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 묵상 2/18/2021 목요일 [본문: 마태복음 14장 22~36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2-18 14:11
조회
21

2. 18. 목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시선”: https://youtu.be/YHotq0Izh8A

[본문: 마태복음14:22-36]
22.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34.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35.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36.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본문이해]
(22-33절, 물위로 걸어오신 예수님)
22-24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먼저 배로 보내시고 따로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신 내용이며, 25-27절은 예수님께서 밤 사경에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예수님께서 자신임을 밝히시고 안심시키는 내용이며, 28-31절은 베드로가 자신도 물 위를 걷을 수 있도록 요청한 후에 물위를 걷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여 물에 빠지니 예수님께서 구해 주시며 의심에 대해 베드로를 책망하시는 내용이며, 32-33절은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치고, 이런 현상을 경험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며 경배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은 막 6:45-51, 요 6:15-21에 병행구절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자연현상’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이적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이 자연까지 초월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내의 모든 물체는 ‘중력’의 지배를 받습니다. 아직도 현대 과학자들은 ‘중력’의 실체가 무언인지 정확하게 풀지 못하는 신비이지만, 모든 물체는 질량과 거리의 관계에 의한 중력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물위를 걸어가면 가라앉는 것이 당연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중력의 지배를 초월하여 물위를 걸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시고, 요단 강을 마른 땅으로 지나가게 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물을 자유자재로 주관하시는 분임을 묘사하므로 그 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2절에 오병이어 사건 이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즉시” 재촉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 67:14-15을 참조하면 이적을 체험한 무리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면서 억지로 정치적 지도자나 왕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피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사역은 고난을 통해 자기 생명을 내어 놓으므로 완성하는 참 메시아의 길인데 제자들이나, 군중들이 오해할 수 있는 근거를 막고자 무리에서 떨어지시고 제자들을 서둘러 보내신 것입니다.

25절의 “밤 사경”이란 오늘 날의 시계로 환산하면 새벽 3-6시에 해당됩니다. 본문에 ‘경’으로 번역된 단어의 헬라어는 ‘필라케’로서 ‘지키다, 파수하다’라는 뜻으로 명사형은 ‘망보기, 보초, 당직’이란 뜻입니다. 로마에서는 야간에 4교대로 보초를 서면서 초경 저녁6-9시, 이경 9-12시, 삼경 12-3시, 사경은 3-6시로 구분하였습니다. 예수와 헤어져 육지에서 수리나 떨어진 제자들이 탄 배는 갈릴리 호수의 물결과 힘겹게 싸우다 보니 어느덧 사경이 된 것입니다.

25절에서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한 자유주의 해석은 ‘예수님께서 해변가에 무성하게 자란 해초 위를 걸으셨다’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25절에서 “예수께서~걸어서~오시니”라는 문장은 현재분사형의 시제를 사용하여 예수님께 걸어오신 방법이 자유주의 학자들의 해석처럼 어떤 다른 도구나 방법을 통해서 물 위를 걸으신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현재분사형이 묘사하고 있는 주님의 물의를 걸으신 모습은 발로 물을 밟고 중력을 초월하여 물 위를 걸으신 초자연적인 현상이었음을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31절의 “믿음이 작은 자여”라는 헬라어 표현은 신약에서 5번(마 6:30, 8:26, 14:31, 16:8, 눅 12:28)이 사용되는데 모두 제자들에 대해서 사용됩니다. 따라서 이 말은 큰 믿음을 가져야 할 제자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믿음을 가진 데 대한 책망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오늘 날로 적용해 본다면, 우리 성도들 역시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믿음으로 인해 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실패할 수 있고 책망받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32절의 “바람이 그치는지라”의 헬라어 ‘에코파센’은 일회적인 동작을 나타내는 부정과거형으로 ‘자르다, 끊어내다’란 의미로 마치 칼로 잘라내듯이 완전히 멈추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바람이 서서히 잔잔해지면서 멈추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이 배에 오르자 마자 일시에, 한 순간에 멈추었음을 나타내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단어의 선택과 33절과 연관하여 마태는 예수님께서 자연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분명하게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병행구절인 막 6:51-52에는 본문과 달리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경배한 내용이 나오지 않고 단지 제자들이 ‘심히 놀랬다’라는 표현밖에 없지만, 마태는 예수님의 신성을 표현하는 것에 더욱 적극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가와 마태의 표현상의 차이가 있는 것은 마태의 관점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시며 메시야 되심을 밝히는 데 초점을 가지고 있다면, 마가의 관점은 사람들의 반응의 부정적 측면을 기록하여 예수님이 메시아 되심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의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초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34-36절, 게네사렛에서 치유 이적을 베푸시는 예수님)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갈릴리 서쪽에 있는 게네사렛 땅에 이르렀을 때에 그 곳 사람들이 두루 연락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댈 수 있도록 청하였고, 결국 예수님께 손을 대는 자는 나음을 얻었습니다.

[묵상 및 적용]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습을 늘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우리 믿음의 현 주소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의 본문에 등장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 믿음의 현 주소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발견한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요청합니다. 사실 이 요청은 인간적으로 볼 때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요청입니다. 성경말씀은 주님이 배 위에 오르시기 전까지는 물결이 거세어서 갈릴리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 출신 제자들 조차 배를 조종하기에 고생을 할 정도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거센 물결 속으로 들어가서 물 위를 걷기를 요청한 베드로의 요청은 당돌하고 대담한 요청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베드로의 성향이나 성격을 참조하면 베드로는 주님이 물 위로 걸어 오시는 장면을 보고 이것 저것 따지거나, 또는 아무 말도 못하고 놀라거나, 또는 경이로운 장면에 주의 능력과 권위를 믿고 깨달아 알아서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요청한 것이라고는 보여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험한 물 위를 걸어 오시는 주님을 보고 용감성에 기인했다기 보다는 단순함에서 나온 말로 “주님! 나도 걷게 해 주세요”라고 요청했을 것 같습니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믿음! 하나만 생각하는 믿음! 직진하며 앞만 바라 보는 믿음!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눈 앞에 있는 주님만 바로 보는 믿음! 이런 믿음이 베드로의 이 순간의 믿음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때로는 ‘단순함 속에서 믿음이 나오는 경우가 충분히 있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단순함’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베드로의 요청에 주께서 “베드로야! 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근거하여 베드로는 용감하게 배에서 뛰어내려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 베드로의 행동과 벌어진 결과도 일상적인 자연현상을 뛰어 넘는 이적입니다. 그리고 이 기적적인 사건은 베드로 자신의 능력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기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의심하거나 경우의 수를 따지기 전에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순종했던 베드로의 믿음이 결과적으로는 예수님의 능력이 구현되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의 믿음처럼 우리의 삶 속에 고백되어진 믿음을 통하여 주의 능력이 실현되어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이 놀라운 사건 바로 다음에 상황이 급변하게 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할 때 그는 서서히 물에 빠지게 되었다는 기록입니다. 즉 예수님의 능력을 받이들이는 통로가 되는 믿음이 없어질 때, 물 위를 걸었던 믿음을 가졌던 자도 더 이상 그 능력을 지니지 못하고 물 아래로 가라앉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는 향하여 “믿음이 작은 자여!”라고 꾸짖으셨지만, 이 과정 속에서 놓칠 수 없는 베드로의 믿음 한 가지를 더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위기에 처했을 때에 주님을 찾고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30저은 표현하기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부르짖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부르 짖었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말이 성도에게 정말 필요한 기도의 내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시편 기자는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난을 당하여서도 꾹꾹 참고 인내 할 수 있지만, 부르지지 않는 성도는 주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환난 때에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께 긴급 구조를 요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조 요청을 보내야 위기에서 건져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구조 요청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며, 하나님을 가깝게 느끼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의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당신을 찾는 자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에 빠져 가는 베드로의 모습은 바람을 보고 무서워 했던 그의 작음 믿음의 연약함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에 빠져 갈 때에 예수님을 찾고 부르짖었다는 것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베드로의 주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단순한 믿음과 자신의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약점 속에서도 끝까지 주를 놓지 않고 주님을 찾고 의지하는 믿음의 모습을 닮기를 원합니다. 결국 믿음이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바라보고, 의지하고, 끝까지 붙잡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그 분은 자연법칙 자체를 주관하시며, 세상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의 과학자들은 자연법칙을 이용해서 큰 과학 문명을 일으켰지만,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자연 법칙을 지배하지는 못했습니다. 세상 과학자들은 오직 만물 가운데 역사하는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용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연법칙 자체를 주관하시고 지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자연이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며, 소위 ‘자연법칙’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의 손길’ 이며, ‘예수님의 다스림’이며, ‘성령의 인도하심’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모든 지(知), 정(情), 의(意), 곧 지식과 감정과 의지, 그리고 생각과 행동의 모든 방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여 주께서 역사하시는 능력과 은혜의 현장을 경험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 우리의 연약한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힘들고 어려울수록 주님의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의 손을 붙잡게 하옵소서. 늘 주의 곁에 거하게 하시고, 주를 바라 보게 하옵소서. 환난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도 주를 보게 하옵소서.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자도 주를 보게 하옵소서. 아픈 상처와 염려와 두려움 가운데 있는 자도 주를 보게 하옵소서. 주를 바라 볼 때에 주께서 일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서 세상과 우리 모두가 주를 알게 하옵소서. 어둠과 두려움을 물리치시고 빛과 평안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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