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4/29/2021 목요일 [출애굽기 10:21-29]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4-29 09:23
조회
27
[본문: 출애굽기 10:21-29]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27.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28.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29.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본문이해]
(21-23, 아홉번째 흑암의 재앙이 시행됨)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사전 예고없이 흑암의 재앙을 시행하라고 명하십니다. 모세가 하늘을 향해 손을 들자 캄캄한 흑암이 애굽에 3일 동안 임합니다. 그 동안 애굽 사람들은 서로 볼 수 없었으며 활동이 중단되어 처소에만 있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습니다.

21절, “흑암”: 이 단어의 히브리 단어 “호쉐크”는 칠흙같이 어두운 ‘암흑’을 뜻하거나, ‘밤, 어두움’ 등을 뜻합니다. 이 어두움이 얼마나 짙은지 “더듬을 만한 흑암”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흑암의 재앙은 세번째 이의 재앙과 여섯번째 독종의 재앙과 같이 사전 경고나 예고 없이 바로 임한 재앙입니다. 일부 자유주의 학자들은 이 현상이 자연적이 현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애굽에서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같아지는 춘분을 전후로 “캄신(Khamsin)”이라고 하는 서남쪽에서 계절풍이 불어오곤 합니다. 사막 바람과 함께 동반되는 이 계절푸은 거대한 먼지 구름과 모래가 애굽 전역의 공중을 뒤덮고 햇빛을 차단시킵니다. 그래서 일부 자유주의 학자들은 이 계절풍에 하나님의 능력이 더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흑암의 재앙이 3일 동안 임한 것이 계절풍의 영향이라면 바로가 단 3일만에 모세를 불러 항복하며 타협안을 제시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늘 있었던 자연적인 현상이 바로가 타협안을 제시할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왕이 3일 만에 타협안을 제시할 정도라면 지금까지 애굽 사람들이 경험한 것과는 전혀 다른 재앙으로 느꼈을 것이며, ‘여호와의 날’에 임하는 심판처럼 받아 들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더우기 바로 왕이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흑암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주하는 고센 땅에는 없었다는 점이 이 재앙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이적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특히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신 중에 빛과 관련된 태양신 “라(Ra)”는 흑암과는 상극입니다. 애굽 궁정에서는 거의 매일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그들을 삶의 주관하고 지배하는 전능한 신으로 추앙받는 “라(Ra)”를 경배하였습니다. 그런데 매일 숭배하던 태양신을 캄캄한 흑암으로 인해 3일 동안 볼 수 없게 되자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즉 흑암의 재앙으로 애굽의 우상 숭배의 최고신으로 추앙받던 태양신의 허무함과 몰락을 여실히 보여 줌ㅇ로 자연과 피조물의 세계를 지배하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준 것입니다.

23절,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면”: 옛 한글 성경은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라고 표현하고 있는 이 문장을 히브리 성경에서 직역하면 “사람이 그의 형제를 결코 볼 수 없었다” 입니다. “사람”이라고 번역된 히브리 단어 “아흐”는 “친척, 인척, 같은 종족, 친구”등을 뜻하지만, 본문에서는 흑암으로 왕래할 수 없으니 한 집에 사는 사람, 즉 ‘가족’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애굽에 임한 흑암의 재앙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보여 주는 한 증거입니다.

23절,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여기에서 “일어나다”를 뜻하는 히브리 말 “쿰”은 “자리와 침대로부터 일어서다”, “행하다”, “떠나다”라는 의미이므로 이 문장의 직역은 “자리로부터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는 애굽 사람들이 잠만 자고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애굽 사람들이 어둠 때문에 각자의 집에만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었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집을 떠나서 외부 활동을 하거나, 일체의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단지 흑암으로 행동의 제약이 있는 것 뿐만이 아니라, 애굽 전역에 깔린 짙은 어두움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23절, “빛”: 이 단어의 히브리어 “오르”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빛”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구약성경에서는 “태양 빛, 아침 빛, 광채” 등등으로로 표현되어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고센 땅에만 비춘 빛이 태양 빛인지, 아니면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의해 고센 땅에만 빛을 비춘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빛인지 분명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고센 땅만 흑암이 임하지 않은 것 그 자체가 이적이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24-29, 바로가 제시한 협상안의 결렬과 협박)
바로가 모세를 불러 가축은 남겨 두고 어린 아이들과 함께 나가는 타협안을 내놓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타협안에 대해서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위한 제물을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댜. 또한 희생 제사를 이유로 모든 우양을 가지고 가야 함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바로의 회유책을 거부합니다. 결국 바로의 마음이 강팍해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절대 보내려 하지 않습니다. 바로가 모세에게 자기 앞에서 떠나라고 명하면서 다시 얼굴을 보는 날에는 아예 죽일 것이라 협박합니다. 그러자 모세도 바로에게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말하며 결별을 선언합니다.

25절, “왕이라도 …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한글성경의 “왕이라도”라는 번역은 히브리 표현에는 없습니다. 한글성경의 뉘앙스는 양보절의 의미가 가미되어서 “아무리 왕일지라도” 또는 “아무리 왕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을지라도” 번제물을 주어야 겠다는 뉘앙스입니다. 하지만 히브리 성경은 이 문장이 명령문의 의미가 더 강합니다. 즉 “왕은 ~ 하라”라는 의미가 되며, 영어성경들은 명령문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해야한다’라는 의미를 넣기 위해 조동사 “must”를 사용하여 의무와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국 본절은 24절에서 바로가 모세에게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어린 아이들은 데리고 가라”라고 한 말에 대해서 모세가 맞받아치면서 “(또한, 그렇다면) 왕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라!”라고 댓구한 뉘앙스로 왕이 희생과 번제물에 드려질 생축을 한마리도 빠짐없이 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바로가 모세의 요구를 들어 주기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므로 결국 모세는 바로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절한 셈입니다.

26절,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모세가 이같이 말한 이유는 출애굽 전은 율법을 받기 전이므로 아직 하나님께로부터 제사 제도에 대해서 어떤 지시나 언급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희생제묵을 무엇으로 드려야 하는지 알지 못한데서 비롯된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는 당시의 이방인들이 우상에게 드리는 제사와 차이가 있다면, 이방인들은 자기들의 신에게 제사할 때 제물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사람들 스스로 정해 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제사는 제물이나 제사법을 사람이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여 알려 준 것에 근거하여 제사를 드린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28절,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와 29절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바로와 모세의 대답은 한글성경의 표현에는 서로 강력하게 ‘얼굴을 보지 말자’라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바로는 ‘다시 얼굴을 보게 되는 날에는 모세를 죽이겠다’라고 협박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성경의 표현은 바로의 표현은 일시적인 부정이고, 모세의 표현은 절대부정입니다. 즉 바로는 “내 얼굴을 보지 말라”라고 금하고 있지만, 절대부정이 아니라, 일시적인 금지를 나타내는 상태의 부정입니다. 이 뜻은 뒤에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라고 협박하고 있지만, ‘앞으로 내가 너를 다시 볼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을 열어 둔 일시적 금지의 표현입니다. 즉 모세가 어떤 요구 조건을 가지고 바로를 만나러 오거나, 또는 어떤 재앙이 닥쳐서 바로가 모세를 필요로 할 때에는 다시 모세를 불러 만날 수 있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바로의 반응에 대해 29절의 모세의 반응은 “다시, 결코, 절대로, 반드시 ~ 하지 않겠다”라는 절대부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반응은 바로의 말보다 훨씬 강력하고 결정적인 선언입니다. 모세는 이 장면에서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이제 출애굽 재앙이 막바지에 치닫고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자의 죽음 재앙을 앞두고 더 이상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달라고 부탁아닌 부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묵상 및 적용]
세상을 바꾼 발견이나 발명들이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단연코 ‘불의 발견’이 인류의 역사를 바꾼 발견에 해당합니다. 인류는 불이라는 강대한 에너지를 발견함으로 따스함과 빛을 취득하게 되었고, 음식물의 조리와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지배력을 가지게 되어 문명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불의 발견 이후의 역사에서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는 것들은 기우너전 3500년전의 수레바퀴, 기원전 3세기의 그리스 학자 아르키메데스에 의한 못과 같은 단단한 조임 나사의 발명, 그리고 기원 후의 인쇄기, 카메라, 전화기, 시계, 자동차, 비행기, 컴퓨터, 그리고 요즘 가장 각광을 받는 백신입니다.

그런데 뭔가 빠져 있는 것 같지 않나요? 바로 전기입니다. 전기는 비록 근대에 본격적으로 개발되어 사용되었지만 고대 이래로 계속 연구되어 왔으며, 자연에 존재하는 전기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가 되어져 왔습니다. 17-18세기에는 학적으로 연구가 활발하게 되어 오다가 드디어 19세기에 전기공학이 꽃을 피우면서 실생활에 사용될 수 있는 도구들이 발명되면서 산업혁명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기의 응용 도구 중에서 실용화된 최고의 발명품은 바로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이 진공 유리구 안에서 탄소 필라멘트를 사용해서 발명한 전구입니다. 에디슨은 필라멘트라는 저항선에 전류를 흐르게 하면 2,0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온도 방사를 일으키며 빛을 발광하게 하는 전구를 만들기 위해 수천번의 실험에서 실패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1879년에 탄소필라멘트 전구와 발전기, 배선을 포함하여 완전히 기능적인 조명 시스템을 만들어 에디슨이 특허를 냈고, 그 기업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GE( General Electric) 회사입니다.

전구의 발명으로 인해 인류는 밤도 지배할 수 있는 문명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이 전구는 인류가 밤에 활동할 수 있게 함으로 세상을 바꾼 발명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제 ‘밝은 것, 빛’에 익숙해 져서 반대로 ‘어둠’에는 두려움을 느끼고, 몸과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빛을 발하는 전구의 발명을 인류사의 3대 발명품 안에 항상 꼽는 것은 ‘빛’을 만들어 낸다는 창조적 개념에 유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빛’은 가장 먼저 창조된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창 1:3). 그 만큼 무시할 수 없는 가치과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때로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빛’ 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있는 출애굽의 십대 재앙 가운데 아홉번째 재앙이 바로 “흑암의 재앙” 입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은 애굽 온 땅을 3일 동안 암흑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얼마나 흑암의 재앙이 심했는지 상상을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애굽에 어둠을 밝힐 불이나 등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비록 낮도 밤처럼 어두울지라도 3일 정도라면 궁정이나 웬만한 부유한 사람들이 지내는 데에 조금은 불편하여도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더우기 왕궁에서 3일 동안 어둠을 밝힐 등불이 부족했을리 만무합니다. 그런데 바로는 3일의 흑암에 백기를 들고는 모세를 불러서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내리신 ‘흑암의 재앙’은 단순한 어두움이 아닙니다. 그냥 등불을 밝히면서 버틸 정도의 흑암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흑암이 임하는 것은 애굽 사람들이 최고의 신으로 믿고 따르고 있는 태양신 “라(RA)”의 무용지물이 입증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작열하는 태양과 건조한 날씨를 주관하는 최고의 태양신이 힘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암흑입니다. 태양신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흑암 앞에서 애굽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두려움” 입니다. 바로가 3일만에 항복을 선언하고 모세를 청한 이유는 어둠으로 인한 ‘불편함’ 정도가 아니라, ‘두려움’에 더 비중이 있다는 것입니다.

등불을 비추어도 더듬거릴 수 밖에 없는 짙은 흑암은 불의 발견과 사용을 통해서 따스함과 빛이 주는 안도감과 평안함을 삽시간에 ‘두려움’으로 바꾸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경에서는 ‘어두움’을 재난과 두려움과 암울함이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심판, 특히 마지막 때인 ‘여호와의 날’에 임하게 되는 것으로 신명기 28:29, 이사야 8:22, 58:10, 아모스 5:20, 스바냐 1:15에 표현하곤 합니다. 성경에서 ‘흑암’이라는 말은 단순한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두려움을 동반하여 하나님의 심판에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그러므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바로가 느꼈던 것은 어둠으로 인한 불편함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손을 펴치심으로 임한 재앙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지금까지 지나간 재앙들은 모두 실질적인 피해가 가축이나, 논밭이나, 재산이나, 자기 몸에 해로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흑암의 재앙은 눈에 확 띠는 피해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가 모세를 청했을 정도이니 그 두려움의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음에 임하여 마음과 정신을 사로 잡는 두려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두려움에 사로 잡히면 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공포에 심신이 부서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두려움을 주는 도구로 “흑암”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흑암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임하지 않았다는 경이로움입니다. 본문은 23절에 기록하기를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흑암”이 임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임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빛에 대하여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편 27:1)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 8:12)

혹시 지금 여러분이 앞을 잘 볼 수 없는 흑암에 싸여 방황하며 불안해 하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빛이신 하나님께로 나아오시지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인생은 확실한 미래에 대한 소망을 쥐고 구원과 영생의 축복을 향해 달려가는 빛에 거하는 인생입니다. 그 분이 비추시는 빛을 통해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발견하고, 더 이상 어둠에서 방황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고 평안을 얻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빛이신 하나님을 따라 여러분들도 빛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비추는 빛… 빛을 들고 세상으로…

[기도]
어둠을 물리치고 세상에 빛으로 오신 에수님! 주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이 땅의 모든 죄악과 고통과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주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들도 여호와 닛시! 승리의 증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바로를 완악함을 물리치신 것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탄의 도전을 주의 권능으로 물리쳐 주시옵소서. 주님! 연약한 주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병으로 고통받는 자들, 물질로 힘들어 하는 자들, 관계의 깨어짐으로 힘들어 하는 자들, 믿음의 연약함으로 불안한 자들, 그리고 주의 손길이 강력히 필요한 모든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에게 오늘도 은혜와 돌아보심의 섭리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응답이 주께 있사오니 믿고 간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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