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6/03/2021 목요일 [시편 3편 1-8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6-03 09:51
조회
19

6. 3. 목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본문: 시편 3:1-8] 1.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3.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5.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7.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

[본문이해]
시편 3편의 표제는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입니다. 시편 150편 중에서 시의 저자가 표기된 시는 101편이며, 그 중에서 다윗이 저자로 표기된 시는 73편입니다. 다윗의 시로 제시된 시편들은 그의 독특한 인생 경험이나 문체나 표현들이 있기 때문에 익명의 시편들 가운데 다윗의 문체와 비슷한 시편들이 있기 때문에 다윗이 저자인 시편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시편 3편의 표제에 압살롬의 반역의 사건이 언급되어 있으므로 BC 979년경에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의 모반을 피해 예루살렘 궁정을 떠나 방황하면서 겪은 극심한 고난의 상황을 묘사하여 시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시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사무엘하 15-18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2, 대적자들의 억압과 조롱)
많은 대적자들이 다윗을 넘어뜨리려고 억압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이 없을 것이라고 조롱한다고 여호와께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1절, “여호와여”: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출애굽기 3:14에서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고 표현되어 있으며, 당신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성실하게 준행하시는 분임을 강조할 때 사용되곤 합니다. 지금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목숨을 잃을 절체절멸의 위기 상황에서 자신과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인간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는 있지만,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존재의 가치를 밝히 알 수 있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도움의 능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환난의 때에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앞선 1절은 다윗을 고통스럽게 하는 대적자들의 행태를 묘사했다고 본다면, 2절은 직접 목숨을 노리지는 않지만 말로써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의 비난을 하나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사무엘하 16:8에 등장하는 시므이입니다. 시므이는 현재 다윗이 당하는 고난이 사울 왕가에 대한 다윗의 범죄를 하나님께서 응징하고 심판하는 결과라고 떠들면서 다윗을 괴롭게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퍼붓는 시므이의 저주는 다윗의 마음에 깊는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본 절의 “나를 대적하여”의 히브리어 “레나프쉬”를 한글 성경은 의역하여 “대적하다”로 표현하고 있지만, 원문의 의미는 “나의 영혼에 대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 KJV, NASB는 “of my soul”이라고 원문의 의미를 살려 번역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때에 육체적인 고난도 힘들지만, 고난 그 자체보다도 더 힘든 것은 영혼 깊은 곳에 자리 잡는 영적 절망감과 상처일 것입니다. 다윗의 대적자들의 조롱이 그가 처한 외적 요소보다 하나님의 구원과 직결되는 영혼에 대한 문제를 들먹이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 “셀라”: 시편에서는 총 39개의 시편들이 ‘셀라’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총 71회 등장합니다. 시편 외에서는 하박국 3:3, 9, 13에서 총 3회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단어가 음악 전문 용어와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동의하지만 그 정확한 용례나 의미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첫번째는 ‘들어올리다’란 뜻의 동사 ‘쌀라”에서 유래하여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할 때 음성이나 음을 높이라는 뜻의 용례입니다. 둘째로는 ‘쉬다, 멈춰서 듣다’라는 의미로 노래하는 사람들이 악기가 연주되는 동안 잠시 멈추고 침묵하여 앞의 내용을 묵상하라는 용례입니다. 이때 “멈춰서 들으라”라는 뉘앙스가 있으므로 앞의 내용을 강조하여 댓구한다는 의미에서 ‘아멘’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셋째로는 ‘막간의 주악’라는 의미에서 음악적으로 심벌즈와 같은 악기를 연주하여 단조로운 흐름을 막으라는 지휘자를 위한 신호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학자들이 어떤 용례를 주장하더라도 시편의 곡조가 악보라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지만, 연주나 노래에 변화를 주는 신호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므로 음악적 기호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때에 ‘셀라’를 소리 내어 읽지 않아도 됩니다.

(3-6, 고난 중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 고백)
대적자들로 인한 고난과 역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신앙의 흔들림없이 신앙고백을 합니다. 다윗의 방패이시며 영광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시는 분이시며, 누워 자고 깰 때에도 언제나 그를 붙들어 주시는 분이시므로 많은 대적자들이 그를 에워싼다고 해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3절, “나의 영광”: 이 말의 의미는 다윗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다윗을 영화롭게 하실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 NIV는 “You bestow glory on me”(당신은 나에게 영광을 주십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반란에 쫓기고 조롱을 당하는 상황에서 다윗이 비굴해 질 수 있지만, 그는 장차 받아 누릴 영광을 고대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의 상황을 역전시키고 회복시켜 주실 분임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3절,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 고대 사회에서 머리를 높이 들어 올리는 행위는 치욕을 당하고 있는 자의 신분 혹은 명예를 다시 원상태로 회복시켜 준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참조, 왕하 25:27).

5절, “누워 자고”: 본 절의 표현은 다윗이 위기 상황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뜬 눈으로 밤을 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잠을 평안하게 잘 수 있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워”에 해당하는 원문 히브리어 “솨카브티”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잠자는 것을 표현할 때에 쓰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자고”에 해당하는 “와이솨나”의 원형동사 “야쉔”이라는 단어는 잠을 자되 아무런 염려없이 단잠을 자거나, 깊이 잠드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다윗이 자칫 경계를 늦추면 어디서 추격자의 칼날이 날라올지 모를 위기 상황 속에서 단잠을 잤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행동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이럴 수 있었던 것은 절대자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7-8, 여호와의 구원과 축복의 간구)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대적자들의 뺨을 치시고 그들의 이빨을 꺾어 승리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 간구를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이루어진 것으로 믿고 간구하며 승리를 선포하는 선취적 고백으로 표현합니다. 다윗은 단순히 원수에게서 승리하기를 바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축복 내리시기를 기원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묵상 및 적용]
비록 지나간 과거라 할지라도 불행이나 고난이 찾아왔던 그 순간을 기억하거나 다시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의 때는 힘들고 어렵기도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마음에 깊은 상처의 흔적을 남기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시편 3편은 다윗이 고난과 불행을 당했던 그 시점에 지은 시라고 표제가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시편 3편은 비탄에 빠져 있는 다윗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비탄에 빠진 다윗은 현실을 토로하면서 하나님께 하소연합니다.

하지만 시편 3편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다윗이 이러한 참담한 상황을 초월하여 극복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다지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표제가 보여 주듯이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역했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은 다윗이 처한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시에 다윗이 처한 상황을 알려면 사무엘하 15-18장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이란 어떤 것이며, 도대체 어느 정도의 어려움이 있었을까요?

다윗은 본문에서 대적자들의 입을 빌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은 마치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과 같은 상태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반역을 일으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윗의 처지를 알 수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아들의 반역에 대하여 다윗은 반격할 힘도 없이 속수 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반역을 진압한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하고 다윗은 예루살렘을 버리고 황급히 도망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의 대적자들은 물론 많은 일반 백성들까지도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상황입니다. 사무엘하 16:7-8에 보면 도망가는 다윗을 향하여 시므이는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라고 말하면서 다윗을 저주하며 조롱합니다. 누가 이런 다윗의 처지와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런 상황에 처한 다윗의 태도입니다. 정작 다윗 본인은 대적자들이나 사람들의 생각처럼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본문에 삼중적으로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다 부서지고 깨뜨러진 방패이며, 영광이 아니라 불명예요 모욕과 수치만 가득할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윗은 이런 고백을 했을까요? 어떻게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붙드실 것이며, 천만인이 에워싸도 두렵지 않을 것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너무나 뻔한 질문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글이나 말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보이겠지만, 실제로 다윗이 처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신앙의 주춧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7장 14절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시기를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다윗의 범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냥 넘어가거나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벌을 주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삼하 7:15-16에서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라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십니다. 즉 죄에 대한 징계는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견고하게 하신다는 약속! 이것이 다윗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 분은 약속을 지키심에 신실하시며 한번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언약의 관점에서 본다면 성경은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나의 예로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말할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도리며”(롬 4:20)라고 소개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라고 말하면서 약속 이행의 증거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믿음의 조상들 외에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도 다윗이나 믿음의 조상들에게 주셨던 것과 동일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약속들 중에서 하나의 약속을 예로 든다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약속입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브리서 13:5)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4)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위에 몇 가지 성경구절을 예로 들었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은 성경 속에서 한 두번 등장하는 정도라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하여 등장하며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약속대로 당신의 백성을 버리신 법이 없으십니다. 비록 당신의 백성이 범죄하면 엄히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시지만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나중에는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인생의 최대 위기는 의학적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도 아니며, 도저히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비지니스도 아니며,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의 연속도 아닙니다. 가장 큰 위기는 겉으로 드러난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단절” 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나 역경이나 고난과 죄의 문제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용서와 함께 하심이 있으면 여호와의 손길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은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면서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셨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정말 다윗의 고백이 ‘정답’ 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붙들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게셨다는 고백은 경이로운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즉 다윗이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져 갈 때에도 하나님은 다윗을 놓지 않고 붙들고 계셨다는 “함께 하심”의 고백이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윗의 고백이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히브리서 13:5, 시편 23:4, 이사야 41:10에 하나님께서 선언해 주신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라는 고백이 우리 입술의 믿음의 시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시편 3:5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신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넘어서 삶속에서 행함으로 경험되어지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임마누엘 되신 예수님! 나로 하여금 죄를 멀리하게 하시며, 내가 연약하여 죄를 범하였을 때에는 즉시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징계를 당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징계를 받으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나로 하여금 뻔뻔하고 고집스럽고 오만한 자가 되지 않게 하시며 여호와께로 돌아가기 위하여 눈물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낮고 비천한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약속은 겸손한 자에게 신실하심을 믿사오니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은혜를 거센 바람과 풍랑 속이라 할지라도 세미한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들을 귀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약속의 예가 되심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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