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 묵상 2/11/2021 목요일 [본문: 마태복음 12장 38~50절]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2-11 09:12
조회
35

2. 11. 목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광야를 지나며”: https://youtu.be/XjrPx-I5CqA

[본문: 마태복음12:38-50]
38.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41.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42.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43.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46.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47.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48.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49.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본문이해]

(38-45,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
38절은 바리새인 등 몇 사람이 예수님께 표적 보여주시기를 요구한 내용이며, 39-40절은 예수님께서 오직 요나의 표적만 보이시겠다고 대답하시면서, 41-42절에 완악한 세대를 향해 책망하시고, 43-45절에 완악한 세대를 향해 일곱 귀신들리게 된 자의 비유를 통해 경고하시는 내용입니다.

일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표적(헬, semeion 세메이온)”은 어떤 인격이나 사물을 다른 것으로부터 두드러지게 구별해 주는 표시와 같은 것들을 총칭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보통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기적’이나,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을 예표하여 보여주는 ‘징조’와 같은 것을 가리킬 때도 쓰이곤 합니다. 유대 랍비들은 장차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면 그가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메시아라는 것을 증거할 수 있는 표적을 보여줄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가르쳐 왔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메시아로서의 기대감을 가지고 요청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메시아가 아닐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이를 증명하려고 표적을 구한 것입니다.

이미 주님은 마태복음 8, 9, 12장에 기록된 것처럼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 많은 표적을 듣고,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표적을 구합니다. 표적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능력자임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이 메시아이심과 주를 통해 천국이 도래했음을 보여주기 위함 입니다. 마음의 문이 닫혀진 상태에서는 아무리 주님이 이적을 행하고 권위있는 가르침을 전하여도 깨닫지 못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표적을 구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이 세대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39절)라고 규정하시며 ‘더 악한 일곱 귀신’의 예를 들면서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된 “악한 세대”라고 규정하십니다(45절). 43절에 사람에게서 나온 ‘더러운 귀신이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했다’라는 말의 배경을 살펴보면 유대 문헌들에 의하면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귀신들의 처소로 여긴 장소가 광야, 즉 척박하고 건조한 땅으로 생각했습니다. 즉 귀신들이 나와서 광야 여기 저기를 돌아 다녔다는 의미가 됩니다.

본문에 기록된 “요나의 표적”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키는 표적으로 예수님이 보여주실 최고의 표적입니다. BC 8세기경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사흘간 갇혀 있다가 살아난 사건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본문 40절에 기록된 “밤낮 사흘 동안”로 번역된 말은 유대인의 전통적 시간 개념에 의하면 만3일로 72시간을 꽉 채우는 개념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후 3시에 돌아가셔서, 안식일이 시작되는 오후 6시전에 장사 되셨으며, 안식 후 첫날인 주일 새벽녘에 다시 살아나셨으므로 72시간 동안 무덤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약 2박 3일로 볼 수 있는 시간동안 죽음 가운데 계셨습니다.

주님은 표적을 언급하시면서 자신이 “요나보다 더 큰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표한 것이므로 실체인 예수님의 죽으심이 그림자인 요나의 표적보다 더 크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덜 큰 요나’의 전도를 듣고도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였는데 ‘요나보다 더 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의 사람을 “당신들이 죄인입니다”라고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남방 여왕은 ‘덜 지혜로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남방에서 왔는데(왕상 10:1-13에서 스바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 온 사건),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더 지혜로운 예수님”의 말씀을 거절하므로 최후의 심판 때에 남방 여인이 이 세대의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니느웨 사람들이나 남방 여왕은 모두 유대인들이 부정한 자들로 무시하였던 이방인이라는 것이며, 심판의 때에 이방인으로부터 정죄를 받을 것이라는 선언은 매우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46-50, 성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예수님의 가족)
46-47절에 예수님께서 무리와 말씀하실 때 한 사람이 주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48-50절에서 예수님의 반응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라고 하시면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가족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가족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혈육적인 가족 개념을 무시하시거나, 포기하신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반문이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해야 한다”라는 것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에 등장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주님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한채 의문만 제기하고 비난에 집중하는 한 결코 영적으로 주님의 가족이 될 수 없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묵상 및 적용]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을 고치시며, 앉은뱅이를 일으키시며, 앞을 못보거나 듣지 못하는 자를 보게하고 듣게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런 능력을 행하시는 현상을 기적이라고도 하고, 표적이라고도 합니다. 이 두 단어는 비슷한 것 같지만, 지향하는 방향점이나 목표에 의해서 서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적은 놀라운 것이며, 일어난 현상 때문에 기적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표적은 기적의 현상을 통하여 기적을 경험한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일으킨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셨다면, 이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발견하게 되면 기적은 기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표적을 통해서 메시아를 발견하지 못하고, 믿음에 이르지 못한다면 표적이 아니라 기적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맙니다.

본문에서 유대인들을 표적을 구했습니다. 많은 표적을 들었고, 보았고, 눈 앞에서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표적의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표적이 가리키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불행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등장하는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메시야로서의 기대감을 가지고 표적을 구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닐 것이라는 불신과 선입관을 가지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표적을 구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죽었던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도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이런 자들은 표적이 가리키는 예수께서 메시아 이심을 깨닫지 못합니다.

요한은 복음서에서 이런 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요 10:25), 요한복음 12: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요 12:37)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표적을 듣거나 보고,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만나는 자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 예수님이 직접 일으키신 표적의 사건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살아 가는 삶 속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흔적들(간증)은 얼마든지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간증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들을 깨닫게 된다면 간증과 경험들도 넓은 의미에서 표적이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표적이나 간증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믿는 자를 위한 주님의 은혜의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더욱 굳게 세우고 확신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보여주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증의 표적’을 통해서 말씀과 진리의 권위를 확증하시므로 참된 신앙을 위한 시청각 교육 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사에 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나고, 가난이 물러가는 기적이 일어나고, 아이를 못 낳던 여인이 해산하게 되는 일이 생기고, 악한 자가 바뀌어 선한 자가 되는 일이 생기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곤 합니다. 이런 기적과 같은 일들이 믿는 자에게도, 믿지 않는 자에게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이런 일들은 그저 그럴듯한 이야기요, 자수성가의 이야기요, 역전 드라마의 한 주제에 불과할 뿐이지만,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증거이며, 간증이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발견하고 깨닫는 표적이 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표적, 간증의 표적들이 많기를 소원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 구하는 불신을 전제한 표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간증의 표적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들, 일초, 일분, 한시간, 하루, 일년 등등의 시간이 모두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흘러가는 시간 속에 하나님의 흔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삶 속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건들 속에서만 아니라, 하루 하루 똑같다고 생각하며 시간이 덧없이 흐른다고 생각하는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움직이시는 손길’을 경험하시는 깊은 묵상이 있기를 바랍니다. 일상에서 비롯된 간증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끼고, 깨닫고, 경험하는 표적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내 삶으로 찾아 와 주시옵소서. 주님이 내 삶 속에 계시면 따뜻해 지며, 부드러워지며, 풍성해지면, 행복해지오니 내 삶으로 오시옵소서. 어쩌면 이미 주께서 내 삶 속에 와 계신데 제가 깨닫지 못하는 아둔함이 있다면, 저를 용서하시고 믿음의 눈을 뜨게 하셔서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말씀묵상의 깊이를 더하셔서 주님의 흔적을 찾는 안목의 정결함과 거룩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자신을 죽이심으로 우리를 구하신 사랑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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