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4/09/2021 금요일 [출애굽기 3:1-12]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4-09 09:05
조회
54
[본문: 출애굽기 3:1-12]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본문이해]
(1-6, 하나님께서 호렙 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심)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다가 광야 서편 땅 호렙 산에 이르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났습니다.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고 모세가 이상히 여겨 확인하려고 가까이 다가 갑니다. 다가오는 모세를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를 부르시니 그가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접근을 금하시며 거룩한 땅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 자신을 조상들이 섬겼던 하나님이라고 계시하시니 모세가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립니다.

2절, “여호와의 사자”: 본문에서 ‘사자(히, 말르아크)’는 “특별한 사명을 띠고 보냄을 받은 자”, “하나님의 천사”, “전달자”, “하나님의 천사”, “선지자”라는 뜻으로 구약성경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사자가 불꽃 가운데 나타난 후에 바로 4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문맥의 정황상 천사가 나온 후에 다시 하나님이 오신 것이 아니라, 불꽃 가운데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가 계속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계시는데 4절에 여호와로 바꾸어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의 여호와의 사자는 천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육신하시기 전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곧 성육하시기 전의 성자 예수님을 여호와의 사자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절, “떨기나무”: 시내 광야와 같은 건조한 지역에서 흔히 자생하는 키 작은 관목류의 가시 덤불입니다. 사막 지대에서 뜨거운 열기에 의해 인위적인 작용 없이도 쉽게 불이 붙어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궁금한 것은 그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지 않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 궁금했던 것이며,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돌이켜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5절, “거룩한 땅”: 거룩을 뜻하는 히브리어 “코데쉬”는 하나님의 절대적 속성으로 피조물이 가질 수 있는 속성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단어가 성경에서는 장소, 의식, 절기, 물건, 제물 등과 관련하여 형용사로 명사 앞에 붙어서 사용되는 용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즉 거룩한 장소, 거룩한 의식, 거룩한 절기, 거룩한 물건, 거룩한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거룩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피조물과 관련하여 ‘거룩’이라는 속성을 붙여 주면 거룩해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들은 거룩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등장하는 ‘땅’이 거룩해 질 수 있는 것은 이 땅이 하나님과 관계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임재하셨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순간, 그 장소와 피조물들도 거룩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5절, “신을 벗으라”: 일반적으로 고대 근동에서 신은 발 밑바닥만을 보호하는 샌들 형태를 가리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신을 벗고 맨발로 걷는 것은 수치스럽고 비참한 일입니다. 주로 노예들이나 종들이 그렇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먼지가 많은 근동 지방의 특성상 신발은 더러움과 죄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서 자신을 종과 같이 낮추는 것이며, 더럽고 죄 많은 자로서의 천함을 인정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6절 “모세가…얼굴을 가리우매”: 히브리 사람들은 부정한 인간이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보면 죽는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참조: 삿 6:22, 왕상 19:13). 그래서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 한 모세가 자기 얼굴을 가리운 것으로 보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에스겔(겔 1:28)과 다니엘(단 8:18)도 하나님을 만났을 때 엎드려 죽은 자같이 되었다고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7-10, 하나님께서 출애굽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모세에게 주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들었다고 밝히시며 하나님께서 오셔서 백성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며,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을 밝히십니다. 다시 한번 이스라엘 민족의 절규를 들으시고 애굽의 이스라엘에 대한 학대를 보셨음을 말하시면 모세를 종으로 파송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지도자로 삼으실 것을 밝히십니다.

7절, “감독자”: 김독자라는 말은 원문의 의미를 충분히 담고 있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노게사이우’는 단순하게 일을 할 때 감시하고, 일을 주관하는 역할을 하는 ‘감독자’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억시로 시키는 자”, ‘독촉하는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강제 노동을 시키며 감독하는 자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옛 개역한글 성경의 번역은 강합적 노동을 요구하는 ‘노예 감독들”의 의미를 담아 “간역자”라고 번역하고 있고, 영어성경들도 “slave driver(NIV)”, “taskmaster(KJV, NASB)”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1-12, 출애굽 지도자 모세의 소명을 위한 모세와 하나님 사이의 변론)
모세가 자신이 누구이길래 이처럼 큰 일 행하여 바로에게 나아가 맞설 수 있겠느냐고 하나님께 묻고, 또한 자신이 무엇이길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킬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이런 모세의 물음에 하나님께서 당신이 직접 모세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훗날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이후에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텐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낸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1절, “내가 누구이기에”: 모세가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라 자신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나타내는 반어법적 표현입니다. 40년 전에 혈기왕성했던 시절의 모세는 자신의 힘으로 형제들을 구원하겠다는 자신감이 충만한 자였지만, 80이 된 모세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내면에 많은 변화가 있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로 몸세를 부르셨을 때 겸손히 자신의 능력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본문은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사명을 주시는 감동적인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렸을 때 보았던 “엑소더스”라는 영화에서 모세 역할을 맡은 미국 배우 찰턴 헤스턴이 불꽃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이 지금도 생각해 보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문에서 모세에게 자신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심을 밝히시면서 모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사명을 주시면서 믿음의 조상들에게 했던 언약을 다시 말씀해 주십니다. 그 말씀이 8절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의 말씀을 21세기를 살고 있는 제가 묵상할 때에 고개가 약간 갸웃거리는 의아심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족속이 살고 있는 약속의 땅이 실제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가나안 땅, 지금의 이스라엘 땅은 결코 살기에 풍족하고 생활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고 좋은 천혜의 자연환경 조건이 갖추어진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살기에 좋은 자연조건과 생활조건을 갖춘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그 척박하고 건조해서 불편할 뿐만 아니라, 비도 잘 오지 않아서 농사 짓는 것도 제한된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부르셨을까요?

“젖이 흐른다”라는 표현은 젖을 낼 수 있는 가축을 키울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고대 근동 아시아의 문화 속에서 젖은 풍요와 만족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젖이 흐르는 땅이 되려면 목초지가 많이 널려 있어서 가축들에게 풍부하게 먹일 수 있고, 유목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음식 중에 하나인 ‘젖’을 풍부하게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꿀’도 ‘젖’과 마찬가지로 풍요를 상징하여 더 나아가서 유익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은 실질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지역이 아닙니다. 그럼 이 말이 은유적인 표현으로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 약속일까요? 물론 유대교에서 모세오경인 ‘토라’를 ‘젖’에 비유하기도 하며, 성경에서도 성경 말씀을 ‘젖’에 비유하면서 벧전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라고 말하고 있고, 겔 3;3 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즉 토라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각각 ‘젖과 꿀’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200만에 이르는 인구의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켜 다른 땅으로 옮기시는 엄청난 일을 진행하시면서 실제 가나안 땅의 상태를 말씀하지 않으시고, 은유와 비유를 통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웬지 ‘귀에 달콤한 말’로만 끝나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이 무너져 버리는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도리어 애굽이 그런 땅이라고 믿었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출애굽 후 광야에서 모세에게 반역했던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민 16:13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라고 항명하였습니다. 애굽 생활을 동경해서인지 또는 가나안 땅의 실체를 알아서인지 항명자들은 애굽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경험해 보면 몇몇 특수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살기 힘들고, 척박하며, 건조한 땅이라는 것이 들통날 것이 뻔할텐데 왜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셨을까요?

세상이 원하는 행복, 곧 ‘젖과 꿀이 보장된 행복’은 철학자 플라톤에 의하면 ‘재물, 명예, 용모, 체력, 언변’ 입니다. 그리고 유교에서는 사람의 복을 다섯가지로 정하여 오복이라 하며 ‘장수하는 것, 부유한 것, 신체가 건강한 것, 좋은 덕을 가진 것, 일생동안 평안하게 살다가 천명을 다해 깨끗히 생을 마치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행복’은 세상이 말하고 있는 조건들로 채워진 것이 아니며, 세상이 주는 조건으로 충족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을까?”라는 이 질문의 대답은 오늘의 본문 12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다짐과 보증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보다 더 안전한 지역은 없습니다. 이 약속 보다 더 안전한 보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능력이요, “젖과 꿀”이 보장된 것보다 더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을 치룰 때도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이길 수 없었습니다. 월력을 따라 농사를 짓고 수확물을 거두는 일에도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허락하여 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했습니다.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 없이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조건이며, 언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문에서 “내가 반드시(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방 신의 흔적들로 가득차 있고, 척박한 자연환경의 그 땅이 하나님의 언약을 충족사키기 위해서는 세상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이 약속과 보증의 선포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 날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나라, 지역, 가정, 그리고 환경이 ‘젖과 꿀이 흐르는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라고 마태복음 1장 23절에 선포된 말씀처럼 주께서 함께 하시는 우리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조건과 세상이 주는 기쁨에 취하여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잃어 버리지 않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고통이 있는 곳에, 질병이 있는 곳에, 낙심과 염려과 근심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그 곳이 거룩한 땅이요, 천국이 됨을 믿사오니 주여 우리와 함께 하여 주옵소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음을 믿사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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