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4/17/2021 토요일 [출애굽기 6:2-13]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4-17 09:29
조회
117
[본문: 출애굽기 6:2-13]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12.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1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

[본문이해]
(2-8,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출애굽을 거듭 약속하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께서 여호와이심을 알리시며, 예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났을 때는 자신을 여호와로 알리지 않았음을 밝히십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기로 약속하셨던 것을 말씀하시며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듣고 그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밝히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이 여호와이심을 거듭 밝히시면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학대로부터 빼어 내고, 건지시고, 구속하여 그들을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삼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구원이 성취되는 그 때에 비로소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알 것이라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줄 것과 하나님의 이름을 거듭 다시 밝히십니다.

3절, “전능의 하나님”: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Almighty God)라는 말로 창세기 17장 1절에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 가운데 자신을 처음 계시하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전능(샤다이)”이라는 말은 48회 나타나는데 “엘 샤다이”라는 말이 온전히 사용된 경우는 모두 7회이며, 그 중에 6회(창 17:1, 28:3, 35:11, 43:14, 48:3, 출 6:3)가 모두 하나님이 맺은 언약과 관련되어 사용됩니다. 언약을 맺은 대상자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과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다는 내용입니다.

3절,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성경에 표현된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전혀 하나님의 존재나 속성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본 절의 표현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여호와’란 이름을 전혀 들어 보지도 못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미 그들은 ‘여호와’란 이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창 15:7, 22:14). 하지만 ‘여호와’란 이름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속성이 직접적인 삶의 체험을 통해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단순하게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한 걸음 더 발전하여 자연스럽게 여호와를 주인으로 섬기는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며, 구원의 역사를 통해 그 이름의 의미를 깊이 깨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내리게 될 하나님의 심판과 자신들의 구원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몸소 체험하므로 마침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깊이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5절, “나의 언약”: 약속이나 언약은 쌍방 사이의 합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언약은 “우리의 언약”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 편에서 “나의 언약”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물론 쌍방 사이의 요소가 언약을 지키는데 전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종종 “나의 언약”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상대자인 인간을 주권적으로 선택하여 부르시고 일방적으로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그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 언약의 조항을 이행하고 지킬 수 없었으며, 그 언약 관계의 지속과 언약의 성취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언약은 언제나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고 지키시는 언약으로 표현되어 “나의 언약”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9-13, 백성들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출애굽 소명을 계속 감당케 하심)
모세가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였지만 마음이 상하고 고단한 노역으로 인해 백성들이 모세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를 찾아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다시 요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데 바로가 어찌 자신의 말을 듣겠냐고 반문하면서 자신은 입이 둔한 자라고 하며 명령 이행을 주저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출애굽 지도자로서의 소명을 계속 감당하도록 하십니다.

11절,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9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모세의 말을 듣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한번 정하신 당신의 선하신 뜻을 바꾸지 않으시고 이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12절,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히브리 원문의 직역은 “하는 할례 받지 않은 입술들을 가진 자입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둔한”이라는 말의 원문이 “할례 받지 않은”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직접적으로 할례 받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때때로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겔 44:9에 ‘마음에 할례 받지 않은 자’, 렘 6:10에 ‘귀에 할례 받지 못한 예루살렘’ 등의 표현 등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부족한 점이 있을 때 은유적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 절에서 ‘입이 둔하다’라는 것도 실질적으로 입술이 둔하여 언변에 부족함이 있을 수도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둔함’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모세는 이렇게 말하므로 하나님께 자신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전하지 못하겠다고 거부의 뜻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13절,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 본 절에서 밝히고 있는 것은 모세의 사명입니다. 모세의 사명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는 ‘출애굽’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이 보다 우선되는 모세의 중요한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에게 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본 절에서 이 명확한 두 가지 사명을 모세에게 재확인 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를 인칭대명사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것을 1인칭 “나”라고 하며, 나와 대화하는 상대방을 가리킬 때는 2인칭 “너”라고 하면, 그 외의 사람을 가리킬 때는 모두 3인칭으로 “그, 또는 그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를 안다’라고 할 때에 거리감으로만 따진다면, 3인칭에 해당하는 사람 보다는 2인칭의 “너”가 훨씬 더 가깝고 알 수 있는 여지가 많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 외의 누군가를 ‘안다’라는 것은 외향적인 특징이나 용모,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상대방을 ‘안다’라고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안다’라는 것은 상대방의 드러나는 겉 모습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 세계와 생각까지도 알아야 정말 ‘안다’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범주 내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전부일까요? 물론 성경에 묘사되어 있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알고 구원에 이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것이 성경에 제한되어 있는 것은 분명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3인칭의 ‘그’가 아니라, 좀 더 가까이 다가와서 2인칭의 ‘당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성경은 2인칭 시점의 하나님에서 머무르지 않고, 더 깊숙이 우리 내면으로 들어 오셔서 “내 안에 계신 하나님”,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예수 그리스도”, “너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성령” 등등으로 2인칭 시점을 뛰어 넘어 아예 우리 안에 계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안에 들어 와 계신데 이보다 어찌 더 가까울 수 있겠습니까? 이미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최고의 “충분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리감에 해당하는 “충분조건”만으로는 하나님을 알기에 부족합니다. 여기에 “필요조건”이 추가되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필요충분조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필요 조건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 가는 친밀감이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록된 성경이나 가르침을 통해서 얻어지는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직접 하나님과 몸으로 부딪히면서 깨닫게 되고, 느끼게 되고, 경험하여 아는 앎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의 언약을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7장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 고대 근동 아시아의 언약의 형식을 취하여 동물의 사체를 반으로 쪼갠 후에 계약을 맺는 두 당사자가 지나가는 의식을 준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지만 실제로 제물의 사체 사이를 지나가신 분은 하나님일 홀로 이셨습니다. 소위 “언약공식”으로 불리우는 쌍방간의 관계가 아니라, 언약의 책임을 홀로 지시겠다는 결정을 하시고 하나님 홀로 지나가신 것입니다. 하나님 홀로 전적으로 언약을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표현하실 때에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지만 ‘너와 나의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언약, 곧 “나의 언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은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 오십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번성케 하신다는 약속에 따라 가족에서 부족으로, 그리고 부족에서 민족으로 크게 번성시키십니다. 그리고 그 민족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심으로써 온전하게 언약을 지켜 나가시며 그 후손들의 하나님의 될 것이라고 약속을 지켜 나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믿는 둥 마는 둥 하며 시큰둥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키시겠다고 다짐하시며, 모세를 통하여 구원 역사인 출애굽의 행보를 이어가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 행하시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혜택과 은혜 가운데 첫번째는 “구원”, “해방” 등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게 된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 출 6장 2절, 6절, 7절, 8절에 계속 반복되는 말씀은 “나는 여호와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너희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관심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결과, 출애굽의 결과, 가나안 땅의 축복의 결과 등등에 관심이 있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결과 보다도 모든 과정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 입니다.

결국, 출애굽의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의 본성의 한계를 경험하기도 하고, 고난과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저 멀리 하늘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이미 자신들의 삶 속에 들어와 계시며, 더 나아가서 그들 속에 계신 분임을 처철하게 깨달으므로 하나님을 아는 “필요충분조건”을 채우게 됩니다.

출애굽의 과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하면서 알게 되는 하나님!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로 인하여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롬 8:1-2), 하나님의 자녀들이 겪고 경험해야 할 삶의 다양한 군상들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경험하게 됩니다.

지식으로 끝나는 앎이 아니라, 앎의 “필요충분조건”을 채우면서 알게 되는 내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을 알기를 소원합니다. 이를 위해서 때로는 고난과 시험과 환란을 겪기도 할 것이며, 또는 기쁘고 행복한 일도 경험할 것이며, 또는 요즘처럼 코비드 시대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을 겪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내주하심과 역사하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더 확실히 체험하고 알 수 있다면, 이것이 가장 큰 복 중에 복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와 이미 관계를 맺고 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 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 내가 나 자신을 알기 전에 이미 나를 만드시고 다른 어느 누구 보다도 나를 너무 잘 아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를 자녀 삼아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주께서 나를 잘 아시니 이제는 내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기 위하여 내 안에 있는 어둡고 교만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을 자랑을 제하여 주시옵소서.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도록 성령 안에서 깨어 있게 하시며, 선한 주의 뜻을 따라 행할 수 있는 믿음의 결단과 용기, 실천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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