서슴없이 죽여왔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서 인간이 그런 악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연한듯이 레위인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신 이유는 죄에 대한 징계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 형제와 이웃과 이웃을 서로 미워하는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내린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레위기 19:17-18에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처럼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죽이라고 명령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한 결단과 헌신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에는 생명과 함께 하나님의 단호한 심판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예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가족과 결별하는 아픔까지도 감수해야 했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이방인인 자신의 처와 또 그 사이에서 난 자식들을 스스로 내어 쫓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에스라 10:3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라고 울부짖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에스라 10:20-44절까지는 이 가슴 아픈 참담한 일에 동참하는 자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자식을 낳아 기르고 함께 살아온 아내와 자식들을 신앙 때문에 쫓아 보내야 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참 회개하고자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물을 머금고 가슴을 쥐여 잡으며 수행합니다. 이처럼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미국 땅은 이처럼 참담한 일을 겪지 않지만, 지금도 이 지구상에는 신앙 때문에 이에 준하는 참담한 상황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더더욱 신앙을 지키는 그 무게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신앙 때문에 가족과 소원해진 성도들, 절친한 친구와 헤어진 성도들, 박해를 겪는 성도들, 눈물로 매일 매일 침상을 적시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성도들이 우리 주변에는 있습니다. 그들에게 괴로움이나 고통이나 어려운 상황 보다 더 소중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무엇으로도 꺾일 수 없는 신앙의 절개를 지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결별이냐? 내가 알고 있는 사람과의 결별이냐? 이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 신앙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참담한 결정을 하거나, 그러한 상황에 이르기 전에 우리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그것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그리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편에 서면 은혜가 있고, 관계가 회복되며,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의 편에 선 자들은 레위인들입니다. 그런데 레위 지파가 흠이 없고 완벽한 지파는 아니었습니다. 야곱의 아들 레위는 여동생 디나의 복수를 위해 세겜 성의 남자들을 도륙함으로 야곱은 예언을 통해 ‘분노와 혈기로 사람을 죽였으므로 레위 자손을 이스라엘 중에 흩으리라’(창 49:5-7)라는 말을 들었던 지파입니다. 야곱의 예언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러나 여호와의 편에 섰을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이 있다면 회개하고 현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편에 서서 죄를 배격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바로 ‘복음’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결별과 사람과의 결별의 문제에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성도의 사명은 형제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요, 반드시 해야 하는 소명이요, 사명인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약속하기를 에스겔 18:21-22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회개하여 여호와의 편에 서게 되면 ‘반드시 산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과거의 죄악을 하나도 기억하지 않도록 용서해 주시며, 그가 행한 ‘공의’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때의 공의는 선한 일을 많이 한 ‘의’라기 보다는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믿는’ 그 자체가 ‘의로움’이요 ‘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이 있고, 피할 길이 있으며, 선함과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 형제나, 가족이나, 이웃들 중에는 여전히 하나님과 결별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호와의 심판의 칼이 임하기 전에, 또는 오늘 본문의 레위인처럼 자기의 칼로 징계하는 가슴 아픈 일을 행하는 때가 이르기 전에 포기하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설령 그 응답이 내가 살아 있을 때에 이루어지지 않더라고 이 땅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전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6월의 마지막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어떤 삶을 살며, 내가 만나는 형제와 친구와 이웃들에게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믿기에 지금 이렇게 기도를 드립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죄인을 자녀로 삼아 주시고 악하고 추한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고 용서해 주옵소서. 주여! 나의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가진 어떤 것으로도, 어떤 수고나 노력으로도 그들의 죄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주님은 하실 수 있사오니 그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죄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회개하고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여호와의 긴 팔로 이끌어 주옵소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저의 형제와 친구와 이웃들에게도 베풀어 주옵소서. 부족한 저를 사용하셔서 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일에 복음의 증거자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죄인을 위해 구원의 생명을 베풀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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