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6/12/2021 토요일 [시편 11편 1-7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6-12 08:54
조회
116

6. 12. 토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Living Hope 주 예수 나의 산 소망”: https://youtu.be/kgK03Q4ftXw

[본문: 시편 11:1-7,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본문이해]
[1-3,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신을 향한 헛된 권고에 대한 반박]
다윗은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분께 피하였거늘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부질없는 권고를 합니다. 다윗은 악인이 의인을 공격할 준비를 마치고 터가 흔들리는 위급한 마당에 의인이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합니다.

1절, “피하였거늘”: 본 시의 배경을 추정할 수 있는 표현으로 다윗이 대적에게 쫓기는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피하거나 도망했던 경우는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추적하던 때나 아들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 시에 악인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의 확신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6절)에서 아들 압살롬의 반역보다는 사울 왕에 의해 쫓겨 다닐 때가 좀 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 집니다. 왜냐하면 압살롬의 반역 때는 다윗이 심판 보다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면모를 더 많이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절,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구체적으로 “너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문맥상으로 볼 때에 다윗의 친구들이나 조력자들, 혹은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조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본 절의 “새 같이”의 히브리어 “칩포르”는 모든 종류의 새를 가리킬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참새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작은 새를 주로 나타내는 데 성경에서 사용됩니다. 즉 지금 다윗의 상황이 사냥꾼 앞에 노출된 작은 참새와 같은 상황이며, 전쟁이나 위기의 상황에 사람들이 흔히 찾는 피난처인 산으로 도망하라고 했으니 다윗의 현실적 여건이 초라하게 도망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상황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호와를 의지하기 보다는 현실적인 방편을 찾으라는 친구들의 권면에 대해 다윗의 반응은 “어찌함인가?” 입니다. 다윗의 반응은 친구들의 권면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며, 권면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유일한 피난처임을 확신하고 이런 권면은 재고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반응입니다.

3절,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본 절은 악인이 횡행한느 세상에서는 의인의 살 소망이 없어진다는 절망감을 가정법과 수사 의문문을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 절에 “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핫솨토트”는 ‘토대’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성경에 단 2회만 사용되는데 시편 19:10에는 “기둥”이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본절에서는 구체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근간을 이루는 법과 정의와 도덕 등등을 가리킵니다. 즉 다윗에게 권고하는 친구들과 연관하여 생각해 보면, 사회의 근간이 올바로 서 있으면 의인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다윗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악인들이 사회 규법이나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황이며, 정의가 올바로 서지 않은 상황이며,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 환경이므로 의인이나 바른 자들은 피하여 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윗에게 도피를 촉구한 것입니다.

[4-7, 여호와의 심판에 대한 확신과 구원에 대한 확신]
다윗은 어려운 때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언급합니다. 여호와는 성전에 계시며 주의 보좌는 하늘에 있으나, 그 분은 인생을 통촉하시고 감찰하시며 악인을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는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시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뵐 수 있습니다.

4절, “그의 성전에 계시고”: 다윗이 측근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로 한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본 절의 직역은 “그의 거룩한 건물에 계시니”라는 의미입니다. 다윗 때는 아직 성전이 없었기 때문에 본 절에 등장하는 ‘성전’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 놓은 성막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피신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성전’을 언급한 것은 무언가 맞지 않는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피신하는 상황에서 장소적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막에 계신 하나님의 도움을 얻기는 장소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절의 표현은 ‘성전신앙’을 표현한 것 이외에 하나님께서는 먼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주의 백성들과 함께 계신다라는 다윗의 신앙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 가운데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통촉하시고 감찰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표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4절, “통촉하시고…감찰하시도다”: ‘통촉하다’의 히브리어 “예헤주”의 원형 동사 “하자”라는 단어는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행위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은 은밀한 데서 행해지는 모든 것, 즉 악한 행실도 모두 꿰뚫어 보시는 분임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감찰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이브하누”의 원형 동사 “빠한”은 불로써 금속을 제련하거나 시험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다윗이 이 두 단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은 인간의 겉으로 드러나 모든 행위 뿐만 아니라 감추어진 동기까지도 다 아시며, 인간을 시험하여 가려냄으로써 그에 합당하게 정죄할 수도 있고 인정할 수도 있는 분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세상의 모든 일들과 인간의 숨겨진 마음이 통촉하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명명백백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인정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4절, “그들을”: 한글성경은 감찰하시는 대상을 “그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는 “빼네 아담”으로 직역하면 “사람의 자손들(영어 NASB, the sons of mem)” 입니다. 히브리어 “아담”은 ‘붉다’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여 흙으로 만든 최초의 인간 아담을 지킹하기도 하고, 이러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 죽으면 그 육체가 흙으로 돌아갈 모든 인간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5절, “의인을 감찰하시고”: 위에서 ‘감찰하다’라는 히브리어의 뜻이 불로서 제련하거나 시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의인을 감찰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때때로 의인들을 어려움 가운데 던지심으로 그가 참으로 의로운 자임을 입증케 하시며, 불 가운데 제련하듯 고난을 통하여 훈련시키심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시편 11편에서는 주께서 다윗이 의인이란 사실을 입증하시기 위해 여호와께서 사용하신 연단의 불은 다윗 주위에 있던 악행을 행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6절, “그물을 던지시리니”: 물고기를 잡을 때 그물을 던지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던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 “마타르”의 의미는 “비를 내리다”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심판의 그물이 비처럼 내려 온다는 것을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리는 비의 구성요소는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입니다. 다윗은 본절에서 하나님이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도구인 불, 유황, 바람을 통해서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듯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현상으로 심판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본절에 등장하는 “태우는 바람”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바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열풍이 불어오면 팔레스틴 땅의 대부분의 초목들이 말라 죽게 되며,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기후 사태를 신적 재앙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7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7절은 여러 번역성경들 마다 번역상에 차이가 나며 다르게 번역하고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구절입니다. 번역상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주어를 “정직한 자”로 보는 견해가 있고, 또 다른 견해는 주어를 “그의 얼굴”로 보는 견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번역본들은 ‘정직한 자’는 인간을 지칭하고, ‘그의 얼굴’은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혹자는 여기에서 ‘그의 얼굴’ 다음의 동사 ‘뵈오리로다’가 3인칭 복수형이므로 “그들의 얼굴들”로 번역해야 하는 것이 문법적으로 맞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첫째로, 본절의 주어를 “그의 얼굴(혹은 그들의 얼굴들)”로 보는 입장은 70인역, 라틴어 벌게이트 성경, 영어성경 KJV으로 “his countenance doth behold the upright.(그의 얼굴(또는 그들의 얼굴들)은 정직한 자를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번역합니다. 둘째로, 주어를 한글성경과 같이 ‘정직한 자’로 보는 입장입니다. 그러면 주어가 복수형이 아니어서 동사의 수가 불일치하는 문제가 있지만, 이 문제는 ‘정직한 자’를 집합 복수로 간주하여 해결하는 견해로 “The upright will behold His face”로 번역합니다. 주어를 ‘정직한 자’로 보는 견해는 주어가 목적어 보다 앞에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입장을 따라서 대부분의 번역본들과 한글성경이 따르고 있습니다.

[묵상 및 적용]
시편 10편을 통해서 믿음의 사람과 세상 사람의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어려움을 맞이했을 때에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하는지 신앙인과 불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윗의 조력자들은 1절에서 “네 산으로 도망하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표현된 ‘네 산’이란 인간적인 방법이나 수단을 뜻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즉 다윗의 주변 사람들이 위기 앞에 놓인 다윗에게 인간적인 방법을 강구할 것을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은 눈 앞에 당장 날아올 것과 같은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진 사냥꾼의 활의 위협 앞에 놓인 연약한 새와 같은 절박한 위기 상황입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무엇일까요? 일단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세상적인 방법 중에서 돈을 의지하거나, 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의지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 의인, 그리고 성도가 취해야 할 자세와 태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취하고 있는 믿음은 마태복음 10:29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절대믿음’의 태도입니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안전대책임을 확인하고, 또 재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의 조력자들이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윗에게 ‘인간적인 방법을 좀 고려해 보라’라고 조언했다는 것은 다윗이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인간적인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음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로 피하였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의지하고 다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제로 시편에는 하나님을 피난처, 요새, 산성, 반석 등으로 표현하는 시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시들의 대부분의 저자가 다윗이라는 점은 다윗이 하나님의 보호를 얼마나 철저하게 확신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 주위에 피할 길이 있고, 취할 수 있는 여러가지 대응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윗처럼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윗의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다윗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융통성이 없어 보이고, 꽉 막혀 있는 듯한 다윗의 태도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다윗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조언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저도 다윗 주변의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무언가를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정확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십시오’라고 조언했었던 것입니다. 가진 것이 있는 사람, 무언가를 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라고 조언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패망의 역사 이야기를 들추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신앙이 타락하기 시작했을 때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위기를 만나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기들의 안전을 강구했던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주변 정세와 강한 이방 나라의 군대를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떨 때는 바벨론의 군대를 의지하다가도, 상황이 바뀌면 이집트의 군대를 의지하는 식으로 세상 정사와 권세를 의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이스라엘 나라의 마지막은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적인 방법을 강구했던 그들의 끝은 멸망하여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가거나 참담한 일들을 겪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에 반해 오늘 다윗은 모든 위기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비록 고통의 시간이 있었으며, 참담한 괴로움의 시간들이 있었지만, 결국 아무도 다윗을 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불신앙의 사람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만, 이것이야 말로 가장 확실한 안전책이요, 피할 길입니다.

잠언 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위의 잠언의 말씀처럼 위기의 순간에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더욱 더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말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위기를 만나면 인간적인 안전대책을 간구하는 인간의 본능을 따로 떼어놓으십시오. 그리고 미신적인 신앙과 막연한 기대감으로 상황을 합리화하지도 마십시오. 이런 배후에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다윗처럼, 초대교회의 사도들이나 성도들처럼 위기를 만났을 때 자신들의 안전을 위하여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한 일은 하나님의 의지하여 간구한 것이 전부요, 그것이 ‘모두’였고, 그것이 ‘단 하나’의 조치였습니다. 그들이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다른 인간적인 조치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021년 6월 12일, 오늘도 다짐해 봅니다. 매번 다짐해 보고 또 되풀이 하는 것 같지만, “당연한 것, 꼭 필요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될 때까지 반복하고 되풀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윗처럼, 그리고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와 그들의 흔적이 보여주고 있는 신앙의 자세와 태도를 갖도록 간구하고, 본받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나의 힘이시요, 반석이시요, 피할 요새이신 주님! 주님만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내 힘과 능력, 내 지식과 내가 가진 것으로는 악을 이길 수 없고, 고난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악을 선으로 이길 수 있도록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물질도 필요하고, 건강도 필요하고, 좋은 직장이나 비지니스도 필요하고, 좋은 인맥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필요하다고 의지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의지하고 따라야 하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내 뼈에 새겨 흔들림 없이 바라보게 하옵소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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