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4/20/2021 화요일 [출애굽기 7:14-25]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4-20 08:58
조회
38
[본문: 출애굽기 7:14-25]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
15.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16.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17.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18.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
1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위에 내밀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
20.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의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을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21.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니 애굽 사람들이 나일 강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으나
22.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23.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아니하였고
24.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나일 강 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더라
25. 여호와께서 나일 강을 치신 후 이레가 지나니라

[본문이해]
(14-1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강물이 피가 되는 이적을 하라고 명하심)
바로의 마음이 완강해져 백성들 보내기를 거절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침에 강가로 나가 바로를 만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가 듣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이적을 행하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강물이 피가 되는 이적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피의 재앙을 통해서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물에서 악취가 나므로 애굽인들이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 경고하십니다. 또한 아론도 그의 지팡이를 펼쳐서 애굽의 물들, 강들, 운하, 못, 모든 호수 위의 물, 심지어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있는 물들도 모두 피가 되는 하나님의 이적을 행하라고 명하십니다.

14절,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12장에 이르어야 끝나는 10가지 재앙 중에서 첫번째인 피의 재앙을 기록하면서 본절에서는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가혹한 재앙들을 내리실 수밖에 없었던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속성 중에 ‘잔인함’이라는 속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본절에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바로가 모세를 통해 전달받은 하나님의 경고와 명령을 무시하고 “완강했기” 때문입니다. ‘완강하다’라는 말의 히브리 원문의 의미는 ‘무겁다, 충량의 있다’라는 뜻이지만 성경에서 마음이 악하거나, 악한 마음으로 행한 행위의 가혹함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한글성경에서 ‘마음의 태도가 너무 거칠고 굳세다’라는 의미의 ‘완강하다’라는 말로 번역한 것은 바로의 마음이 대단히 고집스럽고 악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 번역이라 생각됩니다.

15절,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바로가 강가로 나온 이유는 애굽의 신들 중에서 나일 강을 관장했던 “크눔(Khnum) 신”에게 제사하기 위해서 나왔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애굽 사람들은 집중 호우로 인해 나일 강이 범람하는 것은 크눔 신의 진노 때문이며, 따라서 이를 막기 위햇 당연히 신에게 제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아침”이라는 말 앞에 정관사가 붙어서 ‘어떤 특정한 날’의 아침을 지정하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나일 강의 신에게 제의를 지내는 날에 반드시 나올 것임을 알고 그 날로 지정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6절,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아니라, 특별히 ‘히브리 사람’이라고 언급하게 하십니다. 이는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자신들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에 근거하고 있는 ‘언약 공동체’임을 부각되는 명칭입니다. 즉 ‘히브리 사람’이라는 명칭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와서 이제까지 살았던 것은 애굽인들의 노예로 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전되기 위한 목적이 있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17절, “광야”: 히브리어 “미드빠르”는 구약성경에서 세가지 지역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단순히 넓은 지역을 가리키기도 하였고, 둘째는 시 65:12, 렘 23:10에서 양떼들을 먹이는 ‘초장’을 뜻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거친 땅’을 의미하는 것으로 왕상 2:34, 대상 18:2, 대하 26:10에 사용되며, ‘황무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수 18:12, 삿 1:16, 삼상 23:14에 사용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세번째 의미로 사용되어 샘물, 물 웅덩이, 강, 옥토가 없는 ‘거친 땅으로 황무지와 같은 곳’의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8절,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 악취가 나리니”: 나일 강에 서식하는 민물 고기들은 사람들이 먹는 주식과도 같은 흔한 음식이었으므로 민물 고기들이 죽었다는 것은 피의 재앙으로 인해 물을 못 먹는 어려움 뿐만 아니라, 물고기를 취할 수 없는 어려움까지 동반된 것입니다. 또한 악취는 썩은 물고기의 냄새일 수도 있고, 피로 변한 물의 비린내이거나, 또는 강물 안에 있는 여러 식물과 동물들이 죽어서 부패하여 발생한 냄새일 것입니다.

19절, “애굽의 무들과 하수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고대로 부터 나일 강은 담수량이 풍부하여 어떤 가뭄에도 마른 적이 한번도 없었던 애굽의 젖줄입니다. 그런데 이 강물이 피로 변했다는 것은 애굽인들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위협이 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나일 강은 애굽 사람들에게 최대의 축복의 근원지로 거의 신적 존재로 숭배되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런 나일 강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피가 되어 사용할 수 없는 물로 만드신 것은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애굽인들과 바로에게 알리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피조물인 자연에 신적 의미를 부여하여 우상으로 섬기는 자들을 징계하시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일 강의 거대한 지류에는 못과 늪지대로 연결되어 풀이 우거지고 물지 저장되는 많은 습지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런 곳의 물들도 피가 되었다는 것은 물고기 외에 이런 곳에서 사는 동물들과 조류들의 생계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또한 이로 인하여 애굽인들의 사냥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또한 본절에 등장하는 ‘운하’는 그 당시에 현재의 이집트 수에즈 운하와 같이 선박의 출입을 위해 만든 운하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농업용 관계 수로를 가리킵니다. 또한 본절은 모든 호수의 물까지 피로 변했으므로 피의 재앙의 대상이 강물 뿐만이 아니라, 호수까지 포함하며, 그리고 식수로 쓰기 위해 저장해 놓은 물과 그릇에 담아 놓은 물까지 해당되었으니 엄청난 범위의 재앙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20-25, 피의 이적을 애굽의 술객들도 하자 바로의 마음이 강팍해짐 )
모세와 아론이 지팡이로 강물을 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피의 이적이 일어났으며,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 결과들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요술사들이 피의 재앙을 흉내내자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져서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바로는 궁으로 돌아가 이 일에 관심도 두지 않았고 애굽 사람들은 물을 구하기 위해 강 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해야 하는 수고를 7일 동안이나 해야 했습니다.

22절,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옛 한글성경에는 “애굽 술객”으로 표현된 요술사, 혹은 마술사들은 앞서 바로 앞에서 지팡이를 던져서 뱀이 되게 했을 때, 아론을 따라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했던 그 요술사들을 말합니다(출 7:11). 애굽에서 이들의 역할은 ‘점을 치거나, 신의 계시를 받거나, 또는 계시들을 해석하여 전달하는 일을 하거나, 그리고 꿈을 해석하면서 책에 기록하는 일’을 했던 자들입니다. 특히 본절에서 “자기들의 요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은밀한, 숨겨진’라는 뜻으로 요술사들이 모세와 아론이 행한 것처럼 물질의 상태를 본질적으로 변하게 하는 이적이 아니라, 은밀한 눈속임으로 행한 마술사의 행위를 표현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유추에 신빙성을 더할 수 있는 이유는 만약 요술사들이 피의 이적을 모세를 따라 그대로 행하고 더 큰 능력이 있었다면, 피를 다시 물로 바꿀 수도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술사드른 흉내를 내는 사술로는 하나님의 이적과 맞서 다시 물로 바꿀 수 없었기 때문에 히브리 단어가 표현하듯이 숨겨진 눈속임에 의한 마술사의 행위라 유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세상 민족들 중에서 제사장 역할을 하는 민족으로 부르셨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구체적 언약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증거하기 위해 구별하신 특별한 민족인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결집하여 자기들 스스로 바로 왕에게 청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그리고 그 분의 이름으로 요구된 것이며 실행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사건은 인류 보편의 정의와 평화인 인도주의나 한 민족의 태동기에 있었던 민족주의 차원의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차원에서 보아야 이해될 수 있는 사건입니다. 구속사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거절하는 세력과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려는 하나님과의 대결 구도인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창조하시고 초월적인 자존자이신 하나님께서 이기기 힘든 상대와 대치하여 가까스로 출액부하는 사건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자기 백성들과 하나님을 거부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여호와”이시며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리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 속에서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애굽왕 바로에 대한 성경의 표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바로에 대하여 “강팍하고 완강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세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출애굽을 요구하였지만, 바로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몰랐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국익 차원에서 바로 왕이 거부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 첫번째 피의 이적 사건에서도 애굽의 요술사들이 모세의 이적을 흉내내자 바로 마음이 완악해지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는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바로는 계속되는 이적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신 이적들을 경험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부득불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허락하다가도 상황이 바뀌면 곧바로 말을 바꾸며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강팍하고 완강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런 바로의 태도, 즉 적나라한 인간의 본성의 모습이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도’가 되었다고 하는 우리 속에도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본성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좋은 품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며, 찬양하고 경배하며, 그 분의 말씀을 행하면서 기쁨과 은혜를 누리는 선한 성품들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면은 하나님을 안다 하면서도 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들과 자신의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다른 선택을 하는 불확신성의 요소들과 하나님의 기쁨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과 쾌락을 택하는 악한 성품들입니다.

바로의 하나님에 대한 거부와 고집스러운 완강함의 모습이 우리들 속에도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가끔씩 고개를 들고 활보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나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택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손해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의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는 것은 엄청난 노동력의 손실이며, 자신을 신적인 절재 권능자라고 믿고 따르는 애굽 사람들이나 신하들에게 자신의 무능력을 입증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로와 같이 우리들도 손해가 되는 것, 위험한 것, 욕을 먹거나 무능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일들을 무작정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런데 손해가 되고, 위험하고, 욕을 먹을 수 있고, 무능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도 따를 수 있는 방법이 단 하나 있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믿음” 입니다. 이 믿음은 세상의 어떤 다른 것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요, 신뢰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따르는 것입니다. 무모해 보이며 무작정 따르는 것으로 세상은 판단하므로 ‘그것은 믿음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 역사의 주인이시며, 창조주이시며,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기에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이 단계에 들어서지 못하면 우리는 바로와 같은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23편의 고백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키시고 나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주께 구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시 56:4). 바울이 에베소의 교인들에게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었다고 고백한 것과 같은 믿음을 우리에게도 허락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엡 3:12). 우리 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선진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얻었다고”(히 11:2) 고백한 것처럼 믿음을 구하고, 그 믿음으로 단단해 져서, 세상의 도전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의 모습을 보면서 제삼자의 모습으로 간주하여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혹시 나의 본성에 바로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은가?’를 말씀에 비추어 겸손하게 묵상할 수 있는 경건의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 보면 바라 볼 수록 내 안에 계셔서 은혜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우리의 생명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 우리의 연약함을 돌보시고 어려움 속에서 거칠 것이 없는 구원의 손길을 펴치시는 주의 사랑게 감사하며 찬양을 드립니다. 바다에 떠 있는 부표처럼 세상의 이익과 유혹에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과 삶을 요동하지 않는 반석의 믿음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바로의 완강함과 고집스러움이 내 안에 있다면 물리쳐 주시고, 오직 내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 만이 계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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