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4/10/2021 토요일 [출애굽기 3:13-22]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4-10 09:43
조회
51
[본문: 출애굽기 3:13-22]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본문이해]
(13-15, 모세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 줌)
모세가 백성들이 자신에게 출애굽의 사명을 주신 조상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물을 때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를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알려 주시며, 모세에게 스스로 있는 자에 의해 보냄을 받았다고 말하라고 알려 주십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하나님의 칭호라고 알려 주십니다.

13절,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고대 근동 사회에서 ‘이름’은 단순히 어떤 사람을 부르는 데에만 사용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름이 사람의 성격이나 신분, 또는 운명까지 반영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던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왕이나 군주들이 사신을 타국에 보낼 때에 자신의 권위를 전적으로 위임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이름이 담긴 인장을 주기도 하였으며, 또는 그 인장이 찍힌 편지를 가지고 간 사례들은 사신이 왕을 대리하여 왔음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모세는 자기 민족들에게 갔을 때에 그들에게 보일 하나님의 신임을 요구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14절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영어로는 “I am who I am”으로 표현된 이 문장의 히브리 직역은 “나는 영원히 존재하는 자로 존재한다” 또는 “나는 영원히 존재자이다”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즉 스스로 있는 자란 스스로 존재하는 자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장의 동사 “이다(히, 예흐예, 영어 be 동사)”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에서는 미완료형 시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여호와’라는 히브리 이름의 유래는 ‘~이다’라는 동사의 미완료형 ‘예흐예’가 발음과 스펠링의 유사성으로 그 어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시간 개념처럼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영원부터 영원까지 언제나 존재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는 시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름을 통해서 당신의 자존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이방 신들과는 다름을 말씀하시고, 존재하지 않는 이방의 거짓들에 비해 하나님은 살아 존재하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 “여호와”: 구약성경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여호와”는 총 5321회 등장합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입니다. 본절에서는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섬기던 하나님이 바로 그 “여호와”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이미 창세기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2장 4절은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된 것이지만, 창세기 4장 26절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이미 아담 때부터 ‘여호와’란 이름은 알려져 있었으며, 예배를 받으시는 분으로 경배되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름의 진정한 뜻에 대한 해석은 모세를 통하여 온전하게 알려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고 하여 이를 ‘나의 주(my Lord)’를 뜻하는 히브리어 ‘아도나이’로 대체하여 읽곤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전통이 성경 번역에까지 영향을 미쳐 원어 히브리어 성경에는 원래 ‘여호와’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주(the Lord)’로 번역하는 전통입니다. 대표적인 성경이 1661년 영국에서 번역된 King James Version으로 여호와를 ‘the Lord’로 번역했고 특별히 하나님의 이름을 강조할 때에만 ‘Jehovah’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영역본 성경들이 실제로 히브리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로 표기된 부분을 이름을 넣지 않고 ‘God the Lord, 또는 the Lord’로 표기하고 있는 점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여호와’란 이름의 히브리 발음상의 차이로 인해 영어 성경 번역본들은 ‘여호와’란 이름을 넣을 때에 “Jehovah, Yehovah, Jahweh, Yahweh” 등등으로 다르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오히려 영어 성경에 비해 하나님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기록하고 있는 한글 성경이 더 적극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16-22, 하나님이 모세에게 할 말을 알려 주시며 출애굽의 과정을 말씀하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라고 지시하십니다. 그리고 장로들에게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당한 일들을 보았다고 전하라 하십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알리면 장로들이 모세의 말을 들을 것이라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출애굽 과정을 설명하시기를, 먼저 애굽 왕에게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사흘 길 가기를 청하라 알려 주십니다. 하지만 애굽 왕이 요청을 거절하다가 여러 이적을 경험한 후에 이스라엘 민족을 보낼 것이며, 결국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인들로부터 많은 재물을 취하여 출애굽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6절, “이스라엘 장로”: 민수기 11장 25절에 보면 모세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셨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고려해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한 후 광야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더욱 활성화되어 70인 장로 제도가 성립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에 장로 제도는 계속 존속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장로들을 불러 모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추어 볼 때 출애굽 전에도 이스라엘의 각 지파나 가족을 대표하는 ‘장로’들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를 불러 모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전하는 것과 같은 효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8절, “애굽 왕에게”: 여기서 말하는 애굽 왕은 성경을 근거로 추정하면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던 투트모스 3세(Thutmose 3)의 사후에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아멘호텝 2세(Amenhotep 2, BC 1448-1424)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18절,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성경에서 히브리 사람이라는 명칭은 창세기 14:13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라는 말씀에 처음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삭과 야곱을 히브리인으로 부른 표현이 나옵니다(창 40:15, 43:32). 따라서 본문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스라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며, 그들의 후손으로 구성된 당시의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의 하나님이라는 뜻까지 포함합니다.

18절,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도록”: 본문에 “제사(히, 웨니즈뻬하)”로 표현된 단어의 히브리어의 기본적인 뜻은 “동물을 죽이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 개역한글 성경에는 이 단어를 “희생”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라는 말은 동물을 죽여서 드리는 희생제사로서 오늘날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예배”가 되는 셈입니다. 특히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출애굽의 근본적인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흘 길”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지역으로부터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장소인 호렙 산까지의 거리라고 추정되며, 또한 적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즉 이 말 가운데는 애굽과 속박과 추격을 벗어 나려는 의지도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2절,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21절에 하나님께서 이미 애굽 사람으로부터 은혜를 입히게 한다고 하였으므로 본문의 “이웃 사람”은 우선적으로 애굽 사람을 가리킵니다. 즉 고센 지역에 한정되어 살고 있었던 히브리인들의 ‘이웃’에 애굽 사람들이 있었음을 시사해 주므로 고센 땅에 히브리인들만 살았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과 함께 살았다는 것은 당시 히브리인들의 이웃 중에 높은 지위와 많은 재물을 지니고 있는 애굽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들의 집에 종으로 살거나, 또는 그들의 아내로 살았던 히브리인들이 있었음을 시사해 주기도 합니다.

[묵상 및 적용]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지역마다 사람들이 믿는 제 각각의 신들이 있으며, 사람들이 믿고 있는 종교가 있습니다. 위키피아의 자료에 따르면 종교의 순위를 신자 숫자에 따라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중국 전통 종교와 샤머니즘, 부족 샤머니즘, 아프리카 전통 샤머니즘, 시크교, 스피리티즘, 유대교, 바하이교, 자이나교, 신토교, 까오다이교, 조로아스터교, 천리교, 원불교, 유니테리언주의, 라스타파리 운도, 사이언톨로지교 등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듣도 보지도 못한 종교가 있는가 하면, 의외로 샤머니즘을 따르는 사람들이 약 8억으로 5억의 불교 신자들 보다 많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상 모든 종교 구분 중에서 기독교가 첫번째 있다는 사실에 과연 안도해야 하는지 마음이 싱숭생숭 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다른 종교들과 기독교가 함께 나열된다는 것이 왜 그런지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어떤 종교를 믿든지 상관없이 선한 일을 하면서 살면 결국 모든 종교는 끝은 다 똑같다’라는 식의 다원주의식의 종교론이 현대인들에게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이고, 다원주의 종교론을 인정하는 것이 마음이 넓은 자애로운 사람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오늘 날의 세태(?)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기독교가 여러 종교들 중의 한 종교로 전락되는 것은 꽤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기독교는 매우 직선적인 역사관으로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향하여 ‘독선이다’라고 말합니다. 즉 세상은 기독교를 향하여 타협할 줄 모르고, 협력할 줄 모르고, 자기 위주와 고집대로 밀고 나가는 ‘독불장군과 같다’라고 비아냥 거리는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안타까운 것은 기독교인들 중에 ‘독선, 독불장군’이라는 세상의 비아냥 거림이 불편한지 세상과 타협하며 신앙의 고집을 꺾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임하실 때와 세상 끝의 징조에 대해서 언급하시기를 마태복음 24장 9절에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짐을 믿는다면 기독교인은 환난에 처하고, 죽임에 처하고, 미움과 조롱과 비아냥 거림을 당하는 상황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예언의 말씀이 주는 두려움과 걱정 보다 더 확실한 위로의 말씀은 비록 거짓 선지자가 모든 종교에서 일어나며 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당하고 불법이 성하며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진다 할지라도,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세상이 버린 예수 그리스도!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았다고 말하면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서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라고 사도행전 4장 12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종교가 얼마나 많든, 세상 사람들이 믿는 신들이 얼마나 많고 다양하든, 세상의 아무리 좋은 제안과 달콤한 유혹이 있든 상관없이 구원과 직결되는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진정으로 믿습니까? 믿는지 안 믿는지에 따라 삶의 방향과 행동이 구분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을 당신의 영원한 이름을 “여호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는 참 하나님의 이름이요, 여호와 하나님 만이 우리가 믿고 경배해야 할 유일한 분이심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신이라 하는 것들이 수없이 많으나 그것들은 모두 거짓된 것이요 사탄의 현혹이요, 인간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는 허무한 것들임에 불과합니다.

기독교가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유일한 이름으로 믿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독선입니다. 하지만 독선처럼 비추어지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인하거나 포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만을 참된 전능자로 믿고 경배하며 모든 우상과 존재하지 않는 거짓된 신들을 배척하고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라는 출애굽기 20장 3절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야 하는 자들이 “우리, 곧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정체성을 의심한다면 신앙이 세상의 도전과 세태에 버드나무 가지들처럼 이리 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너는 믿고 확신한 가운데 서라”라는 성경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믿음 안에서 자라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끝으로 모세가 자기 백성들에 권면했던 말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고백한 말씀, 그리고 시편 기자의 고백이 우리 마음 속에 깊은 울림을 주는 사라지지 않는 메아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주 여호와여 이러므로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삼하 7:22)

“무릇 구름 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시 89:6)

[기도]
온 우주 만물에 조성된 피조물로 부터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우리를 간과하셔도 되시는 분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의 길을 여시기 위해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만이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니 주 밖에 감히 누가 신이라 불리울 수 있겠나이까!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시는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주셨사오니 지금부터 영원까지 아버지 하나님 만을 의지하며 경배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땅에서 겪는 질병과 고난과 환난과 염려과 근심이 우리를 괴롭게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끊을 수 없으니 이생과 다음 생의 삶이 하나님께 속함이 복이요 상급임을 믿고 주께 찬양을 돌려 드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 되신 우맂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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