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6/10/2021 목요일 [시편 9:11-20]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6-10 09:30
조회
16

6. 10. 목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나의 소망”: https://youtu.be/tdZkHq0R_Wo

[본문: 시편 9:11-20,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춘 노래]
11.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힉가욘, 셀라)
17.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8.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9.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20.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

[본문이해]
[11-14,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간구]
다윗은 무죄한 자가 흘리는 피 흘림을 갚으시고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억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선포하라고 권면하며 찬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하여 긍휼히 여겨 달라고, 고통과 사망에 문에서 일으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면서 찬양할 것과 주의 구원을 기뻐할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11절, “여호와를 찬송하며”: 한글성경의 “찬송하며”라는 뉘앙스는 찬송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성도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의 뉘앙스는 ‘반드시, 진실로, 그리고 뜻과 성품을 다해 찬송하라!’라는 강의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이 시편의 독자들에게 반드시 합당한 찬양을 돌리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한글성경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히브리어 성경에는 12절에 이유를 설명하는 접속사 ‘키’라는 단어로 시작해서 11절의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 절의 “피 흘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따밈”은 문자적으로 ‘쏟아진 피’를 의미합니다. 즉 억울하게 압제 당해 죽임을 당하거나 피를 흘린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심문하시는 이”라는 말의 히브리어 “도레쉬”는 “따라가 찾으시는 자”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본 절의 표현은 억울하게 압제당하여 고난 받는 자기 백성을 직접 찾아가서 그들의 피 흘림의 고통을 해결해 주시고 구원하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12절, “가난한 자”: 구약 성경에 총 78정도 사용된 이 단어는 다양한 의미로 번역되어 사용되었습니다. ‘가난하다, 궁핍하다’라는 뜻 외에 ‘억압되다, 고통받는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물질적 궁핍이나 가난한 상태 보다는 ‘억압받는 자, 고통받는 자’라고 보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13절, “사망의 문”: 이 단어의 히브리어 “솨아레 마웨트”는 ‘무덤’, 혹은 ‘죽음의 권세’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그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듯한 위기의 순간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죽을 것만 같은 위기의 순간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던 경험이 많은 다윗은 지금의 상황에서도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 “딸 시온의 문”: 다윗은 주의 구원을 기뻐할 장소로 ‘딸 같은 시온의 문’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시온의 딸의 대문에서’라는 의미로 여기에서 ‘시온의 딸’에 해당하는 장소는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 시온을 ‘딸’로 표현한 것은 지명이 여성형으로 표현된 것과 더불어 예루살렘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장소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라 생각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의 상징인 언약궤가 있으며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막이 있는 예루살렘에 대하여 딸과 같은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문학적으로는 13절의 ‘사망의 문’과 대조적으로 14절에서는 ‘시온의 문’이라고 표현하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이 있어야 할 장소가 어디인가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문은 당시에 왕래가 가장 활발한 곳으로서 사람들이 물물을 거래하는 시장으로서의 기능도 하고, 송사나 재판과 관련해 판결이 이루어지는 법정의 기능 등을 수행하는 곳임과 동시에 중대한 결정이나 명령을 포고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망의 위험에서 건져 주시면 예루살렘의 문에서 중요한 결정들이 선포되었던 것처럼 자신도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며 기뻐할 것이라고 서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15-18, 공의로우신 하나님으로 인한 승리의 확신 선포]
이방 나라들과 악인들은 자기들 스스로 행한 일에 얽혀서 넘어질 것이며, 이로 인하여 도리어 공의로우신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알려질 것임을 다윗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잊어버린 악인과 이방 나라들은 스올(음부)로 돌아갈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궁핍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시므로 그들을 건지실 것입니다.

15-16절,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민족들과 악인들이 타인을 해하기 위해 악을 도모한 것이 도리어 그들 자신들의 멸망을 초래하는 결과가 되었음을 뜻하는 표현들입니다. 본 절에 “웅덩이”로 표현된 히브리어 “솨하트”는 고대 근동 사람들의 사냥법에 나오는 단어로 본래 짐승을 잡기 위하여 만든 함정이나 깊이 판 웅덩이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또한 “그물”도 역시 짐승을 생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사냥 도구입니다. 다윗은 본절에서 악인들이 자신을 포함하여 의인들을 해하기 위해 이 같은 웅덩이를 파고 그물을 설치하였지만 결국 하나님의 개입과 도우심으로 자기 손으로 매설한 구덩이와 그물에 결국 그들이 걸려 들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16절, “힉가욘 셀라”: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으나 셀라와 같이 붙어 있으므로 셀라의 용례 중에서 음악 용어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힉가욘”은 ‘묵상하다, 생각하다’ 등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동사 “하가”의 명사형으로 ‘명상, 묵상, 숙고” 등의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음악 연주를 잠시 멈추고 묵상하거나 명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추정됩니다.

17절, “스올”: 옛 한글성경에는 “음부”로 번역된 이 단어를 개역개정은 히브리어 단어 “쉐올”이라는 단어를 음역하여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스올”이란 죽은 자들이 거하는 세계를 의미하는 단어이므로 때로는 죽은 사람의 시체가 묻히는 무덤이란 의미로도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단순히 무덤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악인들이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는 ‘지옥’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영어성경 NIV는 단순하게 ‘무덤(Grave)’으로 번역하지만, KJV, NKJV, GNV 성경들은 ‘지옥(Hell)’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문맥상으로 보면 다윗이 악인들의 심판을 말하고 있으므로 지옥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18절,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본 절에서 “잊어버림을 당하다”라는 표현은 앞절 17절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과 현저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 자들의 심판을 언급한 후에 궁핍한 자들의 구원을 말합니다. 궁핍한 자들, 가난한 자들은 이방 나라들과 악인들과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 먼저 다가 가셔서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실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18절의 뒷부분 “실망하지 않다”라는 히브리어의 직역은 “가난한 자들의 소망이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소망’을 의미하는 “티크와트”가 기록되어 있지만, 한글 성경은 이를 의역하여 ‘실망하지 않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19-20, 하나님을 대적한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에 대한 간구]
다윗은 하나님께서 일어나시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이 승리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대적한 이방 나라들이 최종적으로 심판을 받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심판을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서 인생은 연약하고 유한한 인간일 뿐임을 알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19-20절, “인생”: 다윗은 본 절에서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을 당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자들이 지금까지 언급해 온 이방 나라들이나 악인들이 아니라, “인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말의 히브리어 “에노쉬”는 필연적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 병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연약한 인간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이방 나라들과 악인들은 자신들의 분수를 알지 못하고 몇 십년도 살지 못하는 이 세상에서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공의를 거스르는 악행을 저지르며 탐욕을 채우는데 급급해하는 자들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자들을 한 단어로 “인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의롭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고난을 당하게 되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심판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0절에서도 “자기는 인생뿐일 줄 알게 하소서”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허무한 사람, 곧 필연적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고 병들고 깨어지기 쉬운 연약한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뼈저리게 알게 하소서”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그 분의 손길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사람들을 다윗은 “인생”이란 단어로 본문 19절과 20절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묵상하면서 그들이 나의 모습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습니다. 왜냐하면 “인생”들의 어리석음이 저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손에 얻어 맞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어리석은 자들 보다 어 어리석은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도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비천한 존재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자고하는 자들입니다.

“자고하다”라는 말은 한문으로 어떻게 쓰는 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됩니다. 첫째로 자고(自顧, 스스로 자, 돌아볼 고)는 ‘스스로 자기의 과거나 행동을 되돌아 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뜻으로 ‘자고하는 자’가 되는 것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고, 회개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표현의 자고(自高, 스스로 자, 높을 고)라는 말의 의미는 ‘스스로 높은 체하거나 높다고 여기다’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방 나라들과 악인들에게 맞는 ‘자고’함은 첫번째 의미가 아니라, 두번째 의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와 직접 심판과 징계를 경험하고 나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주께로 돌아오거나, 회개하는 자들이 아니라 끝까지 스스로 높은 체하거나, 자신들이 ‘옳다’라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실례로 출애굽기에 언급되는 애굽 왕 바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계속되는 징계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기의 뜻을 꺾지 않고 버티고 버팁니다. 심지어 마지막 10번째 재앙으로 자기 아들이 죽은 후에 잠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듯하다가 결국은 군대와 병거를 이용해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다가 결국 수많은 생명들을 홍해에 수장하게 되는 비참한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징계를 당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생들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깨달아 알 뿐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 얼마나 무력하고 유약한지를 깨달아 알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시편 9편을 바라 보면 이방 나라들과 악인들을 향한 다윗의 경고와 선포는 단순히 대적자들이 멸망하기를 바라고, 그들의 심판을 통해서 기쁨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비록 대적자들이라 할지라도 왜곡된 것을 바로 잡아 여호와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다윗 당대의 이방 나라들이나 악인들이 아니라, 후대에 또 다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에게 도전하는 이방 나라들과 악인들이 다윗의 시편을 읽고 난 후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바로 깨달아 알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즉면에서 본다면, 이방 나라들과 악인들이 심판을 당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윗을 얽매어 고통 가운데 있게 하고 심지어 그의 생명을 빼앗아 죽이려고 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물론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괴로움과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구원을 바라며 간구하지만, 다윗이 본문을 통하여 심판의 근본적인 이유로 제시하고 있는 이유는 16절이나 17절에 의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인정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에 있습니다. 곧 이방 나라들이나 악인들이라 할지라도 만약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을 두려워하여 깨닫게 되면 심판과 징계에서 벗어나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시편 9편은 그 배후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악인들이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대적하는 이방 나라들이나, 심지어는 하나님을 아는 자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 즉 그 분을 참 신으로 인정하고 구원자로 믿고 두려워하는 경외함을 갖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본문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18절에 수동태로 기록된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라는 표현입니다. 본문의 궁핍한 자는 18절 하반절에 나오는 ‘가난한 자’와 같은 뉘앙스로 사용된 말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물질적 부족함이 있는 궁핍이나 가난함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문맥상으로 보면 이방 나라들이나 악인들, 그리고 권세있는 자들에 의해 억울하고 부당하게 압제를 당하는 의로운 약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로운 자들이 “잊어 버림을 당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곧 하나님께서 결단코 잊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우리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8절 하번절의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한다”라는 말씀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의 18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를 설명하면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한글 성경에는 없는 표현이 히브리어 원문에 담겨 있는데 바로 “소망”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18절 하반절의 의미는 “가난한 자들의 소망이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다”라고 본문이해에서 설명드렸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소망”이라는 단어 “티크와트”를 쓴 이유가 의미심장한 한 두가지 묵상을 하도록 인도해 줍니다. 그 첫번째는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 의로운 약자들, 곧 궁핍한 자와 가난한 자들이 갑작스럽게 인생의 반전을 이루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매우 비관적으로 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본문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소망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소망”을 계속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소망이란 고난이 끝나거나, 어려움이 사라지거나, 소망을 가져야 할 상황의 문제들이 없어지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소망이라는 것에 “영원히”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면 소망이 계속 지속되는 것이며, 그러한 상황이란 여전히 고난과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로운 약자들의 고난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도에게 인내와 오래 참음은 믿는 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비록 고난이 지속되고, 압제와 박해 받는 상황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울하더라도 그 상황을 견디고 오래참고 끝까지 여호와를 참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잊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소망” 때문입니다.

이 “소망”이라는 단어의 뜻 때문에 둘째 묵상의 포인트가 있다면, 인생의 반전이 더디거나 없다 할지라도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역시 “소망”에 있습니다. 즉 아무리 어려운 상황 이라 할지라도 소망은 ‘이러한 어려운 상황이 결코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성도에게 지속적으로 주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이나 이방 나라들과 연약하고 궁핍하고 가난한 의로운 약자들과의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면 하나님에 대한 회의의 차이입니다. 악인들은 심판과 고난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결국 회의에 빠지게 되어 하나님을 잊어 버리거나 부인하게 됩니다. 물론 의인들도 반전이 없는 상황 속에서 악인들과 똑같이 회의적 의심에 빠질 수도 있지만, 의인들은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의심과 회의에서 빠져 나와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다는 점이 다른 것입니다.

이 처럼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믿음을 지킨 의에 대한 영광스러운 보상을 꿈 꾸는 것이며, 단순하게 미래의 언제가에 ‘그렇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이지만 인생이 덧 없는 인생으로 끝나지 않고, 약자가 약자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자원하신 ‘돌아보심’과 ‘잊지않으심’을 받는 확실한 보증(Warranty)가 소망을 갖는 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묵상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 가지 하면 어떨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나의 삶과 상황 속에서 무엇을 이루시며 하실까?”에 대한 소망, 기대를 해 보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소망을 꿈 꾸고, 기대를 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기대하면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기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주만 바라 보기를 원하며 참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갖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 힘이 없는 자와 연약한 자들을 잊지 않으시고 돌보시는 주의 긍휼과 사랑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고 원하오니, 어려운 하루 하루의 나날들 속에서 저들을 구원해 주시고 용기를 주시며, 힘들지만 끝까지 주를 소망하며 믿음과 사랑을 잃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나 자신과 내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겠지만, 이름도 모르고 관계는 주의 백성들과 인생들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 심지어 대적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들의 강팍한 마음이 심판이 있기 전에 깨닫는 긍휼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더 많은 인생들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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