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4/22/2021 목요일 [출애굽기 8:16-24]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4-22 10:39
조회
30
[본문: 출애굽기 8:16-24]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17. 그들이 그대로 행할새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오르니
18.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19.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2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21. 네가 만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리니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이 사는 땅에도 그러하리라
22.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23.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24. 여호와께서 그와 같이 하시니 무수한 파리가 바로의 궁과 그의 신하의 집과 애굽 온 땅에 이르니 파리로 말미암아 그 땅이 황폐하였더라

[본문이해]
(16-19, 세번째 재앙인 이의 재앙)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아론으로 하여금 지팡이로 땅의 티끌을 치라고 명하십니다. 그리하면 땅의 티끌이 애굽 온 땅의 이가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아론이 여호와의 명대로 시행하니 이의 재앙이 임하여 사람과 가축에게 생겼습니다. 요술사들이 자신들의 술법으로 이의 재앙을 재현하려고 하였으나 흉내내지를 못하자, 요술사들이 바로에게 이의 재앙은 자신들도 못하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고합니다. 하지만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요술사들의 말을 듣지 않으니 이 모든 것이 바로의 마음이 완강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16절, “애굽의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이의 재앙이 피의 재앙과 개구리 재앙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바로에게 경고를 먼저 한 후에 재앙이 임했습니다. 하지만 이의 재앙에서는 아무런 경고없이 바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바로와 애굽 땅에 땅의 티끌까지라도 들어서 채찍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16절, “이”: 본절에 등장하는 ‘이’가 정확하게 어떤 동물인지에 따라 영어번역성경들이 서로 다른 동물들로 표현하고 있어서 간단히 소개합니다. 먼저 한글성경과 똑같이 ‘이’(Lice)라고 보는 견해는 KJV, NASV로서 이는 날개가 없는 곤충으로 다른 동물에 기생하여 피를 빨아먹고 살며, 중동지방에 오늘날에도 많이 볼 수 있는 곤충으로 위생상태가 좋지 않고 인구가 많은 곳에서 잘 번식합니다. 둘째로는 ‘진드기’(Ticks)라는 견해입니다. 진드기는 곤충은 아니고 거미과에 속하는 동물로 역시 사람과 가축의 피를 빨며 전염병을 옮기기도 합니다. 셋째로는 NIV, RSV가 따르고 있는 ‘각다귀’(Gnats)라는 견해입니다. 각다귀는 모기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사람과 동물의 피를 빨며, 특히 나일 강처럼 강이 자주 범람하는 지역에서 많이 서식하는데 어떤 계절이라도 적당량의 물과 온도만 갖추어지면 거의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곤충입니다.

19절, “하나님의 권능”: 본절에서 ‘권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츠빠’의 일차적인 의미는 ‘손, 손가락’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차적으로는 상징적으로 손이나 손가락이 무엇을 잡는 기능을 하므로 하나님과 관련되어 사용될 때에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권능’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됩니다.

19절,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수동태로 표현된 본절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든 분이 하나님이라는 뉘앙스를 있습니다. 실제로 출애굽기 4장-14장까지에는 이 표현이 무려 17회나 등장합니다. 이 표현을 통해서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삶의 모든 부분을 주관하고 계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이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이라는 구속사적인 사건을 이루기 위해 특별히 섭리하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20-24, 애굽의 네번째 재앙인 파리의 재앙)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 물 있는 곳으로 나오는 바로를 만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낼 것을 요구하라고 명하십니다. 만약 바로가 거절을 하면 애굽 전역에 파리의 재앙이 임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주하는 고센 땅에는 파리떼가 없을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이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되며,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과 바로의 백성을 구별하므로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표징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미리 예고한 대로 하나님께서 파리의 재앙이 애굽 온 땅에 임합니다.

21절, “파리”: 본절의 히브리어는 ‘헤라로브’인데, 원문에는 정관사가 붙어있는 ‘파리 떼’ 입니다. 그러므로 원문을 직역하면 “그 파리 떼”라는 의미입니다. 정관사를 첨가한 것은 바로나 애굽 사람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종류의 파리떼였음을 의미합니다.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LXX)에 나와 있는 단어 ‘퀴노미아’를 참조하면 본절의 파리떼는 이집트 지역에 자주 등장하는 ‘파리(학명 Musca Domestica)’로 추정됩니다. 이 개파리는 떼를 지어 살면서 사람과 짐승의 피를 빨아 먹기도 하고, 병원균을 옮기는 등 사람과 동물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곤충입니다.

22절, “고센 땅을 구별하여”: 애굽 전역에 재앙이 미치는 것에 반하여 고센 땅을 구별하는 것은 파리의 재앙이 자연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즉 고센 땅은 지리적으로 나일 강 삼각주의 동편에 위치하여 목축을 하기에는 적합하였으나 나일 강 범람과 같은 재앙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애굽 땅 전체에 파리의 재앙이 임했는데 고센 땅만 제외된 것은 재앙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란 사실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것입니다.

23절,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본절에 기록된 “구별하다’라는 말의 히브리어 ‘페두트’는 몸값을 치르고 ‘석방하다’, 위험으로부터 ‘구출하다’란 말에서 유래되어 ‘구속, 구출, 구분’을 뜻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어 성경이 ‘구별’을 뜻하는 “division”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LXX)이나 라틴어로 번역한 벌게이크(Vulgate) 성경은 이 단어를 ‘구원(deliverance)’과 ‘구속(redemptio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절의 ‘구별’을 히브리어의 뜻을 따라 생각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면제, 즉 구속받을 것을 가리킴과 동시에 재앙으로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상 애굽 사람들처럼 재앙을 함께 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철저히 구분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인간은 금세기에 들어 대단한 과학적, 의학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복제를 통해서 새로운 종을 창조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하게 정복하지 못한 암이나 AIDS 같은 질병들이 있지만 대단히 많은 진보를 거두어 사망률을 많이 줄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 흔한 감기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였지만 백신을 통해서 사망률도 많이 줄였습니다. 코로나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지만 어느 정도 진정 시킬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되었습니다. 또한 우주 과학의 발전으로 신의 존재에 도전장을 던지기도 하고,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상에 닥쳐오는 폭풍, 해일, 지진과 같은 자연 재해를 막을 수 있도록 많은 진전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의 한계를 무한대로 주는 상황이라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인본주의는 결국 하나님의 손을 놓게 되고, 그 분의 곁을 떠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즉 인간 스스로에게 가능성을 무한대로 주면 하나님은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 같은 거대한 인류사에 집중하던 눈을 개개인의 삶으로 좁혀 생각하면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인간은 자기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는데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과 전혀 상관없이 수 많은 감정의 변화와 조절의 실패로 개개인의 정신 세계 뿐만 아니라, 육체까지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대로 부터 이를 해결할 길은 아직까지 상담이나 약간의 약물치료 외에는 큰 진전이 없습니다. 외적인 발전에 비해 인간 개개인의 내적인 문제까지 현대 과학과 의학이 관여할 수 없기 때문이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애굽의 요술사들의 반응을 통해서 이러한 인간의 한계에 대해서 새삼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애굽의 요술사들은 강물이 피가 되는 재앙과 개구리의 재앙에서 자기들의 술법으로 하나님이 이적을 재현해낸 사람들입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단하다고 여길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에 이적을 재현해 냈던 그들이 오늘 본문의 ‘이의 재앙’에서는 하나님의 이적을 도저히 흉내조차 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적을 재현하는데 실패한 애굽의 요술사들의 반응이 특이합니다. 자신들의 능력으로 모세와 아론이 한 것처럼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던 그들이 실패를 경험하고 자신들의 한계에 부딪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깨달은 것은 ‘하나님 앞에 선 모든 인간들의 한계’ 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자 하나님이 보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 권능자의 손길, 하나님의 능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한계를 인정하면 내 약함 속을 채우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자시이 온전하여 진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약한 것들을 오히려 자랑하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약한 자기 자신에게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며,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오히려 기뻐하는 이유는 약할 때에 오히려 그리스도의 강함이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약함을 드러내니 그리스도의 강함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애굽의 요술사들도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니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애굽의 요술사들에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이의 재앙’이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하나님을 믿었을까? 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후 성경 어디를 살펴 보아도 그 요술사들이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백성이 되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애굽의 요술사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알기는” 하였으면서도 정작 권능의 하나님을 ‘믿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믿음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으로 믿음에 이를 수 있다면, 성경을 정독하며 기독교를 많이 공부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식이나 종교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 철학자나 과학자, 타종교의 성직자, 그리고 일반 사람들 중에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고 내용을 안다고 그들이 모두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구원은 지식아 아니라 믿음의 고백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고백은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을 나의 창조주요, 구원자로 믿고 고백함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0장 9-10절에 기록했듯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까요? 혹시 애굽의 요술사들처럼 하나님의 권능은 인정하면서 믿지 못하는 모습이 나 스스로에게 있지는 않습니까?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고,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여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있지만, 정작 마음 속으로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예수님을 자의 영혼을 구원한 그리스도로 믿고 있습니까? 참 고백의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은 여전히 지식의 대상이요, 정신적인 스승에 국한될 뿐이며, 교회는 도적적인 수양을 쌓는 곳일 뿐입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내 마음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거하고, 그 사람도 하나님 안에 거한다고 했으니 아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참 고백의 시인하는 믿음의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고 아직 고백할 용기와 마음이 부족하다면, 오늘 시간이 다 지나가기 전에 진실하고 솔직한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아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자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구원의 놀라운 은혜와 기쁨을 경험하시기를 발랍니다.

[기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여,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있사오니 나를 자녀 삼아 주시고, 내 죄를 용서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내 교만과 나 자신을 믿는 내 자랑은 죄를 깨닫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사오니 나를 겸손케 하시고, 나를 쳐서 하나님 앞에 거꾸러지게 하옵소서. 주께서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시며, 교만과 오만한 자를 끊고, 강포한 자를 물리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내 안에 있는 죄악을 완전히 도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보혈의 공로를 따라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이 죄인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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