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2/6/2021 토요일 [본문: 마태복음 10장 34-42]

작성자
Hojoon Song
작성일
2021-02-06 09:42
조회
35

2. 6. 토요일. 오늘의 말씀묵상

찬양링크 ”갈보리산 위에”: https://youtu.be/3QwScFwa-8U

[본문: 마태복음 10:34-42]
3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40.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생명의 삶 온라인 링크]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edit_all=2021-02-06

[본문이해]
[34-39절]
본 단락은 제자들이 세상과 겪게 되는 갈등의 필연성을 말하면서 그들이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결연한 태도로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헌신의 요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헬라어 성경에는 34-35절은 과거시제를 사용하면서 복음으로 인한 피할 수 없는 세상과의 갈등과 박해에 대해서 말하고, 36-38절은 현재 시제를 사용하면서 제자로서 요구되는 절대적 헌신의 삶에 대해서 말하고, 39절은 미래시제를 사용하면서 자기 목숨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제의 변화와 내용의 강조점이 점점 상향되는 점층법적 구조를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따라가는” 충성된 삶을 살기 위해서 스승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기준이 되어야 함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본 단락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가족들 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다툼이 생길 것을 말씀하십니다. 육신적인 혈연관계를 주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시하거나, 이 세상의 외적인 평안을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보다 더 중요시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34절의 ‘화평’이란 말의 용례는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 평안의 상태가 아니라, 그냥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반적인 다툼이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주님이 세상에 주시고자 하는 참 평안은 이런 상태의 화평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화평이며, 근원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함으로 누리는 두려움과 죽음을 물리친 상태를 의미합니다.

35-36절은 구약 아하스 왕 시대의 부패상을 묘사한 미가서 7장 6절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의 인용입니다. 미가선지자는 종말론적 구원 사건이 있기 전에 일어날 분쟁에 대해서 언급하였는데, 이러한 언급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경전과 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탈무드에도 메시야의 오심으로 인해서 가정 안에서의 불화에 대해 언급되어 있습니다. 가정은 서로가 희생하며 위안을 주고 삶의 활력을 주는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이 제정하신 공동체인데, 이러한 공동체가 붕괴되어 서로 불화하며 원수로 여기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충격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의 진의를 모르는 세상 비평주의 학자들은 이 본문에 대해서 기독교는 반인륜적이고 예수를 믿으면 무조건적으로 가정의 불화가 오는 것으로 호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주를 대충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따르기 위해서 갈등과 분쟁을 피할 수 없으며, 그 분쟁의 대상은 이방인이나 권세자들만이 아니라 가까운 혈육이 될 수도 있음을 마태복음 10장에서 반복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37-38절에 등장하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라는 표현은 무려 세번이나 반복되어 사용되는데, 원어적 의미를 직역하면 “나에게 가치가 없다(is not worthy of me)”라는 의미입니다. 본절의 내용과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14:26-27에서는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교적 배경에서 이러한 가르침은 유대인들에게 생소한 것이 아니라, 익숙한 가르침의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랍비들의 교훈집에는 ‘스승(랍비)을 아버지보다 더 추종해야 할 사람’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랍비들은 때에 따라서는 제자의 개인적인 일이나 관계가 스승보다 우선될 수 있다고 경우에 따른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러한 유대교적 배경의 교훈에 “언제나” 예수님을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매우 강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38-39절에 주님을 따를 때에 자기를 부인하고 따라가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육신적인 평안함과 안락함을 버리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곧 고난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과 생명과 복락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39절의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담긴 최대의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마태는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라는 이 역설적인 진리를 제자의 도에 부연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표현에서 ‘목숨(프쉬케)’이란 단어는 ‘육신적인 목숨’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이중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욕구나 마음, 정신 상태’까지도 넓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의역은 평소의 삶 가운데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조차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드린다는 것은 모순일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40-42]
마태복음 10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의 상급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성도들에게 핍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헌신을 귀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주를 영접하거나, 선지자를 영접하거나, 의인을 영접하거나, 또는 제자의 이름으로 작은 자 중에서 하나라도 대접하면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0절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라는 표현에서 ‘영접’이란 단어가 2번 사용되는데 헬라어에서는 서로 다른 단어가 사용됩니다. 첫번째 ‘영접하다(데코마이)’라는 단어는 누군가를 ‘손님으로 받아들이다,’ 또는 ‘무엇을 인정하거나 가르침을 수용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나오는 ‘영접하다(데케타이)’는 보다 근원적인 태도로서 누군가를 인정하고, 가르침을 배우며, 주인으로 섬기는 다짐과 태도와 행위까지 포함하는 표현입니다. 즉 “나를 영접하다”라는 의미는 에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그의 가르침을 배우며 그를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섬기며 살기로 다짐하는 태도와 행위를 뜻하는 것입니다.

대접은 물질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대접하는 자의 정성이 중요함을 말하며, 동시에 대접하거나 영접하는 사람은 그 행위를 할 때에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며, 선지자나 의인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며, 제자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곧 마태는 본 단락을 통해서 영접이나 대접하는 것은 곧 주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과 같음을 말하므로 그들의 사역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깨우쳐 주며, 동시에 그들의 수고와 헌신에 위로와 격려를 더하며,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해 주고 있습니다.

[묵상 및 적용]
오늘은 34-37을 중심으로 묵상을 하려고 합니다.

요즘 SNS나 방송에서 누군가의 의견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폄하하거나, 공격하는 것을 ‘디스(Diss)’한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존경하다’라는 ‘Respect’의 반대말로 ‘Disrespect’의 줄임말입니다. 이 용어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때로는 쉽게 언급되어지기도 하며, 또는 심각하게 받아 들여지기도 합니다. 누군가와 관계가 틀어지거나 불화가 생기는 것은 물리적인 타격은 아니지만, 심적으로 정신으로 어떤 물리적 타격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와서 때로 이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해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의 소식들도 종종 들리곤 합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불화”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문 35절에 등장하는 ‘불화하다’라는 말의 헬라어는 ‘디카조(Dicajo)’로서 이 말은 ‘두 번’이라는 뜻의 ‘디스(dis)’와 관련을 갖고 있는 단어로 ‘둘로 나누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헬라어에서 ‘디스’라고 말하면 이는 때때로 관계가 깨지거나, 의견이 갈라지거나, 분열이 일어나서 둘로 나누어진 상태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요즘 사용되는 ‘디스(Diss)’라는 말과 헬라어의 ‘디스(Dis)’라는 말이 우연인지 아니면 어원적으로 연관이 있는지 더 깊이 살펴 보아야 하겠지만 묘하게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묵상의 첫 머리에 써보았습니다.

오늘 34-35절에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목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하시는 구원이나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고 불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희생, 사랑”라는 공식은 성립되는데 “예수님=검, 불화”라는 공식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아서 더더욱 본문 말씀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하고, 경제적으로 번영된 국가를 이루어 결국 다윗의 영광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능력있게 사역하시자 주님을 그러한 정치적은 메시야로 생각하고 속히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기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행보나 사역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갔습니다. 주님은 정치적 해방이나 경제적 번영과는 관계없이 죄인들을 구원하고 그들의 물리적인 상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죄인을 구원하는데 관심과 사역의 방향이 맞추어져 있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적 정황 속에서 예수님은 본문을 통해서 메시야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의 그릇됨을 지적하시고, 주님의 사역이 영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대립과 갈등이 일어나게 될 것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실 엄밀하게 따져보면 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이 세상은 온전히 사탄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적인 갈등이나 대립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의의 세력들이 생겨나게 되고, 그로 인한 사탄의 세력과의 충돌과 갈등이 불가피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이 땅에 “검’을 준다는 의미는 어떤 의미에서는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여 ‘검’을 이 땅에 휘두르시겠다는 공격의 신호탄이며, 전쟁의 서두를 알리는 선전포고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져 가야하고, 그 가운데 생겨난 이러한 영적인 대립과 갈등, 그리고 사탄과의 영적 전쟁 속에서 진정한 성도에게 고난과 핍박은 반드시 찾아오는 ‘필연적’인 과정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44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라는 말씀에서 주님은 복음과 천국의 가치에 대해서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하면 ‘자기의 소유,’ 즉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행동이요, 이는 마음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도 꼭 소유해야만 할 절대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과 대치되거나 대적되는 세상의 상황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의 내용을 단순하게 윤리적, 도덕적 문제로만 보는 것은 말씀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태가 본서를 기록할 당시에 그가 속한 공동체나 그 외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혹독한 박해를 당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들의 가족들로부터도 신앙의 문제로 인하여 핍박을 당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바로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부각시킴으로써 유대인의 전통과 구약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 공동체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받는 고통과 어려움은 이미 구약 성경에서 예언된 일이며 그리스도로 인해 받는 핍박은 참된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역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복음으로 인한 고난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의 정체성에 점점 더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고난과 핍박은 더 심해지는 것 또한 필연적입니다. 핍박과 고난의 두려움을 해결하고 여전히 그리스도인의 행보를 이어가기 위해서 주께서 남기신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와 능력이 됨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 15:19-20에서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라고 기록하면서 우리를 역설적으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도 그의 서신서 4:12-13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하며 소망의 위로를 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위로는 문자의 위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움직이신다는 증거요, 함께하신다는 믿음의 기초이기 때문에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따라 행할 때에 참된 위로와 용기와 힘과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기도]
우리를 위해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 받으신 예수님!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연약함을 도우셔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하여 가정에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 지게 하옵소서. 주님으로 인하여 우리 삶 속에,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참된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육체의 질병과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르 짓누르는 이 시대에 주님 때문에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을 믿음 안에서 깨닫게 하옵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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