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4/24/2021 토요일 [출애굽기 9:1-12]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4-24 09:04
조회
23
[본문: 출애굽기 9:1-12]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2.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두면
3. 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가축 곧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에게 더하리니 심한 돌림병이 있을 것이며
4.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5. 여호와께서 기한을 정하여 이르시되 여호와가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시더니
6. 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가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
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본즉 이스라엘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니라
8.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화덕의 재 두 움큼을 가지고 모세가 바로의 목전에서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
9. 그 재가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되어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서 악성 종기가 생기리라
10. 그들이 화덕의 재를 가지고 바로 앞에 서서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날리니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 악성 종기가 생기고
11. 요술사들도 악성 종기로 말미암아 모세 앞에 서지 못하니 악성 종기가 요술사들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생겼음이라
12.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본문이해]
(1-7, 다섯번째 돌림병의 재앙)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것을 바로에게 경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만일 바로가 거절하면 애굽의 모든 가축들에게 심한 돌림병이 임하여 죽을 것이나, 이스라엘의 가축들은 하나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 이튿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돌림병이 돌아 애굽의 가축들이 죽는 재앙이 임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1절, “말씀하시기를”: 이 단어의 히브리어 “아마르”는 구약성경에 5000회 이상 나타나는 단어로서 비슷한 동의어 ‘말하다(히, 따바르)’와 함께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단어는 보통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대화속에서 메시지 전달자가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라는 의미로서 명령이나 뜻을 전달하고자 할 때에 많이 사용됩니다. 본절에서도 “내 백성을 보내라”라는 말이 모세와 아론의 생각 속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심을 강조하고자 사용한 표현입니다.

2절, “억지로 잡아두면”: 본절의 히브리 성경의 의미는 ‘반복, 계속’의 의미가 들어 있고, 누구를 잡아 두었는지 대상 “그들”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직역하면 “계속하여 그렇게 끈질기게 그들을 놓아주지 않고 붙잡고 있으면”라는 의미가 됩니다.

3절, “가축”: 한글성경에 번역된 “가축”이란 말의 히브리어는 ‘미크네’로서 ‘사다, 획득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명사로 ‘구입품, 소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글성경에 ‘가축’이라고 번역된 것은 당시에 가축의 많고 적음이 부의 기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재산 목록 중 으뜸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3절, “말”: 이집트 역사에서 말에 대한 역사 기록은 BC1570년경부터 시작된 애굽의 제18왕조 시대 이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타나며, 말은 주로 군사용으로 사용되었으나 농업용으로도 일부 사용되곤 하였습니다.

3절, “낙타”: 이 단어의 히브리어는 “까말”로서 구약성경 전반에 걸쳐 많이 언급되는 보편적인 짐승 가운데 하나입니다. 용도는 타기도 하고, 짐을 나르기도 하고, 젖을 짜서 먹기도 합니다. 특히 등 위에 있는 지방저장소인 혹으로 인해서 3일정도는 물을 마시지 않고도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사막을 가로질러 무역하는 상인들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짐승입니다. 옛날 한글 성경은 “약대”로 번역하고 있는데 새로 번역된 개역개정의 ‘낙타’로 번역한 것이 요즘 사용하는 말로 번역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3절, “돌림병”: 옛 한글 성경에는 “악질”로 번역된 이 단어의 히브리어 “떼베르”는 ‘온역, 염병, 전염병’ 등으로 성경에 번역되어 있으며, 한글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돌림병”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재앙은 사람이나 짐승을 일시적으로 괴롭히는 것이었다면, 다섯번째 재앙인 돌림병은 가축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재앙으로서 재앙의 정도가 강해지고 치명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애굽 사람들이 짐승들을 형상화해서 우상으로 섬긴 점을 고려한다면 가축들이 죽는 재앙이 얼마나 애굽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8-12, 여섯번째 악성 종기의 재앙)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화덕의 재 두 움큼을 바로 앞에서 날리면, 그 재가 티끌이 되어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 악성 종기가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행하니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에게 악성 종기가 생기고, 바로의 요술사들도 악성 종기로 모세 앞에 설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재앙에도 불구하고 바로가 완악하여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8절, “화덕”: 옛 한글성경은 “풀무”로 번역하고 있는 본절의 화덕은 일반적으로 가죽을 무두질하거나, 금, 은, 놋, 청동, 주석, 납, 철 등을 녹이는데 사용하거나, 빵을 굽는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그토록 고생시켰던 벽돌 굽는 가마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난과 노역을 대표하던 장소였고, 화덕의 재는 고역의 흔적이며, 압제와 고통의 상징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0절, “악성 종기”: 이 단어의 히브리어 “쉐힌”은 “종양, 수포”를 뜻하며 성경에서는 ‘불의 덴 흔적, 종기, 부스럼’ 등으로 번역되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옛 한글성경은 “독종”으로 번역했지만, 개역개정 성경은 “악성 종기”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의미를 참고하여 악성 종기의 증상을 예상해 보면 재가 온 애굽에 날아 애굽인들의 피부에 닿았을 때 그것이 닿은 자리가 마치 불에 덴 것처럼 붉게 부풀어 오르거나 물집이 생기며 고열과 함께 심한 가려움 증세가 유발되어 결국 물집이 터지고 고름이 흐르는 악성 피부병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2절,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출애굽기 7-14장 사이에 이와 비슷한 표현이 11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학자들마다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해석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 의지의 심령 속에 강압적으로 개입하신 것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첫번째 해석이 하나님의 속성(성품)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반대하여 다르게 해석하는 경향입니다. 두번째 해석은 하나님은 절대 주권을 가지셨음에도 결코 어느 누구의 마음에 개입하셔서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심령이 완악한 사람들이 그들의 죄악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선을 행하기를 원하시기 분이기 때문입니다(겔 33:11, 딤전 2:4, 벧후 3:9). 그러므로 본절의 바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단지 패역한 인간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를 남용하여 악용하고 하나님께 대항하며 자신들의 마음을 스스로 완악하게 하는 것을 막지 않으셨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바로의 완악함을 내버려 두신 이유는 출애굽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여호와’이심을 알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신들의 하나님이 되심을 알리려고 하신 것입니다. 즉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거대한 구속사의 과정 속에서 바로의 완악한 마음을 활용하신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돌림병으로 가축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돌림병이 신기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고센 땅에는 임하지 않았습니다. 바로는 신하를 고센 땅으로 보내어서 이 재앙이 정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합니다. 이런 면을 볼 때에 “하나님이 누구뇨?”라고 했던 바로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이러한 관심은 재앙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확인하는 데에 그쳤을 뿐이며, 겸손하게 회개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오히려 성경은 더 완악해지고 강팍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는 왜 이렇게 완악해지고 말았을까요?

오늘의 본문은 두 개의 재앙으로 돌림병의 재앙과 악성 종기의 재앙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각각의 재앙에 대해서 바로의 변하지 않은 완악한 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림병의 재앙에서 드러난 바로의 모습에서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기 합리화와 개인 이기주의’의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애굽 땅과 고센 땅에 사는 가축들의 생사 여부를 보고 그 차이를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모세가 그토록 “하나님의 말씀대로” 재앙이 임할 것이라고 누차 반복하여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임을 인정해야 하는데 차마 자기 마음과 입으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일때 등장하는 것이 ‘자기 합리화’ 입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자기 합리화”를 한 것입니다. 자기 합리화는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곤란이 일이 생기거나, 막을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에 벌어진 상황을 자기 자신에게 맞추어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나 이해할 만하거나, 또는 일반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만한 객관적 합리화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맞추는 합리화이므로 ‘자기 보호’를 위한 합리화라 할 수 있습니다.

애굽에 돌림병의 재앙이 닥쳤고, 바로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한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고센 땅에는 재앙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합리화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도 ‘고센 땅은 유목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독특한 가축 관리 방법으로 유목을 하는 지역이며, 또한 가축들을 위한 목초지로서 적합한 땅이기 때문에 애굽 온 땅에 임한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자기 합리화는 하나님의 권능을 볼 수 없게 한다는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이적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로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두번째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된 이유는 돌림병의 재앙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돌림병이 자신에게는 직접 피해가 없고, 애굽의 가축들에게만 임한 재앙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근거합니다. 즉 다른 재앙들과는 달리 돌림병은 가축들에게만 임한 재앙으로 바로 자신에게는 직접 해가 되지 않는 재앙이기 때문에 파리의 재앙 때처럼 급하게 모세를 불러 타협안을 제시하면서 재앙을 멈추게 해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즉 ‘나만 안전하면 된다’, ‘나만 살 수 있으면 된다’라는 이기주의적인 사고발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이 왕으로서의 바로의 생각이라면 그는 정말 매우 ‘이기적인’ 왕입니다. 그리고 왕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몸에 직접 가해가 없다 할지라도, 자기 백성들의 가축의 피해와 재산적 피해에 대해서 그는 심각성을 과소 평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어려움은 보지만, 멀리서 다가오는 더 큰 어려움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발상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바로의 개인 이기주의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만의 죄인이 아니라, 애굽 백성들 앞에서도 죄를 지은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자기 합리화’와 ‘개인 이기주의’는 사람이 사는 생활 속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갈등의 요소이며, 공동체에게는 특히 더더욱 갈등으로 인한 상처와 공동체 의식을 깨뜨리는 위험 요소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이나 문제점, 또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 마음의 쌓이는 염려와 걱정, 죄의식은 점점 깊어져 갈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상처,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이익과 유리함만 생각하는 개인 이기주의 역시 공동체를 와해시키며, 또한 이것 역시 사람의 마음에 죄의식을 갖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믿는 성도는 이러한 자기합리화와 개인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모범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합리화와 개인이기주의가 지향하는 길과 정반대의 길을 걸으신 분입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죄인처럼 죄의 굴레를 뒤집어쓰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억울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무죄함을 항변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의 죽으심은 대속의 죽음이요, 자신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죽음이시니 이기주의가 아니라, 남을 생각하는 ‘이타주의(利他主義)’ 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오늘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울수록 힘든 상황일수록 ‘자기합리화와 이기주의’는 내가 부족할 때, 잘못을 하거나 죄를 지을 때 고개를 내밀곤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 곧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라는 말씀으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자기합리와와 개인이기주의’를 이겨내는 주의 은혜가 풍성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예수님! 삶의 어려운 순간과 고난과 역경을 맞이하여 도망하거나 피하지 않고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주와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스스로 합리화하여 ‘나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거짓말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나 자신을 드러내는 정직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손이 안으로 굽혀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여주신 것처럼 밖으로 손을 펼치는 선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고단한 인생길에서 우리를 한번도 떠나지 않으신 주님을 믿사오니 연약한 자와 병든 자와 힘들고 어려운 자들에게 주님 찾아가셔서 위로와 용기, 회복와 치유로 역사하여 주옵소서. 이 땅의 빛과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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