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6/16/2021 수요일 [출애굽기 26:15-37]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6-16 09:24
조회
98

6. 16. 수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여호와의 유월절”: https://youtu.be/mH2qlcxclXI

[본문: 출애굽기 26:15-37]
15.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
16.각 판의 길이는 열 규빗, 너비는 한 규빗 반으로 하고
17.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결하게 하되 너는 성막 널판을 다 그와 같이 하라
18.너는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되 남쪽을 위하여 널판 스무 개를 만들고
19.스무 널판 아래에 은 받침 마흔 개를 만들지니 이쪽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고 저쪽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지며
20.성막 다른 쪽 곧 그 북쪽을 위하여도 널판 스무 개로 하고
21.은 받침 마흔 개를 이쪽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 저쪽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으로 하며
22.성막 뒤 곧 그 서쪽을 위하여는 널판 여섯 개를 만들고
23.성막 뒤 두 모퉁이 쪽을 위하여는 널판 두 개를 만들되
24.아래에서부터 위까지 각기 두 겹 두께로 하여 윗고리에 이르게 하고 두 모퉁이 쪽을 다 그리하며
25.그 여덟 널판에는 은 받침이 열여섯이니 이쪽 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요 저쪽 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니라
26.너는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지니 성막 이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요
27.성막 저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요 성막 뒤 곧 서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이며
28.널판 가운데에 있는 중간 띠는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고
29.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들의 띠를 꿸 금 고리를 만들고 그 띠를 금으로 싸라
30.너는 산에서 보인 양식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31.너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짜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 놓아서
32.금 갈고리를 네 기둥 위에 늘어뜨리되 그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 받침 위에 둘지며
33.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에 늘어뜨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놓으라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
34.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35.그 휘장 바깥 북쪽에 상을 놓고 남쪽에 등잔대를 놓아 상과 마주하게 할지며
36.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짜서 성막 문을 위하여 휘장을 만들고
37.그 휘장 문을 위하여 기둥 다섯을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지며 또 그 기둥을 위하여 받침 다섯 개를 놋으로 부어 만들지니라

[본문이해]
[15-25, 널판과 은받침의 제작을 알려 주심]
조각목으로 성막 본체의 골격을 이루는 널판을 만들라 하십니다. 널판은 높이 십규빗, 넓이 일규빗 반으로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널판끼리 연결시킵니다. 남쪽과 북쪽을 위해 각각 널판 20개, 서편을 위해서는 널판 6개, 성막 본체 뒤 두 모퉁이에는 널판 2개를 만들되 두겹 두께로 만들고, 각각의 널판에는 한 널판에 2개씩의 은받침을 만들라 하십니다.

17절,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결하게”: 본 절의 각 널판마다 두 개씩의 “촉”을 만들라고 하셨는데, 촉이란 은받침에 끼울 수 있도록 튀어나온 요철과 같은 것입니다. 반면에 은받침은 촉을 끼워야 하기 때문에 구멍이 나 있습니다. 혹자는 은받침이 땅에 묻혀 있다고도 말하지만, 출 38:27에 의하면 받침의 무게가 1달란트, 즉 약34kg에 달하므로 은받침에 단단하게 끼워진 성막 본체의 널판들은 아래로는 은받침에 옆으로는 널판들끼리 서로 연결되면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고 굳건하게 서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22절, “서쪽을 위하여는 널판 여섯개”: ‘서쪽’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얌마”의 직역은 ‘바다를 향하여”라는 의미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해가 지는 서쪽에 지중해 바다가 있었기 때문에 ‘서쪽’은 곧 ‘바다’를 의미하며 동일하게 사용했습니다. 성막의 출입문은 해가 뜨는 동편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서쪽은 자연스럽게 출입문의 반대편 위치입니다. 각 널판의 높이가 10규빗이고 넓이가 한 규빗 반이므로 6규빗은 총 9규빗(4.18m)이 됩니다. 그러나 북쪽과 남쪽에 있는 널판들이 서편에 있는 널판 뒤쪽으로 겹쳐 졌다고 본다면 외부에서 서쪽면을 볼 때는 그 길이가 더 길어져서 10규빗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왕상 6:20에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의 규모가 각각 20규빗 정육면체이므로, 성막도 정육면체일 가능성이 많다고 고려한다면 각각 10규빗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널판의 두께는 반 규빗인 22.8cm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23절, “두 모퉁이 쪽을 위하여는”: ‘모퉁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크초아”는 ‘구석, 모퉁이’라는 뜻으로 성막 서쪽의 양쪽 모퉁이를 가리킵니다. 이 부분은 남쪽 벽면과 북쪽 벽면이 만나므로 다른 부분에 비해 더욱 견고성이 요구되는 곳이기에 양쪽 모퉁이에 각각 널판 하나씩을 더 부착시켜 튼튼하게 한 것입니다(출 26:24). 그러므로 서쪽면에는 원래의 널판 여섯개와 모퉁이 쪽에 추가된 널판 두개로 총 8개의 널판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26-30, 널판을 안정시킬 띠의 제작양식]
남쪽, 서쪽, 북쪽에 각각 5개씩, 총 15개의 띠를 만들어 널판들을 연결하여 안정시키도록 조각목으로 만들라 하십니다. 널판과 띠는 모두 금으로 싸고 널판에 띠를 꿰 수 있도록 금 고리를 만들라 하십니다. 성막의 외형을 형성시키는 널판은 하나 하나를 서로 일치시켜 연결하고, 또한 띠로 고정하기 때문에 매우 견고하여 사막의 강풍도 견딜 수 있었을 것입니다.

26절, “띠”: 히브리어 “베리힘”은 ‘막대기’란 뜻 외에 ‘문을 잠그는 빗장’이란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를 ‘가로대’로 번여하고, 공동번역은 가로지른 물건이란 의미로 ‘가로다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세로로 세워진 널판들을 고리를 만들어 가로로 연결해 주는 것입니다. 이 띠의 용도는 성막의 몸체를 구성하는 널판과 널판들을 서로 밀착시켜 빈틈이 없게 하고 단단하게 고정시켜 성막을 튼튼하게 서 있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28절, “중간띠는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고”: 남쪽, 서쪽, 북쪽의 각 방위의 각각 5개의 띠들 중에서 중간에 있는 띠는 중간에 끊어진 부분이 없이 하나의 막대기 띠로 연결하라는 것입니다. 성막의 출입문이 있는 동쪽을 제외하고 삼면이 모두 이런 방식으로 띠를 둘러 고정해야 하므로 성막 본체는 각각의 널판이 은받침에 세워져 견고하지만, 이와 같이 중간에 띠로 연결하므로 한 몸체처럼 더욱 견고할 수 있는 것입니다.

30절, “보인 양식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을 성막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이미 모세를 통해 모양으로나 말씀으로나 그 상세한 내용과 계획을 다 알려 주시고 보여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글로 표현된 말씀을 근거로 해서 성막의 모양과 크기와 세워진 상태를 가상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모세는 하나님께서 말과 보여주심으로 더 구체적으로 성막의 조감도를 예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31-33,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는 휘장의 제작양식]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그룹들을 수 놓아 휘장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또한 금으로 싼 조각목으로 네 개의 기둥을 만들어 세워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을 금갈고리에 걸어 늘어뜨려 내리고, 이 휘장 안에 증거궤를 두라고 하십니다.

32절, “늘어뜨리되”: 이 말의 히브리어 “웨나탓타”는 ‘주다, 달다, 놓다, 덮다’ 등등의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므로 본문을 직역하면 “매어달고, 걸어 늘어뜨리고”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지성소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있는 네 개의 기둥에 달려 있는 금고리에 오늘날의 커튼처럼 걸어서 길게 아래로 늘어뜨려진 상태입니다. 이 휘장은 지성소를 가리는 구실을 했는데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 대속죄일(유대 종교력 7월 10일)에만 휘장을 걷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참고. 레 16:19-34).

33절, “지성소”: 이 단어의 히브리어 “코데쉬 학카다쉼”에서 앞의 ‘코데쉬’는 ‘거룩하다, 성별하다, 성결하다’라는 뜻의 ‘카다쉬’에서 유래된 명사로 ‘거룩함’이란 뜻을 지니며, 성경에서 ‘성소’(레 20:3), ‘성도’(단 12:7)라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뒤의 ’학카다쉼’은 ‘카다쉬’의 복수형에 정관사가 붙어 있는 형태로 “그 거룩함들”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지성소’란 말의 히브리 말에는 ‘거룩, 성별, 성결’이라는 의미의 단어가 2개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역하면 “그 성소들의 성소”, “거룩한 곳들 중의 거룩한 곳”, “가장 거룩한 처소”(the most holy place)라는 의미가 됩니다.

[34-37, 성막 안의 기구들의 위치와 성막 입구의 휘장]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라 명하시고, 지성소 휘장 바깥 북쪽에는 진설병상을, 남쪽에는 등대를 두어 서로 마주 보게 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성막 입구로 사용할 휘장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성막 입구에는 금으로 싼 조각목 다섯개로 기둥을 만들어 놋으로 만든 받침에 놓아 세우며, 각각의 기둥에 금 갈고리를 만들어 성소 입구를 위한 휘장을 드리워 내리라고 하십니다.

36절, “성막 문을 위하여”: 성막을 출입하는 유일한 문인데 동편을 향해 있으며, 다섯 개의 기둥에 휘장이 쳐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을 덮는 휘장,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은 모두 그룹(천사)의 모양을 수를 놓아서 만들었지만, 성막 문을 위하여 만든 출입문 역할을 하는 휘장은 그룹 문양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세 종류의 휘장은 모두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37절, “기둥을 위하여 받침 다섯 개를 놋으로”: 지성소 휘장을 걸기 위해 세워진 네 개의 기둥은 은받침으로 고정된 반면 성막 문을 위한 휘장은 놋받침에 세워진 다섯 개의 기둥에 걸려 늘어뜨려진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성막은 무엇입니까?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로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나시는 장소이며,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전해지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구약 시대에 존재했던 성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가장 비슷하면서 담고 있는 의미를 전승하는 곳이 있다면, ‘교회’라는 것이 큰 이견을 없을 것입니다. 즉 성막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예표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성막’이라는 단어를 떠 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기구나 성막과 관련된 단어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법궤’, ‘지성소’, ‘등대’, ‘속죄소’ 등등을 떠 올리게 됩니다. 그 이유는 성막과 그 안에 있는 성전 기구들 중에서 많이 알려져 있고, 또한 담고 있는 의미와 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표현된 여러 기구 중에서 저는 특히 ‘은받침’과 ‘띠’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 두 기구들이 성막의 벽을 구성하는 널판지를 굳건하게 받치고, 견고하게 세워지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용도의 기구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의 골격으로서 성막을 든든히 세우고 있는 동서남북 48개의 널판은 모두 ‘띠’로 연결됩니다. 이렇게 “띠”를 통해서 널판은 하나하나가 따로따로 세워져 있지만 15개의 “띠”를 통해서 견고하게 세워진 벽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은받침”을 통해서 성막은 더욱 든든하게 세워져서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하고 견고하게 고정되는 것입니다.

성막에는 법궤도 중요하고, 속죄소도 중요하고, 진설병도 중용하고, 등대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성막 안의 기구들을 보호하도록 세워진 벽의 기능을 하는 널판들, 동시에 천정에 있는 휘장과 덮개들의 무거운 하중을 모두 견디어 내면서 견고하게 세워져 있어야 하는 것은 널판들입니다. 그리고 이 널판들이 견고하고 단단하게 자기들에게 맡겨진 사명들을 잘 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띠”와 “은받침” 입니다. 만약 “띠와 은받침”이 없다면, 널판들만으로는 도저히 서 있을 수 없고, 무거운 하중을 버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성막의 기구들 중에서 널판들을 단단하게 묶어 주는 “띠와 은받침”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좋은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하자면 웬지 이 “띠와 은받침”의 역할이 마치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진 각각의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단단하게 세워주고, 묶어주는 “그리스도의 사랑, 또는 성도간의 사랑”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습니다.

48개의 각각의 널판들을 하나로 묶어서 견고하게 세워지도록 하는 띠와 은받침을 통해서 광야의 세찬 모래 바람에도 성막이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 자기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게 한 것처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도 험한 광야아 같은 이 세상에서 모진 세파에도 불구하고 든든히 설 수 있도록 ‘사랑의 띠’가 필요하고, 굳건한 ‘믿음의 은받침’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하나의 좋은 예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고린도 교회는 처음에는 잘 성장하다가 후에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바울파라고 주장하면서 갈등과 분열의 문제가 붉어져 표출되었습니다. 서로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어 이 세상을 힘있게 헤쳐 나가야 할 교회가 당파와 분열로 시름시름 앓게 된 것입니다. 그때에 바울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 고린도전서 12장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지체’로서의 교회의 역할이며, 또한 13장을 통해 사랑으로 하나가 되라고 제시한 해결책입니다.

사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이와 성별과 직업과 신분과 성격과 좋아하는 기호가 모두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나보니 수많은 분쟁과 다툼의 요인을 안고 있는 곳이 교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의 고집과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시기하면 절대로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없고, 그런 교회는 결국 조그마한 광야의 바람만 불어도 이리 저리 흔들리고 말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모진 세파와 시련의 바람으로 부터 든든히 서 가기 위해서 “띠와 받침”이 필요합니다. 각각의 성도들을 흩어지지 않도록 하나로 묶어주는 띠와, 자신의 사명의 자리에서 요동하지 않도록 굳건하게 세워주는 은받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띠와 받침”의 근간이 되는 것은 사랑,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그 사랑을 본 받아 서로 사랑하는 성도간의 사랑입니다.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고 감싸줌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바로 성막의 “띠와 은받침”의 돕고 지지하는 역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러분! 새 계명! 바로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라는 말씀처럼 사랑으로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됩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고 하였으니 서로 돕고 의지하여 어떤 시련도 이겨내는 작은 성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거룩하고 순결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깨끗케 하여 주옵소서. 주님! 저는 너무 부족한 죄인이기에 감히 거룩하고 순결한 지성소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마주설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의 경중이 너무 크고 한이 없어서 인생의 시간들을 모두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들 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주의 뜻을 따르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천국 공동체로 허락하신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과 뜻들이 선포되어 지고 나타나기를 간절히 원하오니 주의 일꾼으로 부르시고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로 생명을 얻게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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