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6/29/2021 화요일 [출애굽기 32:15-24]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6-29 09:06
조회
56

6. 29. 화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Broken Vessels(깨어진 그릇들)”: https://youtu.be/C2LxGOEQfnM

[본문: 출애굽기 32:15-24]
15.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16.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17.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18.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19.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20.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
21.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22.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23.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본문이해]
[15-20, 십계명을 들고 하산하는 모세]
40일만에 모세가 하나님이 친히 만들어 판에 새겨서 주신 두 증거판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 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싸우는 소리가 아닌가 우려하여 말했지만, 모세는 그 소리가 우상 숭배하는 가무의 소리인 줄 알아차립니다. 모세가 우상숭배 현장을 목격하고 크게 노하여 두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립니다. 모세는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금송아지를 불살라 부수어 그 가루를 물에 타서 백성들에게 마시게 합니다.

18절, “부르짖는”: 이 단어의 히브리어 “아노트”는 ‘부르짖다’라는 말이 히브리 성경에는 2번 사용되어 있습니다. 즉 직역하면 “승전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라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부르짖다”라는 청각적 이미지의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사롭지 않은 큰 소리를 의미하는 말로 볼 수 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면서 감정이 극도로 고조되어 괴성을 질렀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며, 이스라엘 진중이 매우 소란스러웠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9절, “춤 추는 것들”: 이 문구의 히브리어 직역은 “춤들”이란 뜻입니다. 한글 성경의 표현은 ‘춤 추는 사람들’이란 표현이지만, 히브리 성경의 ‘춤들’이란 뉘앙스는 여러 종류의 다양한 춤들이 보여지고 있었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한글성경은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히브리성경은 춤의 종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히브리 성경의 뉘앙스를 참조해 본다면 고대 근동 지방의 우상들은 대부분 풍요와 다산을 기원으로 하여 숭배되어 졌으므로 우상에게 제사를 드릴 때 음란한 성적 요소들이 가미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모세가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앞에서의 춤도 이러한 이방 신에게 제사할 때의 음란하고 광란적인 집단 군무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20절, “마시게 하니라”: ‘물을 마시다’라는 동사의 표현들 중에서 특히 본절의 “와야쉬크”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몇 가지 특별한 상황과 관련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민수기 5:24에서는 간음한 여자가 마시면 그 배에 들어가 그 여자를 괴롭히게 하는 저주의 물을 마시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으며, 시편 80:5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 가운데 있는 자들의 상황을 ‘눈물을 마시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그리고 예레미야 8:14에서는 하나님께서 멸망으로 이끄시는 것을 ‘독한 물을 마시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용례들을 미루어 볼 때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을 불로 녹여서 만든 가루를 섞은 물을 마시게 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가 저주와 고난과 멸망을 가져다 주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며 우상의 허망함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물을 접하고 그들의 영적 무지와 더불어 죄악이 가져다 주는 고통과 저주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21-24, 우상숭배 현장을 목격한 모세의 분노와 아론의 변명]
모세가 아론에게 백성들이 우상숭배의 중죄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 책임을 추궁합니다. 아론이 백성들의 본성이 악하다고 핑게를 대면 그들이 먼저 우상 제작을 요구했다고 말하며 자신은 단지 금만 수집했을 뿐이며, 금송아지도 불에서 저절로 나온 것처럼 번명합니다.

21절,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히브리어 성경의 의미는 백성들로 하여금 ‘큰 죄에 들어가게 하였느냐’라는 의미입니다. 즉 ‘빠진다’라는 말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렇게 될 수 있는 뉘앙스가 있지만, ‘들어간다’라는 말은 본인의 주관적인 의사가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백성들로 하여금 죄로 들어가게 만든 자가 바로 아론임을 강력하게 추궁하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실레조 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에 있어서 원인 제공자가 아론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 입니다. 그리고 아론은 단지 우상을 만들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에 수동적으로 응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이 범죄를 앞서 이끈 자로 아론을 질책하고 있습니다.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야 할 사명을 가진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21절, “큰 죄”: 죄를 의미하는 “하타아”는 ‘표적을 놓치다, 길을 잃어버리다’라는 뜻으로 실패의 개념을 함축하고 있는 말로서 구약 성경에 8회만 언급되어 있는데 특히 우상숭배의 죄를 가리키는 데 주로 사용되었습니다(출 32:30, 31, 왕하 17:21, 시 32:1). 이러한 단어 선택으로 보아 우상 숭배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죄보다 큰 죄악임을 알 수 있습니다.

24절,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우상 숭배의 제작 과정을 가볍게 설명하는 아론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구절입니다. 출 32:4에 의하면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며, 조각칼로 새기며 시간과 정성을 기울인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 절에서는 단지 금을 불에 던지기만 했는데 금송아지 우상이 스스로 나온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론의 답변을 볼 때에 우상을 만든 것에 대해서 스스로 중요하지 않고 가볍게 생각했거나, 또는 모세에게 궤변을 늘어 놓으며 책임 추궁의 핵심을 피하고자 했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아론의 답변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죄의 책임을 백성들이나 주변의 상황으로 돌리고 있는 변명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잘못을 백성들에게 전가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묵상 및 적용]
하나님께서 기록해 주신 십계명 돌판을 가지고 서둘러 하산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증스런 우상 숭배의 현장을 목격하고 크게 분노하여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금송아지를 불살라 부수어 그 가루를 만든 다음 그것을 백성들로 하여금 물에 타 마시게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진노하는 모세의 모습은 조금 전 하나님께서 목이 곧은 이 백성을 심판하신다고 했을 때에 그가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매우 상반된 모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행동에 좋은 과정에 따르는 결과는 중요합니다만, 결과적으로 보면 모세의 분노는 인간적인 감정의 분노라기 보다는 우상 숭배의 허무함과 그 죄악됨을 백성들에게 뼈저리게 가르치는 분노가 되었음을 성경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부터 시내 산에 이르기까지 온갖 위험과 고난의 상황에서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분명하게 알고 있는 모세는 백성들의 죄악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의 행동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여 멸망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모세가 들고 있는 돌판에는 우상 숭배를 단죄하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즉 우상을 만들어 섬기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삼, 사대에 이르게 한다는 제 2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라는 계명입니다. 따라서 이 계명대로 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장에 큰 화를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모세의 행동과 금송아지의 가루를 먹게하는 일련의 조치들은 자기 백성이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를 명문화한 두 돌판을 깨뜨린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이 ‘무효화’되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만약 돌판이 깨뜨려지지 않고 그대로 적용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에 의해 정죄되어 진멸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정죄와 그로 인한 공의의 심판을 면하게 하기 위한 행동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성경에서 엿본다면, 하나님께서는 훗날 모세의 돌판 파쇄 사건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후에 다시 만들어 주시는 것을 볼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모세의 행동을 인정하셨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행동에 대한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배려와 은혜와 사랑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상숭배의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 모세의 분노와 하나님이 친히 만들어 주신 돌판을 던져 깨뜨린 사건, 그리고 금가루를 먹게 하고 이후에 따르는 일련의 조치들에 따른 상황 속에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모세의 행동에 대해서나, 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죄악에 대해서 추궁하시거나 정죄하실 수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레위 자손이 모세의 명에 따라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의 중함을 따라 충분히 책임을 추궁하시고, 백성들을 진멸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악한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히려 멸망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없으면 인간은 자신들의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모두 진멸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긍휼과 사랑을 베풀지 않으신다면 이 땅의 모든 인류는 현재 진행 중인 죄의 결과로 인하여 마치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또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들처럼 멸망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멸망시키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이겠습니까? 공기 중에서 산소의 양을 조금만 제하여도, 혹은 지구의 궤도를 조금만 수정하여도 인류 뿐만 아니라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는 존재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민족의 심판의 예언메세지를 아는 와중에도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라고 예레미야 애가 3장 22-23에 고백하였던 것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었다면 단 일분 일초도 생존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인류인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좀 더 생존하고, 좀 더 편안해지고, 좀 더 누리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한지 모릅니다. 생존 경쟁의 테두리에서의 우리의 모습이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고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외면하는 모습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누구의 죄나 잘못이 더 큰지를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어떻게 보면 생뚱맞게도 보일지로 모르지만 모세의 행동과 백성들을 결국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것도 감사한데 ‘더, 더, 더’를 요구하거나 ‘지금보다 더 나아지도록’ 요구하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혹시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는가를 살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생명을 유지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는 너무나 욕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있는데도 은혜를 왜 주시지 않느냐고 하나님께 강청하는 욕심많은 존재들입니다. 이미 베풀어 주시고 있는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만을 요구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모세가 보이지 않는다고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감사를 발견하지 못하고,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사랑을 체감하지 못하는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작은 것에 감사하며, 생존함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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