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04/07/2021 수요일 [출애굽기 2:1=10]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4-07 09:23
조회
23

4. 7. 수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본문: 출애굽기 2:1-10]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본문이해]
(1-4, 레위 사람 모세가 태어났지만 석달 만에 강에 버려짐)
레위 족속의 한 가정에서 태어난 모세. 아이의 부모가 아이의 준수함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서 키우다가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 강의 갈대 사이에 두고는 아이의 누이가 멀리서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았습니다.

1절, “레위 족속 중 한 사람”: 본문에는 이름이 나와 있지 않지만 민 26:59, 대상 6:3과 23:13에 의하면 모세의 아버지의 이름은 ‘아므람”이며, 어머니는 요게벳이고, 형은 아론이며, 누이는 미리암입니다. 출 6:16-18에는 아브람을 고핫의 아들들 중의 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고핫은 레위의 아들이었으므로, 아므람은 레위의 손자가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레위가 아버지 야곱과 애굽 땅에 들어올 때 이미 고핫을 낳아서 데리고 들어 왔고(창 46:11), 고핫은 133세에 죽었으며, 모세는 80세에 출애굽을 했으므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던 기간을 약430년으로 본다고 할 때에 최대한 늦게 결혼한 것으로 생각해도, 최소한 고핫의 아들 아므람이 모세를 나을 때는 적어도 약190세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홍수 이후에 인간의 수명이 줄어들었고 장가가는 시간은 빨라 졌으므로 이러한 나이 계산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출애굽 6:18에서 ‘고핫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의 히브리어를 어떻게 이해하는 가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아들’을 의미하는 단어 ‘벤’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에서 5000회 이상 등장하는데 그 중에 630회 이상은 출 10:20처럼 ‘자손들’이라는 말로 번역하여 수대에 걸쳐 형성된 후손들 전체를 가리키곤 합니다. 그러므로 출 6:18의 고핫의 아들들이라는 번역을 ‘자손들’로 번역하여 이해하면 아므람이 고핫의 손자의 손자가 아니라, 고핫의 후손으로 생각하면 나이 계산에서 무리가 있었던 문제점을 고칠 수 있습니다.

1절, “장가들었더니”: 성경의 표현을 빌자면 모세를 낳기 전에 장가들었던 것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모세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아론과 미리암이 있었으므로 “장가들었더니”라는 표현보다는 다른 번역이 필요합니다. “장가들다”의 ‘라카흐’라는 히브리어는 ‘취하다, 삼다, 아내를 얻다, 부부관계를 맺다’ 등등으로 구약 성경에 다른 표현의 번역들이 있으므로 본문에서도 후자인 ‘부부 관계를 맺다’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2절, “아들을 낳아”: 모세의 출생연도는 BC 1527년 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계산은 출애굽 시기를 성경에 나온 말씀들(왕상 6:1, 삿 11:26)을 근거로 하는 전기설을 따라 계산한 연도입니다. 열왕기상 6:1 에 보면 “이스라엘자손이 애굽땅에서 나온지 사백 팔십년 이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률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재위 4년이면 주전 966년경이고 여기에 480년을 더하면 출애굽은주전 1446년경에 일어난 셈입니다. 또한 사사기 11 :26에 보면 사사인 입다가 여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삼백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입다가 사울 왕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사울 왕이 주전 1050년경부터 통치를 시작했으므로 삼백년을 더하고 광야 생활 40년을 더하면 충분히 주전 1440년을 념는 시기가 출애굽의 연대가 됩니다. 모세가 출생할 당시의 이집트 왕은 투트모스 1세일 가능성이 높으며, 목욕하러 강에 나온 바로의 딸은 후에 투드모스 2세와 결혼하여 여왕으로 군림한 하쳅수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아멘호텝 2세가 왕이 되었을 때에 출애굽 사건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많은데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아멘호텝 2세를 계승한 왕이 장자가 아니라, 훗날 투트모스 4게였기 때문입니다. 멤피스의 스핑크스에서 발견된 석비에 아멘호텝 2세의 장자가 왕이 된다는 계시의 상형문자는 없으며, 오히려 투트모스 4세가 왕이 되리라는 계시를 받은 석비의 내용이 있습니다. 만약 그가 첫째 아들이었다면 이런 계시의 석비 내용은 불필요했을 텐데 구지 기록하여 왕위의 정당성을 추가하고 있기 때문에 출애굽 당시의 왕을 아멘호텝 2세라고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3절, “갈대상자를 가져 다가 역청과 나무 진”: 갈대상자는 줄기의 가운데가 비어 있는 상태의 ‘파피루스(Cyperus Papyrus)’를 가리킵니다. 나일 강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로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고 키가 2-3m까지 자라기도 하며, 종이나 배, 옷, 신발, 바구니, 그릇 등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갈대 상자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노아의 방주처럼 역청과 나무 진까지 발랐기 때문에 모세는 무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역청은 오늘날에는 흔히 ‘콜타르’로 지칭되는데 광물성 피지(Mineral Pitch)로서 고대로부터 방수제, 혹은 방부제로 널리 사용되었던 물질입니다.

(5-10, 모세가 강물에서 건져져 애굽 공주의 아들로 성장함)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가에 왔다가 상자를 발견하여 시녀를 보내어 상자를 가져오게 합니다. 상자 속에서 발견된 히브리 사람의 아이를 불쌍히 여기자 멀리서 지켜보던 아이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히브리 유모를 구해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바로의 딸이 허락하였고, 누이는 생모를 유모로 내리고 와서 모세는 생모에게 양육을 받게 됩니다. 아이는 바로의 딸의 아들로 자라나게 되었고, 그녀는 물에서 건져내었다는 의미로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 하였습니다.

5절 “바로의 딸”: 이집트의 제18왕조의 창시자 아모스(Amose, BC 158401560)의 아들인 아멘호텝 1세(Amenhotep 1, BC 1560-1539)의 딸과 투토모스 1세(Thutmose 1, BC 1539-1514) 사이에서 태어난 하셉수트(Hatshepsut, BC 1504-1483) 공주를 가리킵니다. 그녀의 아버지 투트모스 1세가 죽은 후에 자신의 배다른 형제이며 애굽의 왕인 투트모스 2세(Thutomos 2, BC 1514-1504)와 결혼하여 바로의 부인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립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원인 모르게 죽자 남편과 궁녀 사이에서 태어난 투트모스 3세(Thutomose 3, BC 1504-1450)와 자기 딸을 결혼시켜서 그들 위헤서 실제적 권력을 가지고 애굽을 통치했던 여인입니다. 그러므로 사내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 속에서도 모세를 주워다 키울 수 있는 권력과 대담성을 지닌 당대에는 유일한 여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5절,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히브리 성경의 ‘목욕하러(리르호츠)’라는 단어는 단순히 몸을 씨는 목욕을 의미하지 않고, ‘제의적인 씻음’을 가리킵니다. 목욕을 원했다면 나일 강까지 올 필요없이 하인들을 시켜 바로의 궁으로 물을 가져올 수도 있고, 여러가지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나일 강은 애굽인들에게 신이 베풀어 주신 거룩한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곳에서 목욕을 하는 것은 일종의 종교적 정결의식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6절, “아기가 우는지라”: 한글성경은 평서문으로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감탄사가 들어가 있는 문장으로 감탄문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즉 예상치 못한 발견으로 인해 놀라움이 깃들어 있는 감탄문으로 직역하면 “보라! 아기가 울고 있다!”입니다. 감탄문을 넣어서 KJV, NASB 영역본은 “Behold! The babe wept”, “Behold! The baby was crying!”라고 각각 번역하고 있습니다.

9절,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유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뜻은 “젖을 먹이는 여자,” 또는 “젖을 먹여 양육하는 여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단순히 젖을 먹이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가정 생활과 사회 생활에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단순히 모세의 수유만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유아 교육까지도 맡게 된 것입니다. 특이 본문에 “데려가라(take…and nurse)”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애굽의 공주는 요게벳을 궁중으로 불러 모세를 키우게 한 의미 보다는 요게벳으로 하여금 아기를 데려다 키우도록 위탁한 상태에서 키우도록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어쨌든 요게벳이 모세를 직접 키웠으며, 모세가 ‘여호와 신앙’을 갖게 되고 히브리인의 민족성을 잃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공주가 ‘삯’을 준다고 했으니 요게벳은 ‘유모’로 고용된 상태이므로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강제 노역에 동원되거나 다른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돌보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절,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일반적으로 히브리인들은 주로 3살 정도에 젖을 떼었으므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품을 떠나 애굽의 궁전으로 들어간 때는 모세의 나이 3-4살 정도 되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완전히 소년이 되어 애굽의 교육을 본격적으로 받기 전까지는 유모와 같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애굽의 권력자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입양되어 법적인 아들이 된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7: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라는 말씀을 참조하면 바로의 딸이 모세를 자신의 아들처럼 여겨 궁전에 살게 하며 왕족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혜택을 부여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10절, “모세”: 모세의 이집트식 이름은 ‘모우세스(Mouses)’입니다. 여기서 ‘모(Mo)’는 ‘물’이라는 뜻이고, ‘우세스(Uses)’는 ‘건짐을 받다’라는 뜻입니다. 즉 ‘물에서 건짐을 받은 자’ 입니다. 히브리식 이름 ‘모쉐’의 어근은 ‘마솨’이며 이는 ‘건지다, 끌어내다’라는 의미로 애굽식 이름과 그 의미에서 같습니다.

[묵상 및 적용]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모세의 입양 과정을 보면서 “인간의 우연은 하나님의 필연”이라는 성경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 ‘일어났으며…’하며 기대하고 바라는 것들이 실제로 일어나면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기적’ 또는 ‘우연’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도의 입장은 다릅니다. 성도의 삶에서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이것은 ‘하나님의 필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대 상자에 있던 모세가 애굽의 공주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구원의 섭리를 위한 하나님의 필연’ 입니다. 모세를 위하여 만들었던 갈대 상자는 마치 노아의 홍수에 등장하는 방주의 작은 모형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갈대 상자 역시 방주처럼 역청까지 발라 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였으니 완전히 작은 하나의 방주였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은 사람들과 동물들을 구원하였지만, 갈대 상자의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은 방주와 똑 같은 원리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그 단계를 이루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도록 예정된 자인 아기 모세 스스로도 갈대 상자로 인해 생명을 건졌으며,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씨앗이 된 것입니다.

또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과 누이 미리암은 갈대 상자를 나일 강가에 내려 놓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불안했겠습니까? 3개월된 아기를 상자에 넣어 나일 강에 띄운 누이 미리암은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리서 이를 지켜 보고만 있어야 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애달픈 상태였을까요?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생명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역청과 나무 진을 발라서 가라앉지 않도록 한 조치를 보면 요게벳은 분명히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누이 미리암을 통해서 갈대 상자를 지켜보게 했으니 더더욱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서 아기를 건져내 구원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믿었던 것입니다. 요게벳과 미리암의 기대는 단지 ‘어쩌다가 목숨을 구할 사람을 만나겠지…’라는 우연이 아니라, 반드시 ‘구원의 역사’가 있을 것을 믿고 지켜보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의 딸이 이 구속사에 개입되었을 때에 달려 나가 유모를 찾아오겠다고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즉각적인 반응은 준비된 것이며, 하나님의 손길의 역사에 대해서 준비된 행동은 ‘우연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연’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모세를 구원한 여인이 당시 바로의 사내 아이를 죽이라는 엄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바로의 공주였다는 사실은 더더욱 ‘하나님의 필연으로서의 구원사역’을 알 수 있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차질없이 이루시기 위하여 세심하게, 그것도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나일 강가에서 아기를 건졌는데 하필 그 아기가 히브리인의 아기라면 당시의 국법에 의해 죽여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공주의 마음에 ‘동정’의 마음을 주셔서 불쌍히 여기도록 하셨습니다. 울고 있는 아기 모세에게 국법을 어기면서까지 측은함을 느끼고 동정과 연민의 마음을 느낀다는 것은 우연일까요? 아닙니다. 이것 또한 사람의 마음을 창조하시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한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바로의 태어난 남자 아기는 죽이라는 살해 명령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런 소망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하며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셨으며 또한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도 결코 중단되지 않았으며,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멸절 될 위기에 처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은 장차 어둠으로부터 해방시킬 구원자를 준비하심으로써 자기 백성을 위한 구원 사역을 조용하게 진행해 나가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향한 구원 사역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 순간의 단절이나 멈춤도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멸망의 위기에 처한다 할지라도 염려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 사역을 진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섭리의 손길을 바라보며 어떠한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소망을 가지시기를 소원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고 계심을 믿고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구원하실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1년이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 어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대하고, 보시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역사를 깨닫고 볼 수 있도록 성령 안에서 믿음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구원의 과정에 동참하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삶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할렐루야!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사단에게 지지 않고 능히 대적하여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게 하여 주옵소서. 사단의 도전을 능히 대적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게 하옵소서. 우리를 넘어 뜨리기 위하여 사단이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이 시대에 믿음을 굳게 하여 대적하여 승리하게 하옵소서. 사망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들도, 그리고 장래에 일어날 어떤 일들도 결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듯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힘 있게 살아가는 빛의 군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영원한 중보자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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