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2/25/2021 목요일 [마태복음 17:14-27]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2-25 09:50
조회
100

2. 25. 목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기도의 능력”: https://youtu.be/WjDz-Ho3OLI

[본문: 마태복음17:14-27]
14.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1.(없음)
22.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24.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본문이해]
(14-18절, 귀신들려 간질 걸린 소년을 치료하심)
예수님과 야고보, 요한, 베드로가 변화상에 있을 때에 무리들이 귀신들린 한 아이를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제자들은 고쳐 주질 못하고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태 파악을 하신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는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귀신들린 소년을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책망은 일차적으로는 당시의 상황 속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마태가 복음서를 기록한 후에 이 성경책을 읽는 독자들, 즉 1세기 당시의 교회 공동체를 향하여 던진 ‘믿음’에 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본 단락의 사건은 막 9:14-29, 눅 9:37-43에 병행구절로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마태의 기록보다는 마가와 누가의 기록이 더 상세하므로 공관복음서의 내용들을 모두 합하여 재구성하면, 변화산에 오른 그 다음 날 예수님과 세제자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 큰 무리가 제자들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 속에서 서기관들과 제자들이 변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마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때와 상황들을 자세히 기록하기 보다는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에 집중시켜 기록한 것은 정황보다는 주님의 메시야 되심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5절에 등장하는 간질병(헬, 셀레니아제타이)은 달(영, moon; 헬, 헬레네)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귀신에 사로잡히는 것을 달과 결부시켜 수시로 상태가 변하는 간질이나 그 부류의 병, 또는 미친 것처럼 발광하는 증상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현대 의학에서 간질이란 발작적으로 경련하거나 의식을 상실하는 증상의 뇌 질환을 가리킵니다.

17절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의 표현이 저주에 가까운 책망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좁은 의미로는 전통적으로는 막 9:14을 근거로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과 더불어 논쟁을 벌였던 서기관들입니다. 그리고 넓은 의미로는 “세대”라는 표현이 ‘친족, 동시대인’을 표현하는 ‘게네아’라는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들과 동시대에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21절, 제자들에게 믿음의 능력에 대해 가르치심)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을 통해서 마태는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에 기초하여 실천적 행동이 어려웠던 당시의 정황을 반영하고, 또 한편으로는 참 믿음의 능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 10장에서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하면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아이의 병을 고치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이적을 행하는 능력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제자들은 믿음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이적을 일으킬 수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19절에 ‘조용히’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는 없는 표현입니다. 헬라어 원문 ‘이디안’이라는 표현은 “사사로이, 따로”라는 뜻으로 제자들이 군중과 떨어진 상태에서 사적인 자리에서 따로 예수님께 물어본 것을 의미합니다. 20절에 “믿음이 적은”(헬, 올리고피스토스)라는 말은 17절에 “믿음이 없는”(헬, 아피스토스)라는 말과 분명히 다른 의미입니다. 전자는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믿음, 즉 적은 믿음’을 의미하며, 후자는 ‘믿음이 전혀 없는 완전한 불신앙’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믿음이 강하지 못하여 믿음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음을 주께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절, 없음)
한글 개역개정 성경이 따른 헬라어 성경 사본에는 21절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하지만 영어성경 KJV에는 21절을 넣고 있습니다. “Howbeit this kind goeth not out but by prayer and fasting.”로서 직역하면 “그러나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의 뜻입니다. KJV이 21절을 추가한 것은 몇몇 헬라어 사본에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문 내용의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9:14-29에서 29절에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본 학자들은 마태복음의 주요한 모든 사본에는 이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본 절의 내용이 마태복음 원문에는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22-23절,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2번째 예고)
예수님께서 2번째로 수난에 대해서 예고하십니다. 마태는 고난과 죽음이 역사적인 사실이었듯이 부활도 역사적인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두번째 수난 예고를 듣고는 몹시 근심하는 반응입니다. 본 단락에 표현된 ‘근심하더라’(헬, 엘뤼페데산)라는 말은 ‘근심’이라는 뜻 외에 ‘슬픔, 고통, 비탄’의 의미도 있습니다. 이런 반응은 첫번째 수난 예고와는 색다른 반응입니다. 첫번째 반응은 제자들의 거부와 베드로의 항변이라면, 시간이 흐른 뒤의 두번째 수난 예고는 근심과 슬픔이었습니다.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주님의 말씀이 진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사실로 드러날 것임을 알고 고통스러운 슬픔과 괴로운 심정을 담고 있는 근심입니다.

(24-27절, 성전세 납부에 대한 논쟁과 해결)
본 단락은 성전세 징수원들이 베드로에게 스승 예수님이 성전세를 내지 않는 것에 대해 질문하자 예수님이 설명하시고 이적적 방법을 통해 납부하는 내용입니다. 본 단락에 언급된 성전세에 관해서는 두 가지 의견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출애굽기 30:11-16에 규정된 ‘속전’에 대한 내용과 느헤미야 10:32절을 근거로 훗날 25-50세까지의 모든 유대인 남자들이 매년 내야만 하던 성전세입니다. 일부의 학자들은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데 성전에 관한 성전세가 아니라 로마의 과세에 관한 것으로 로마인들이 성전세를 거두어 로마의 제우스 신전을 짓는데 사용하려 했던 세금이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의견에 상관없이 세금을 내는 것에 관한 예수님의 답변의 의도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본 단락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세금을 내는 결단을 내립니다. 비록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금이 면제되는 특권이 있지만, 이방인들과 충돌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으로 세금을 낼 것을 베드로에게 지시합니다. 주님은 세금을 내는 문제는 본질이 아니라 부수적인 문제라고 보시며 사소한 문제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하신 일을 그르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 나라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반 세겔’은 ‘두 드라크마’를 뜻하며, 드라크마는 은으로 만든 유대인의 기본적인 주화로 100드라크마는 1므나이며, 6000드라크마는 1달란트에 해당됩니다. BC 4세기의 유대문헌에 관한 기록에 의하면 양 한마리의 가격이 한 드라크마이며, 황소는 5드라크마에 해당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묵상 및 적용]
귀신들린 아들을 둔 사람이 자기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리고 와서 고쳐 주기를 청하였지만 제자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마가복음 9장의 내용을 참고하면 큰 무리들이 모였고, 무리들 가운데는 서기관들도 있었습니다. 서기관들과 제자들 사이에 변론이 있었고, 어쩌면 서기관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을 조롱하거나 비난을 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능력이 없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마태복음 10장 1절의 기록에 의하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예수님으로부터 받고 능력을 행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7:17-18에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라고 기록하면서 20절에는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제자들에게 권능이 있었으며, 표적을 통해서 이적을 행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쩔쩔매면서 한편으로는 서기관들의 조롱과 비난을 들으며 난처한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이 난처한 국면을 해결해 주셨지만, 자신들의 능력에 대해 부족함을 느낀 제자들이 결국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 20절에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믿음에 “작은 믿음과 큰 믿음”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믿음의 기본적인 골격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쳤던 그들이 지금은 어째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먼저 구분해야 하는 것은 오늘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이 믿음이 우리의 구원과 관계된 믿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과 관계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은혜로 주시는 선물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엡 2:8, 딛 3:5). 그러므로 본문의 문맥에 표현되고 있는 믿음은 “능력 행함”과 관계된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비유를 들면서 표현한 제자들의 믿음은 겨자씨 한 알 만큼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믿음” 이었습니다. 사실 겨자씨도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볼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작은 씨인데, 이보다도 더 작은 믿음이라면 ‘과연 믿음일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얼마나 작은 믿음이기에 능력을 행할 수 없는 것일까요?

작은 믿음? 제자들이 게으르고 영적 훈련을 등한시해서 작은 믿음이 되어 버렸을까요? 전도자로 파송받을 때에 가졌던 뜨거운 열정과 큰 믿음이 어느새 식어 버려서 작은 믿음이 되어 버렸을까요? 이미 받은 은사를 어떤 이유에서 잘 관리하지 못하고 유지하지 못하고 잃어버려서 작은 믿음이 되어 버렸을까요? 아니면 예수님을 순수하게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의지하여 따를 때에 가졌던 순수한 믿음이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의 선언을 듣고 메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과 불확신 때문에 작은 믿음이 되어 버렸을까요?

위의 질문들 중에 한 가지가 이유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전부일 수도 있고, 전부 아닐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묵상을 하고 있는 저도 정확한 답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본문 21절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마가복음 9장 29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참고로 생각해 보면 작은 믿음이 기도라는 경건 생활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할 수 없다’라는 말씀은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없음을 의미하므로 경건 생활의 게으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경건 생활의 게으름은 옛 사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전철을 밟게 됩니다. 주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경건 생활을 게을리함으로써 한번 나간 귀신이 자신에게 다시 되돌아오면 나중 형편이 이전보다 더욱 심하게 된다고 경고하시기도 했습니다. 즉 경건의 게으름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점점 식어가게 하며, 약화시키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이미 받은 은사와 허락하신 능력을 귀하게 여기고 더욱 가꾸어 나가야 하는데, 경건 생활이 이를 가꾸어 나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건에 실패하면 ‘작은 믿음’의 상태를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의 본문에서 제자들이 가진 믿음은 예수님을 참으로 의지하는 참된 믿음, 굳센 믿음이 아니라, 연약한 믿음이요, 경건의 능력이 부족한 믿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과 병행되는 마가복음의 구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요구하셨던 것을 다시 참조한다면 경건의 생활 중에서 기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강한 믿음, 큰 믿음이 되기 위해서 기도와 같은 경건 생활이 선행되어야 함을 마음에 꼭 담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 ‘작은 믿음’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묵상해 본다면, 경건 생활은 성도에게 믿음을 큰 믿음, 강한 믿음으로 성장시킬 뿐 아니라, 믿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역사가 일어났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면, 큰 믿음, 강한 믿음은 물리적인 크기와 세기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참 생명력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믿음’은 생명력이 없는 믿음, 즉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아도 생명력이 있으면 열매를 맺으며,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경건의 능력은 경건의 생활에서 비롯되며, 경건의 생활은 봄을 맞이하여 새싹이 싹을 키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비록 겨자씨만큼 작을지라도 생명력이 있는 믿음은 능력으로 역사할 수 있습니다. 이 하루의 삶에서 생명력 있는 믿음, 굳센 믿음, 강한 믿음으로 자라나기 위해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님! 나의 죄와 허물, 약한 믿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나의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음을 믿사오니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살아 움직여 역사하는 믿음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내 삶에서 기도를 멈추지 않게 하시고, 말씀을 놓지 않게 하셔서 경건의 능력을 소유한 빛과 소금이 되게 하옵소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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